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52
352화
“오. 이거 진짜 괜찮은데?”
이노센트가 씩 웃으며 뚱이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친 얼굴로 쫓아다니던 다크 템플러들도 기뻐했다. 이제 지배자가 넓게 뛰어다닐 공간이 없으니, 적당히 멈춰 제자리에서 디버프 필드만 깔아도 됐다.
덩달아 예측 가능한 동선도 많아졌다. 하이 랭커들은 아예 길목을 잡고 지배자가 지나갈 때마다 스펠, 스킬을 시전했다. 리디안 역시 이제 적당한 자리에서 영역을 시전해도 될 정도였다.
많은 인원 덕분에 할 수 있는 방법이었으나, 이 새로운 방법은 혁신적이었다. 뚱이를 향한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밤의 지배자 역시 수월하게 처리했다.
이로써 네임드 세 마리째. 지배자가 사라지자 모두가 기대했던 것처럼, 브륀힐드의 HP도 단숨에 깎였다.
“57%다! 벌써 반이다!”
“빨리 다음 네임드……!”
신이 난 이터널리스트가 흥분한 채 소리 질렀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이노센트에게 곧장 얻어맞았다.
그사이 다시 자세를 잡은 브륀힐드가 초록의 씨앗을 뿌렸다. 자라나는 새싹임에도 플레이어들은 무슨 위협이 될지 몰라 제거하기 바빴다. 그동안 브륀힐드는 새싹 제거에 열중인 플레이어들 무리로 검지를 들어 올렸다.
갑작스런 지목에 당황한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갸웃했다. 그 순간 파이터 푸우의 발밑에서 갈색의 튼튼한 줄기가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발목 한쪽을 잡힌 푸우가 헉 소리 지르며 반사적으로 내려찍기를 시전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오브젝트가 아닌 것에 설마 디버프인가 싶어 먹구름이 재빨리 신성한 축복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신 푸우의 MP가 쭉 빠지기 시작했다. 곧, 발목을 잡은 줄기는 기묘한 푸른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 어어?”
푸우의 MP는 바닥까지 떨어져 0이라는 숫자로 변했다. 순식간에 MP를 홀랑 뺏겨버린 푸우는 망연자실 입을 벌렸다. 푸우의 MP를 몽땅 흡수한 갈색의 나무줄기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고 푸우는 그대로 주저앉아 허망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봤다.
“어, 저거 단일 MP 흡수인가 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딜러들은 평가 한마디를 빼먹지 않았다.
리디안은 죽사막의 눈알 몬스터들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패턴이었다. 그래도 전체 플레이어 대상이 아니니 참 다행이었다.
땅을 치며 한참을 분노한 푸우는 터덜터덜 물러나 MP 회복을 기다렸다.
“용맹한 신의 전사들이여. 우리의 적을 말살하라.”
이제는 외워버릴 것 같은 대사였다.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 하며 지친 눈으로 소환진을 바라봤다. 서둘러 새싹을 정리한 딜러들이 대기하는 동안, 예상대로 뿔거미 족장이 나타났다.
팔짱을 낀 족장은 부리부리한 눈매와 멋진 거미의 하체를 얄밉게 자랑했다. 기분 나쁘면서도 반가운 감정에 리디안이 눈가를 찡그렸다.
족장은 등장부터 여덟 개의 다리를 이용해 발을 굴렀다. 땅이 울리는 충격은 전체 공격으로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공격의 범위가 좁은 편이라 가장 앞에 있던 근거리들과 탱커들이 피해를 입었다.
여신의 손길을 통해 HP를 회복했으나 이터널리스트는 이전에 별이 떨어지는 언덕을 떠올리며 주춤했다. 족장에게 붙잡혀 모기처럼 뭔가를 빨렸던 게 은근한 트라우마로 남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귓가에 쭙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이터널리스트의 울먹였다. 이노센트는 그런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트라우마도 트라우마지만, 지금은 족장의 특성이 더 중요했다.
“설마 땅벌까지 소환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이노센트의 물음에 옆에 있던 마제스티가 글쎄, 라며 눈가를 찌푸렸다. 소환되는 땅벌이 보스 개인의 특성인지, ‘별 언덕’이라는 맵의 특성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회장은 별 언덕의 설정 자체가 땅벌이 파묻힌 지역이기에 소환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건 패턴이 나와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바닥 거미줄 디버프 조심하세요!”
신축을 담당하는 세인트들이 바빠졌다. 하얀 거미줄에 발이 묶인 딜러들이 신축을 받는 동안, 족장은 다시 발을 굴렀다.
우르르 땅이 울리며 플레이어들이 휘청거렸다. 그 충격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크라이그가 맹렬히 돌진해 족장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족장은 앙갚음하듯 크라이그를 낚아채 어깨를 물어뜯었다. 큰 폭으로 떨어지는 HP에 세인트들이 또다시 바빠졌다.
이후로도 크라이그처럼 가까이 다가간 딜러들이 붙잡혀 뜯기거나 HP를 흡수당했다. 참 흉악한 광경이었지만 리디안은 침착하게 회복 스펠을 외웠다.
익히 아는 몬스터고 근래에 잡아본 덕분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나왔던 밤의 지배자가 하도 빠르게 움직여서 그런지. 족장이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건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미줄 분사 조심하세요! 발사각 랜덤입니다!”
거미줄 분사만큼은 한 번 크게 당할 뻔했던 것이라, 리디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족장은 노란 꽁무니를 들어 올렸고 약 올리듯 좌우로 실룩거렸다. 그에 따라 발사각을 피하려는 플레이어들의 걸음이 주춤주춤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이 기분 나쁘다며 쌍욕을 중얼거린 햄스터는 좌우, 뒤를 꼼꼼히 확인하며 움직였다.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호드라가 왜인지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햄스터는 모른 척 무시했다.
“세 시 방향!”
꽁무니가 한 곳을 똑바로 바라보자 직감한 신사가 미리 경고했다. 세 시 방향에 몰려 있던 플레이어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분사가 워낙 빠른지라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분사 직후 속박에 걸린 이들은 세인트들에 의해 신속히 풀려났다. 패턴이 허무하게 끝나서 그런 걸까. 팔짱 끼고 있던 족장의 여덟 개 다리가 불안하게 달달 흔들렸다. 그 불길한 모습에 설마, 하는 순간. 족장은 빠르게 이동하며 지면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땅벌이다!”
놀랍게도 초원 아래에서 어울리지 않는 땅벌이 튀어나왔다. 두 마리. 그것도 네임드 그대로 말이다. 누군가 밸붕이라며 울부짖었지만 그에 호응할 시간이 없었다. 땅벌 소환이 별 언덕 맵의 고유 설정임을 믿어 의심치 않던 박회장도 절규했다.
“아, 골치 아프게 됐네. 섀헌들! 힘 좀 써봐요!”
짜증 내면서도 섀도우 헌터들은 열심히 땅벌의 뒤를 쫓았다. 땅벌에겐 어그로가 먹히지 않기에 섀도우 헌터를 전적으로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땅벌은 고속 이동 개체였다. 노르드 월드에서도 가장 빠른 몬스터로 정평이 나있다. 대장군과 페이지. 토토리아가 남다른 속도로 뒤쫓았지만, 땅벌은 넓은 시야로 저만치 멀리 도망쳤다.
그 한 마리의 땅벌이 비격수 무리를 헤집고 말았다. 난데없는 벌침 공격에 방어력 낮은 비격수들이 고통의 비명을 질러댔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지나치게 많이 닳는 HP에 세인트들의 MP 소모도 커졌다.
보다 못한 신사는 조금 전 밤의 지배자를 잡을 때 뚱이가 제안했던 방법을 떠올렸다.
“아까 지배자 잡을 때 썼던 테두리 몰이, 재시도합니다! 땅벌 이동 주의하시고 바로 띠 만들어 주세요!”
한 번 해봤던 방법이었기에 플레이어들은 말귀를 척척 알아들었다.
일반 랭커 무리는 가장 멀리 있는 땅벌 하나의 진로부터 막았다. 그 후 압박하듯 천천히 밀고 나와 온전한 테두리를 만들어 냈다. 곧 밤의 지배자처럼 얻어맞을 땅벌 두 마리의 신세에 헤른이 자신 있게 웃었다. 그러나 땅벌은 보기 좋게 헤른의 위로 솟아올라 어깨 너머로 도망쳐 버렸다.
아무리 비행체라 해도 일정 간격 이상은 높게 날지 않던 개체였다. 그 모습을 본 신사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어? 도망쳤다! 어떻게 해요? 검, 아까보다 더 붉어졌는데?!”
“족장부터 다굴 쳐요! 족장만 잡으면 땅벌도 사라지잖아요!”
당황한 나머지, 태양 연합 길드의 매지션 오디오스가 소리 질렀다. 작전 제안과 지시는 전체 지휘를 주도하는 신사, 간부들의 권한이었다. 그걸 오디오스가 무시한 채 버럭 소리 지르자 사람들이 우왕좌왕 당황했다. 예상 경로를 무시한 땅벌의 행동으로 혼란해진 탓에 더 그랬다.
어느새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족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대부분 일반 랭커들이었고 주도하는 이는 오디오스와 그를 따르는 태양 연합 길드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오디오스의 말이 현실성 있다. 그러나 오디오스는 땅벌의 위험성을 간과했다.
테두리 밖으로 도망친 땅벌 두 마리는 바깥에서부터 날아와 비격수들의 등을 쳤다. 치솟는 비명에 족장을 치던 딜러들이 놀라 쳐다봤고 세인트들은 애탄 외침으로 회복을 반복했다.
리디안은 갑작스레 명령이 나뉜 광경에 당황했다. 족장 일점사에 눈이 먼 일반 랭커들 사이에선 여신의 영역을 써달라는 요청까지 들어오는 상태였다.
하지만 리디안의 판단으로도 그건 아니었다. 땅벌들이 비격수의 등을 공격하는 지금, 리디안이 신경 써야 할 건 메인 힐이었다. 그에 성질 급한 일반 랭커들에게서 투정이 나오자 화가 난 신사가 소리 질렀다.
“지금 족장 치지 말고 땅벌부터 처리하세요!”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신사는 꾹꾹 참았다. 지시에 빠르게 판단해 움직여야 할 딜러들은 족장과 땅벌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했다. 고작해야 1, 2초. 하지만 딜러들의 그 짧은 고민은 진행에 큰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박회장은 자신의 길드원들이 오디오스의 엉뚱한 지시에 휩쓸린 것에 크게 분노했다.
“대기업! 헛짓거리하지 말고 당장 원위치하세요!”
“태양 연합 길드! 다들 정신 차리고 신사 님 지시 들으십시오!”
태양의 길드 마스터, 핑크푸크마저 묵직하게 외쳤다. 자신의 길드 마스터의 목소리라 그런 건지, 다행스럽게도 오디오스와 그 일당들이 공격을 중지했다.
정신 차린 그들은 뒤에서 정색하고 있는 하이 랭커들을 보곤 낮게 탄식했다. 덕분에 상황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로 인해 입은 시간의 손실은 막대했다.
결국 플레이어들은 족장을 잡지 못했다. 고작 10% 남짓한 HP를 남겨둔 상황에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브륀힐드 검이요!”
힐끔힐끔 브륀힐드 쪽을 곁눈질하던 바드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동시에 돌아본 신사와 간부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브륀힐드의 검날은 전체가 완전히 붉어진 상태였다. 리디안은 뭔가가 일어날 것을 직감하곤 브륀힐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고했다. 용맹한 전사여.”
천천히 눈을 뜬 브륀힐드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곤 지면에 박혀 있던 검을 거칠게 뽑아 들었다.
[네임드 몬스터 : 4 / 9]동시에 뜬 카운트에 좌중이 술렁였다. 족장을 죽이지 못했는데도 카운트가 적용된 것이다.
“설마 저거 우리 목숨값은 아니겠지?”
이노센트가 입가를 실룩이며 실소했다. 리디안 역시 왜인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그사이, 브륀힐드의 검날은 붉고 투명한 빛이 어우러져 일렁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화염을 두른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브륀힐드가 힘차게 검을 땅으로 내리꽂았다.
강력한 힘이 주입되자 멀쩡했던 초원이 붉게 타들어 가며 쩍쩍 갈라졌다. 균열의 틈새로 붉은 기운이 퍼져나갔고 플레이어들은 천재지변처럼 요동치는 발밑을 보며 기겁했다.
리디안은 멀쩡한 지면 위에 간신히 서서 반사적으로 여신의 손길을 외웠다. 그러나 애초에 회복으로 막을 수 있는 패턴이 아니었다. 일순간 발아래서 밝은 붉은 빛이 치솟았고 리디안은 자신도 모르게 질끈 눈을 감았다. 그 직후 커다란 충격이 몸을 덮쳐왔다.
[다람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벤딩이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하얀소라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플루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버베나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하이로 님이 사망하였습니다.]살짝 뜬 눈 사이로 사망자의 명단이 주르륵 올라왔다. 명단은 끊임없이 올라갔고 당황해 고개 돌린 풍경에 리디안은 아연실색했다.
시체 밭. 뻔한 말이지만 그것 말곤 주변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잠시 이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생존자는 리디안 외에도 더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이 지옥도에 놀라 그대로 멈춘 상태였다. 죽은 이는 전체 인원의 40% 정도였다. 굳이 수를 계산해 보자면 산 자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떼죽음이었다.
“아… 세인트……. 세인트!”
당황하던 리디안은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의외로 살아남은 세인트들이 꽤 있었다. 리디안은 부재축 세인트인 이모탈과 보리알이 살아있는 것에 몹시 감사해했다. 그러나 두 사람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모탈 님! 보리 님! 부재축이요!”
리디안은 다급히 외쳤다. 당장 상황만으로는 자신이 먼저 부활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부재축은 시전자의 전체 MP 중 50% 소모한다. 리디안은 MP가 너무 많아 부재축을 사용하기엔 효율이 낮았다. 고맙게도 두 사람은 그 뜻을 알아듣곤 번쩍 정신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