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94
394화
감옥의 존재가 확인되자 모두의 휘둥그레 커졌다. 보스존에 NPC라니. 굉장히 희귀한 경우였고 감옥의 존재도 놀라웠다.
중앙 외엔 테두리가 새카매서 꽉 막힌 벽인 줄 알았는데. 페이지의 말대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어둠 속에 감옥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 일곱 시 방향, 감옥 앞에 NPC ‘감시자’가 있었다. 페이지는 진짜 몬스터인 줄 알고 자지러질 뻔했다며 한참을 쫑알거렸다.
“오… 감옥은 그렇다 쳐도. NPC는 진짜 특이하네요.”
이럴 때 나서는 건 박회장이었다. 박회장은 잽싸게 달려와 감시자 NPC에게 말을 걸었다. 그에 컴컴하던 안광이 보랏빛으로 불타올랐다.
“이방인이군. 헬라의 나스트론트에 온 걸 환영하네.”
쉬지근한 목소리 끝으로 은근한 웃음이 걸렸다. 기분 나쁜 목소리였지만 리디안은 감시자가 언급한 이름에 놀라 반사적으로 나섰다.
“방금 ‘헬라’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맞아요. 헬라의 나스트론드라고 했어요.”
박회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니플헤임은 원래 헬라가 거주하는 곳이에요. 나스트론드는 죄를 짓고 죽은 자들이 수감되어 벌을 받는 곳이고요. 니드호그의 영역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선 또 헬라의 관할로 바꿔 버렸네요? 뭐, 아무튼. 지역 설정 때문에 니플헤임과 헬라와의 관계성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지금 여기서 언급하는 걸 보니… 니플헤임 어딘가에 헬라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그에 리디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한편 박회장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시 말을 걸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참고로 난 반짝이는 걸 아주 좋아해.”
감시자는 속물처럼 말한 뒤 침묵했다. 대사는 그걸로 끝이어서 플레이어들은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한한 곳이네. 감옥이랑 석상 오브젝트에 NPC까지…….”
“감옥은 다 비어 있는 거죠?”
“네. 작약 님이 다 확인했어요.”
“음. 혹시 보스전에서 오브젝트와 NPC를 활용하는 방식일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여태까지의 방식이랑은 너무 달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스 이름이 타락한 기사였죠? 저 석상이랑 관계있을 수도.”
가이드 문구 하나 없는 상황에 플레이어들은 낯선 방식을 걱정했다.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이곳까지 와 놓고 포기할 순 없는 노릇. 간부들은 못마땅한 표정인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보스가 없는 상황에서 HP를 가진 오브젝트입니다. 추측으로는 보스 등장과 관계있을 듯하여 우선 파괴해보겠습니다. 모두 가장 바깥에 있는 형상 중심으로 자리 잡아 주세요.”
투덜거리던 플레이어들이 서둘러 자리 잡았다. 오브젝트라 공격당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세인트들이 곳곳에 퍼져 회복을 준비했다.
비슷한 이유로 탱커들도 최소한의 인력을 남긴 채 형상을 에워쌌다. 한동안 분주히 이어진 버프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심호흡한 신사가 공격을 지시했다.
시작과 함께 스펠, 스킬 공격이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말끔했던 석상은 부스스 조각을 떨어트리며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번쩍거리는 이펙트 아래론 다크 템플러들이 차례대로 디버프 필드를 시전했다. 그러나 오브젝트인 석상에겐 하나도 적용하지 않았다. 다행히 파괴에 까다로운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오브젝트임에도 상당한 HP를 자랑해, 완전한 파괴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대감옥의 봉인을 해제합니다.] [남은 형상 : 7]삼분이 지나 석상이 파괴되자, 천장 아래로 안내문이 떴다. 그에 플레이어들이 탄성하며 눈을 반짝였다. 박회장은 그럴 것 같았다며 씩 웃었다.
“맞네. 형상 다 깨 부서야 보스 봉인 풀리는 거.”
사실이 확인되자 공격에 속도가 붙었다.
신사의 주도에 플레이어들은 석상을 차례차례 파괴했다. 그렇게 여덟 번째 석상이 파괴되기 직전, 신사는 중앙을 가리키며 준비하라 일렀다.
바드나 세인트, 다크 템플러. 더 할 일이 없어진 비격수들이 미리 달려가 위치에 섰다.
그리고 30초 후, 마지막 석상이 파괴되었고 내부는 강한 진동으로 흔들렸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눈가루와 함께 안내가 떠올랐다.
“누구냐. 나를 깨운 자.”
낮고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음성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서 결코, 쉽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 중앙의 맨땅이 붉게 빛났다.
주변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이 경계하며 한발자국 물러났다.
이윽고 검은 기사의 모습이 땅 밑에서 솟았다.
검은 갑옷, 검은 투구, 검은 대검. 석상과 똑 닮은 기사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리디안은 잠시 ‘신전을 지키는 자’ 던전을 떠올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스크린샷이나 영상으로 봐 생김새만은 익숙했다.
타락한 기사는 그곳의 보스와 비슷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뭐야. 신전지킴이랑 형제야?”
“닮긴 닮았는데. 설마 그 X같은 디버프 패턴까지 비슷한 건 아니겠죠.”
끔찍한 상상에 모두가 넌더리를 냈다. 경험자들의 기억으로도 그곳은 지옥이었다.
리디안은 이곳에서 한번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물약 사용 불가인 지금 상황에서 직업별 1인 제한은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여태까지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걘 진짜 모든 공격 때마다 디버프 두 개, 세 개씩은 걸었지. 그래서 세인트가 죽어 나가던 곳이고.”
“전멸하면 세인트 책임이었고.”
버베나의 넌덜머리에 이노센트가 건조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페페를 향했다.
신전을 지키는 자에서 한 번도 욕을 먹어본 적 없는 세인트는 페페뿐이었다. 그에 트라우마가 있는 세인트들은 괴로워하며 울상지었다.
리디안도 그 명성을 알아 긴장해야 했다.
[타락한 기사]보스는 검은 대검을 바로 세우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에 탱커들이 뛰어가려던 찰나, 보스가 대검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세웠다.
나스 평야에서도 눈꽃 여왕이 버프를 걸고 시작했기에 리디안은 설마, 하며 주시했다.
“충성의 검.”
또다시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어감상 정말 버프인가 싶었지만, 보스는 곧장 검을 내리더니, 다짜고짜 좌우로 휘둘렀다.
그에 휘어진 반달 모양의 얇은 검기가 다발로 튀어나왔다. 검기들은 원거리 딜러가 있는 곳까지 날아가 플레이어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줬다.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손길을 외웠던 리디안은 맥스비의 HP가 30%밖에 남지 않았던 것에 경악했다.
“탱커 먼저 붙으시고 다템 HP 주의하세요!”
보통 보스의 패턴에서 첫 공격은 일반 전체 공격일 확률이 높다. 그러나 방금 ‘충성의 검’은 정식 패턴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했다.
다크 템플러의 디버프 필드가 시전될 때, 달려 나가던 딜러들도 당황해 서로를 쳐다봤다.
“…방금 다들 봤죠? 사람들 피 깎이던 거.”
초월자의 손길을 거듭 사용한 괴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모두 노련한 세인트들이라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리디안은 마른침을 넘기며 긴장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나스 평야처럼 혼돈의 도가니가 되리라.
“방금 공격 범위, 원거리 위치까지입니다. 각자 거리 확인 바랍니다. 공격 전 대기 시간이 있고, 보스 기준 후방은 피해가 닿지 않으니, 회피할 때 참고하세요.”
신사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근거리 딜러들에게 알렸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가능한 회피해 세인트들의 부담을 줄여야 했다. 보스에게 붙어 있던 탱커와 딜러들도 그를 이해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초반부터 시전된 디스펠 필드는 정말 유용했다. 곧장 다음 패턴을 시도하려던 보스의 움직임은 굼떴다. 느릿한 속도로 어깨높이까지 검을 든 보스는 다른 한손으로 검은날을 가볍게 쓸어 올렸다.
“배신의 검.”
이번에도 패턴 명이 음성으로 흘러나왔다. 대검이 워낙 상징적이라, 리디안은 이번에도 검기가 날아올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검기는 낌새 없었고, 엉뚱한 바닥에 붉은빛 자국이 떠올랐다.
레이드 경험 많은 플레이어들은 공격 표시라는 걸 알아 반사적으로 피했다. 리디안도 재빨리 붉은 자국을 피해 자리를 이동했다.
하지만 몇몇은 조금 전 충성의 검 충격에 넋을 놓고 있다, 얼음 족쇄에 걸린 참이었다.
“X됐다…….”
족쇄에 걸려 움직일 수 없게 된 외이리가 이마를 짚으며 절망했다. 곧 붉은 자국이 있는 곳으로 칼날 비가 후두둑 쏟아졌다.
타격당한 사람은 외이리를 포함해 총 여섯이었다. 외이리를 뺀 나머지는 허둥지둥 당황하다 자국이 겹친 곳을 실수로 밟은 경우였다.
“여신의 손길!”
“초월자의 손길!”
다행히 HP는 50% 정도 깎였다. 외이리도 간신히 살아났다. 이번에는 덜 깎였다는 생각에 세인트들이 안도했다.
하지만 보스의 첫 패턴이 대부분 일반 전체 공격인 걸 생각하면 꽤 불길한 징조였다.
“기본기인 것 같은데. 다른 패턴이랑 겹치게 들어오면 답 없겠어요. 리디안 님, 이번에도 메인 힐 주력으로 계속 버티셔야 할지도…….”
나스 평야의 악몽을 떠올린 이트가 입가를 실룩였다.
리디안도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우는 시늉을 했다.
“디스펠 필드 종료 5초 전!”
달콤했던 시간이 끝나갔다.
디스펠 필드가 사라지자 보스의 움직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야유하는 딜러들을 비웃듯, 보스는 다음 패턴을 위해 검을 아래로 쥐어 바닥을 길게 그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검은 오욕에 물들어라.”
보스의 대사는 지속적이었다. 덕분에 패턴 명칭이 구분되어 편리하나, 대사에서 흘러나오는 무거운 분위기가 플레이어들을 압박했다. 리디안은 이번엔 또 무슨 효과일까 두려움을 삼켰다.
“어, 바닥에 뭐가 또 생겼다. 검은색 자국!”
“천장! 천장 봐요!”
바닥을 보며 기겁하던 플레이어들의 고개가 일제히 위로 향했다. 얼음뿐이던 천장으로 어느새 검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딱 봐도 떨어질 듯한 그림이라, 플레이어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일부 플레이어들이 얼음 족쇄에 당해 움직일 수 없었다.
“죄, 죄송해요. 주기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깜빡 잊게 돼서…….”
미안함을 표현하는 타로티의 머리 위로 검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짧은 비명과 함께 타로티의 몸이 검게 물들어갔다. 효과는 중독이었다.
“30초 동안 HP 초당 20% 감소. 해제 가능하니 세인트 분들 참고해서 신속하게 풀어주세요.”
빠르게 사태를 파악한 신사가 정리해 공지했다.
신축으로 해제할 수 있으니 다행이었지만, 중독 대미지는 너무나도 사기적이었다. 통 큰 중독 효과에 비격수들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대박이네. 다음엔 또 뭐가 나오려나.”
규호의 기대에 부응한 걸까. 딜러들에게 집중 공격당하던 보스가 돌연 검을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러곤 처음 등장 때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개 숙인 보스의 모습에 딜러들이 수상한 시선을 보내며 경계했다.
“들끓는 대지에 잠들어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면의 색이 변했다. 리디안은 보스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보랏빛 장막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장막은 빠른 속도로 퍼져, 지면 전체를 물들였다.
“어… 불길한데. 이거 죽사막에서 리비쿠스가 쓰던 독 필드 같은 거 아니야?”
재빨리 비슷한 패턴을 떠올린 버베나가 의심했다. 그 소리에 이노센트가 주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래도 그땐 도망칠 곳이라도 있었지. 이건 땅 전체가 물들었는데? 부디 다른 효과이길 바라야지.”
피할 곳이 없어 모두가 근처만 왔다 갔다 할 무렵이었다. 지면을 메운 보라색 장막이 돌연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시각적으로 몹시 불길한 광경이라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이건 아니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어디로요? 출구로 나가는 것 말고는…….”
“맨땅! 맨땅 없어요?”
“감시자 있는 쪽까지 다 보라색인데?”
당혹스러운 웅성거림 속에서 리디안의 시선이 끝을 향했다. 리디안은 맵 테두리, 어둠 속에 자리한 감옥을 쳐다봤다.
멀고 어두워 보이지 않았지만, 만약 감옥 안이 맨땅이라면. 닫힌 문만 열 수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끝에서부터 액체가 튀어 올랐다. 키만큼 솟은 그것은 그대로 고체화가 되어 벽으로 변했다.
마치 상자에 갇힌 것처럼 사방으로 꽉 찬 어둠에 플레이어들이 당황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누군가 뱉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내부는 보랏빛으로 발광하다 이내 펑 하고 터져 버렸다. 리디안은 0으로 떨어진 HP를 보며 죽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