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1
31화
기도하는 성직자의 눈물.
65레벨에 착용하기 무난한 유니크 아이템으로, 세인트들 사이에선 보급형 무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리디안의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세인트가 필요한 정신력이나 체력 수치는 낮고, 지능만 쓸데없이 높게 붙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가끔 드롭되는 불량, 혹은 쓰레기 아이템이라고 할까?
잘만 활용한다면 인트 다크 템플러에 대한 대항 무기로 쓸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결투장에서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1초가 급한 결투장에서는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해제하기 위해 배틀 세인트들이 일부러 지능이 달린 아이템을 세팅하기도 했다. 대략 10 전후의 수치 차이면 큰 효능을 보니까.
하지만 PVP 맵도 아닌 일반 필드에서 몹과 보스를 상대로 세인트들이 굳이 사냥터에 인트 무기를 들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게임 시절 최고 난도로 몰매 맞았던 ‘신전을 지키는 자’의 디버프 역시, 디버프 해제에 높은 지능을 요구할 정도는 아니었다.
리디안은 그저 희소성과 재미로 지능 무기를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 다녔을 뿐, 이 웃기는 아이템이 이 상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이없었다.
리디안은 황급히 무기를 꺼내 스위칭했다.
“신성한 축복!”
기적처럼 한 번에 이모탈의 석화가 풀리지는 않았다. 두 번째 외침에 비로소 이모탈의 석화가 풀렸다. 그래도 안 풀리면 어쩌나, 걱정하던 리디안은 크게 안도했다. 일시적으로 높게 상승한 지능 스탯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
다행히 시야는 정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이모탈은 석화가 풀리자마자 곧장 전체 힐을 사용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탄성이 터졌다. 그에 앵두군도 정신 차리고 다시 버프 역할로 돌아갔고, 럭키가이와 도륵도 정신없는 힐 난타를 중지했다. 난장판이 되었던 상황은 리디안의 스위칭으로 무사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연이은 이상 현상에 마제스티를 비롯한 랭커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스킬 쿨타임을 기다리느라, 가벼운 주먹질만 하고 있던 이노센트가 먼저 투덜거렸다.
“뭐야, 레온 우리한테 사기 쳤어? 별거 없었다며.”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마제스티는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일주일 전 클리어고, 그사이에 생겨난 변수라고 보는 게 맞겠지. 레온이 우리한테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우호 관계에 있는 레온이 레기온에게 괜한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이노센트도 사실 그 성격을 알기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짜증 나는 건 참을 수 없어 신경질적으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아, 이 언니는 왜 재수 없게 우리 타임에 행패야?”
보스에게서 잠시 물러난 크라이그도 다가와 찝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호 형. 이거 아무리 봐도 그때 박회장이 얘기했던…….”
마제스티는 고개를 흔들어 입을 막았다. 아직 확인해야 할 것도 많았고 모두가 있는 앞에서 함부로 얘기할 사안은 아니었다.
“나중에 얘기하자, 윤재야. 일단 클리어부터 하고.”
“네.”
불량 아이템을 낀 리디안의 신축 덕분에 전세는 다시 안정됐지만, 시간이 흘러 융합 마녀의 HP 게이지가 줄어들수록 전체 공격의 대미지는 자꾸만 늘어났다. 초반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마녀의 피가 60% 아래로 떨어지니 확실히 체감됐다. 태양 길드의 오디오스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사실이었다.
길드 마스터와 부길드 마스터는 한동안 눈빛을 주고받았다. 가능한 길드원 모두가 보스 범위 내에서 버티며 끝까지 함께 하길 바랐는데, 길드 마스터 입장에서 길드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순 없었다.
빠르게 판단한 마제스티가 결국 큰 목소리로 외쳤다.
“융합 마녀 HP 낮아질수록 공격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전체 공격 버티기 힘든 분들은 바로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나 주세요!”
그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일부 길드원들이 동요하며 다급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리디안은 이모탈의 아이템 세팅 도움으로 인해 아직까진 버틸 만했다.
세인트 중에서는 가장 저레벨인 도륵만 사정거리 밖으로 이탈했고, 그 외 보조 딜러들과 레벨이 낮은 노네임, 그리고 일부 길드원도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65레벨이지만, 가디언으로서 용감하게 자리를 지킨 자토는 리디안과 눈이 마주치자 히히 웃었다. 그에 리디안이 더 힘을 얻고 자리를 지켰으나, 융합 마녀의 HP가 50% 아래로 떨어지자 리디안의 HP는 전체 공격 한 번에 70% 이상 줄기 시작했다.
머리 꼭대기까지 울리는 아픔에 더는 참지 못한 리디안은 찡그리며 외쳤다.
“이모탈 님, 저 이제 못 버틸 것 같아요.”
조금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니, 이모탈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도 무기, 무니한테 잠시 빌려주세요.”
그동안 ‘기도하는 성직자의 눈물’을 끼고 디버프 담당을 했던 리디안은 냉큼 무니에게 아이템을 양도했다. 이제 디버프는 무니 담당이었다. 럭키가이도 조금 전에 빠진 참이라, 남은 세인트는 이모탈, 앵두군, 무니뿐이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이동하라는 그들의 배려에 리디안은 조심스레 융합 마녀의 시야를 빠져나왔다.
“고생했어, 리디!”
한참 전에 물러난 행복이 리디안의 어깨를 다독였다.
“언니도 고생 많으셨어요.”
리디안은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오래 버텼다며 내심 뿌듯했지만. 랭커와 탱커, 힐러만 남은 상황을 보니 아쉽기도 했다.
끝까지 함께 남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70되고 놀지 말고 더 열렙할 걸 그랬다고.
푸념하면서도, 끝까지 남아 활약하는 랭커 세인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끈, 레벨 업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우리 자토 잘 버티네?”
“그러게요. 이렇게 보니까 진짜 멋있어요.”
그 수라장 속에서도 제법 잘 버티는 자토를 응원하며, 손에 땀을 쥔 채 관전하다 보니 어느새 이십 여분이 지났다.
다들 피로해진 만큼, 융합 마녀의 HP는 이제 5% 아래로 한참 떨어진 상태였다. 덩달아 랭커들의 HP도 이제는 전체 공격 한 번에 반 이상 넘게 깎여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10% 단위로 줄어들 때마다 공격력이 늘어나는 듯하니, 아마 더 위험해질 일은 없을 거라고. 누군가 그리 중얼거렸다.
모두가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때, 불꽃심장의 ‘엘레멘탈 스피어’로 인해 융합 마녀의 피가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쿨타임이 5분대로 몹시 긴 편이지만, 75 이상 고레벨 희귀 스펠답게 위력만은 엄청났다. 거기에 불꽃심장의 빵빵한 아이템 옵션이 더해지니…….
“마녀 딸피 됐다!”
거의 닳은 게이지에 모두가 환호했다. 쉼 없이 움직이던 딜러들이 그에 박차를 가했다.
때마침 쿨타임이 돌아온 이노센트가 가장 대미지가 높은 스킬,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융합 마녀의 안면에 내리꽂았다. 그 타격에 정신없이 두 팔을 휘두르던 융합 마녀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떴다.
크리티컬 표시였다.
“나이스 샷!”
신이 난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융합 마녀는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그리고 검은 재가 되어 증발하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른 딜러들이 그대로 멈춰 주저앉았고, 방방 뛰는 길드원들 사이에서 리디안은 빠르게 올라가는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융합 마녀가 사망했습니다.] [인첸트 스톤 을 입수했습니다.] [여린 눈물의 흔적 을 입수했습니다.] [비극의 일기장 을 입수했습니다.] [경험치가 152,631 올랐습니다.] [745,500 골드를 입수했습니다.]바보처럼 시스템 창을 바라보던 리디안의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드디어 끝났다.
생애 첫 레이드. 게임이 아닌 이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레이드였다. 그것도 길드원들과 함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리디!”
제일 먼저 달려온 자토가 환한 얼굴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리디안도 웃으며 손뼉을 마주쳤다. 자토는 곧장 행복과도 손뼉을 쳤다. 그녀들이 꺅꺅 환호하는 사이, 랭커들도 생각보다 진땀을 뺀 레이드에 혀를 내둘렀다.
“아오, 뭐 이렇게 심장 쫄깃하냐. 우리 융합 누나 동네북 아니었어? 야, 파파. 네가 융합 누나한테 버프 줬냐?”
바드 파파를 몰아가며 장난을 치는 사이, 일부 랭커들은 따로 모여 생각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사망자 없이 클리어해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 마제스티가 안도의 숨을 뱉었다. 근처로 모여든 랭커들 역시 심상치 않던 보스의 패턴에 몸서리쳤다.
이노센트는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융합 마녀가 있던 자리를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나 참~ B구역이 이 정도면 A는 어떤 거야?”
“이 패턴대로면 A는 진짜 올 랭커 단위로 가야겠는데요? 경직이나 소환, 디버프는 그렇다 쳐도. 전체 공격 대미지 늘어나는 건 진짜 못 버티겠는데?”
테세우스와 세자의 농담 섞인 말에 마제스티와 크라이그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침묵했다. 테세우스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던 랭커들도 다가와 한마디씩 던졌다.
“전체 공격에 포함된 이상한 경직. 그리고 잡몹 어그로도 확실히 이상했어. 아예 비격수를 노리고 가던데?”
“석화도 이상했죠. 융합 마녀가 원래 디버프 걸 때는 비격수는 안 건드렸잖아요. 딜량 높은 딜러만 노렸지.”
“뭔가 지능적으로 바뀐 느낌이지? 어딜 노려야 붕괴하는지 잘 아는 것처럼.”
날카로운 이노센트의 발언에 모두의 안색이 찌푸려졌다. 그녀가 지칭할 만한 건, 죽은 융합 마녀뿐이었다.
“길마 형, ONE은 이런 적 없었대요?”
테세우스의 물음에 마제스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클리어는 일주일 전이기도 하고. 레온이 일부러 말 안 했을 리도 없으니까. 그사이에 생겨난 변수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애초에 지금 상황 자체가 서버 오류로 생겨난 상황으로 가정하고 있으니, 그게 가장 설득력 있지 않을까?”
“그건 그렇긴 한데.”
“일단 이 문제는 레온이랑 다시 얘기해 볼게. 이런 식으로 힘들어지면 레이드 다니는 것도 힘들어질 거고, 우리도 위험해지니까. 빨리 확인하고 처리하는 좋을 것 같아.”
짐짓 심각한 마제스티의 표정에 다소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덩달아 침울해진 남편의 등짝을 가볍게 두드린 이노센트는 휙 돌아서서, 저 멀리 있는 리디안을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우리 리디! 센스 있다니까!”
신이 난 걸음으로 뛰어가는 이노센트를 바라보며, 나머지 랭커들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동감했다.
석화에 걸린 이모탈을 풀기 위해 지능 아이템으로 스위칭하던 기지는 칭찬할 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런 걸 평소에 갖고 다닌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마침 리디안이 있는 곳에서도, 세인트들이 모여들어 그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와, 리디안 님 진짜 덕분에 다행이었어요. 어떻게 지능 무기를 갖고 계셨어요? 혹시 이런 일 예상하고 미리 갖고 다니신 거예요?”
초롱초롱한 이모탈의 물음에 리디안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우연이죠. 지능 신축은 어차피 PVP에서나 먹히는 거고요. 그거 그냥 옵션이 너무 유니크해서 제가 재미로 갖고 다니던 거예요. 아이템 외형도 예쁘기도 하고 해서…….”
민망하게 웃으니, 세인트들의 시선이 ‘기도하는 성직자의 눈물’로 향했다. 무니의 손에 들린 작은 십자가 모양 팔찌를 바라보던 모두가 황당해 웃었다.
기도하는 성직자의 눈물
착용 조건 : 65 LV / 등급 : 유니크 / 단계 : 중급
공격력 : 15~20 / 정신력 : 6 / 지능 : 25 / 체력 : 4
HP : 80 / MP : 100
세인트 자애의 손길 치유력 10% 증가
세인트 여신의 손길 치유력 10% 증가
~안드바리의 황금 망치를 통한 추가 부가 옵션1 획득 가능~
“와, 어떻게 이런 괴상한 아이템이 다 있지? 활에 지능 달린 것도 봤지만, 이건 지능만 너무 극 옵션이네.”
“이 정도면 다람이 디버프도 한 번에 풀겠는데요? 아, 나중에 실험해 보고 싶다.”
앵두군과 무니가 기가 막혀 혀를 내둘렀다. 이모탈도 어이없는 수치에 허탈하게 웃었다.
정신력은 MP의 최대치와 회복력에 영향이 있어 비격수라면 무조건 관리해야 하는 스탯이었다.
순수 스테이터스 스탯은 기본 MP에 영향을 끼치며 아이템에 의한 부가 스탯은 회복력에 영향을 미친다. 게임 때는 회복 포션 탓에 부가 스탯이 크게 의미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꽤 신경 써야 할 수치였다.
“진짜 처참하네. 차라리 지능 말고 정신력이 25면 얼마나 좋아…….”
“아깝네요. 나름 보급형으로 쓰기 좋은 아이템이라……. 지능만 아니었으면 망치 쓰고 맞춤 제작해서 썼을 텐데. 아, 어차피 지금은 캐시 샵도 못하니 그것도 의미 없나?”
앵두군과 무니가 불량 아이템을 두고 떠드는 사이, 이모탈은 리디안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스위칭해서 쓰실 생각을 하시다니, 진짜 잘하셨어요.”
칭찬에 부담스러워진 리디안은 무안하여 얼굴을 긁적였다. 그사이 휙 달려온 이노센트는 리디안의 등을 붙잡으며 깔깔 웃었다.
“나 진짜, 리디 무기 스위칭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모탈 삼촌도 우리 리디 엄청 대견했지?”
“맞아요. 모탈 형님 석화 계속 안 풀려서 저 엄청 당황했거든요. 버프는 해야 하는데, 다들 살려 달라고 난리 치고, 내 피도 쭉쭉 줄고. 일단 살고 보자고 무작정 힐 했죠. 그래서 버프도 다 끊기고.”
“진짜요. 모탈 형 때문에 다들 정신 못 차리고 힐만 사용할 때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니까요?”
혀를 내두르는 앵두군과 무니의 반짝임에 리디안의 얼굴이 더 새빨개졌다. 다른 세인트들도 그에 동감하는지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세인트들 사이에서 멍하니 서 있던 리디안에게 이노센트가 착 달라붙었다. 자토와 행복은 각각 다른 길드원과 얘기 중이었다. 이노센트는 얼빠진 리디안을 쿡쿡 찌르며 히죽 웃었다.
“어때, 리디? 재미있었어?”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리디안은 땀을 삐질 흘렸다.
“재미있긴요. 저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왜~ 스릴 있고 좋잖아.”
이노센트는 깔깔 웃었다. 리디안은 겁이라곤 하나 없는 그녀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워낙 낙천적이고 용감한 성격인 걸 알고 있지만. 오늘 플레이를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쩜 그렇게 용감하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나도 딜러를 했으면 저런 움직임이 가능했을까?’
문득 생각난 상상이 어이없어 픽 웃음이 흘러나왔다.
존경스럽게 이노센트를 바라보던 리디안은 조심스레 질문했다.
“그런데 언니는 안 무서워요? 죽는 거… 느낌이 좀 그렇다고 하잖아요.”
“나? 흠. 글쎄. 난 이미 두 번이나 죽어 봤는걸? 딱히 무섭거나 그러진 않아.”
“네? 정말요?”
“응. 초반에 한 번. 한창 랭커들이 PK 사망 실험할 때, 내가 실험당했거든.”
“지, 진짜요? 그럼 처음에 광장에서 레온 님이 실험했다고 말했던 그게…….”
이노센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디안은 이번엔 정말 놀랐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지간한 용기 아니고서는 도전하지 못할 일이었을 텐데……. 원래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른 대단함이었다.
“근데 나 말고도 다른 길드에도 몇 명 더 있었어. 공평성을 위해 각 길드에서 두세 명씩 나왔거든. 초반엔 페널티 같은 거 전혀 몰랐던 때라. 다시 살아난다는 소문만 믿고 레기온에서는 나랑 남편이 몸 던졌지. 우리 부부가 또 도전 정신이 강하잖아.”
깔깔 웃는 이노센트는 다시 생각해도 참 재미있었다는 눈치였다. 리디안은 곧장 어떤 느낌이었냐고 물었고, 이노센트는 흠, 생각하다 말했다.
“뭐. 별거 없어. 딸피에서 막타 맞는 순간 그냥 기절. 그게 끝이야. 근데…….”
엄지손톱을 깨물며 이노센트는 오래 생각했다.
“마지막에 좀 기분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눈앞이 되게 천천히 흐려지면서 깜깜하게 물들어가는데, 그게 진짜 내 인생 끝나는 느낌이 들어서……. 좀 더러운 기분이긴 해. 여기서 기절할 일이 죽을 때 말고 없어서 그런지, 느끼기에 더 뚜렷해. 아니면 내가 좀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 걸 수도 있긴 해. 아마, 기분 나쁘다고 한 사람들도 다 나처럼 감각에 예민한 편일 거야.”
그 표현을 듣게 된 리디안은 지난번, ‘죽늪’에서 노네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죽는 거,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었지. 그게 그 뜻인 모양이라고. 리디안은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아무 느낌 안 든다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리얼해서 재미있다고 신기해하는 사람도 많아. 변태들 느끼기에는 그런 느낌인가 봐. 참고로 우리 남편은 그게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 현실에서도 건강 체질이라 한 번도 기절해 본 적 없는 사람이거든. 뭐,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느낌도 다른 거니까.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방긋 웃은 이노센트는 리디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뭔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괜한 이야기가 될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리디안은 그 속뜻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게 웃은 이노센트는 리디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거운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하는 게 낫겠다고. 이노센트는 특유의 에너지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자토와 행복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 레이드 클리어에 대한 회포를 풀어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