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02
402화
[자수정 동굴 C 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냥터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제한됩니다.] [자수정 동굴 C 구역―1 / 적정 레벨 : 85 이상] [출현 몬스터 : 얼음 박쥐 / 얼음 나방 / 어린 설표] [출현 필드 보스 몬스터 : 설표]“우와―!”
서리 낀 돌이 가득한 굴에 들어서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조금 전 빛 동굴과는 달리. 자수정 동굴은 희고 반짝거리는, 밝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리디안은 동굴 벽이나 천장 구석구석 조그맣게 박힌 자수정에 시선을 빼앗겼다. 거슬리는 점이라면 채굴된 것처럼 손톱만큼 작다는 것.
“자수정 동굴이라고 해 봤자, 이미 다 털린 곳이네요.”
근처를 쭉 살펴본 크라이그가 냉정한 감상평을 뱉었다. 그에 김이 팍 샜지만, 그래도 작은 수정은 영롱한 보랏빛을 자랑하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구경도 잠시.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는 몬스터에 플레이어들은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앞에 통로 막고 있을게요! 세인트 두 분만 피 채워주세요!”
몬스터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백검이 방패를 자처했다. 그 요청에 따라 이모탈이 규호와 함께 백검의 등 뒤에 섰다.
리디안과 이트는 가운데서 범위를 조절해 HP 회복에 열중했다.
자수정 동굴의 일반 몬스터는 박쥐와 나방, 두 종류.
둘 다 깎아 만든 얼음 조각처럼 생긴 게 인상적이었는데, 얼핏 보면 잘 만든 수정 보석 같기도 했다.
다행히 비행체여도 플레이어를 목격한 즉시 달라붙는 타입이라 딜러들이 고전할 일은 없었다.
문제랄 건 빛 동굴에 비해 몬스터가 정말 많았다는 점인데, 그마저도 플레이어들의 스펙이 월등히 높아진 탓에 전투가 버겁진 않았다.
몇몇은 오히려 사냥하는 맛이 난다며 좋아하기도 했다.
“여기가 완전 경험치 쌓기 좋은 곳이네요. 몹은 약한데, 수는 많고. 리젠도 빠르고. 네임드만 제때 처리해놓으면 루트 잡고 돌기 딱일 듯? 아, 이대로 패치했으면 피 터졌겠다.”
바로 사냥터 스캔을 마친 스타일리쉬가 입맛을 다셨다. 그의 말대로 리디안이 봐도 이곳은 천국이었다. 동굴을 돌수록 은근슬쩍 오르는 경험치에 절로 레벨 업 의사를 물을 정도로.
심지어 보스인 설표조차 은신처가 따로 있어 마주칠 일이 없다. 설표의 은신처는 바위문을 부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덕분에 보스의 생김새 구경은 못 했지만, 네임드인 어린 설표 덕분에 그런대로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설표는 익히 아는 맹수의 모습을 그대로 본떴다. 두툼한 꼬리를 가진, 하얀 털에 검은 무늬가 박힌 보송보송한 고양잇과 맹수.
다만 검치호랑이처럼 윗송곳니가 길게 자라 있어 얼굴은 다소 흉악했다.
더욱이 어린 설표의 크기가 보통의 호랑이만큼 크다는 게 포인트라, 성체인 설표의 크기는 대체 어느 정도일지. 동굴을 도는 내내 보스에 대한 추측이 가득했다.
말 얹기 좋아하는 플레이어들의 무궁한 상상에 끝내 내기까지 나오려던 때.
오른쪽 구석에 도달한 플레이어들 시야로 특이한 구조가 나타났다.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벽. 그 위로 칼집을 내 그린 듯한 단조로운 그림이 가득했다.
“뭐야. 벽화 아니야?”
가장 앞줄에 있던 일반인이 호기심에 다가가 기웃거렸다. 사람들을 따라 나간 리디안도 흥미로운 눈으로 그림을 구경했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 중 눈에 띄는 건 가장 중앙. 왕관을 쓴 거인이었다. 그 옆으론 곡괭이를 든 작은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린 채 서 있었는데, 발목에 찬 족쇄를 보니 노예 같았다.
그다음 그림엔 왕관을 쓴 거인에게 돌을 바치는 모습, 그리고 돌무더기가 가득 쌓인 왕좌에 앉은 거인, 거대한 성 앞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거인 등. 단조로우면서도 이야기가 있는 듯해 모두가 웅성대며 벽을 관찰했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한참을 갸웃하던 대장군이 페이지를 바라봤다. 페이지는 말똥거리는 눈을 끔뻑이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어, 하며 손가락을 들었다.
“나스 산맥?”
“그쵸? 거기에 있던 성벽이랑 좀 닮았죠?”
“자세히 보니까 닮은 게 아니라 X나 똑같은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의 대화에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무슨 소리냐는 핑크푸크의 물음에 대장군이 서둘러 정리했다.
“제가 전에 나스 산맥 제일 윗부분에 성벽 같은 게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성벽에 붙은 탑 지붕 끝부분이 저 그림처럼 왕관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었거든요. 탑이 좌우 두 개인 것도 똑같고요.”
나스 산맥의 성벽은 맨 처음 니플헤임 탐색 때 대충 들은 이야기다. 신사는 흘려들었던 것을 기억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저 벽화의 거인이 나스 산맥의 보스?”
이노센트가 박회장을 쳐다봤다.
가만 생각하던 박회장이 그에 동의했다.
“보스 이름이 ‘모드구드’라고 했었죠. 단순히 이름만 보자면 거인이 맞아요.”
“오. 그럼 이 벽화는 보스에 관한 힌트?”
“그런 것치고는 그림이 좀 빈약하긴 해요. 뭐, 보스 잡을 거면 더 조사해보면 되는 거고요.”
박회장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스 산맥의 보스를 잡을 거냐고 묻는 말처럼 들렸기에 모두가 질색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점점 심해지는 보스 기피 현상에 리디안이 쓴웃음을 삼켰다. 물론, 그간 그만큼 고생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당장 벽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없어, 신사는 조금 더 둘러보자며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벽화 외, 자수정 동굴의 특별한 점은 없었다.
파티는 결국 니플헤임의 최종 맵인 나스 산맥으로 향했다.
[나스 산맥 C 구역에 입장하셨습니다.] [사냥터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제한됩니다.] [나스 산맥 C 구역―1 / 적정 레벨 : 85 이상] [출현 몬스터 : 거인 노예 / 해골 병사] [출현 필드 보스 몬스터 : 모드구드]아름답고 분위기 있던 자수정 동굴이 꿈인 것처럼, 산맥은 황량했다.
미리 산맥을 탐색했던 섀도우 헌터들의 말로는 가장 위쪽에 성벽과 성문이 있다고 하는데, 주변은 돌과 죽은 나무가 가득한 척박한 고지대였다.
산이라는 정체성을 상징하듯 맵의 끄트머리는 낭떠러지처럼 깎여 있었고, 절벽 아래로 흐릿한 안개 더미와 산 아래 머나먼 풍경이 적나라했다.
이런 곳에 성벽이라니. 혹시 맵이 더 있는 게 아닐까?
리디안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흙바닥 위로 자잘하게 박힌 보라색 부스러기를 목격했다.
조금 전까지 자수정 굴에 있었던 터라 리디안은 그게 자수정 조각임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 척박한 땅에 어울리지 않아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리알도 의아했는지 대장군을 쳐다봤다.
“진짜 여기가 니플헤임 마지막 맵이에요?”
“네. 그때 전체적으로 둘러보긴 했는데. 저 위에 성문이랑 여기 자수정 동굴 가는 게이트 말고는 나가는 출구가 없어요. 성문은 HP 게이지를 가진 오브젝트인데, 보스가 맵에 안 보이는 걸 보면 성문을 부숴야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시작점인 입구 주변은 아무것도 없었다. 니플헤임의 마지막 맵인 만큼 플레이어들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진입했다.
신기하게도 몇 걸음 떨어지자마자 나스 산맥의 몬스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열 시, 궁수 타입 둘. 한 시에서 거인 세 마리 오고 있어요.”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신사가 모두를 멈춰 세웠다. 섀도우 헌터들로부터 미리 받아둔 정보에 의하면, 해골 병사의 타입이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
같잖게도 해골 병사는 검이나 방패, 채찍, 활이나 창, 지팡이 등. 마치 플레이어의 무기를 본 딴 듯한 기본형 무기를 들고 공격해왔다.
이름은 하나인데, 공격 스타일이 가지각색인 셈이었다.
그중에서도 원거리인 활, 그리고 마법을 쓰는 지팡이 타입. 이 둘이 가장 성가시다는 걸 제외하면 그간의 맵처럼 그럭저럭 할 만한 곳이었다.
“아홉 시에서 거인 두 마리 더 온다! 뭉쳐 있지 말고 좀 퍼져요!”
서포터 역할인 바드들이 시시각각 몬스터와의 거리를 중계했다. 그에 탱커들이 서둘러 뛰어나가고 옹기종기 모여 있던 비격수들이 후방으로 피신했다.
일반 몬스터 중에서 가장 난감한 건 거인 노예였다.
정리 안 된 더벅머리로 눈을 가린 채. 누더기를 입고 돌멩이가 가득 든 바구니를 짊어진 거인인데, 발목에 찬 굵은 쇠고랑 때문인지 외적으로 우중충한 분위기를 가득 풍겼다.
주의해야 할 건 거인이 짊어진 돌이었다.
거구의 덩치답게 느릿느릿하지만, 거인은 플레이어를 발견하는 즉시 이고 있던 돌을 집어 던졌다.
광속구로 집어 던진 돌은 마치 폭격하듯 땅을 패며 광범위하게 강력한 대미지를 선사했다.
돌을 던질 때마다 최소 네다섯의 HP가 주르륵 깎이니, 리디안과 이트가 동시에 기겁했다.
이것만으로도 정말 귀찮은데, 노예라는 설정에 맞춘 것인지 거인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제 겨우 나스 산맥 중반 부분이었다. 해골 병사보다 거인 노예가 한가득하였다.
사방에서 야구공처럼 날아오는 돌팔매질에 탱커들도 학을 뗄 정도였다. 사정없이 깎이는 HP에 리디안은 매초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단순한 탐색을 위해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왔는데, 순간의 실수로 파티원이 죽는다면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다.
다행히 신사가 잘 조절하고 있어 위험할 일은 없었지만, 리디안으로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거인이 시야가 좁아서 우리끼리 잘만 붙어 다니면 몰려서 쫓길 일은 없겠어요. 해골은 체력이 약해서 금방 잡히니까 문제없고.”
사냥에 관해서는 딜러들에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시간만 있다면 다들 이곳에서 사냥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나스 산맥이 딜러들의 마음에 쏙 든 탓에, 사냥은 꽤나 진지했다. 처음 목적인 탐색도 잊지 않았지만, 지그재그로 이동하는 내내 눈에 띄는 특이점은 없었다.
한참이 지나 맵의 가장 윗부분에 도달해서야 가장 뭔가 있을 법한 성벽을 마주했다.
울창한 침엽수림을 감싼 성벽은 평범한 쥐색의 돌벽이었다. 족히 3미터는 넘어 보일 것 같은 높이였고, 바위를 조각한 건지 군데군데 투박한 이음새가 보였다.
대장군이 말한 대로 좌우, 양 끝에 우뚝 솟은 탑을 빼면 미드가르드 같은 도시의 성문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저게 그 문이죠? 진짜 HP 게이지가 있네.”
마제스티가 거대한 나무 성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맵 어디에도 보스 ‘모드구드’가 보이지 않았으니, 저 성문을 부숴야 나타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어차피 보스를 잡을 마음은 없었기에, 플레이어들은 성문을 무시한 채 성벽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몇 분 후, 오른쪽 끝에 가까워졌을 때 선두에서 걷던 크라이그가 눈 쌓인 돌 언덕 아래를 가리켰다.
“저거, 오브젝트 같은데.”
의심스러운 혼잣말에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고개 돌렸다. 눈이 가득 쌓인 언덕 아래로 웅크린 무언가가 존재했다.
자세히 보니 머리, 몸, 팔다리 같은 형태가 보여 리디안은 그것이 오브젝트. 혹은 맵을 이루는 평범한 구조물이겠거니, 생각했다.
박회장도 같은 생각을 하며 다가갔다. 그 직후, 그것의 머리 위로 간단한 정보가 표기됐다.
[나스의 잊힌 군주]“오? HP 게이지 안 뜨는 걸 보니, 단순한 거인 동상인가 보네요? 오브젝트 아니면 뭐 부술 수도 없고. 그냥 장식용일지도.”
박회장이 손을 뻗었다.
눈 쌓인 거인 동상을 만져보려던 순간.
투둑―
눈이 떨어지며 그것이 움직였다. 이어 완연히 드러나는 형태에 리디안을 비롯한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도망쳤다.
언덕 아래에서 슬그머니 기어 나온 거인은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넝마를 걸친 채였다. 맵에서 흔히 보이던 거인 노예들처럼, 수상한 거인 역시 눈이 완전히 가려져서 얼굴이라곤 수염과 뭉툭한 코밖에 보이지 않았다.
쌓인 눈이 모두 떨어지고, 우뚝 선 거인의 모습에 모두가 사색이 됐다.
거인은 그대로 정지한 상태였고 플레이어들은 멀찍이 떨어져 다닥다닥 붙어 소곤댔다.
“뭐, 뭐야. NPC야?”
“와 씨. 갑자기 움직이고 난리야. 깜짝 놀랐네.”
“흠. 나스트론드 보스존에도 NPC가 있었으니 여기 또 있어도 이상할 건 없긴 한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회장 역시 짐짓 놀랐는지, 가슴을 부여잡은 채였다.
깊게 심호흡한 박회장이 용기 있게 나섰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져도 NPC의 반응은 없었다. 아무리 손짓해도 말을 걸 수 없는 처지에 박회장은 고개만 갸웃하며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때, 거인의 고개가 스윽 움직였다.
“오, 이방인이잖아?”
아주 굵은 음성으로 거인이 또박또박 말했다.
살짝 돌아간 고갯짓이며 불쑥 튀어나온 음성에 사람들은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박회장은 아예 엉덩방아를 찧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플레이어가 말을 걸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NPC라니?
지켜보던 리디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사이, ‘나스의 잊힌 군주’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이 제 머리를 팍 치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곤 복슬복슬한 수염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라. 근데 이건 진짜 생명체네? 거짓된 존재가 아닌데?”
플레이어들은 일동 얼음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