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과일박스의 몰락】
“이보세요. 이상한 말 하고 다니지 마세요. 아까부터 자꾸 도시 돌아다니면서 개소리하시는데. 진짜 불만이 있어서 욕하고 싶은 거면 저기 계신 전투 길드원들 앞에 가서 직접 얼굴 보면서 얘기해 보시던가요.”
큰 목소리로 나무라던 그의 손가락이 돌연 리디안과 크라이그가 있는 곳을 짚었다. 날조에 열을 올리던 못된딜러의 시선이 그를 따라 스르륵 움직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못된딜러는 티가 날 정도로 어깨를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아씨! 뭔데!”
못된딜러는 별안간 가을 길드원들을 째려보며 화를 냈다. 그러곤 바로 뒤돌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도망쳤다.
못된딜러가 사라진 뒤, 가을 길드원들은 리디안과 크라이그가 있는 곳을 향해 꾸벅 고개 숙인 뒤,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돈게스 님네 길드분들이네요. 딱 보니 별님반 쫓아다니면서 혼쭐내 주는 거 같은데…….”
가을 길드원들이 못된딜러를 쫓아간 걸 눈치챈 크라이그가 신기한 듯 말했다. 리디안도 돈게스를 떠올리곤 밝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요툰하임 클리어 날. 별님반이 저희 전투 길드 욕할 때, 돈게스 님이 쫓아가서 혼내주셨다면서요?”
“네. 그 뒤로 제니스는 버로우 탄 것 같은데. 단단히 세뇌당한 길드원들이 나와서 아직도 분탕을 치는가 보네요.”
전투 길드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 별님반을 쫓아다니면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주는 게 가을 길드였다.
가을 길드는 하루 전부터 돈게스를 중심으로 친전투 길드 세력이 된 상태였다. 지난번 공표 때, 돈게스의 바람직한 모습에 큰 깨달음을 얻은 플레이어들이 가을 길드로 대거 가입, 이적한 것이다.
가을 길드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인원을 도시 순찰로 활용했다. 방금 같은 별님반 마크는 그 과정에서 생겨난 ‘덤’이었다.
전투 길드 마스터들은 삼십 분이 지나서야 그 내막을 전달받았다.
처음엔 별님반이 여전히 도시를 돌아다니며 분탕을 친다는 말에 모두가 아찔했다. 하지만 돈게스와 가을 길드가 나서 정의로운 발언으로 플레이어들의 멘탈을 잡아준다는 말에 모두의 얼굴이 활짝 폈다.
“돈게스 님. 정말 감사합니다. 가을 길드분들도 힘드실 텐데, 이렇게 힘써 주시니…….”
레온과 마제스티를 비롯한 길드 마스터 일동이 돈게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돈게스는 큰일도 아니라며 씨익 웃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런데 저쪽은 나도 못 건들겠습니다. 워낙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
돈게스는 꺼림칙한 눈으로 동쪽 골목 방향을 쳐다봤다.
아홉 시 방향 골목은 침공전이 시작되면서부터 미드가르드로 이동한 붉은 태양 교단의 사제들이 잔뜩 몰려 있는 곳이었다.
그 주변으로 납작 엎드리거나 무릎 꿇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헤임달에게 노예 복종을 합시다!”
그리고 에긴의 양옆으로 늘어선 플레이어들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외쳐댔다. 겉보기로도 아주 훌륭한 사이비 교단이었다.
마제스티는 찌푸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아까 잠깐 얘기 들었을 때,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네요?”
“처음엔 장난이 맞았어요. 위너 길드 출신 망치질 도박단이 심심할 때마다 저쪽에서 상황극이라면서 놀았거든요. 근데 아시다시피 지금, 사람들 심리가 바닥이잖아요. 계속 보더니 금방 동화되어서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가을 길드 마스터, ‘달밤’이 곤란한 얼굴로 설명했다. 달밤 역시 돈게스와 함께 다니며 여러 번 저들을 저지했다. 그러나 기도만이 유일한 버팀줄이 된 사람들에게 보통의 설득이 먹힐 리 없었다.
“뭐, 절실한 사람들이 안정을 위해 기도하는 거야 자기 마음이긴 해요. 근데 문제는 저놈들이 저 사람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돈게스는 위너 길드 출신인 망치질 도박단과 ‘아마존익스프레스’ 길드원들을 지목했다.
그들은 상징적인 하얀 옷까지 맞춰 입은 채 어떤 ‘연설’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믿음에는 쩐이 필요합니다! 돈이요, 돈! 왜냐고요?! 지금 옆에 있는 우리의 형제, ‘에긴’을 보십쇼! 이렇게나 성실하고 충직한데, 이 사태에 영향받아 인형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 형제분이야말로 우리를 헤임달에게 인도시켜 줄… 어, 뭐지? 아! 그거. 음음! 그러니까 에긴은 우리의 구원의 빛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에긴을 후원해야 합니다! 에긴 형제는 언젠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해 저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겁니다!”
어딘가 어설픈 연설이었다. 하지만 무릎 꿇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에긴을 외치기 시작했다. 제정신이 아닌 듯한 그 광경은 물론. 정말로 돈을 걷는 행동에 길드 마스터들을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렇게 모은 돈,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다 저 새끼들 도박 자금으로 쓰여요. 돈 모아서 몰래 전달책한테 넘겨서 세탁하고. 그길로 대장간 가서 자기들끼리 펑펑 쓰더라고요. 곧 길드를 따로 만든다는 얘기도 있어요.”
달밤의 추가 설명에 레온과 마제스티는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지었다. 예전부터 망치질 도박쟁이들에 관한 소문을 많이 들은 샤봉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넨 어차피 인생 망한 애들이니까요. 어차피 망한 현실과 인생. 또 망한 세계. 그래서 한탕 즐기다 가는 거. 그게 쟤네 인생 모토일걸요.”
“근데 진짜 교묘하네요. 하필 에긴을 내세워서 저렇게 하다니.”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지금 도시에 있는 인간 NPC들은 아마 기존의 게임 NPC들을 복제한 가짜일 거예요. 애초부터 원본이라고 해봤자 진짜 NPC인 존재들이니까요. 음, 그림자 개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진짜 살아있는 생명체일 가능성은 적죠. 뭐, 다른 이유로 진짜일 확률도 있겠지만. 여태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개인적으로 추측하자면 그래요.”
“그런 거면 사람들한테 NPC에 관한 내용을 다시 보충 설명하면 되는 일이긴 한데. 자꾸 저렇게 세력 커지면 난감하긴 할 거예요.”
풍월주가 아마존익스프레스 길드원들을 불쾌하게 눈짓했다.
아마존익스프레스는 쉽게 말해 노르드월드의 대표 장사꾼 길드다.
장사꾼 대부분에게 있어 게임이란, 콘텐츠 경험보다 게임 내 재화를 모아 현물로 바꾸는 부업이다. 보통 ‘작업장 광부’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느 게임을 하던, 레벨 업보다 돈이 될 만한 재료나 아이템을 모아 파는 게 목적이다. 그 특성은 난장판이 된 지금도 변함없었고, 그들은 버릇처럼 재화를 모았다.
그러다 보니 돈이 될 만한 건, 절대 놓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오늘, 사이비 상황극도 마찬가지였다.
단물에 개미가 꼬이듯. 아마존익스프레스 길드원들은 바로 돈 냄새를 맡고 몰려와 망치질 도박단과 손을 잡았다.
“아주 들으란 식으로 헤임달 찬양하는 거 봐라. 딸랑딸랑~ 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네.”
소식을 듣고 찾아온 테세우스가 한심한 어조로 비아냥댔다. 멀쩡히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들에겐 당연히 비호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럿에게서 불편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저 미친놈들. 한동안 조용하다 싶더니. 슬슬 사기 시동 거네.”
백검을 따라왔던 이노센트가 아마존익스프레스 길드원을 보더니 정색하며 중얼거렸다. 리디안은 그 뜻을 알아듣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존익스프레스는 ‘사기’로도 유명한 길드다.
장사꾼들이 서로 정보 공유하자고 만든 길드인 만큼. 현물화보다 게임 내 거래가 목적인 부캐릭터 플레이어들도 많이 소속되어 있다.
이건 어느 게임을 가던 쉽게 볼 수 있는 단체라 처음에는 그렇게 이미지가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초창기 노르드 월드 시장 경제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었다.
그러나 거래와 사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매너, 청정 게임으로 유명했던 노르드 월드에도 사기꾼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에 아홉은 ‘아마존익스프레스’에 가입한 정체불명의 ‘부 캐릭터’들이었다.
거래 창 0 빼기, 아이템 바꿔치기, 잡템 올려치기, 수량 사기, 캐시 사기, 사칭 사기. 하다못해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선 제삼자 사기까지. 사기꾼이 할 수 있는 모든 사기가 성행했고 최근까지도 심심치 않게 사기 행각이 벌어졌다.
“사칭 사기는 레기온에서 제일 처음 당했죠?”
사기 언급에 박회장이 호기심을 가졌다. 방법이 기상천외했고 심지어 당했다고 알려져 박회장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옛 흑역사 소환에 마제스티는 슬쩍 이노센트와 백검을 쳐다봤다. 한참 눈치 보던 백검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정했다.
“네. 맞아요. 저희가 처음이었어요. 그때 이노센트한테 백‘겸’이라는 아이디로 귓말이 갔거든요. 근데 와이프는 바로 알아채고 쌍욕 박았는데. 저는 그 얘기 듣고도 나중에 이노‘셴’트에 귓말 온 거에 바로 속았거든요.”
“헐. ‘셴’이요? 그거 딱 보면 알지 않나?”
“아니, 뭐……. 그땐 제가 밝은 곳에 있어서 글자가 잘 안 보이기도 했고… 말투도 와이프랑 비슷하길래…….”
백검은 조심스럽게 이노센트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그때 와이프가 진짜 던전에 가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저한테 잠깐 마을 왔다고, 무기 새삥 사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자기 창고에 돈 모자란다고요. 그래서 돈 있는 거 다 달라기에 삼천만 골드 바로 교환으로 준 거죠. 그때가 거래 창에 상대방 정보 표기 하나도 안 되던 시절이라… 그냥 바로 낚인 거죠.”
“아이디는요? 기억나요?”
“미니미니, 라고. 광부클럽 ‘최로민’ 부캐예요.”
“헐. 최로민? 그 바바리안? 근데 본캐 어떻게 알았어요?”
“어이없게……. 8월에 미니미니로 여기 갇혔더라고요. 사전 신청 때 부캐로 먼저 접속한 모양이에요. 근데 계속 부캐로 혼자 생활하기 그랬는지, 광부클럽 가서 자기 최로민이라고 밝혔대요. 그때 건너 건너 소식 듣고 알았죠. 덕분에 걔 말고 사기꾼 여럿 알아냈어요.”
“와, 그래서 가서 뭐라고 안 했어요?”
“뭐 1년도 더 된 일이고……. 애도 보니까 어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크게 뜬 눈으로 물어보던 박회장이 백검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사기를 당한 게 알려지면서 백검은 이노센트에게 먼지 나게 맞았다.
“그 뒤로 마‘졔’스티. 불‘꾳’심장. ‘톄’세우스. 이터‘녈’리스트. 별별 게 다 왔죠. 교묘하게 모음만 바꿔서 대충 보면 바로 속아버릴 정도로요. 그래서 저희가 영자한테 엄청 항의했잖아요. 결국, 거래 창에 상대방 정보 표기되고 채팅창 텍스트까지, 어디서든 선명하게 보이게 수정됐잖아요.”
마제스티가 아련하게 실소했다. 엉뚱하게 꺾인 사기 이야기에 고인물들도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다음에 유행한 게 나야― 수법이죠?”
“아, 그때 짜증 났어요. 모르는 아이디로 귓말 와서 나라고, 누구라고 하면서 템 빌려달라, 돈 빌려달라. 어휴…….”
“그건 쁘락지 도움 없이는 힘든 거였죠. 관계나 말투, 개인 신상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거라…….”
“정말 골치 아팠어요. 저희는 괜히 의심스러워서 신규 길드원 올 때마다 번호 다 깔 수 있는 사람만 받았어요. 그리고 웬만하면 길드 채팅 자제하고, 신원 확실한 사람들끼리만 보이스 채팅만 했고요.”
“음. 저흰 그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그래서 흑곰이라는 사람이 나온 건지도 모르겠지만…….”
때마침 태양 연합 길드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마제스티가 쓰게 웃었다.
“어쨌든 간에. 이 시국에 장사꾼, 사기꾼 길드까지 저렇게 나대는 걸 보니 마음이 안 좋네.”
뒷짐을 진 채 에긴 쪽을 바라보던 관우도 쓴소리를 중얼거렸다.
근처 사람들이 하나둘 동의하며 분개하니, 이노센트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팔을 걷어붙일 것 같은 표정에 백검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백검과 붙잡으려는 이노센트의 눈치 싸움을 보며, 리디안은 마음속으로 백검의 무사 평온을 바랐다.
“넌 당한 적 없지?”
괜스레 근처에서 기웃거리던 삼촌이 크라이그의 팔을 쿡쿡 찔렀다. 크라이그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초창기 멤버도 아니고. 그거 유행할 땐 안 유명할 때라서요.”
“뭐야. 지금은 유명하다는 말처럼 들리네.”
“아마 아이디에 영어 가능했으면 사칭 들어왔을 수도 있죠. ‘이’를 대문자 ‘OI’로 바꿀 수 있잖아요.”
피식 웃던 리디안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 그래도 그건 너무 티가 나잖아요. 설마 그런 거에…….”
“속아요. 심장 형님 같은 분은 진짜로 속아요.”
진지한 크라이그의 대꾸에 리디안은 짧게 탄성했다. 들어보니 불꽃심장은 실제로 사칭 사기에 많이 속았다고 한다.
이상한 아이디로 귓속말이 왔지만. 불꽃심장은 진짜 자신의 지인인 줄 알고 골드와 아이템을 모두 건네줬다고 한다.
그 바람에 레기온이 한바탕 뒤집힌 적이 있다는 말에 리디안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사기꾼들 사이에서 심장 형님만 잘 속이면 떼돈 번다는 말이 유행했다네요.”
“너무하네요, 정말…….”
“그래도 다행인 건, 당사자가 그런 일에 하나도 타격받지 않아서……. 그냥 푼돈 적선했다고 허허 웃으시더라고요.”
역시 불꽃심장은 대인배였다.
“뭐, 옛날이야기는 옛날이야기고. 저것도 문제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하긴 하겠네요.”
다시 돌아온 주제에 리디안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지금이야 플레이어들이 망치질 도박단과 아마존익스프레스의 사기 행각을 분간할 정도로 이성이 뚜렷하다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곳의 상황이 더 악화한다면……. 짙은 절망감과 불안감을 못 이겨 지탱할 곳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빨리 해결해야죠……! 그런 상황이 오지 않게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발할라의 아침으로 프루츠맨 호출했다네요. 애초에 이렇게 된 원인은 그 인간한테 있으니까요. 바로 갈 것 같으니 우리도 따라가 보죠.”
리디안은 재깍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길드 마스터들의 회의 자리라고 꺼렸겠지만. 이번만큼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프루츠맨이 또 무슨 황당한 변명을 할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