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37
437화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손해 보는 기분인데?”
곰곰이 생각하던 헬라가 찝찝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헬라는 기분파에 가까운 인물.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성향이라 리디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표정을 바라본 헬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와서 허탕을 칠 순 없으니…….”
헬라는 이번에도 그렇듯, 귀찮은 표정으로 푸념했다. 그러다 강글로트와 강글라티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쌍둥이 집사는 즉시 부름에 응하며 옅게 미소 지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고개를 조아린 강글로트와 강글라티의 신체가 돌연 검은 기체가 되어 흩날렸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이동한 검은 바람은 그대로 헬라의 몸에 스며들었다.
신묘한 광경에 몇몇이 작게 동요할 때, 헬라가 리디안에게 걸어갔다.
“너. 잠깐이나마 나를 모실 기회를 주마.”
“네?”
무슨 뜻이냐고 반문할 기회도 없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헬라 역시 검은 기체가 되었고, 리디안이 어정쩡하게 들고 있던 ‘술트르’로 감쪽같이 스며들었다.
리디안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술트르를 떨어트릴 뻔했다. 헬라가 깃들었다는 생각에 조심조심 손잡이를 쥐니, 오딘이 길을 알려주었다.
“그 칼로, 기회가 될 때 헤임달을 찌르거라.”
긴장한 리디안이 마른침을 삼켰다. 미리 짐작하고 있던 크라이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상상도 못 했던 일행들의 눈은 휘둥그레 커졌다.
그중에서 마제스티가 먼저 발끈하며 나섰다.
“잠깐만요. 여태 원주민들 되돌려 놓은 것도 모자라서 이젠 헤임달까지 찌르라고요? 세인트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닙니까? 차라리 다른 사람 시킵시다. 어차피 시구르드나 군나르는 이제…….”
흥분한 나머지 말이 헛나올 뻔했다.
마제스티는 간신히 목소리를 삼켜냈다. 다행히 시구르드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오딘의 등장으로 근처를 서성이던 군나르 또한 묵묵부답이었다.
불쾌해하는 이는 브륀힐드 혼자였다.
“어쨌든. 더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니, 이만 돌아가게 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침착하게 설명하던 마제스티가 덜컥 멈췄다. 혼자 갸웃한 마제스티의 시선이 크라이그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친 크라이그가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제야 마제스티는 한참 전, 리디안과 크라이그가 무언가를 소곤소곤 얘기했던 걸 떠올렸다.
“아……!”
깨달음을 얻은 마제스티는 허무하게 웃었다.
“그래… 다 생각이 있겠지.”
고개를 주억거린 마제스티가 물러났다. 의아해하던 나머지 일행들도 괜한 말을 얹지 않았다.
그사이 헤임달의 변화는 상당하게 진행돼 있었다.
몸 주위로 짙었던 시스템 잔상이 어느새 옅어진 후였다. 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포푸리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마찬가지로 불길함을 느낀 신사가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살아계신 분들! 빨리 이쪽으로 모여주십시오!”
오딘의 등장으로 몬스터들은 대부분 멈춰 있었다. 그에 어정쩡하게 서서 본의 아니게 사태를 관전하고 있던 생존자들이 허겁지겁 모여들었다.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딜러는 마제스티, 레온, 박회장, 크라이그, 이노센트, 풍월주, 시우, 테세우스, 맥스비, 네오, 버베나, 신사, 핑크푸크.
탱커는 아퀴나스와 포푸리.
세인트나 바드, 다크 템플러는 리디안과 페페, 이트, 이모탈, 보리알, 파파, 다람.
그리고 일반 플레이어 출신인 다크 템플러들.
대강 살펴본 리디안은 생각보다 적은 숫자에 절망했다.
날고 긴다는 주요 하이 랭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상태. 일반 플레이어 쪽은 디버프 필드를 유지 중인 몇몇의 다크 템플러를 제외하곤 전멸이었다.
“현재 남은 인원으로 헤임달을 제압해야 할 것 같습니다. 힘들겠지만, 도와주십시오.”
후퇴의 여지가 없음에도 플레이어들은 투지를 불태웠다.
잠시 후, 깔끔해진 헤임달의 주변으로 희미한 섬광이 작게 반짝였다.
머리 위로 지지직거리던 잔상은 점차 또렷해져 글귀를 만들어갔다.
[헤임달] [99 LV] [Unknown] [HP : 999,999 / MP : 999,999]천천히 눈을 뜬 헤임달의 머리 위로 기상천외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엄밀히 따지자면 스테이터스 창이었다.
리디안은 물론이거니와, 플레이어들은 99 레벨이라는 문구에 아연실색했다.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와… 레벨 99에 수치가…….”
“노르드 월드 한계 수치를 여기서 알게 됐네요.”
“아니…. 저거 완전 보스 몬스터 아니에요……?”
“몹이라뇨… 그냥 영자죠. 아니, X벌. 영자를 어떻게 이겨…….”
플레이어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상황에 맞지 않는 우스갯소리를 흘렸다.
* * *
“흠… 다행히 실패하진 않은 것 같군.”
동기화를 마친 헤임달은 새로워진 자기 몸을 살폈다.
익숙하지 않은 글씨가 눈앞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제외하곤 감각과 신경, 모두 정상이었다. 헤임달은 패닉에 빠진 이방인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어떠냐? 급한 대로 너희와 비슷한 수준으로 손봤는데. 꽤 괜찮아 보이지 않느냐?”
이방인을 한껏 조롱한 헤임달이 시험 삼아 손가락을 튕겼다. 까닥거린 검지 끝에서 새하얀 전격이 여러 갈래로 뻗어져 나와 공간을 강타했다.
무작위로 내리꽂힌 번개 다발에 대지가 움푹 패 연기를 뿜어냈다. 플레이어 중에서 그에 맞은 사람은 가장 앞에 있던 탱커들이었다.
세인트들이 즉시 대응해 회복했지만, 순간적으로 떨어진 탱커들의 HP는 어마어마했다.
“썬더 스톰?”
“대미지 봤어요? 웬만한 보스 몹이 때리는 것보다 더 높은 거 같았는데?”
“아니, 그보다 매지션 신스펠을 어떻게…….”
허무하게 중얼거리던 박회장이 텁, 입을 다물었다.
상대는 헤임달. 관리자나 다름없는 헤임달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지 않은가.
박회장은 자신의 우문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흠. 본체인 ‘신’의 자격 때문에 ‘시스템’의 자격으로 설정했건만. 어째서 한계가 풀리지 않는 거지?”
헤임달은 이방인들에게 적용된 공격력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 번에 죽을 줄 알고, 시험차 맨 앞에 있던 이방인에게 사용한 건데. 헤임달로선 몹시 의문스러운 공격력이었다.
그 의아한 모습에 생각을 읽은 박회장이 이해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수 상황이 아닌 한, ‘운영자’는 플레이어를 해칠 수 없다는 노르드 월드의 규정. 영자 캐릭 데이터는 기본으로 그 규정이 적용되어 있을 텐데, 헤임달은 당연히 모르겠죠. 리미트를 해제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건 평범한 운영자 나부랭이의 권한도 아닐 거고, 훨씬 더 복잡한 구조일 테니 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지금 헤임달의 능력으로썬 불가능한 일이겠죠.”
알기 쉬운 설명이었다. 리디안은 찌푸린 채 허공을 건드리는 헤임달을 보며 안도했다.
조금 전 행한 공격 대미지도 사실 위험스럽긴 한데, 그 대미지가 지금의 한계라니. 참 다행인 일이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요. ‘신’이기에 거울 세계의 존재를 해하지 못했던 건데. 관리자의 권한을 갖고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니. 우리한테는 정말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속 편한 생각 마요. 암만 대미지에 한계가 있다고 해도, 저런 걸 미친 듯이 맞았다간 죽어요.”
아군은 절대적인 소수이고, 활동에 제한적이다. 그 점을 강조한 풍월주가 헤임달을 노려봤다.
자신의 공격력에 관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헤임달은 무척이나 불리해 보이는 이방인들의 표정에 씩 웃어 보였다.
“뭐, 좀 더 해보면 알겠지.”
헤임달이 플레이어들을 가리켰다. 낯선 기술에 한참 동안 눈을 찡그리던 헤임달은 정확히 거리를 계산했다. 그러곤 플레이어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여신의 손길!”
시야가 번쩍거렸다. 리디안을 비롯한 세인트들이 다급히 회복 스펠을 연발했다.
MP를 아껴야 하는 리디안도 예외는 없었다. 날아온 썬더 스톰은 한 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쳤나! 썬스를 3초마다 계속 쓰네?”
“일반 영자도 저 지X은 못할 것 같은데. 아, 일반적인 영자는 아니긴 하…… 윽!”
“그나마 딜레이가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네요.”
“엘레멘탈 붐, 프로즌 스피어……!”
테세우스, 이노센트, 풍월주가 불평한 찰나, 시우가 차분하게 선제공격을 강행했다.
헤임달의 머리 위에서 폭발이 터지자마자, 거대한 얼음 창이 허공을 가르며 꿰뚫었다.
다행히 공격은 먹혀들었다. 그러나 헤임달의 바뀐 수치는 희망적이지 않았다.
[HP : 998,459 / MP : 999,999] [HP : 999,959 / MP : 999,999]대미지가 먹힌 것에 작게 희열하기도 전에. HP는 눈 깜짝할 새에 다시 올라가 버렸다. 시우는 손을 떨어트린 채 넋을 놓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대미지는 그래도 먹히는 것 같은데 피틱이 사기네.”
“상저도 아마 떡칠해 놨을 거예요. 아까 파프니르 디버프 필드에 죽쓰던 거 봤으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조치했겠죠.”
“먹혀도 소용없어요, 지금 상황에선. 다템이 다람 님 한 명 뿐이라…….”
“난감하네요. 헬하임 보스보다 더 괴물인 놈을 우리끼리 상대해야 한다니…….”
안티 리질리언스 필드, 디스펠 필드 등이 먹히지 않을 거란 이야기였다.
절망적인 예측에 리디안은 흘깃 다람을 쳐다봤다. 본인도 꽤 자존심이 상했는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참 난감했다.
오딘과 헬라가 몬스터들과 망자의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들을 막아주고 있으니 분명 적은 하나인데, 하필이면 그게 헤임달이라.
평소 개돌을 무서워하지 않는 크라이그도 이번만큼은 진지했다.
“일단 술트르로 찌르는 게 우선이니까요. 이번 공격 멎는 대로 매지션 수속성으로 공격 들어가겠습니다. 근거리 분들은 헤임달의 시야가 가려지는 대로 접근해서 마법 못 쓰게 견제해주세요. 혹시 모르니 버베나 님은 뒤에 대기해주시고, 탱커도 한 분은 비격수 쪽에 대기해주세요.”
공격시 일시적으로 눈보라, 안개가 발생하는 매지션들의 스펠을 떠올린 신사가 탐색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똑똑한 네 명의 매지션들이 먼저 몇 발자국씩 거리를 벌려 바로 대기했다.
그 사이에도 헤임달의 썬더 스톰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리디안은 3초마다 계속 날아오는 썬더 스톰에 바짝 긴장했다.
하얀 번개 줄기가 다발로 떨어질 때마다 재해가 난 것처럼 파격적인 대미지가 일어났다.
물론 저 헤임달치고는 낮은 공격력이겠지만… 나름 에이스인 세인트들이 다섯이나 있는데도, 회복을 연사하는 세인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숨 막히는 긴장에 사로잡혔다.
“썬스 쓰는 거 보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겠고. 추측이지만 아마 물리 딜러 스킬도 쓰지 않을까 싶네요.”
내내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핑크푸크가 반갑지 않은 말을 뱉었다.
리디안은 말도 안 돼, 라며 헤임달을 살폈다.
마치 그리스의 복식 같은, 단출한 회색 차림새. 미모에 어울릴 만한 금 장신구도 몇 되지 않고 무기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뭐, 이곳은 노르드 월드고 상대는 신.
언제 어디서 무기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긴 했다.
하지만 저 곱고 가느다란 몸으로 검을 휘두를 수도 있다니. 어쩐지 더 비현실적이고 절망적인 느낌이 드는 듯했다.
“그냥 영자 능력 가진 플레이어라고 봐도 무방하죠. 근데 이제 우리보단 이해도가 좀 떨어지는 초심자…?”
“근접 대인전은 경험 없을 거예요. 우리가 쓰는 스킬도 대부분은 잘 모를 거고요. 그걸 역이용해야죠.”
딜러들은 최대한 침착하게 움직임을 상상했다.
그사이 신사는 다음 작전을 제안했다.
우선, 아렐이나 로빈 등. 노르드 월드의 원주민은 전투에서 배제했다. 아직 오딘의 힘이 충분치 않아 원주민들의 정신력도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 시구르드, 군나르의 소환을 해제하는 게 낫지 않아요?”
회복을 외우느라 바쁜 리디안 대신, 파파가 손을 들어 제안했다.
두 전사는 그간의 전투로 지쳐 있어, 당장은 플레이어들을 도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신사도 그 상황을 알아 두 사람을 지그시 쳐다봤다.
“우선 한 명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