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0
40화
여관의 숙박 기능과 주점의 식사 기능을 겸하는 상점 ‘발할라의 아침’은 상점가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NPC 사이에서도 알량한 부의 차이가 있는 건지, 건물 높이는 물론, 전용 면적도 넓어 언제나 플레이어가 바글바글한 ‘휴게소’였다.
리디안과 크라이그가 목 좋은 자리에 앉자마자 점원 NPC가 기계적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스테이크와 스튜, 파이 등을 주문했다.
당연하겠지만. 이곳 음식은 중세풍, 서양식뿐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에 의해 기본적인 욕구들이 제어되고 있어 맛에 질리거나 혹은 고향의 맛이 그리워지는, 그런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도 맨날 똑같은 음식만 봐서 그런 건지. 플레이어들은 간혹 고향의 것을 떠올리곤 했다.
리디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내어진 고기 스튜를 빤히 바라보던 리디안은 무언가 떠올라 손뼉을 쳤다.
“이거, 색깔만 바꾸면 카레 비슷할 것 같지 않아요?”
스푼을 들던 크라이그가 멈칫했다. 뜬금없는 소리에 황당했는데, 가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편, 조용한 반응에 쓸데없는 소리를 했나― 머쓱해진 리디안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 그냥… 맨날 같은 음식만 보다 보니까 가끔 생각나더라고요. 원래 좋아하던 음식들 있잖아요……. 크라이그 님은 그런 적 없어요?”
싸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되물었지만, 괜히 입방정을 떨었나 싶었다.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그랬다고. 무안해진 리디안은 쓰리게 후회했다.
“흠. 굳이 생각한다면야. 전 제육볶음?”
의외로 어울려 주는 대답이 나왔다. 어라? 하면서도 뭔가 우스운 대꾸에 리디안은 풉 하고 웃어버렸다.
“그거 남자들 소울 푸드 맞죠.”
“돈가스도요.”
“국밥은요?”
“그것도 그렇긴 한데. 아는 사람이 국밥충이라 전 싫어해요.”
대꾸하면서도 어이없는지 크라이그 역시 피식하고 웃었다.
우연히 현실 얘기가 나오니 대화는 생각보다 별거 없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뭔가 동갑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도 들었다.
하이 랭커인 데다 진지한 사람이라 조금 어렵고 멀게 느껴지던 사람인데, 이렇게 얘기하니 그 역시 평범한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나름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다 해갈 무렵이었다.
리디안은 후식으로 파이를 야금야금 먹고 있었고 크라이그는 게이지도 다 찼는데, 왜 또 먹냐며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눈치챈 리디안은 민망하게 웃었다.
“원래 후식 배는 따로 있잖아요…….”
크라이그는 역시 여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 과연 저 커다란 걸 다 먹는지 궁금해서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입구 쪽이 대뜸 소란스러워졌다.
한창때의 저녁이라 단체 손님이라도 들어오나 했는데. 막 들어온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놀란 듯 말했다.
“ONE 길드네요.”
그에 반사적으로 리디안의 고개가 돌아갔다. 좁은 문밖에서부터 랭커들이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었다. 한 번 안면을 튼 레온과 버베나도 선두에 보였다.
리디안은 우르르 왁자지껄한 ONE의 모습에 절로 감탄했다.
“저 길드는 사람 진짜 많네요.”
“네. 전투 길드 중에 제일 많죠.”
“회식이라도 하러 온 걸까요?”
“아마도?”
ONE은 100위 안의 하이 랭커를 포함해, 100위 밖 일반 랭커들이 많이 가입해 있어 길드전 때마다 승리의 영광을 거머쥐는 곳이었다.
간혹 라이벌들로부터 쪽수발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지만, 엄연히 따지고 보면 인원도 실력이었다.
“어?”
한참이 지나 들어서는 사람의 모습에 리디안은 바보처럼 감탄했다. 귀한 대제사장의 축복 시리즈를 걸친 훈훈한 남자 세인트는 리디안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페페 님?”
우연스럽게 눈이 마주친 페페의 눈도 커다래졌다.
페페는 안쪽 테이블을 차지한 리디안과 크라이그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다 서둘러 뛰어왔다.
“안녕하세요, 두 분. 오랜만이에요.”
웃고 있지만, 눈동자엔 다소 신기함이 가득했다.
특히나 크라이그와 함께 단둘이 식사하고 있는 리디안의 모습에 페페는 놀란 상태였다. 같은 길드원이니 이상할 건 없지만. 평소 무뚝뚝한 크라이그의 성격을 알기에 이런 두 사람의 조합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이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페페를 향해 고개 숙였다. 게임 때는 오다가다 몇 번 파티를 맺었던 사이지만, 여기서는 랭커 회의로 얼굴도 자주 보고 제법 말도 나눈 사이였다. 또 랭커들 중에서 평판도 좋고 말도 잘 통하는 사람이라, 레기온 길드 모두가 페페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기도 했다.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도 분위기로 보나 나이로 보나, 페페에게 예의를 갖출 이유는 충분했다.
리디안 역시 크라이그를 따라 일어나 헤헤 웃으며 인사했다.
“페페 님, 잘 지내셨어요? 아, 그러고 보니 길드가…….”
플레이어 정보
이름 : 페페 / 길드 : ONE
레벨 : 77 / 직업 : 세인트 / 보조 직업 : 세공사
HP : 3100 / MP : 4620
가까이서 바라 본 페페는 이제 ONE 길드의 소속이 되어 있었다. 축하한다는 리디안의 말에 페페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크라이그도 잘됐다며 한마디 했다.
“드디어 이적하셨네요, 페페 님. 응급실은 다 정리되셨나 봐요?”
“네. 응급실분들은 원하는 곳으로 다 보내드리고, 저는 마지막으로 자리 잡았어요. 마침 오늘 환영식 해주신다고 하시길래…….”
살짝 고개 돌린 페페의 시선 끝에는 레온과 버베나가 있었다.
길드원을 인솔하느라 정신없던 레온도 세 사람을 발견하곤 ‘어?’ 하는 눈치였다. 크라이그와 리디안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까닥이자 레온이 급히 다가왔다.
“오, 안녕하세요. 크라이그 님, 리디안 님.”
시원스러운 레온의 목소리에 분위기가 더 소란스러워졌다.
레온은 레기온에 호의적인 편이고 크라이그 역시 레온의 중립적인 성격을 존중하는지라,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페페도 멀뚱히 서있는 리디안에게 반갑게 말을 걸려 했지만 그사이, 카운터에서 따로 계산하던 버베나가 그들을 의식하곤 재빠르게 달려왔다.
워낙 사교적인 성격 탓에 버베나는 타 길드원들과 친분이 두터운 편이었다. 레기온의 크라이그도 그중 하나였다.
“크라이그, 안녕! 리디안 님도 반가워요! 뭐야, 데이트 중?”
“그럴 리가요. 누나도 여전하시네요.”
짓궂게 놀리는 버베나 때문에 리디안은 잠시 당황했다. 게다가 벌써 인사만 몇 번을 하는 건지. 버베나 하나로 순식간에 복작거리는 주변에 리디안은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리디 님 레기온에 납치됐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진짜였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납치해 버릴걸.”
은근슬쩍 리디안 옆에 바짝 붙은 버베나가 깔깔 떠들어댔다. 뭔가 이노센트와 비슷한 성격 같기도 하다고, 그렇게 느끼는 사이에도 버베나는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아, 레기온 이번에 길원 키운다더니. 크라이그 파티면 리디안 님은 집중 육성 대상인가 보네? 모탈 오빠가 기대하는 힐러라면서요? 소미한테 다 들었어요.”
리디안은 이노센트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의문을 눈치챈 버베나가 히죽 웃었다.
“아, 저랑 소미랑 친구. 동갑이에요.”
버베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유독 나이를 강조하는 말투에 리디안은 헉, 소리를 내며 놀람을 표현했다.
서른한 살의 이노센트가 노안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결혼까지 해서 나이에 비해 더 연륜 있어 보이는 이미지였다.
반대로 버베나는 끽해야 스물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동안이니 당연했다. 그 때문에 레온과는 나이 차이 많은 남매 사이인 줄 알았던 리디안은 꽤 충격적이었다.
그런 반응이 익숙한 버베나의 콧대가 높아졌다.
“제가 좀 어려 보이죠? 밖에서 소미랑 같이 다니면 다들 내가 동생인 줄 안다니까요?”
어느새 버베나의 독무대가 된 풍경에 찡그린 레온이 작게 중얼거렸다.
“너 그러다 이노 님한테 뒤지게 맞는다? 저번처럼 맞고 징징 짜지 말고. 입 다물어라.”
“아, 쫌!”
“야, 그리고 네 얼굴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당연히 더 어려 보이지. 넌 진짜 아침마다 의느님 방향으로 절 올려야 해.”
혀를 차는 레온의 말에 분위기는 단숨에 싸해졌다. 크라이그는 슬쩍 고개를 돌렸고, 리디안은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버베나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X새끼야! 내가 그 얘기 하지 말랬지!”
멱살을 붙잡힌 레온의 비명에 실내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점점 격해지는 말싸움에, 보다 못한 ONE 길드원들이 달려와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크라이그는 처음 보는 장면이 아닌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역시 호적 메이트.”
“죄송. 후딱 끌고 나갈게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ONE의 부길드 마스터인 ‘신사’가 한숨과 함께 돌아섰다. 그리고 익숙하게 두 사람을 뜯어말리며 끌고 갔다. 자리에 남은 ONE 길드원은 페페뿐이었다.
괜히 자기 때문에 소란스러워진 것 같아 페페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간단히 사과의 말이라도 걸려 했지만, 간신히 정리된 분위기에 부길드 마스터 신사가 페페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빨리 오라는 부름에 페페는 아쉽게 리디안을 바라봤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리디안과는 자꾸 타이밍이 어긋나는 것 같았다.
게임 시절에도 리디안과는 늘 친해지고 싶었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리디안은 누군가 잘 이끌어 주기만 하면 승승장구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세계에서 리디안을 처음 봤을 때, 한편으로는 안심하기도 했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무뚝뚝하고 벽을 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게임 때보다 더 친해질 가능성이 커졌기에 이번에는 꼭 친해지고 싶었는데……. 어째 매번 기회가 오면 엇갈리는 듯했다. 길드 가입 건도 그렇고 말이다.
페페는 버베나를 다소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가 자리로 찾아오지만 않았더라도, 짧게라도 안부를 물으며 몇 마디 나눌 수 있었을 테니까.
아쉬움을 삼킨 페페는 별수 없이 말했다.
“그럼 리디안 님, 다음에 다시 봬요. 연락 드릴게요.”
약속 같은 말에 리디안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 하고 해쭉 웃는 리디안의 모습에 바라보던 크라이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페페가 몇 번 뒤돌아보며 자리를 떠난 직후, 크라이그는 티가 나게 들뜬 리디안을 향해 물었다.
“혹시 진짜예요? 페페 님이랑 리디안 님이랑.”
실속 없는 질문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했다. 리디안은 놀라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였다.
“네? 페페 님이랑 제가요? 그럴 리가요.”
“그래요?”
“대체 왜 그런 생각을…….”
되묻던 리디안은 조금 전까지 히죽거리던 자신의 표정을 상기했다. 아, 너무 웃고 있어서 오해하셨나? 게다가 일전에 아이쿠가 둘을 봤다며 은근하게 놀리기도 했으니, 소문이 이상하게 퍼져도 이상할 건 없었다. 원래 남녀 소문은 발 없이 빠른 편이니까.
리디안은 부끄러움에 붉어진 얼굴로 큼큼 헛기침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제가 존경하는 분이기도 했고. 게임 때, 페페 님이 그나마 가장 친하게 지낸 분이라서요. 그래서, 반가워서 그런 거예요…….”
“그렇구나.”
크라이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놀리려거나 리디안을 곤란하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정모에서 아이쿠가 했던 말이나, 평소 페페의 인기. 그리고 조금 전 리디안이 보인 밝은 표정에 순간적으로 궁금해져 저도 모르게 물었을 뿐.
본인이 아니라고 부정하니, 그러려니 했지만, 약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색이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조금 귀엽기도 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음. 그럼 페페 님 진작 ONE 길드로 갔으면, 리디안 님도 따라갔겠네요?”
리디안은 찡그려 웃었다.
“글쎄요. 그렇게까지는…….”
“혹시 지금이라도 페페 님이 이적하라고 하면 할 거예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훅 들어온 공격에 당황한 리디안의 동공이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떠오른 상황에 솔직히 아주 잠깐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리디안은 쓴웃음을 지며 대답했다.
“설마요. 저 그렇게 염치없지 않아요.”
“흠, 그건 다행이네요.”
“다들 너무 잘해 주셔서 좋고. 저도 가능하다면 오래, 여기에 정착하고 싶어요.”
리디안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조금 무례하고, 다소 짓궂은 질문이었나 싶었지만, 그래도 리디안은 불쾌해하지 않았다. 크라이그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 나간 당혹스러운 질문에 미안해 머리를 긁적였다.
“음… 힘들면 언제든지 의지해요. 그러려고 있는 길드니까요.”
드물게 부드러운 어조에 리디안의 눈이 반짝거렸다.
때마침 간절한 염원이 하나 있었다.
“그럼 하나 말해도 돼요?”
“갑자기?”
“힘든 거 말하라면서요…….”
“…있었어요? 뭔데요?”
잠시 머뭇거리던 리디안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던전, 바꾸면 안 돼요?”
“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은 너무나도 단호한 표정이었다.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크라이그는 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서럽다, 서러워!
힘없는 리디안은 푹 고개 숙여야 했다.
* * *
단호한 크라이그 덕분에 라피아 화산 던전 사냥은 며칠 내내 이어졌다.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사냥을 반복하다 보니, 리디안의 레벨은 71이 되어 있었다. 마의 구간치고는 생각보다 빠른 업이었다.
크라이그와 적혈구는 아무래도 게임 때보다 경험치 구간이 줄어든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금세 랭커가 되겠다며 노네임이 몹시 좋아했지만, 실제 육신의 감각을 가지고 오랫동안 사냥터를 활보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피로도를 관리하려면 일정 시간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게 오히려 번거로운 일이 되었고 중간중간 흐름이 끊겨 방해되곤 했다.
스파르타 지침을 관철하는 크라이그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어도 사냥은 쉽게 지칠 수밖에 없었다.
“아. 이제 좀 질리는 거 같아요. 리디 누나 있어서 긴장감도 안 들고.”
든든한 힐러가 뒤를 지키고 있으니 당연했다. 아이쿠의 푸념에 노네임도 격하게 동의했다. 자기도 이제 벌레들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말이다.
저레벨들의 불만이 새어 나오자 크라이그는 힐끔 리디안을 쳐다봤다. 쪼그려 앉은 리디안은 조금 전 터져 죽은 투구벌레의 흔적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사실, 이 파티의 주목적은 리디안의 성장이었다.
원래는 이곳에서 더 오래 사냥할 예정이었지만 리디안이 그간 버벅거리는 일 없이 잘하기도 했고, 이만하면 던전 상황에 충분히 단련된 듯하니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흠, 그럼 내일부터 다른 던전으로 갈까요?”
그리 제안하니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휙 고개 돌린 리디안은 울기 직전이었다. 드디어 화산 던전 탈출이구나! 하고 신나 했지만, 크라이그가 초를 치듯 한마디 덧붙였다.
“대신, 여기보다 좀 더 난도 높은 요정의 미로로 갈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노네임을 제외한 리디안과 아이쿠의 표정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적혈구와 파파는 알고 있는 내용인지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요정의 미로’는 요툰하임 지역의 ‘요정의 숲’과 연계된 던전으로 요정이라 해서 약하고 순해 빠진 요정을 생각해선 안 된다. 요툰하임의 요정족 몬스터는 사악하고 잔인한 설정을 하고 있어, 신 오딘에게도 버림받았다는 이야기가 뒤따른다. 버림받은 존재에게 순한 성정을 기대하는 건, 자비 없는 노드르 월드에서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요정의 미로는 던전 형태였다.
노르드 월드의 설정상 던전이 필드보다 어려운 건 당연했지만, 여긴 속성 공격이라는 특수한 설정이 있어, 50레벨 제한임에도 고레벨 플레이어에겐 꽤 까다롭고 짜증 나는 곳이었다.
덩달아 끔찍하게도 디버프를 많이 거는 곳이었기에, 요정의 미로 역시 세인트들이 싫어하는 사냥터 중 하나였다.
물론 파티원들이 별도의 속성 저항력 세팅을 하면 그럭저럭할 만한 곳이긴 한데, 기본적으로 몹들에게도 속성 저항력이 있어 속성을 갖지 못한 일반 딜러들이 사냥하기에는 조금 껄끄러운 곳이었다.
“아무리 윤재 형이라도 거긴 대미지 안 나올 텐데? 미로는 마법 딜러들 전용 맵이잖아요”
아이쿠의 의문에 크라이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아무리 올공 세팅해도 거긴 좀 힘들지.”
“그럼 어떻게 잡으려고요? 어, 설마…….”
무언가 눈치챈 아이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메인 딜러 교체할 예정.”
그 선언에 리디안 역시 빠르게 이해했다.
그곳에서 날아다닐 수 있는 직업은 마법 계열에 속성 공격이 가능한 매지션과 무속성 직업 특성을 가진 엘레멘탈 서모너뿐이었다.
“요정의 미로부터는 테세우스나 독재 형이 합류할 거예요.”
“아, 뭐야~ 도훈이 형은 연비가 안 좋은데. 차라리 독재 형이 낫지.”
“에이, 도훈이 올 거면 심장 형님이 훨씬 낫지. 근데 형님은 플레이를 어려워해서…….”
“아, 제발 독재 형이 왔으면 좋겠어요.”
“나도. 도훈이는 시끄러워서 싫어.”
아이쿠와 노네임이 테세우스를 신랄하게 디스하며 불만을 토하는 사이, 중간에 낀 리디안은 웃으며 땀을 흘렸다.
벌써부터, 대충 누가 올지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