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현실.】
“그럼 우리도 이제 슬슬 넘어가죠.”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일반 플레이어들이 모두 떠난 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전투 길드원들이 일제히 오딘을 쳐다봤다.
레온은 길드 마스터들과 길드원들을 미리 앞줄로 보낸 후, 오딘에게 다가갔다. 떠날 땐 떠나더라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 정리됐으니 저희도 갈게요.”
박회장이 머리를 긁적이다 꾸벅 인사했다. 그대로 발길을 돌리는 그의 걸음을 오딘이 덜컥 붙잡아 세웠다. 기다리라는 오딘의 음성에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고개 돌려 갸웃했다.
“잠시… 너희들이 알아야 할 게 있다. 평행 세계의 균형을 위해 저 문을 넘어가면 기억이 조작된다. 아니, 정확히는 삭제라고 해야겠군.”
“예……?”
기억의 삭제라니. 누가 들어도 당장 이해하지 못할 만큼 비현실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상대가 한 세계의 ‘신’이라는 것. 그리고 이곳이 보통의 평범한 세계가 아니라는 걸 다시금 체감했다.
“먼저 돌아간 자들은 그간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 될 것이다. 우주의 관점에선 평행 세계의 존재가 드러나선 안 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난감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해는 되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말이었다.
“평행 세계는 일차적 근원이 소멸하면 파생된 세계까지 소멸하는 구조. 특히 이곳 세계는 너희 세계의 일부에서 파생된 만큼. 너희로 인해 더 영향받을 가능성이 크다.”
플레이어들은 낮게 탄성했다. 오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모로 아쉬운 말이었다.
확실히 이세계니, 다른 차원이니. 원래 세계에선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5~6천 명이 동시에 언급하게 되면 상당한 진실성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뭐, 단체로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우주 측에서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저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근데 그러면 우리도 여기 있었던 걸, 모두 잊게 되는 건가요?”
박회장이 이해한다며 끄덕였지만. 보리알은 몹시 껄끄러운 얼굴로 물었다.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오딘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곳을 위해 끝까지 싸워준 너희만큼은… 이곳에서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너희가 이곳에 대해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우중충했던 얼굴들로 금세 화색이 돌았다. 리디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폈다.
남은 인원은 백오십 명 남짓.
그럼에도 다 아는 얼굴, 이름이었다. 내내 PK며, 레이드며, 침공전이며, 마지막 결전까지.
핵심적인 사건을 공유한 사람들이니 당연했다.
그만큼 유대감도 있고 서로 신뢰도 높아 다들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우리끼리 추억회상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어디 가서 진지하게 얘기할 건 아니죠. 말해봤자 누가 믿어줄 것도 아니고.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얘기니…….”
대장군의 말에 여럿이 헛웃음을 흘리며 동의했다.
“그럼 우린 우리끼리 있었던 일, 다 기억하는 건가요?”
다시 밝아진 보리알이 되묻자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을 준 보답이다.”
“그래도 되나요?”
박회장이 신기한 듯 반문했다. 우주신의 법칙 등을 운운하며 자꾸 떠봤으나, 오딘은 드물게도 피식 웃어 보였다.
“그건 이제 너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어… 그럼 여긴 이제 어떻게 되나요?”
“글쎄. 정해진 건 없다만, 최대한… 요정족들의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걱정해 줘서 고맙군. 남은 건 우리들의 몫이니, 이제 그만 떠나라.”
오딘이 손끝으로 황금 문을 가리켰다.
아퀴나스나 핑크푸크, 신사도 다 끝났으니 미적거리지 말자며 플레이어들을 재촉했다. 그 말에 리디안도 천천히 돌아섰다.
남은 자들이 다가가자, 황금의 문은 더 넓어졌고 전보다 더 찬란하게 반짝였다. 그에 놀라면서도 감탄하는 순간, 오딘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파생된 세계임에도 이곳을 경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도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너희가 흔들리지 않고 옳은 선택을 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플레이어들은 뿌듯하게 웃었다.
“어느 날 다시, 너희가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할지는 모르겠다만, 또다시 그런 경우를 맞이하게 된다면… 이해하고 존중하되, 조심하라. 새롭고 신비한 모습에 휘둘려 삼켜지지 않도록. 너희가 안주해야 할 세계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기이하게도 오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귓가에서 메아리만 울렸다.
돌아본 리디안은 오딘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걸 인지했다. 그 순간, 오딘이 있던 자리에서 금빛 나비 떼가 꽃잎처럼 사뿐사뿐 날아들었다.
꽃향기인가 생각될 정도로 은은한 향기에 아련히 미소 지을 때, 나풀거리던 나비들이 플레이어들의 몸을 보호막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먼저 건너간 플레이어들에겐 없던 효과였다. 아마,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이겠지만.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져 모두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현실에서 다시 봅시다.”
플레이어들은 서로 웃으며 차례차례 문을 넘어섰다. 몸을 감싼 빛 나비들이 하얘질 정도로 발광했고 리디안은 서서히 정신이 아득해져 감을 느꼈다.
* * *
“어……?”
반짝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조금 낯설어진 방 풍경이었다.
멍한 귓가로 여러 경고음이 반복적으로 울렸고 꾹 닫혀 있던 캡슐은 강제 오픈되어 있었다.
유진아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머리가 조금 무겁고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정신만은 멀쩡했다.
일단 일어나야겠다는 몸을 허우적거리니 신체 중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유진아는 갑작스러운 제 방 풍경에 어리둥절 당황하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쳐다봤다.
8월 10일 오후 열두 시.
노르드 월드의 몬스터 침공 이벤트 사전 예약을 시작한 지 열두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어어……?”
유진아는 어안이 벙벙해 입술을 뻐끔거렸다.
노르드 월드에서 장장 5~6개월을 보냈는데, 현실에선 고작 열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혹시 이것도 오딘의 ‘선물’은 아닐까?
의아했지만 어쨌든 병원 신세, 혹은 여러모로 좋지 못한 광경을 피했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와… 진짜 돌아왔어…….”
그간의 일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유진아는 방 한가운데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정말 현실인지 확인해야 했기에 유진아는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찾았다.
그러곤 떨리는 손가락으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갔고 곧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아니?
애써 의연한 척, 담담히 잊고 있었지만 다정하고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유진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역시 가족은 가족이었다. 여러 핑계로 소홀했음에도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것도 가족뿐이었다.
유진아는 비로소 실감했다. 이곳이 정말 현실이라는 것을.
동시에 그간 혼자 동떨어져 있었던 자신의 환경을 반성했다.
“엄마… 보고 싶어요.”
* * *
한동안 ‘리디안’으로 지내왔던 유진아가 현실에 조금씩 적응하기까지는 이 주일이 넘게 걸렸다.
노르드 월드와 현실의 긴 시간 차이, 어긋난 시간 개념은 처음 며칠 유진아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로 인해 유진아는 병원에 다니며 상담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그사이 게임 노르드 월드는 큰 화젯거리가 되어 있었다.
정식 보도로는 서버 오류.
침공전 사전 이벤트를 시작하자마자 서버가 다운되어 접속이 불가, 다만 일부 플레이어들은 접속.
장장 열두 시간 동안 온갖 버그가 난무해 서버에 지대한 변화를 끼쳤다는 게 공식적인 내용이었다.
그와 관련한 기사도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레스티어 사, 가상현실 게임 노르드 월드. 12시간 동안 접속 오류. 일부 플레이어들 강제 수면 모드로 기기 안에 갇혀 있어… 대다수 플레이어가 두통 호소 중. 일상 생활 지장으로 법적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 [해외 서비스 중인 아시안 서버는 정상 운영.] [유명 20대 모 배우, 노르드 월드 접속 장애 당사자라고 알려져… 병원 목격담 속출] [레벨에 장비에 신규 맵까지. 12시간 동안 벌어진 환상적인 버그 파티. 레스티어 측 긴급 사태 수습 중. 회사 인력 축소로 대부분의 업데이트를 검증하지 않은 채로 진행했다는 내부 고발 이어지고 있어……] [자고 일어났더니 나만 빼고 80레벨? 버그 악용자들을 처벌하라는 목소리가……]부모님이 계신 본가에서 푹 쉬고 온 유진아는 착잡한 마음으로 기사를 훑었다. 물론 처음 며칠만 시끄러웠지, 그것도 한 일주일이 지나니 기사도 드문드문 줄었다.
노르드 월드가 워낙 ‘망겜’이고 타 게임에 비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명 사고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전히 시끄러운 건 업계, 그리고 당사자인 ‘노르드 월드’뿐이었다.
[노르드 월드 공식 사이트]유진아는 천천히 사이트부터 살폈다.
게임 서버는 당연히,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접속이 불가했다. 소통할 수 있는 곳은 플레이어끼리의 커뮤니티나 공식 홈페이지의 ‘게시판’이었다.
당일, 거의 폭파되다시피 했던 게시판도 이제는 여유로워진 상태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새 글이 몇백 개씩 올라오고 있었다.
11487 / 이겜했다는연옌누군지아는분? (3) / 박겨울 / 02―11
11486 / 침몰중이지? 구조선왔다! 다같이 갓겜 넥스트 온라인 하러 ㄱㄱㄱ (2) / 화나면너를찢어 / 02―11
11485 / 소식듣고 오랜만에왔는데 랭킹무슨일이야? 80이제 껌임? (5) / 수달 / 02―11
11484 / ▇▄▅▆▇█▇▅● 아 빨리 열어 달라고ㅠㅠ / 쿠쿠쟝 / 02―11
11483 / ??님들 저 캐릭이 이상해요. 건들지도 않았는데 버그 이후로 갑자기 렙올라가잇고 장비교체댐… 뭐죠이거??? (2) / 연이야사랑해 / 02―11
11482 / 형들 재오픈하면 사료 기대해도 댐? 복귀각 나옴? (1) / 군단장 / 02―11
11481 / 제대로 접속한 놈들만 진짜 개꿀빨았네ㅋㅋㅋㅋㅋ80렙신규장비스펠스킬 X나달달햇개따 (5) / 전변호사 / 02―11
11480 / ●▅▇█▇▆▅▄▇ 누워잇자 / 고기는올타 / 02―11
11479 /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게시글 입니다. / 세용 / 02―11
11478 / 와ㅋㅋ이거 아직도 살아있음?ㅋㅋㅋ / 나름고인물 / 02―11
11477 / ●▅▇█▇▆▅▄▇ 섭종해 (1) / 사장님여기 / 02―11
11476 / ●▅▇█▇▆▅▄▇ 보상해 / 푸리링 / 02―11
11475 / ㅅㅂ그냥롤백하고보상하고오픈하면되는거아님? (13) / 숲속의친구 / 02―11
11474 / 그냥 공평하게 버그파티 한번더열어주면안되나요 나도80찍고싶다ㅠㅠ아그냥 그때바로 사전예약수락할걸ㅠㅠㅠ (7) / 노력하는탱커 / 02―11
11473 / 유독 전투길드애들만 꿀빤거 이상하다고? 당연하지. 걔들은 대다수가 24시간 풀접에 월급부주까지 돌림. 당연 선착순에 유리함ㅇㅇ. 꼬우면 너도 풀접해. (23) / 부우자 / 02―11
11472 / 기사보고 왔읍니다 여기가 노르드 장례식장이죠? (1) / 어휴망겜 / 02―11
11471 / 근데 로그인된 놈들 대부분이 전투길드인것도 X나수상함 (47) / 슉슉슉 / 02―11
11470 / 거 버그파티 참가못한거 뭐 그리 억울하다고 열폭하냐ㅋㅋㅋㅋ어차피 롤백할텐데 (13) / 캔따개 / 02―11
노르드 월드는 특이하게도 공식 홈페이지용 닉네임이 따로 제공된다.
그래도 기존엔 이 정도로 엉망진창이진 않았는데. 일련의 사태 때문인지 현재 게시글의 상태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추측하기로는 분노한 작성자 대부분이 그날, 먼저 돌아가 기억을 몽땅 잃은 플레이어들.
자신들에겐 아무런 기억이 없는데, 그간의 행적이 고스란히 게임 데이터로 남아 있으니 당황스러울 법도 했다.
특히 레벨, 랭킹, 아이템 강화 등의 정보는 공식 사이트에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노출되기에 혼란이 빚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 외 아예 접속하지 못한 사람들 또한, 그들로서도 12시간 사이의 서버 진행 상황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씁쓸하게 한숨 쉰 유진아는 공식 사이트 내 길드 코너를 찾아갔다.
그곳엔 전투, 친목 길드들을 위한 공간으로 각 길드의 개별 게시판이 존재했다. 길드원만 글을 작성할 수 있는 공간이라 시끌벅적한 전체 게시판에 비해 이곳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유진아는 레기온 게시판의 최상단에 표시된 마제스티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망설였다.
분명 모두 화기애애하게 가까이 지낸 사이고 현실에서도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했는데, 막상 현실에서 얼굴을 다시 마주할 생각을 하려니까…….
살짝 부끄럽고 괜스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진정하자. 침착하자…….”
아마 보내는 즉시 연락이 올 게 분명하기에, 유진아는 잠시 심호흡하며 두근거림을 진정시켰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다시 전체 게시판으로 향했는데, 다시 시작된 시위 글 사이에 유독 진지해 보이는 게시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11493 / ●▅▇█▇▆▅▄▇ 롤백하자 / 꼬우면나이트 / 02―11
11492 / 노르드 월드. 그날의 접속에 대한 진짜 진실. (9) / 캐논 / 02―11
11491 / ▇▄▅▆▇█▇▅● / 꿀벌 /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