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68
68화
“…헤른한테 연락해 볼까?”
상점가 앞에 홀로 남은 리디안은 중심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마 페이지와 중심가 구경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 일단 거래가 끝났다는 것만 알리려, 시스템 창을 두드리던 때였다. 타이밍 좋게도 메시지가 하나 왔다.
[이노센트 : 리디, 어디야? 안 바쁘면 지금 광장 분수대로 잠깐 와볼래?]리디안은 거리낌 없이 호출에 응했다. 그리고 광장 분수대에서 만난 이노센트에게 그대로 끌려갔다.
그리고 보인 눈앞의 105호 팻말에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언니?”
파들파들 떨리는 하얀 손가락이 파란 지붕의 2층 집을 가리켰다.
양옆으로는 같은 색의 지붕을 가진 2층 집들이 있었다. 그때 잘못 들은 게 아니고,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둘 중 하나는 크라이그의 집이 확실했다. 리디안은 의심 섞인 눈으로 이노센트를 바라봤다.
“일부러 여기 주려는 건 아니죠?”
나름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이노센트는 순진한 척 해사하게 웃어 보였다.
“왜? 싫어?”
“아, 아뇨. 싫은 건 아닌데…….”
리디안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좀 곤란하지 않나? 길드원이긴 해도 남잔데? 안 그래도 요즘 자주 붙어 다니는데, 괜한 소문이라도 나면 서로 곤란하잖아? 아닌가? 나만 과민 반응하는 건가?
지진이 난 머리처럼, 리디안의 눈동자도 세차게 뒤흔들렸다.
“아~ 혹시 윤재 때문에 그래?”
태연한 그녀의 물음에 리디안의 눈이 커다래졌다. “알고 계셨어요?” 놀라 물으니 이노센트는 경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어차피 둘이 자주 다니잖아. 퀘스트도 같이 하고, 거의 전용 딜러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에이~ 그럼 잘됐지, 뭐. 가깝고 좋네!”
단순한 결론이었다. 덜컥거리던 리디안은 그대로 정지했다. 말문이 막혀 눈빛으로 항변하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중심가 방향에서 크라이그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 귀가 중이었는지, 그 역시 집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곤 멈칫했다. 한 박자 늦게 그를 눈치챈 이노센트는 몰래 배를 잡으며 작게 웃었다.
“아! 맞네. 보라 언니 만나기로 했는데. 미안, 리디. 나 먼저 가볼게. 집 마음에 들면 이따 연락해!”
이노센트는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그때까지도 장난인지 모르고 있던 리디안은 몹시 민망한 상황에 굳은 채 크라이그를 바라봤다. 어느새 가까워진 크라이그가 리디안과 105번지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진짜 이사 왔네요?”
툭 던져진 그 말에 리디안이 확 정신 차렸다.
“아, 아직 안 왔어요……!”
“곧 올 거잖아요.”
자기 집처럼 확신하는 말투에 리디안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버버 당황하는데, 크라이그가 105번지를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아마 이노 누나면 첫 매입가보다 싸게 줄 텐데. 여기 시가로 내놔도, 3번가라 30분 안에 팔릴걸요?”
“아깝지 않아요?” 뭔가 심히 유혹이 섞인 목소리였다. 리디안은 찡그린 눈을 하면서도 그 말에 현혹되어 “…그래요?”하고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말이 헛나왔다며 헛기침을 하곤 크라이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 음……. 다시없을 기회긴 한데, 그래도 불편하지 않을까요?”
“뭐가요.”
“아무래도 사람들 보는 눈이 있잖아요. 괜히 사람들이 오해라도 하면…….”
“흠. 난 딱히, 안 불편한데.”
고민도 없이 즉각 이어진 대꾸에 리디안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크라이그는 살짝 고개 돌려 리디안을 빤히 쳐다봤다.
쭉 이어지는 시선 때문인지, 리디안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한가득 뜨는 듯했다. 크라이그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이사 오라는 거, 장난 아니고 진심이었어요.”
“네? 왜요?”
의아한 반문에 크라이그는 잠시 리디안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곤 삐뚜름하게 웃어 보였다.
“리디안 님이 가까이 있어야 내가 편할 거 같아서요. 여러모로.”
리디안은 바보처럼 눈을 끔뻑거렸다. 상대방은 꽤 진지해 보였지만 왜요, 라는 물음이 또 나와버림과 동시에 혹시나, 하는 의문도 생겼다.
“설마, 지금 노예 힐러 하나 잡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죠?”
“글쎄요?”
두루뭉술한 대답과 함께 빙글거리는 웃음이 맴돌았다. 설마 저게 진심일 리는 없고. 대놓고 놀리는 듯한 분위기에 리디안의 표정도 점점 새초롬해졌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그러는 거 같은데, 유독 나한테만 짓궂게 구는 것 같단 말이지. 그리 생각한 리디안은 살짝 가늘게 뜬 눈으로 새침하게 물었다.
“크라이그 님. 저 놀리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네. 좋아…….”
빙글거리던 입가가 단박에 굳었다. 말을 멈춘 크라이그는 황급히 손등으로 제 입을 가렸다. 마치 나와선 안 되는 말이 나왔다는 듯이, 누가 봐도 부끄러워하는 표정에 리디안의 눈동자도 커다래졌다.
* * *
당일로 스피드하게 진행되는 ‘썩고목’ 레이드로 인해 레기온 길드 아지트가 붐볐다.
마흔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다 보니 파티 설명에, 공략 설명에 마제스티는 쉴 틈이 없었다. 부길드 마스터인 백검도 그를 보조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실정이었다.
크라이그는 자꾸 자신을 곁눈질하는 리디안의 시선에 옆통수가 따가웠다. 평소처럼 턱을 괸 채 앞을 보고 있지만, 은근하게 몰래몰래 닿는 눈길을 모른 척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이었다.
이게 다, 그날 일 때문이었다.
뭐,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간 말이라 본심은 본심인데. 거기서 평소처럼 유쾌하게 넘어가지 못하고 바보같이 당황하는 바람에 생긴 문제였다. 리디안과 분위기가 편해진 만큼, 은연중에 대화의 흐름도 편해져서 그런 것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의문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만 있으니,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역시 리디안다웠다.
“설명은 여기까지. 좀 아픈 거 빼면 어려울 것 없으니 다들 부담 갖지 마시고요. 이따 세 시까지 썩고목 대기실로 와주세요!”
길드 마스터의 임시 해산 알림에 아지트 내부는 단박에 시끄러워졌다. 이리저리 퍼지는 인원 사이에서 아이쿠가 후다닥 뛰어와 리디안의 앞에 정지했다.
“누나! 누나는 스카디 강화 안 해요? 동욱이 형 저번 합동 레이드에서 먹은 무기 지르러 간대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아이쿠가 말하는 이는 이터널리스트였고, 그 역시 리디안처럼 합동 레이드에서 자기 직업에 맞는 무기를 먹은 터라 리디안의 얼굴에도 작은 흥미가 깃들었다.
노르드 월드의 아이템 업그레이드는 ‘강화’로 불린다. 강화는 장비 형태인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에 적용할 수 있다. 강화 횟수가 높을수록 아이템 옵션이 추가 증폭되기 때문에, 고스펙을 목표하는 플레이어라면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 관문이다.
대개 세 번째인 3강까지는 100% 성공한다. 그러나 4강 시도부터 어마어마하게 높은 실패 확률이 붙는다. 또 7강 시도부터는 아이템이 소멸될 확률이 추가로 붙는다. 보통 6강이 기본인 셈이다.
7강 시도부터는 아이템이 녹지 않도록 인첸트 스톤을 사용해 확률을 높이는데, 스톤의 확률 증가가 공식적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터라 사실상 7강부터의 강화는 ‘운’이었다.
노르드 월드에서 하이 스펙 강화는 보통 9강에서 10강을 뜻했다. 그나마도 9강이 보편적이고, 현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특정 플레이어들이 10강 아이템을 보유하는 수준이었다. 레기온에는 마제스티, 크라이그, 일반인, 이노센트, 이모탈, 불꽃심장이 10강 종결 무기를 보유 중이었다.
“비격은 무기 강화하면 HP나 MP로 올라가지?”
아이쿠의 호들갑에 이끌려 온 자토가 그리 물었다. 리디안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구나 장신구의 경우 강화되는 수치가 정해져 있는 반면, 무기 같은 경우는 직업군마다 차이가 있다. 딜러의 경우 기본 공격력, 탱커는 주 방어력, 그 외 서포터 역할인 비격수는 HP, MP 수치가 랜덤으로 오른다.
“비격수는 HP랑 MP중에서 랜덤인 게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보정 수치가 높아지니까. 기본 6강까지는 할 만하죠.”
대신 실패 확률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다른 게임들이 그렇듯 노르드 월드 역시 골드 회수에 철저한 곳이라 강화 한 번에 들어가는 골드만 해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보통 기본 6강까지 스톤 없이 하면 1억, 2억이 호로록 날아간다. 이것도 운이 좋아야 1억인 거지, 누구처럼 안될안이면 2억, 3억이 순삭된다.
그 때문에 평범한 서민들은 보통 강화에 눈도 두지 않는 편이었다.
“누나, 돈도 많이 생겼다면서요. 한 번 지르러 가요. 동욱이 형이랑 번갈아 가면서, 어때요?”
어린 나이답지 않게 도박에 중독된 아이쿠의 눈이 욕망으로 번뜩였다.
합동 레이드 때, 자기 직업 아이템인 건틀릿 ‘용맹한 의지’를 먹은 이터널리스트의 눈도 반짝 빛났다. 종결 템을 지른다는 소문에 프리피케 출신들도 관심을 두고 다가왔다.
그러나 리디안은 겁이 많았다.
“아니야. 나는 그냥 3강만 하고 구경할래!”
단호한 의사에 근처에서 기대하던 길드원들이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이터널리스트의 아이템이 파이터 종결 무기인 탓에 다들 흥미진진한 얼굴로 기대했다.
자고로 강화는 구경꾼이 많아야 한다는 백검의 바람잡이에 대인원이 우르르, 미드가르드 대장간으로 향했다.
* * *
레긴의 대장간은 강화를 담당하는 공간으로, 미드가르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게임 시절만 해도 대장간 주위는 아이템을 지르는 플레이어로 바글바글했었다.
물론, 이곳에 갇힌 초반에도 의욕을 잃은 플레이어들이 대거 강화를 진행하는 바람에 핫 플레이스가 된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과 달리 휑했고, 그나마 우연히 근처를 지나는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몰려온 레기온 길드원들을 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강화는 간단했다. 담당 NPC인 레긴에게 말을 걸어 별도로 뜨는 강화 창에서 해당 아이템을 선택하면 끝이다. 그럼 레긴이 무뚝뚝한 얼굴과 몸짓으로 시뻘건 화덕 앞에서 쇠망치로 모루를 두드린다. 그 후 성공하면 폭죽 이펙트가 뜨고, 실패하면 회색 연기가 솟는다.
리디안은 이터널리스트와 사이좋게 ‘스카디’를 안전하게 3강까지 강화했다.
“리디안 님, 이왕 하는 거 6강까지 스트레이트로 갑시다!”
아이쿠와 마찬가지로 도박중독자인 백검이 벌건 눈을 뜨곤 유혹했다. 때마침 곁에 있던 이노센트가 그 등짝을 세차게 후려침으로써 백검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대로 6강까지는 아이템이 녹지 않아 해볼 만했지만, 리디안은 순식간에 거덜 날 골드가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했다.
“자, 그럼 가볍게 가볼까!”
이터널리스트는 자신만만하게 강화를 진행했다. 6강까지는 골드만 풍족하다면 스톤 없이 진행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터널리스트 님이 용맹한 의지 +4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자부심과 경쟁심을 부추기기 위해 근처 영역까지는 성공과 실패 메시지가 공개적으로 떴다. 의외로 4강에 쉽게 성공하자 여기저기서 환호가 쏟아졌다. 시작이 좋다며 말이다.
[이터널리스트 님이 용맹한 의지 +5 강화에 실패하였습니다.]하지만 이후로 실패 메시지가 여러 번 떴다. 잇따른 실패에 지켜보던 파파가 혀를 찼다.
“어째 조짐이 안 좋은데?”
파파가 우려를 표했지만, 사악한 길드원들은 환호하며 이터널리스트를 부추겼다.
남자답게 스트레이트로 쭉 가자는 함성에 이터널리스트는 집중한 채 땀을 흘렸다.
[이터널리스트 님이 용맹한 의지 +5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한 열네 번 가까이, 실패하고 나서야 겨우 성공 메시지가 떴다.
[이터널리스트 님이 용맹한 의지 +6 강화에 성공하였습니다.]그리고 또 의외로 6강화에 금방 다다르자 레기온 길드원들은 광란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지켜보던 리디안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 확률에 오, 하며 흥미를 보였다.
“그러취! 이제 시작이지!”
만족스럽게 웃은 이터널리스트는 인첸트 스톤을 꺼냈다.
7강부터는 아이템이 녹기 때문에 고가 아이템일수록 스톤은 필수였다. 더욱이 지금 지르는 아이템은 파이터의 종결 무기.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모 아니면 도였다.
“용의지 7강 가즈아~!”
덩달아 신난 아이쿠가 외쳤고 구경하던 플레이어들 역시 신나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