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18
418화
“군나르와 시구르드. 둘을 사용하기 좋게 방식을 바꿔주마. 게다가 저것들을 그냥 내보내면 헤임달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럼 내가 귀찮지 않겠니?”
붉은 입술 사이로 교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즉, 일이 생겨도 자신은 더 나서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당당하다 못해 뻔뻔한 물음에 모두가 기가 찼다.
“그러니 둘을 그 나이프에 봉인했단다. 낮의 세계에서 필요할 때. 나이프에 피 한 방울을 묻히고 원하는 자의 이름을 부르렴.”
“제 손에 상처를 내라는 말씀인가요?”
“그래. 피는 소환의 대가. 그리고 그 칼은 내 비늘로 만든 물건이라, 그곳에 봉인되어 움직인다면 헤임달에게 침식당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결국은 귀찮지 않으려는 편법에 불과했지만.
헬라로선 이방인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찝찝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렇게 손을 써놓으면 필요한 때, 필요한 인물만 골라서 사용할 수 있을 거다.
헬라는 자신의 호의를 감사히 여기라며 콧대를 높였다. 하지만 리디안은 그 소환 방식이라는 게 영 생소하고 부담스러워 ‘술트르’를 든 채 당황했다.
그때 길드 마스터인 마제스티가 찌푸리며 나왔다.
“잠깐… 몸에 상처를 내야 하는 거면 차라리, 길마인 내가 대신 쓰는 게 낫지 않나?”
제 길드원이 피를 보게 할 수는 없다며, 마제스티가 사용권을 주장했다.
리디안은 민망하게 웃었다. 그래봤자 작은 상처일 텐데. 뭘, 그런 걸 걱정이냐며 콕콕 찌를까 했다.
하지만 백검은 물론, 레온이나 신사도 찝찝한 물건이니 길드 마스터가 책임지는 게 낫다며 한마디씩 던졌다.
작은 일에도 신중히,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간부들의 토론에 리디안은 고마워 뭉클해졌다.
간부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쓰는 게 낫겠다고. 그런 이야기가 훈훈하게 진행될 무렵이었다. 멀리서 가만히 듣고 있던 헬라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
“애송이들아. 그 칼은 군나르와 시구르드를 소환하는 방식이란다. 상당한 마력이 요구될 텐데. 너희 중 저 아이만큼 높은 마력을 가진 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리디안에게 향했다.
[플레이어 정보]이름 : 리디안 / 길드 : 레기온
레벨 : 80 / 직업 : 세인트 / 보조직업 : 재단사
HP : 3117 / MP : 6324
몇 번의 죽음으로 깎인 수치. 하지만 여전히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거기다 회복력으로 무장한 아이템 세팅을 생각한다면…….
리디안 보다 최적의 사용자는 없었다.
리디안은 이 높은 MP가 지혜의 증표 덕분이라는 걸 잊지 않아 민망하게 웃었다.
“저는 괜찮아요……!”
소환의 대가를 감당할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니. 이 역시 부담스러웠지만 어쩌겠나. 리디안은 괜찮다는 말로 마제스티와 길드 마스터들을 다독였다.
레온은 리디안만 자꾸 고생하는 것 같다며 미안함을 표출했다. 하지만 이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동으로 자신의 MP를 쳐다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음 편치 않게 물러난 마제스티에게 리디안이 밝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걱정되어 힐끔 자신의 MP를 쳐다봤다.
‘얼마나 소모되려나…….’
회복 스펠 한 번이 아쉬운 상황이라. 부가적인 소모는 리디안에겐 큰 부담이었다.
그 걱정에 리디안은 착잡한 표정으로 나이프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이 좋은 기회를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웃으며 감사하다고 답했다.
“자, 이제 만족하느냐?”
오랜만의 소동에 진이 빠진 헬라가 비아냥댔다. 저 삐딱한 말투는 헬라 특유의 성격인듯했다.
“더 없어요? 우릴 도와주실 방법.”
풍월주가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물었다. 말이 질문이지 눈빛만 보자면 추궁이나 다름없었다.
헬라는 가소롭게 웃었다.
“정말 욕심 많은 것들이구나. 군나르와 시구르드를 내줬으면 됐지. 또 뭘 바라느냐?”
“이왕 도와주시는 거. 최대한 지원해주시면 서로 좋잖아요.”
리디안은 풍월주의 당당한 요구에 땀 흘리며 웃었다. 플레이어 처지에선 합리적인 제안이나 ‘신’ 헬라의 관점에선 뻔뻔하게 느껴질 테니까.
헬라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헬라에게 잔뜩 기가 죽은 샤봉이나 무너스키는 그만하라며 풍월주를 콕콕 찔렀다.
하지만 다른 간부들은 풍월주의 말이 옳다며 편을 들기 시작했다.
“저도 이 부분은 좀 더 진지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습니다. 이렇게 병력 지원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에요. 물량 공세, 딜찍누. 다 좋지만 무한하진 않잖아요. 우리는 기껏해야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 인간이고, 상대는 이상한 힘을 가진 ‘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준비해야 할 겁니다.”
대장군과 마제스티가 차례대로 주장했다. 불안하게 듣고 있던 리디안도 그 말에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저 몬스터만 때려잡으면 된다는 건 게이머의 고정관념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존재는 단순한 인공 지능, 그래픽 덩어리가 아닌. 한 세계의 지성체라는 걸 모두가 유념해야 했다.
혹시 모를 다른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야 했기에 간부들의 시선이 다시 헬라에게 향했다.
덩달아 오딘마저.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선 그대가 가장 힘이 있고 저들을 도울 수 있으니, 더 베푸는 게 어떤가.”
“뭐라고……?”
“오른눈을 소유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방인들이 이길 수 있도록 모든 걸 지원해야지.”
말 한번 잘한다며, 모두가 오딘을 응원했다. 사방 곳곳에서 재차 이어지는 압박에 헬라는 분통을 터트렸다.
“귀찮게, 정말!”
놀랍게도 정말 귀찮고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하기까지. 이곳의 요정족들이 존경하지 않을 만했다.
그래 놓고선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서운한 티를 내다니. 웬만한 요정족보다 더 미성숙해 보이는 태도에 리디안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다시 왕좌에 앉은 헬라가 찌푸린 채 플레이어들을 쳐다봤다.
그래도 의지는 있어 보여 다행이었다. 작게 안도한 신사가 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니까 여기서 끝낼 게 아니라. 이제 진지하게,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죠. 서로가 아는 것들을 공유하다 보면, 유용한 정보가 하나쯤은 나오지 않겠습니까?”
“난 너희에게 해줄 얘기가 없고,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낀단다. 그러니 너희끼리 알아서 얘기하고 결과만 나한테 알려주렴.”
헬라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휙 고개 돌렸다.
아예 드러눕다시피 한 자세에 리디안은 황당하다며 뻐끔거렸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오딘에게 향했다. 이제 믿을 건 오딘뿐인가― 하면서.
그러나 오딘도 슬레이프니르를 타고 다시 아스가르드로 돌아가려던 참이라, 무덤덤한 표정임에도 꽤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박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휙 가지 말고. 이왕 자리가 마련된 김에 아는 정보 좀 더 주시죠.”
“대체 무슨 정보를 원하는 거냐?”
그때, 레온이 끼어들었다.
“혹시 파프니르를 물리적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처리할 수는 없습니까? 헤임달이 자랑하기로는 이 세계에서 신을 제외한 최고의 고등 생명체라던데. 잠깐이나마 정상으로 돌릴 방법이라도…….”
“글쎄. 헤임달의 지배에서 풀려난다 한들, 그 많은 황금이 있는 산맥에 있는 한, 파프니르는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거다.”
황금. 그 단어에 리디안이 홀린 듯 손들었다.
“그 용 말이에요. 황금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황금 산맥 말고 황금을 조달할 수 있는 지역이 또 없을까요?”
“저도 그건 궁금했어요. 니플헤임에 보니 자수정 같은 보석이 매장된 동굴도 있었고, 실제로 나스 산맥에선 거인 노예들이 자수정을 채굴한 흔적도 있었어요. 혹시 다른 금광은 없나요? 아니면 금으로 가득한 보물 더미라든가.”
보리알도 거들어 물었다. 거인 노예란 말에 잠시 헬라가 곁눈질했으나, 보리알은 가볍게 무시했다.
뒤이어 곳곳에서도 다른 매장지를 기대했지만, 오딘은 단칼에 고개를 저었다.
“금 매장지는 무스펠하임 황금 산맥뿐이다.”
나름대로 황금 조달을 기대했던 리디안은 잔뜩 실망하고 말았다.
“진짜 그냥 맨몸으로 용 패 죽이는 방법뿐인가.”
백검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뒤편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강글로티의 고개가 기울어지며 강글라티를 향했다.
“이방인들은… 황금으로 화폐를 만들어 쓰지 않던가요?”
정적 속에서 울린 강글로트의 발언에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그러곤 동시에 눈동자가 커졌다.
깨달음을 얻은 리디안은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어 확인했다.
[골드]노르드 월드의 화폐. 낱개는 작은 동전이지만, 금액이 커지면 크기가 점점 커지고, 일정 단위부터는 두툼한 주머니로 표현된다.
“그러고 보니 동전 생김새가 노랗고 반짝반짝하는 게… 어어?”
“진짜 금이었어?”
말만 골드지. 설마 진짜 ‘금’이 섞인 줄 몰랐다며 몇몇이 수군거렸다.
왜 골드 생각을 못 했는지 모르겠다고 무너스키의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질 무렵, 강글로티가 말했다.
“제가 알기로는 높은 순도는 아닙니다. 초기에 건너온 이방인들이 가져와 퍼트린 건데,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순수 황금으로 쓰이려면 다시 녹여 정제해야 할 겁니다. 게다가 파프니르는 금에 미친 용. 어설픈 금 쪼가리엔 반응하지 않을 겁니다.”
기껏 달아오른 산통이 와장창 깨졌다. 잔뜩 기대했던 무너스키가 털썩 주저앉아 좌절했다.
“금화잖아! 금화인데…! 왜 금이 아니라는 거야……?”
“음. 금화는 강도 문제로 보통은 합금을 섞어 주조한다고 들은 것 같긴 합니다. 근데 이런 게임에 세세한 설정이 적용된 건 조금 놀랍네요. 게다가 그 미친 용이 그런 것까지 감별한다는 것도 놀랍고요.”
“잠깐……!”
어이없어하는 신사에 이어 박회장이 재빨리 강글로트와 강글라티에게 뛰어갔다.
불쑥 가까워진 안면에 강글로트, 강글라티가 동시에 미간을 찌푸리며 뒷걸음질 쳤다.
박회장은 간절함을 담은 미소로 물었다.
“혹시 골드를 녹여서 금괴로 만들 방법이 있는지……?”
“…당연히 대장장이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낮의 세계에서 그 의뢰를 들어줄 대장장이는 없을 겁니다.”
강글로트, 강글라티가 차례대로 대답했다. 희비를 가르는 두 사람의 대꾸에 박회장은 웃다가 울었다.
“하긴. 다들 침식되어 NPC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대화가 통할 리도 없겠죠.”
“아. 희망이 보이나 했더니 막혀 버리네…….”
전체적으로 우울해진 얼굴들을 바라보던 오딘이 곰곰이 생각하다 제안했다.
“아스가르드에 있는 대장장이를 이곳으로 데려와, 일을 시키면 되지 않겠나?”
리디안의 머리가 맑게 울렸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헬라의 영역.
두 신의 권한, 그리고 약간의 협조만 이루어진다면 이곳에 머무는 한 침식될 위험은 없을 것이다.
“와, 진짜 좋은 생각…….”
“지금 나보고, 내 집에 냄새나고 더러운 난쟁이를 들이라는 거야?!”
좋아하기도 전에 불벼락이 떨어졌다.
늘어져 있던 헬라는 어느샌가 벌떡 일어나 씩씩대고 있었다. 홀이 울리도록 쩌렁쩌렁 고함 지른 헬라에게선 짙은 분노와 살기가 가득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부 반응에 리디안은 어리둥절해 강글로트와 강글라티를 쳐다봤다.
딱히 말하는 게 죄는 아닌지, 강글라티가 별일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헬라 님께선 난쟁이를 혐오하십니다. 난쟁이들은 대부분 하급 요정족. 하급은 지능이 매우 낮은 편이고 종족 특성상 광물을 모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요정족보다 지능이 현저히 낮아, 그 소유욕과 집착을 제어할 수 없죠. 니플헤임에선 과거, 난쟁이들이 떼 지어 나타나 제멋대로 광물을 주워가곤 했습니다. 헬라 님이 채굴한 것들까지도요.”
신 헬라의 소유물을 털어간다니. 참 간 큰 난쟁이가 아닌가.
하지만 헬라가 니플헤임의 광물에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게다가 헬라는 보석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거인족을 노예로 부렸다.
그 분노에 공감하기는 힘들지만, 그런 관계라면 학을 떼는 것도 당연했다.
“헬라 님.”
당황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박회장이 다가왔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보석 좋아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