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00
400화
“어?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 해요? 지금 몇 명이지?”
“사망자 다섯! 살아 있는 사람 137명이에요!”
“뭐야, 반반으로 안 맞아떨어지잖아?”
137. 한 명이 애매한 숫자였다. 사망자에 대한 부활이 금지되었다면 사망자는 전체 인원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뜻. 숨겨진 규칙을 이해한 리디안도 난감해하며 사람들을 쳐다봤다.
“어쩌죠? 한 명이라도 살아나거나, 아니면 한 명이 죽어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리디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동시에 해결방안을 떠올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손들었다. 그중 가장 빨리 대응한 건 다람이었다.
“죽여요! 빨리 나 죽이셈! 내가 죽어서 인원 맞춰주겠음!”
말을 함과 동시에 다람은 빠른 속도로 파티를 탈퇴했다. 스스로 죽어 버리겠다는 말에 몇몇이 당황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걸 제일 먼저 이해한 고독한이 피케이 모드로 바꿔 다람을 겨냥했다. 그와 동시에 해답을 깨달은 딜러들도 눈을 빛내며 다람에게 달려들었다.
짧은 찰나, 번개처럼 쏟아진 공격에 다람이 쓰러졌다.
리디안은 그 잠깐 사이의 공격에서 약간의 사적인 감정을 느낀 것 같아 땀을 흘렸다.
“순삭이네.”
“센스 있게 장비도 미리 다 빼두셨네요.”
다람의 자발적인 사망으로 인원은 136명으로 맞춰졌다. 플레이어들은 바로 68명씩 나뉘어 OX 자리에 섰다.
잠시 후, 저울의 균형이 맞춰지며 보스에게서 고맙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패턴 방어에 성공하자 곧바로 피버 타임이 걸렸다.
15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딜러들이 맹공격을 퍼붓는 동안, 이모탈이 다람을 살려냈다. 잘했다는 안쓰러운 눈길에 어깨를 으쓱인 다람은 가늘게 뜬 눈으로 몇몇을 노려봤다.
“와… 진짜. 다 봤음. 굳이 뛰어와서 악착같이 나 때리던 사람들. 잊지 않을 것임. 절대로…….”
어쨌든 상처받은 다람의 희생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잔인한 패턴이었다. 특히나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사람들에겐 더 크게 와닿았다.
“아. 이런 거 미리 알았으면 초반에 몸 좀 사리는 건데. 멍청하게 나댔네.”
단비 같은 피버 타임으로 숨통이 트일 때, 레기온의 이터널리스트가 씁쓸함을 삼켰다. 그 역시 반복된 사망으로 깎인 수치만 해도 700이 넘는다.
위대한 용사 세트로 바꾸며 HP에 조금 더 투자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3천도 안 되는 HP로 레이드를 돌고 있었을 거다. 사실 지금도 갓 3천이나 다름없었다.
이터널리스트는 자신보다 덜 죽은 다람을 조금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때마침 곁에 있던 박회장이 그를 위로했다.
“에이. 그래도 사람들을 위해서, 전투 길드가 먼저 나서주느라 그런 거잖아요. 많이 죽은 거 가지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베누스처럼 막사는 애들이나 멍청한 거지.”
대기업 길드원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쳤다. 이터널리스트처럼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던 하이 랭커들은 그 말에 위로받으며 웃었다.
“피버 곧 끝나요!”
조금은 씁쓸했던 피버 타임 끝에 보스의 HP는 9%로 떨어졌다. 머잖아 곧 끝이 가까워진 숫자에 대감옥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으로 굳어졌다.
[벨벳루즈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중대장 님이 사망하였습니다.] [김팔라 님이 사망하였습니다.]타락 패턴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숫자가 떨어질수록 보스의 움직임은 거칠고 난폭해졌다. 거의 매초 몰아치는 검기에 리디안은 매초 아찔했다.
사망과 부활이 반복되는 가운데, 얄궂은 디버프 폭탄이 이어졌다. 그나마 검은 오욕 패턴이 함께 따라오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언제 검은 오욕이 시작될지 몰라, 세인트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신축을 외워댔다.
“어둠이여. 잠들어라.”
5%를 남기고 보스는 약을 올리듯 무한한 디버프를 반복했다. 마치 신전을 지키는 자의 악몽이 살아나는 것 같다며 경험자들이 절규했다.
페페는 전체 회복에 주력하면서도 수시로 자신의 MP 게이지를 확인하며 위험한 이에게 신축을 걸었다. 리디안도 간간이 거들었으나 페페의 경이로운 속도를 따라갈 순 없었다.
“융합!”
클리어가 임박해지자 딜러들의 마음도 급해졌다. 스펠 사용 패턴이 똑같은 버베나와 실버린은 동시에 융합을 외쳤다.
좌우에서 거대한 거인이 생겨나 타락한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보스를 내려다보는 크기며 성난 주먹질이 보이는 압도적인 위력에 덩달아 플레이어들의 사기가 올랐다.
도도나 다른 서모너들은 아예 소환수들을 붙여 바로 폭발시켜버렸다. 그 빛과 함께 테세우스를 필두로 한 매지션들이 차례대로 썬더 스톰, 프로즌 스피어, 엘레멘탈 붐을 시전했다.
위대한 용사 세트로 증폭된 대미지는 순식간에 3%를 깎아냈다. 눈에 띄는 변화에 곳곳에서 악에 받친 고함이 번졌다. 그 직후 은신한 섀도우 헌터들이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시원스럽게 터진 크리티컬 대미지에 환호하기 무섭게, 이동 속도 증가 버프를 받은 크라이그, 레온, 햄스터, 박회장이 네 방향에서 달려와 검을 휘둘렀다.
일격필살로 궁극의 검기를 날린 크라이그는 숨 쉴 겨를도 없이 바로 장비를 바꿔 참격난무를 시전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1%가 줄지 않아, 공격기를 모두 사용한 딜러들이 잠시 당황했다.
그때, 무너스키와 호드라가 창대를 움켜쥔 채 황소처럼 돌진했다.
“야수의 요동!”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듯, 두 사람이 대각선 방향에서 동시에 창을 내려찍었다. 창살은 불꽃을 튀기며 지면을 으깼고 이윽고 쩍 갈라져 강렬한 진동을 선사했다.
워로드 스킬 역사상 역작이라 불리게 된 신스킬, 야수의 요동. 그 강력한 대미지가 마침내 마지막을 장식했다.
입이 닳도록 여신의 손길을 외우던 리디안은 스르륵 주저앉아 기쁜 얼굴로 최후를 감상했다.
어둠을 뒤집어쓴 듯 새카맣던 보스의 몸은 점차 색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원래의 색과 형태로 돌아온 보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다른 한 손을 뻗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아, 나의 빛이여. 나의 영원이여. 나의 사랑이여…….”
비탄의 목소리를 내던 보스는 그대로 잿빛이 되어 정지했다. 그 후 아무 반응 없는 현상에 고대하던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했다.
“뭐야. 왜 아무것도 안 떠?”
“죽은 거 맞는데… 뭐 잘못됐나?”
덩달아 불안해진 리디안은 침묵한 보스와 허공을 번갈아 쳐다봤다. 보스를 잡고 난 뒤, 떠올라야 할 내역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상태였다.
한 시간을 넘게 고생해 이뤄낸 결과에 보상이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초조해진 플레이어들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뭐예요? 버그야, 설마?”
“아니, 잠깐. 야! 감시자! 감시자―!”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번뜩 정신 차린 마제스티가 서둘러 파파를 불렀다. 감시자와의 거래를 담당하고 있던 파파가 그에 소리를 지르며 아래쪽으로 뛰었다.
흥분한 파파가 툭 치듯 말을 거니, 낯설게도 몹시 점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때 요정을 수호하던 기사는 맹목적인 감정에 휘둘려 타락했다. 눈먼 기사는 여왕의 선의를 곡해하고 살인을 저질렀다. 어리석은 기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한다. 이기적인 기사는 지금도 그것을 정의라 믿고 있다. 자신만을 위해 사랑하는 기사는 영원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지니.”
긴 독백을 끝으로 타오르던 보랏빛 눈동자가 어둠에 삼켜졌다.
감시자가 눈 감은 채 침묵하자, 잿빛이 된 보스의 몸이 쩍 갈라졌다. 거기서 흩날린 가루는 바람과 함께 회오리치다 여덟 개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처음 본 그대로, 제멋대로 배치된 형상. 종료를 알리듯 밝아진 대감옥 내부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그제야 안도했다.
이윽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타락한 기사가 사망했습니다.] [인첸트 스톤을 입수했습니다.] [디스펠 필드를 입수했습니다.] [칼바람을 입수했습니다.] [참격난무를 입수했습니다.] [물어뜯는 이빨을 입수했습니다.] [위대한 용사의 희생 ― 하의를 입수했습니다.] [위대한 용사의 투지 ― 팔찌를 입수했습니다.] [위대한 용사의 지식 ― 목걸이를 입수했습니다.] [인첸트 스톤을 입수했습니다.] [경험치가 384,000 올랐습니다.] [1,473,500 골드를 입수했습니다.]대감옥은 떠나갈 듯한 환호로 가득 울렸다.
* * *
“독한 놈들…… 기어코 나스트론드까지 깨버리네.”
“니플헤임 도장 깨기 중이면 우리도 좀 기대해 봐도 되는 거 아닌가? 걔들 덕분에 신규 템 많이 풀릴 텐데.”
“바보냐. 당연히 파프니르 레이드 팀 먼저 밀어주지.”
“어… 그럼 나도 파프니르 지원해야 하나?”
“우리 길드도 고민하더라. 돌아가는 상황 보니까 돕긴 도와야 할 건데. 아직 하이 랭커들도 한 방에 죽는다고 하니까. 좀 무서워서…….”
늘 그렇듯, 레이드의 성공은 일반 플레이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드라마틱한 결과에 미치지는 못해도, 전투 길드가 보여준 성과는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차근차근 한 단계씩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일반 플레이어들의 용기와 도전정신을 북돋웠다.
전투 길드가 레이드에 성공할수록 미드가르드는 더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성과를 이룬 전투 길드원들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요즘 70에서 75 레벨들 엄청 늘어났네요. 되게 보기 좋다.”
“신규 장비 등장하니까 기존 중고레벨들이 자극받고 빡업한 거죠. 거기다 헬하임 돌아다니다가 전투 길드 잘 만나면 가끔 공쩔도 해주니까 업하기 좋을 때죠.”
“그래서 그런가. 대기업은 이번에 사람 엄청 늘었대요.”
“뭐, 거긴 원래 친목 길드였으니까. 아무래도 일반 플레이어들한테는 좀 친근한 이미지잖아요. 그래서 접근이 더 쉬웠는지도… 우리 길드엔 가입 신청자 한 명도 없던데.”
“자유 길드도 이번에 꽤 늘었죠?”
한가로운 오후의 광장에서 규호, 괴자가 재잘재잘 떠들다 먹구름을 쳐다봤다. 자유 길드 소속인 먹구름은 우쭐대며 끄덕였다.
“저희야 뭐… 공식적인 전투 길드는 아니지만. 멤버가 거의 하이 랭커잖아요. 최근 지인 추전으로 신규 길드원 받고 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더라구여?”
그래서인지 자유 길드는 최근 몸집이 부쩍 커졌다. 레이드에 참여하는 길드의 성장은 모두가 기뻐할 일이었다.
그 외에도 사냥에 목적을 둔 친목 길드들이 꽤 많아진 추세다. 그 효과로 전투 길드의 시선 밖에서 종종 소규모 레이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예 전투 길드 가입 목적으로 작열의 사막지대나 썩고목 C 구역 레이드로 ‘연습’하는 길드도 있었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길드끼리 소소하게 난도 낮은 레이드를 도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 랭커가 없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지만, 그래도 그들 나름대로 즐거워하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 근황을 뒤늦게 알아차린 전투 길드원들은 변화하는 흐름에 뿌듯해했다. 레이드에서 사망해 날린 페널티에 속상한 것도 잠시였다. 플레이어들은 큰 보람을 느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루 전 나스트론드 클리어로 얻은 장비와 스펠, 스킬은 모두 당일에 분배했다. 장비는 대체로 중급과 상급. 6:4 비율로 드롭됐다.
일부 플레이어들이 강력하게 바라던 디스펠 필드는 리디안과 이노센트가 먹었다.
두 개가 덜컥 나오자 그간 다람의 유세를 횡포라 느꼈던 다크 템플러들이 앞다퉈 달려와 줄을 섰다.
“아, 왜 나왔냐고. 내가 독점하고 싶었는데!”
다람은 철딱서니 없이 투덜거리다 고독한에게 끌려갔다. 그 직후, 디스펠 필드는 공정한 가위바위보를 통해 사이와 인드라가 습득했다.
“야… 이거 쏠쏠하다? 이러다 몇 직업 제외하곤 거의 다 필수로 배우겠는데?”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해서라도. 스펠, 스킬은 다다익선입니다.”
전투 길드는 이제 아이템의 참맛을 알아버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장비와 스펠, 스킬은 도전 심리를 두들겼다.
결국, 나스트론드를 클리어한 그날 밤.
흥분한 플레이어들은 나스 평야 B 구역 레이드를 지지했다. 재차 반복되는 레이드에 곳곳에서 지친 기색을 보였지만 한때였다.
나스 평야 C 구역, 나스트론드 C 구역을 클리어 했으니 나스 평야 B 구역 역시 거뜬할 거라고. 테세우스를 비롯한 몇몇 혈기 왕성한 인물들이 그럴듯하게 설득했다. 플레이어들은 쉽게 현혹됐다.
더군다나 레이드 클리어로 스펙이 더 업그레이드된 상태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장난 반, 패기 반으로 시작된 추가 레이드 제안에 모두가 동의했다.
그리고 곧장 다음날 나스 평야 B 구역 레이드가 진행됐다.
결과는 대성공.
아이템은 가을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졌고 플레이어들의 입은 귀에 걸렸다.
무더기로 쏟아진 장비와 스펠, 스킬에 레이드 파티 전원이 기본 5세트는 다 맞출 정도였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은 플레이어들은 남는 시간을 활용해 나스 평야 필드를 돌아 재료를 파밍했다. 반나절마다 갱신되는 아이템 재고에 간부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온화했다.
아이템은 역시 다다익선이라고.
신사는 보기 드물게 평온한 표정으로 하루 간의 휴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