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11
411화
【모드구드】
“북 평원 보스?”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얀 털에 거구. 언뜻 보면 북 평원의 보스인 ‘설인’과 상당히 흡사했다.
다른 점이라면 ‘모드구드’가 더 월등히 크다는 점. 그리고 붉은 눈의 설인과는 달리, 모드구드는 영롱한 금안을 가진 거인이었다.
겉모습만 보자면 어엿한 지성체 같아, 샤봉이 박회장을 쿡쿡 찔렀다.
“혹시 대화가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글쎄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설 것 같은데.”
박회장은 심드렁한 눈으로 거인의 무기를 가리켰다.
모드구드의 오른손에는 긴 나무 방망이가 쥐어져 있었다. 제 다리처럼 길고 뭉툭한데, 끝부분이 철퇴처럼 뾰족뾰족하게 조각된 상태였다.
맞으면 정말 아플 것 같은 형태라 모두가 흉악하다며 소곤거렸다.
“모드구드! 이 더러운 배신자 놈!”
잊힌 군주가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주먹까지 불끈 쥔 채,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 같은 자세였다.
그러나 모드구드는 눈앞의 플레이어들을 노려볼 뿐, 잊힌 군주의 목소리엔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잊힌 군주가 팔을 휘저었다. 하지만 잊힌 군주의 마법은 잠잠했다. 분을 못 이겨 울부짖는 거인의 모습에 함께 있던 작약과 토토리아가 달라붙었다.
“참으세요, 거인 님! 침식 상태라 말도 안 통해요!”
“방해되니,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계십시오.”
신사까지 쌀쌀맞게 대꾸하니 잊힌 군주는 금세 풀이 죽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탱커와 다크 템플러들이 쏜살같이 뛰어나가 모드구드를 포위했다.
“용기의 외침!”
물리 공격 타입임을 확신한 아퀴나스가 제일 먼저 도발했다.
도발 스킬에 사로잡힌 모드구드는 금빛 안광을 빛내며 아퀴나스의 머리 위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두 손으로 쥔 힘찬 몽둥이질에 아퀴나스는 방패를 들어 올린 채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나 강력한지, 혹여 방패가 찌그러지진 않을지. 그런 어이없는 걱정마저 들 정도였다.
“광역기다! 피 조심하세요!”
흔들리는 대지에 신사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멀리 떨어져 있던 보조 세인트들도 그 말에 눈을 홉뜬 채 모드구드를 주시했다.
“아, 몇 번을 때리는 거야!”
첫 타자로 디스펠 필드를 시전하던 다람이 짜증스럽게 소리 질렀다. 맞는 건 아퀴나스지만, 다람은 마치 자기가 맞는 것처럼 모드구드를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게, 모드구드의 방망이질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여신의 손길!”
리디안은 기계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방망이질에 당황했다.
끊이질 않는 타격 횟수에 무한 회복을 외우고 있는데, 공격 속도는 빠른 배속을 돌린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이트는 언제 멈출지 모르는 모드구드의 방망이질에 놀라 리디안에게 외쳤다.
“리디안 님이 먼저 버텨주세요. 나머지 메인 힐러분들은 리디안 님 보조해주시고, 상황 봐 가면서 MP 조절해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리디안은 이미 자신의 MP를 아낌없이 활용하는 중이었다. 리디안보다 MP가 적은 이트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스펠 복창 속도를 늦췄다.
“디버프 다 걸었어요!”
모드구드에게 걸린 디버프 개수를 확인한 흑도가 딜러들에게 눈짓했다.
기다렸다는 듯 근거리 플레이어들이 뛰쳐나갔고, 그들이 가까이 붙자마자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성문 파괴에 이어 다시 시작된 보스전에 모두의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 보는 보스가 어떤 패턴을 선보일지 몰라, 긴장을 삼키던 때. 후방에서 잊힌 군주와 기다리던 토토리아가 다급히 소리 질렀다.
“뒤에! 뒤에 몹들 오고 있어요!”
몬스터 리젠 소식이었다.
모드구드에게 집중하던 플레이어들은 힐끔 고개 돌리다 이구동성으로 욕했다.
공성전이 끝난 시점에서 필드 몬스터의 활동을 예상하긴 했으나,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리젠될 줄이야.
리디안은 근처에 하나둘씩 생겨나는 거인 노예의 모습에 눈가를 찡그렸다.
“20번 대 파티! 바깥에서 접근 막아주세요!”
탱커가 포함된 일반 랭커 파티가 활약할 차례였다.
모드구드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근처에서 대기하던 보조 파티원들이 즉각 뒤돌아 달려 나갔다. 그 중엔 자토와 우래귀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느릿느릿 걸어오는 거인 노예의 앞을 막아섰다. 뒤따라온 세인트들이 있어, 우래귀는 아주 용감하게 거인 하나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러다 문득, 근처에 거인 노예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 고개를 기울였다.
해골 병사는 어디에 있을까. 그 생각에 미친 순간, 모드구드가 성난 포효를 내질렀다.
길게 이어진 울음소리에 만신창이가 된 성벽 윗부분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불길한 색상에 모두가 얼굴을 찡그렸고, 오래 지나지 않아 공성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리디안은 성벽 위에 새카맣게 나타난 해골 병사들의 모습에 탄식했다.
“성벽 위, 원거리요!”
활과 지팡이를 든 해골 병사의 습격이 반복됐다.
다 끝난 줄 알았던 공성전의 재현에 곳곳에서 험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원거리 플레이어들은 우왕좌왕 당황하다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성벽의 좌우, 모드구드를 공격했다.
순식간에 분산된 화력에 신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성벽 위 잡몹은 30번 대 원거리 딜러 분들이 맡아주세요! 하이 랭커들은 모드구드로……!”
또다시 포효와 함께 성벽 위가 붉게 빛났다. 추가 소환으로 나타난 건 근거리 타입 무기를 든 해골 병사였다.
저것들이 대체 어쩌려고 그러는지.
그리 걱정한 순간, 성벽으로 나무 사다리가 그물처럼 펼쳐졌다. 근거리 해골 병사들은 거미처럼 사다리를 타고 우르르 내려오기 시작했다.
“썬더 스톰!”
레인포레스트가 놀란 나머지 엉뚱한 곳에 스펠을 시전했다. 효과는 있었다. 번쩍 빛나는 번개와 함께 사다리는 순식간에 끊어져 대롱대롱 흔들렸다.
길을 잃은 해골 병사들은 멈칫하다 다른 사다리를 향해 찾아갔다. 그 광경을 목격한 원거리 딜러들이 재빨리 사다리를 노렸다.
“설마, 이렇게 계속 진행하는 거야?”
모드구드의 등 뒤를 가격하던 이노센트가 힐끔 주변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성벽 위를 차지한 몬스터들. 바깥 필드에서 나타나는 거인 노예와 보스 모드구드.
발리스타의 공격이 없을 뿐이지, 몬스터에게 완벽히 포위당한 상태라 성문을 노리던 공성전 때보다 위치적으로 더 불리했다.
“골치 아프네. 이렇게 해서 어떻게 깨라는 거야?”
“인해전술 아니면 힘든 레이드네요.”
어쨌든 지금보다 사람이 더 많거나. 아니면 아군에게 유리한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멈출 줄 모르는 모드구드의 몽둥이질에 아퀴나스의 얼굴이 점점 핼쑥해져 갔다.
지금까지 관찰한바, 모드구드의 방망이질은 1회 10초 이상, 최소 3~5연타를 기본으로 한다. 방망이질에 조준 당한 사람은 방어력에 비례, 그에 의한 광역 타격은 회당 전체 HP의 10%를 고정적으로 깎아냈다.
물리 대미지에 특화된 가디언이 필수인 상황이라, 아퀴나스의 뒤로 일반인과 적혈구, 빅토리아, 미인도 등이 긴장한 얼굴로 대기했다.
혼자만 두들겨 맞던 아퀴나스의 얼굴이 펴진 건 하얀 소환진이 등장하고 난 뒤였다.
“저거! 아까 공성탑 소환진 아니에요?!”
성문 앞에서 예고 없이 나타난 소환진의 등장에 사방에서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벌써 MP가 2천 대로 떨어진 리디안은 공성탑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에 큰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공성탑을 소환하려면 누군가 올라서야 했다. 올라서는 순간, 집중 공격을 받을 게 뻔해 아무나 함부로 올라설 순 없었다. 결국, 백검이 손을 들어 자원했다.
“제가 테스트 하겠습니다.”
공성전에서 버텨 본 경험이 있는 백검이 자신 있게 올라섰다. 예상대로 180초 카운트와 함께 성벽 위 모든 몬스터들의 공격이 백검에게 향했다.
원거리는 물론 성벽 위에서 길이 막힌 근거리들까지 끊임없이 사다리를 내려 땅을 밟을 기회를 노렸다.
몇 초 동안 소환진 위에 올라서 있던 백검은 주변을 확인하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반 랭커 원거리 딜러들이 사다리를 끊고 있어 근거리 해골 병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보스의 방망이질에 의한 광역 타격을 제외하면 사실상 성벽 위, 원거리 공격만 받는 셈이다.
백검은 보스, 모드구드가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은 점을 기억하며 씩 웃었다.
“몽둥이찜질 여파만 없으면 쉽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신사가 보스를 쳐다봤다. 조금 전 소환을 제외하면 보스는 여전히 몽둥이질에 몰두한 상태였다.
이상할 정도로 단순 무식한 공격이지만 어찌 됐든, 공성탑 소환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건 좋아할 일이었다.
“보스를 꼭 이 앞에서만 잡아야 한다는 규칙은 없잖아? 그럼 차라리 보스를 좀 옮겨서 백검 님한테 대미지 안 닿게 하면 되겠네. 백검 님 힐은 세인트 몇 명 정도만 있으면 될 테고.”
방망이 공격의 범위, 그리고 성벽 위 몬스터들의 공격량을 계산한 버베나가 제안했다.
아퀴나스를 비롯한 메인 탱커들도 서로를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신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딜러들은 일제히 공격을 멈췄고 탱커들은 모드구드에게서 한 걸음씩 떨어져 가능한 성문에서 멀어져갔다.
모드구드는 핏발선 눈으로 몽둥이질을 하다가도 느릿느릿, 목표물을 따라 이동했다.
순식간에 저만치 멀어진 보스의 모습에 백검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하여 성문 앞에 남겨진 인원은 소수가 됐다. 근거리 딜러들이 모드구드를 따라 멀리 이동했음에도, 성벽 위 몬스터들의 공격 범위는 사기적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매지션들의 광역기에 의해 쓸려나가고 있어 의미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리디안과 이트의 스카디 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변수는 예상해야 했기에, 이트가 백검에게 힐이 닿게 자리를 이동했다. 메인 딜러들을 따라 한참이나 이동한 리디안은 무한 회복을 외우면서도, 소환진에 올라선 백검을 힐끔힐끔 주시했다.
곧장 시작된 180초 카운트는 순조롭게 깎여나갔다.
“근거리 못 내려오게 사다리 계속 잘라요!”
“왼쪽, 중앙! 애들 몰려 있는 곳으로 광역기요!”
모드구드 공격의 여파가 닿지 않으니 백검은 수월하게 버텼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손쉬운 방어에 백검이 찝찝하게 모드구드를 돌아봤다.
기어코 180초가 꼬박 채워졌고, 모두의 기대대로 하얀 소환진 위로 약간은 허술하게 생긴 공성탑이 등장했다.
“온다! 공성탑 친다!”
몬스터들은 어김없이 공성탑을 노렸다. 기껏 소환해놓고 잃을 순 없기에 플레이어들을 이를 악물며 방어했다.
그사이 점거를 위한 별동대가 공성탑을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서모너가 선두였으며, 그중엔 채이도 함께였다.
“오, 오른쪽에서 못 오게 중앙부터 막고 있을게요!”
겁먹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채이는 작전대로 행동했다. 가장 튼튼한 채이의 소환수들이 중앙을 막을 동안, 독재의 소환수들이 왼쪽을 밀고 나갔다.
점점 쾌적해지는 통로는 탱커와 바드, 딜러들이 메워 점령했다.
잠시 후, 탱커들이 자리 잡아 몬스터의 도발이 고정되자 상황은 훨씬 더 간편해졌다. 이제 모드구드를 담당하는 딜러들은 성벽 위 공격에서 벗어나, 온전히 모드구드만을 신경 쓸 수 있게 됐다.
그에 백검이 뿌듯함을 느꼈지만 찰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벽 밖, 거인 노예의 리젠이 부쩍 늘어났다.
개떼처럼 불어나는 숫자에 거인 노예의 접근을 막던 탱커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대로는 다 못 막아요!”
자토가 기겁해 지원을 요청했다. 그에 거인 노예 둘을 지탱하고 있던 김팔라가 한 걸음 움직여 ‘심판의 사슬’을 사용했다.
사슬이 떨어진 지점은 거인 노예 셋이 나타난 지점이었다. 몬스터 하나를 묶은 사슬은 단단히 얽혀 반경 내 다른 몬스터들의 발목을 잡았다.
순식간에 세 마리의 이동을 봉쇄한 김팔라의 기지에 다른 팔라딘들도 서둘러 따라 했다.
잠깐의 위기를 모면한 덕분에 세인트들이 안도하며 땀을 닦았다.
그러나 안도하긴 일렀다. 리디안은 아군보다 더 많아지는 듯한 거인 노예의 숫자에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