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말하자면 변절자도 시스템이라는 힘에 어느 정도 불가항력일 수도 있다는 거죠……!”
끙, 신음한 리디안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덧붙였다. 그에 박회장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충 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흠. 변절자라도 가진 힘이 제한적일 거라는 말씀인가요?”
역시 박회장은 이해가 빨랐다.
리디안이 맞는다며 끄덕이자 박회장은 그것도 그럴듯하다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변절자가 시스템의 힘을 마음껏 이용할 줄 안다면 뭐든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은데. 막상 침공전 이벤트 꾸린 거 보면 은근히 어설픈 부분이 있죠? 꼼꼼하지도 않고. 게다가 그간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도 보면 제약도 있는 듯하고요.”
“네.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퀘스트를 통해 우릴 부리는 거고, 오딘은 그 전에 미리 뿌리 뽑으려는지도 몰라요. 멸망과 창조, 초기화 같은 방법으로요.”
즉, 변절자가 완전히 시스템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플레이어나 노르드 월드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리디안과 박회장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뜽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어? 그럼 이제 퀘스트 관련해서 모두 올 스톱해야 하는 거예요? 침공전은요? 이대로 중지?”
어리둥절한 뚱이의 물음에 길드 마스터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변절자의 뜻대로 따르지 않으려면 그리하는 게 옳다. 그러나 핑크푸크의 말처럼, 플레이어들이 오딘에게 배제될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우리가 당장 가만히 있으면 변절자나 오딘. 둘 다 목표를 이루진 못하겠죠. 근데 오딘의 군대가 저 지경이 됐으니……. 솔직히 제가 보기엔 변절자가 승리할 것 같아요. 아, 그렇다고 변절자 쪽에 붙자는 얘긴 아니고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샤봉이 황급히 둘러댔다.
하지만 오딘의 군대에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렇게나 강해 보이던 브륀힐드가 단숨에 침식되어 변해버렸지 않은가. 다른 도시에 소환된 군대 역시 비슷한 상황일 수도 있다.
“도시 진입을 아예 안 할 순 없어요. 우리도 상황 따져가며 판단해야 하니까요. 몹 잡는 것도 어느 정도는 수용해야 해요. 대신, 박회장 님 말대로 결계가 오딘 측에 영향을 주는 건 맞는 것 같으니, 결계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하죠. 어차피 모든 몹을 잡아야 결계석이 나타나는 것 같긴 하지만……. 이제 우리가 작정하고 모조리 잡을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잠자코 있던 신사가 나와 제안했다. 신사는 언제나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왔기에 모두가 그의 말에 집중했다.
“우선 정찰 인원부터 늘리겠습니다. 미드가르드로의 진격 증후가 없어 보여도, 요툰하임 같은 경우도 예상해야 합니다. 이동 거리 반경이 넓은 몹들이 천천히, 무의식적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각 도시 근처에 24시간 정찰 태세 들어가는 걸로 하죠. 그리고 우린…….”
신사는 힐끗 핑크푸크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른 시간 안에 머리를 맞대고 굴려야 할 것 같네요. 한쪽은 우릴 이용하려 하고, 한쪽은 우릴 말살하려 하고 있으니, 우리도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죠.”
중립적인 입장에서 좀 더 생각해 보자는 말에 아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줄 알았던 태양 연합도 아퀴나스의 동의가 떨어지니 별말 하지 못했다.
“그나마 브륀힐드 덕분에 약간이라도 정보를 얻어서 다행이에요. 게다가 까마귀들을 통해서 오딘에게 말을 전했으니, 조금은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요?”
대장군도 슬쩍 핑크푸크를 바라보며 눈치껏 물었다. 재수 없다며 휙 돌아서는 오디오스와는 달리. 핑크푸크는 의외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변절자와의 거래를 주장했던 핑크푸크가 조용해지자 더 이상의 의견 대립은 없었다. 모두 신사의 중립적인 제안에 몰두했다.
그 후, 분수대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격식 없는 회의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힐끔힐끔 쳐다보거나 말거나. 길드 마스터들은 가장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며 토론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 플레이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었다.
“가만히 기다린다고 오딘의 답을 들을 순 없죠. 우리도 움직여야 해요.”
“흠. 브륀힐드 같은 인물을 또 찾아야 하는 건데……. 결국, 도시 진입이네.”
“알프하임은 이미 다 변한 것 같던데. 다른 도시도 똑같을까요?”
“모르죠.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은데요.”
“갈 만한 곳이…….”
“바나헤임, 헬하임은 좀 그렇죠? 파충류랑 맹수들이던데. 아니면 니플헤임이 괜찮으려나?”
“무스펠하임은요? 좀비랑 거인족들 나온다면서요.”
크라이그의 물음에 길드 마스터들은 니플헤임과 무스펠하임을 저울질했다. 낯선 얼음 정령 몬스터가 우글우글한 니플헤임도 미지의 구역이긴 하다.
하지만 위험도로 따져봤을 땐, 모두에게 익숙한 거인족과 좀비가 나오는 무스펠하임이 더 나았다.
“거기 화산 필드에 나오는 80레벨 몹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화염 골렘이라고……. 근데 그렇게 많진 않았대요. 어디까지나 성문 기준이긴 하지만. 그거보단 드라우그가 더 골치 아플걸요. 두 번 잡아야 하잖아요.”
“성물 있잖아요. 쓰는 게 좀 찝찝하긴 해도, 갖고 있으면 좀비나 화염 골렘도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흠… 하긴. 게다가 거인족이 사람 형태랑 비슷하니 말이 통하지 않을까 싶은데.”
지형, 몬스터의 종류, 패턴, 난이도 등. 종합적으로 하나하나 따지니 모두 무스펠하임에 마음이 기울었다.
“그럼 다음은 무스펠하임 탐색으로 하죠. 이견 있으신 분?”
대다수의 시선이 태양 연합 측에 머물렀다. 그러나 태양 연합 측에서 반발은 없었다.
핑크푸크와 무너스키, 네오가 차례대로 동의하자 이번엔 버베나가 손뼉을 쳐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자, 일단 가기 전에 우리. 파티 정리부터 하는 게 어때요? 탐색 위주의 목적이면 굳이 세 개 파티가 우르르 몰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신사는 알프하임에서 일반 랭커들의 이탈을 떠올리며 바로 수긍했다. 길드 마스터들도 사실 그편이 나았기에 활짝 밝아져 맞장구쳤다.
“그럼 딱 한 개 파티로만 이동하죠. 진입 전에 섀헌분들이 입구만 살짝 둘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바로 귀환하는 걸로.”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말자는 말이었다.
신사의 말대로 하기 위해 길드 마스터들이 재빨리 파티원 목록을 체크했다. 60인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파티로 진행한다고 하면 길드 마스터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방식이었다. 덕분에 핵심 멤버는 금세 추려졌다.
“그때 지하 도시 파티랑 비슷하게 가면 되지 싶은데요. 저희 측에 무너 님 없으니까 그 자리에 다른 딜러 넣고요.”
“아, 그러면 페널티 고려해서 교체 가능한 분도 체크해 보죠.”
대강 인원을 살핀 아퀴나스가 제안했다.
오랜만에 나온 무너스키의 이름에 리디안이 힐끗 간부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고집불통인 그 성격을 알아 다들 그러려니 넘어가는 듯했다.
사람은 참 못났어도 절망적인 상황상, 한 사람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지라. 리디안은 안타까운 마음에 씁쓸함을 삼켰다.
* * *
새로운 목표가 생기자 간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세 개의 파티를 하나로 쪼개 전력을 집중시키되, 페널티가 아슬아슬한 사람은 철저히 배제했다.
기준 미달로 떨어져 나간 일반 랭커들은 각 도시 근처를 정찰하는 조로 편성됐다.
“저번 지하 도시 파티랑 비슷해서 그런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자면 그냥 레이드 뛰러 가는 느낌이네요.”
새로 편성된 파티가 이리저리 나뉘어 움직이는 동안, 리디안은 세인트들과 섞여 한쪽에 대기했다. 페페는 부산스러운 사람들을 응시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어… 진짜 그러네요. 몇 명 빼곤 전부 그때 그 멤버…….”
리디안도 신기한 듯 웃었다. 태양 연합이 그때처럼 일부만 합류한 것까지 똑같았다. 탐색이 목적이라 해도, 전투는 불가피하기에 리디안은 고개 돌려 캐티스와 이모탈을 찾았다.
세인트들의 포지션은 어떻게 할 건지, 그에 대해 물으려 했다. 그러나 세인트들은 규호와 교체된 파라다이스 길드의 ‘하이로’에게 정신이 팔린 상태인지라 물어볼 틈이 없어 보였다.
하이로는 무뚝뚝한 이미지이긴 하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꽤 깍듯했다. 그래서인지 캐티스, 이모탈이 아주 흡족해했다. 게다가 갇히게 된 8월 이후, 잠수만 타던 파라다이스 길드 소속이라 그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하이로가 예기치 못한 질문 공세를 받는 동안. 보리알과 먹구름, 괴자가 있는 그룹은 무스펠하임의 몬스터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없었다. 리디안과 페페는 어쩌다 보니 그 중간에 껴서 양측의 대화를 반씩 듣고 있었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선 무스펠하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 있는 터라. 리디안은 슬그머니 방향을 돌려 보리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대화 가능한 상태라면 좋기야 하죠. 근데 거인족들 특성이 단순하고 난폭하잖아요. 난 그게 좀 걱정돼요. 거기서 침식당하면 우리만 더 힘들어질까 봐.”
“흠. 미리 침식을 막을 방법은 없나? 그거만 차단해도 진짜 유리할 것 같은데.”
“브륀힐드 때 보니까 잡히자마자 바로 변하던데. 솔직히 우리가 끼어들긴 힘들지 않을까요?”
괴자와 먹구름의 대꾸를 듣던 중. 공감하며 끄덕이던 리디안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문득 떠오른 엉뚱한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에요. 침공전 몹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네?”
“침공전이 시작되자, 기존 몹들이 모두 사라지고 각 도시에 오딘의 군대라는 이름으로 몹들이 소환됐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 대부분의 몹은 원래 있던 것들일까요?”
연이어진 물음에 페페는 그렇지 않을까요, 라며 응답했다.
아무래도 리디안이 몬스터들의 근원에 대해 궁금해하는 모양인데. 애석하게도 페페는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리디안의 의문을 듣고 보니,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긴 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원래 맵에 있었던 몹들이라면 진작 침식당한 거나 마찬가진데. 침식된 몹들이 브륀힐드 같은 오딘의 세력을 따를 리 없잖아요. 공격까지 할 정도인데. 근데 브륀힐드는 어떻게 그들을 통솔했을까요?”
“음… 중간에 브륀힐드가 거짓말쟁이 레빈을 붙잡고 진정시켰잖아요. 그 힘으로 정화, 비슷한 걸 한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날뛰는 레빈을 진정시키던 브륀힐드의 모습이 너무 벅차 보였다. 그런 브륀힐드가 일천에 가까운 몬스터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을까?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가설이었다.
페페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표정이 더 진지해졌다.
“사실… 혼자 처리하기엔 너무 비효율적이긴 하죠. 오래전부터 침공전을 준비할 정도로 계획적인 오딘이 군대를 그런 식으로 동원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일이고요.”
“역시 브륀힐드처럼 아예 새로운 개체로 보는 게 맞겠죠? 그래야 이곳에 와서 침식당한 게 어느 정도 앞뒤가 맞으니까…….”
“네. 그리고 마녀 자매의 모습만 봐도 기존 몹이라고 생각하긴 힘들긴 해요. 우리가 알던 것과 너무 달라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노르드 월드 맵에 있던. 우리가 사냥하던 기존 몹들은 뭘까요?”
페페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음… 혹시 기존 몹들은 오리지널의 인격이나 설정 같은 걸 그대로 본뜬 대체가 아닐까요? 경험치, 아이템 드롭, 무한 리스폰 방식이나 패턴 등. 시스템을 입힌 그야말로 진짜 몹. 게다가 어쨌든 우린 게이머고 몹이 있어야 움직이니, 우리를 유혹하거나 이용하기에도 아주 좋은 수단이죠. 실제로 모두가 퀘스트를 목표로 여기까지 온 것도 사실이고요.”
새로운 시각에 리디안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곤 고목나무 왕을 떠올렸다.
“저는 고목나무 왕이 했던 말 때문에 몹들도 침식당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이 부활의 굴레에 묶였다고 했거든요.”
“아. 그거라면 저도 들었어요.”
“근데 하긴… 이상하긴 했어요. 보스급은 그렇다 쳐도, 일반 몹이요. 그 많은 몹들이 원래부터 이 세계에 바글바글했을 리 없는데 말이에요. 그쵸?”
“네. 그리고 제 생각엔… 침식하는 과정에서 전투가 가능한 존재들을 따로 복제해 군대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네요. NPC로 나온 존재들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고목나무 왕, 같은 존재들은 요정족 중에서 특별한 축에 속했기에 침식된 후에도 반응이 달라진 게 아닐까요?”
“그럼 원래, 오리지널인 진짜들은…….”
“아스가르드가 침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으니, 진작 그쪽으로 피신한 거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 침공전에 나타난 거고요.”
“아, 그럼 라타토스크가 갑자기 사라진 것도 혹시…….”
“아스가르드로 피신했다면 무사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