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용암 군주]‘용암 군주’는 온몸에서 잿빛 연기를 뿜고 새빨간 마그마를 뚝뚝 흘리며 걸어왔다. 완연한 사람의 형체지만 몸에 두른 것은 온통 마그마였다.
처음 보는 개체였으나 리디안은 저것이 어디서 출몰하는 몬스터인지 단박에 알아냈다.
“라피아 화산 필드 보스!”
이름을 보자마자 떠올린 흑도가 자지러지며 외쳤다. 정체가 밝혀지자 사방에서 욕설 섞인 야유가 터져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나와버렸다. 80레벨 필드의 보스 몬스터가…….
“와. 저게 진짜 나오네. 그것도 하필 이 타이밍에.”
“일단은 필드로 분류되어 있어서 패턴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황당하다는 아퀴나스의 말에 신사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확실치 않았다.
지난달에 80레벨을 달성한 하이 랭커 파티가 화산 필드에 도전한 건 사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들은 입구 컷을 당해, 보스나 네임드는 구경도 못했다.
그러니 지금의 플레이어들로선 용암 군주의 패턴을 예측할 수 없었다.
“쫄지 마요! 아까 화염 골렘인가 걔들 봤잖아요! 개허당이었잖아요! 분명 쟤도 별거 아닐 거라고요!”
얼어붙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포푸리가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에 몇몇이 픽 웃었으나, 80레벨 랭커들은 그렇지 못했다. 같은 레벨대라도 일반과 네임드, 보스라는 등급의 차이는 크기 때문이다.
[무스펠하임] [일반 몬스터 : 27 / 999] [네임드 몬스터 : 6 / 9] [보스 몬스터 : 1 / 1]드디어 흐룽그니르가 처리됐다. 떠오른 메시지는 달갑지 않았으나 용암 군주를 앞둔지라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뚱이네 다 왔대요! 빨리 트롤이랑 드라우그부터 잡고 군주 일점사하죠!”
박회장이 기쁜 소식을 전달하자 팔라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용암 군주는 마법형인 데다 화염 속성 공격까지 있어 팔라딘이 방어를 맡을 차례였다. 울상을 진 백검과 용맹한 포푸리가 용암 군주에게 뛰어나갔다.
팔라딘 둘이 군주를 마크하는 동안, 매지션들은 트롤과 드라우그를 향해 광역기를 난사했다.
“피 뺐어요! 막타요, 막타!”
침공전이 끝나기 전에 헤임달의 핵을 찾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제한 시간 때문일까. 딜러들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초조하고 다급해 보였다.
리디안 역시 한시라도 빨리 무스펠하임을 벗어나 타 지역을 탐색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수시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아, 빨리 나가야 되는데 자꾸 몹 한 마리씩 찔끔찔끔 나타나고 난리야.”
괴자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서 리디안은 기묘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왜 자꾸 한 마리씩 나오는 걸까? 알프하임처럼 몬스터를 한 번에 많이 내보낼 수 있으면서 말이다.
차라리 그랬다면 플레이어들이 미드가르드로 바로 귀환할 텐데.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한 마리씩 나오니까 지나치지 못하고 자꾸 잡게 되는 것 같았다.
“왔다!”
드라우그를 잡던 박회장이 반갑게 외쳤다.
용암 군주의 뒤쪽에서 뚱이를 선두로 한 일반 랭커 파티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용암 군주를 확인하곤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그러나 미리 박회장에게 들은 게 있어서 그런지, 뚱이는 침착하게 인원을 나눠 지원을 시작했다.
그에 선별된 인원은 컨트롤에 능숙한 사람들 위주였다.
잠시 후, 레벨과 장비 측면으로 하이 랭커 못지않은 전력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엔 세인트 나쵸와 나이트 햄스터도 있었다. 나쵸는 세인트라 프리 패스라지만. 그래도 햄스터가 전체 랭킹 50위 안에 드는 고성능 딜러라, 하이 랭커들의 표정이 활짝 폈다.
“와. 뭐야. 저거 설마 80레벨 몹이야?”
일반 랭커들과 사정권 내로 진입한 햄스터가 혀를 내두르며 주춤했다. 처음 보는 몬스터의 모습에 기가 죽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일반 몬스터인 트롤과 드라우그가 모두 처리된 후. 자유의 몸이 된 관우가 재빨리 백검과 포푸리에게로 향했다.
미리 용암 군주를 막고 있던 두 사람은 발밑에 흥건한 마그마를 보며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그마에 닿으면 화염 디버프 걸려요! 이름은 군주의 분노! 지금 보기엔 전체 HP 비례, 3초당 1%씩 깎임! 그리고 안 풀림! 보스 죽여야 사라지는 고정 디버프 같음!”
걸치기를 이용해 백검과 포푸리를 돕고 있던 먹구름이 디버프 정보를 전달했다. 그에 근거리 딜러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용암 군주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마그마는 일정 영역을 물들이는 구조였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농도가 옅어져 사라지는 듯했으나, 특성상 보스에게 붙어야 하는 근거리 입장에선 매우 걸리적거리는 디버프였다.
“내가 먼저 가볼게!”
새로운 몬스터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이노센트가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겁도 없이 마그마 위로 뛰어든 이노센트에게로 바로 화염 디버프가 발동됐다.
과연 먹구름의 말대로 HP는 3초당 1%씩 줄어들었다. 행여나 탱커와 딜러의 기준이 다를까, 걱정하던 세인트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뭐야. 별거 없네!”
자신의 HP 상태를 확인한 이노센트가 씩 웃었다. 그러곤 쿨타임이 돌아온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시전했다.
시원스럽게 꽂힌 이노센트의 주먹질에 용암 군주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동시에 도착한 딜러들도 군주를 포위하곤 서둘러 공격을 가했다.
일단 때리고 보자며, 딜러들이 물리적 타격에 집중하는 동안. 신사는 용암 군주의 패턴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던 중,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낀 건, HP를 관리하는 세인트들이었다.
“어?”
리디안과 세인트들은 순간적으로 반씩 줄어든 딜러들의 HP에 화들짝 놀랐다. 리디안과 이트의 손길 덕분에 바로 회복됐지만, 너무 순식간이라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분 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그를 지켜보던 신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용암 군주의 패턴이었다.
“방금 군주 머리 쪽에서 푸슉, 하고 연기 치솟았어요. 그때 바로 피 줄어든 거 같은데요?”
다크 템플러 인드라가 플레이어들의 HP 감소에 대한 원인을 찾아낸 듯했다. 힌트를 얻은 신사가 바로 시간을 체크했다.
다시 정확히 1분 후. 용암 군주의 머리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워낙 공격이 쏠려 소리 같은 게 잘 들리진 않았지만, 동시에 일정 반경 내 있던 플레이어들의 HP가 한꺼번에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로소 상황을 파악한 신사가 모두에게 알렸다.
“1분 간격으로 머리 위에서 연기 나면서 일정 범위에 폭발 대미지 주는 것 같습니다. 세인트분들, HP 관리에 참고해 주세요.”
세인트들이 야유했지만, 리디안은 처음부터 패턴을 알아내야 하는 이 상황이 나름 신선했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레이드를 진행하는 느낌이 들어 더 집중도 됐다. 그러나 웃으며 느긋하게 상대하기엔 벽이 높은 존재였다.
용암 군주의 HP가 90%아래로 떨어졌을 때였다.
한창 두들겨 맞던 용암 군주가 돌연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 동작에 놀란 근거리 딜러들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뭔가 하고 쳐다보기가 무섭게, 주위의 표면이 이글이글 들끓으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곧 갈라진 틈 사이로 시뻘건 용암이 새어 나와 지면을 물들였다. 눈치 빠른 몇몇 플레이어가 서둘러 도망쳐 피해를 면했지만, 보스를 붙들고 있어야 할 팔라딘들은 그럴 수 없었다.
부글부글 끓는 마그마에 붙잡힌 팔라딘들의 HP가 더 줄어들었다. 추가 패턴이었다.
“마그마 생겨나면 바로 범위 밖으로 피하세요.”
어쨌든 전체 범위도 아니고, 피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이런 식이면 근거리 딜러의 활약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주력 딜러들이 근거리에 몰려 있는 만큼. 패턴을 피해 이동하면, HP를 뺄 시간도 그만큼 더 늘어나는 셈이라, 신사는 곤란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와. 이거 침공전 기준으로 좀 너프됐다고 쳐도, 근거리들 너무 물먹이는 패턴인데?”
파이터 이터널리스트가 울상으로 푸념했다.
용암 군주는 여전히 1분 간격으로 폭발하며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게다가 대충 계산한 결과, 마그마 분출은 군주의 HP가 5%씩 깎일 때마다 수시로 진행되는 듯했다.
“어쨌든 한 번에 빨리, 최대한 많이 깎아야 하는데……. 그냥 피하지 말고 계속 자리 지키고 서있을까 봐요.”
근거리 딜러 중에서 많은 대미지 지분을 가진 대장군이 부릅뜬 눈으로 말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버티기엔 세인트들의 고생도 고려해야 했다.
배틀 세인트로 유명한 괴자의 성질을 잘 아는 페이지가 그에 대해 한마디 하니, 대장군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2군 파티가 지원하러 왔으니 얼마나 다행이게요.”
“맞아요. 그리고 새 몹 파악하면서 잡는 것도 재밌고.”
“아, 긴장들 좀 해요!”
유유자적한 분위기에 아쳐 날개가 빽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 역시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다들 생각보다 이 상황을 꽤 즐기는 듯했다.
2군 파티에 속해 지원하러 온 일반 랭커들. 그리고 햄스터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민망해하면서도 리디안 역시 그 분위기가 익숙해, 몰래 웃고 말았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한 개의 파티일 때와 세 개의 파티일 때의 차이점은 컸다.
중고레벨 딜러들이 합세하니 까마득하기만 하던 용암 군주의 HP도 어느새 반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잦은 폭발 대미지로 회복 스펠에 부담스러워하던 세인트들 또한. 낙루와 나쵸 등, 보조 세인트들의 지원에 힘입어 MP 관리에 몹시 여유로워졌다.
“에이, 패턴 별거 없는데? 필드 출신이라 그런가?”
“모르죠. 이러다 20, 10 아래로 떨어질 때 돌변할 수도. 보스가 괜히 보스겠어요?”
용암 군주의 HP가 40%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백검과 이터널리스트가 수군거렸다.
보통 보스 몬스터의 경우 HP가 50% 아래로 떨어진 시점부터 변화를 보이는 편인데. 용암 군주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고 패턴 또한 새로울 게 없었다.
백검의 말대로 필드형 보스가 대체로 그런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수 없어 딜러들은 연신 HP 게이지를 힐끔거렸다.
그 후 용암 군주의 HP가 30%에 다다랐을 때였다.
“어? 뭔가 이상한데요……?”
은신한 채 뒤로 돌아 채찍을 들어 올리던 페이지가 멈칫했다.
용암이 뚝뚝 흘러내리던 군주의 다리 아래가 울룩불룩 솟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기포 아래로 밝은 빛이 번쩍거리기도 했다.
“음. 꼭 폭발할 것 같은 비주얼…….”
유심히 지켜보던 포푸리도 찡그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신사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
“근거리! 지금 보스 옆에 붙은 분들 빨리 물러나세요!”
갑작스러운 퇴각 명령이었다. 딜러들은 공격을 멈춘 채 앞뒤를 두리번거렸다.
용암 군주의 몸은 어느새 허리 위까지 울룩불룩해진 상태였다. 그저 시야를 따라 몸통과 머리 부분을 가격하던 딜러들이 그를 보고 흠칫했고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렸다.
팔라딘들마저 물러나니 용암 군주의 울룩불룩함은 목 위까지 번져갔다.
멀리 떨어진 플레이어들이 불안한 눈으로 동태를 살피던 찰나. 머리끝까지 번진 기포가 굉음을 내며 펑펑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용암 군주의 몸은 새빨간 용암이 되어 그대로 흘러내렸다. 지면으로 떨어진 용암 아래로 치이익, 하얀 연기가 솟았다.
“음. 뭔가… 닿았으면 바로 즉사했을 각인데요……?”
용암 아래로 움푹 파인 땅. 그리고 근처에 있던 자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목격한 레온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혹시 자폭일까요?”
용암 군주의 형체가 사라진 것을 두고 리디안이 은근한 기대를 품고 물었다. 그에 잠시 플레이어들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지면으로 진득하게 퍼져 있던 용암이 흐느적거리는 게 보였다.
“헐. 뭐야, 슬라임도 아니고.”
질색한 인드라의 말대로였다. 땅 위를 기는 용암은 정말 슬라임 같았다.
한 뭉텅이였던 용암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어기적어기적 좌우로 퍼졌다.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모양새에 리디안이 설마― 하며 미간을 좁혔다.
아니나 다를까. 다섯 개로 갈라진 용암은 점점 위로 솟아나 형체를 만들어 갔다. 예상대로 용암 군주의 분신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100%가 된 용암 군주들의 HP였다.
“와… 설마 저 다섯 마리 다 죽여야 하는 거야?”
백검이 실성한 눈으로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