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0화
등록 심사 (2)
“여기 모두 담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상자들.
케익이 뭉개지지 않도록 봉투 대신 아예 상자를 여러 개 구해온 박정우는 전문 파티시에처럼 정성스럽게 케익들을 상자 하나하나 포장했다.
“고생 많았네.”
쭉 늘어선 상자들을 내려다보며 오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여긴 등록 심사 때문에 왔나?”
“그, 그렇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 판디누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박정우는 무슨 갓 훈련소를 마친 이등병처럼 빠릿빠릿한 자세로 답했다.
“흐음. 그렇구만.”
오진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협회의 직원이 돌아올 때가 됐으니 마무리를 지을 시간.
“판디누스의 길드의 유망주가 어느 정도 실력을 지녔는지 직접 봐야겠어.”
“…예?”
박정우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두 눈을 부릅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길드장보다 더 윗줄에 있어 보이는 각성자가 자신의 등록 심사를 지켜본다니.
부대를 방문한 사단장이 평소 훈련 성과를 확인해 보고 싶다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저, 그, 그건 좀….”
“끌끌! 찬혁이 그놈이 뽑은 애들이니 당연히 엄청나겠지! 신성! 그래!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신성일 게야!”
덜덜덜.
박정우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두 다리를 떨었다.
‘X됐다.’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사실 그는 이번 등록 심사에서 미리 뒷돈을 넣어준 협회 직원에게 테스트를 받기로 약속돼 있었다.
설렁설렁 테스트를 봐도 고점이 약속된 상황.
하지만.
‘어, 어떻게 하지?’
다른 사람 참관하에 시험이 이뤄진다면 그런 꼼수를 쓰는 건 불가능했다.
“음? 왜 그리 다 죽은 표정인가?”
“아, 아니. 그…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꾸욱.
박정우는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먹 쥐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느낌.
대형 길드에 들어와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 줄 알았는데 갑자기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혹시 몸이라도 안 좋은 겐가?”
“아… 그.”
오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등록 심사를 보는 건 피해야 하지 않겠나? 괜히 안 좋은 상태에서 심사를 봤다가 길드의 이름에 먹칠할 수도 있지 않나.”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좋다고 물겠지.’
자신의 길드장보다 한참 윗줄로 보이는 각성자가 직접 참관하는 심사를 보고 싶은 길드원이 있을 리가 없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이라면 모를까.’
껄렁한 태도나 풍기는 기세나 황도 12궁에 속하는 전갈자리의 각성자라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
애초에 심사를 제대로 볼 생각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뒷돈을 찔러줘서 점수를 높게 받는 경우도 있다 하니까.’
실제 박정우가 그런 꼼수를 쓰려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
자신이 등록 심사에 참관하겠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똥 마려운 개새끼 같은 표정을 지은 걸 보면 일단 참관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으니까.
“……!”
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박정우의 눈이 반짝였다.
“아,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거든요.”
“역시 그랬구만.”
아따 새끼 입꼬리 올라가는 거 봐라.
그렇게 좋냐?
“잠깐 이리 와 보게.”
“예? 갑자기 왜….”
흠칫 놀란 박정우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몸 상태가 안 좋다 하지 않았나? 내가 좀 봐주겠네.”
“아, 아니! 그, 그러실 필요까지는…!”
“몸 아픈 게 죄도 아니고 왜 그러나.”
박정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으, 으으.”
그는 담배 피다 걸린 고딩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귀여운 새끼.’
낄낄 속으로 웃으며 박정우의 몸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손목을 붙잡고 맥을 잡았다.
“음… 확실히 마력이 불안정하군. 호흡도 흐트러져 있어.”
괜히 있어 보이는 말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피로가 쌓인 것 같네. 병이 걸린 건 아니니 안심하게.”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피로야말로 만병의 원인인 법. 등록 심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오늘은 들어가 편히 쉬게.”
“하하. 네. 알겠습니다. 괜히 무리를 하다가 길드 이름에 먹칠을 할 순 없죠.”
“그럼, 그럼. 맞는 말일세. 뭐든 건강이 최고 아니겠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박정우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까 전 무례를 끼친 점 다시 한번 사죄드립니다!”
“끌끌.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나. 그만 들어가 보게.”
“예!!”
“찬혁이에겐 안부 전해주고.”
“알겠습니다!”
연신 허리를 숙이던 박정우가 도망치듯 대기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오진은 소파에 느긋이 앉은 채 손을 흔들었다.
이로써 귀찮게 신경을 거스르던 방해꾼이 사라지게 됐다.
물론.
나중에 귀찮은 일이 생길 위험성도 있으나━
‘아마 보고 안 할 가능성이 더 크겠지.’
애초에 대형 길드 말단과 길드장이 마주칠 일 자체가 별로 없다.
딱히 득이 되는 일도 아니니 굳이 진짜 안부를 전해주기 위해 길드장과 독대를 할 리도 없으리라.
‘뭐, 만약 한다고 해도.’
뭔 헛소리를 하냐며 욕이나 바가지로 처먹고 끝나겠지.
그 뒤에 앙갚음하러 찾아오건 뭘 하건 상관없다.
‘그때 가서 박살 내주면 되니까.’
대형 길드의 유망주라 해도 자신은 북극성의 사도였다.
아까 전 손목을 잡아당길 때도 힘없이 끌려왔던 걸 생각하면 제대로 싸운다고 해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깔끔하네.”
방해꾼을 쫓아냈고, 하은에게 가져다줄 케익도 예쁘게 포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 어디 그럼 얼마 들었는지 좀 볼까?”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고급스러운 가죽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아까 전.
박정우의 상태를 봐주겠다며 몸을 살폈을 때 몰래 주머니에서 슬쩍한 거였다.
“오우 야. 새끼 현찰 많이 들고 댕기네.”
지갑 가득 들어 있는 지폐를 챙기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대형 길드 소속이 되면 연봉이 장난 아니라더니 그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았다.
“음? 뭐야 이건?”
한창 지갑을 뒤지던 중 500원 짜리만한 크기의 검은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변종의 성유석?’
앤트혼을 잡고 채취한 성유석과 비슷한 사이즈였다.
‘이걸 왜 그놈이?’
변종 자체가 극히 드문 확률로 나타나니만큼 변종의 성유석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근데 왜 뜬금없이 박정우의 지갑에서 이게 나온단 말인가.
“…이건 좀 알아봐야겠네.”
마냥 좋다고 챙기기엔 뭔가 뒤가 구렸다.
-휘익.
지갑을 대충 쓰레기통에 던진 후 10분 정도를 기다리자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 저벅.
문밖으로도 느껴지는 묵직한 발걸음.
달칵.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190에 달하는 큰 키에 터질 듯한 근육을 지닌 가무잡잡한 피부의 사내였다.
“…….”
탱크와 마주친 것 같은 위압감에 오진은 순간 말을 잃었다.
“권오진 각성자님… 맞으시죠?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지니셨다는.”
“아, 예, 맞습니다.”
“소개가 늦었군요. 특수재난안보관리 협회 재난 대책 본부 소속 한준만 팀장입니다.”
거구의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굳은살이 가득한 손을 마주 잡으니, 아찔한 힘이 손을 타고 느껴졌다.
‘워우.’
박정우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자다.
“혹시 별자리가….”
“황소자리의 6성 각성자입니다.”
황소자리라면 전갈자리와 마찬가지로 황도 12궁에 속하는 별자리였다.
거기에 6성까지 도달해 있으니 당연히 숨이 턱 막히는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협회 각성자들은 다 별 볼 일 없다 들었는데, 헛소리였네요”
“하하. 뭐… 완전 헛소리는 아닙니다.”
한준만 팀장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짜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지니고 계신 게 맞으십니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긴.
현재 ‘북극성(北極星)’이라 불리는 성좌에게 성흔을 부여받은 각성자는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고작 열두 명.
심지어 그것도 열두 명 모두 데네브에게 성흔을 부여받은 각성자들이었다.
데네브의 성흔을 받은 각성자들은 북극성의 사도 불리며 하나 같이 모두 엄청난 실력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들이 보여준 경이로운 힘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두 북극성의 성좌에게도 관심이 쏠렸지만.
베가와 폴라리스는 그 존재만 알려져 있을 뿐 아직까지 한 번도 각성자를 만든 적이 없었다.
즉, 오진은 세계 최초로 베가의 성흔을 받은 각성자인 셈.
의심하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하리라.
“보여드리죠.”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지.
셔츠 단추를 풀러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을 보여주었다.
“흐음….”
한준만 팀장은 진중한 표정으로 성흔을 살폈다.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표정.
“등록 심사를 받기 위해 오셨다 했습니까?”
“예.”
“…권오진 각성자님만 괜찮으시면 제가 직접 심사를 봐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팀장님이 직접요?”
아니 무슨 등록 심사에 6성 각성자가 나와.
‘이러면 좀 계획이 꼬이는데….’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열려 할 때.
‘음… 생각해 보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어쩌면 원래 계획보다 이쪽이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시험장으로 이동하시죠.”
고개를 끄덕이며 한준만의 뒤를 따랐다.
“━그럼.”
복잡한 복도를 따라 5분 정도를 걸어가니 협회 내부에 위치한 넓은 시험장이 보였다.
각성자들을 위해 특수 제작된 연무장 주변은 성유석을 섞어 만든 강화유리로 뒤덮여 있었다.
‘구경꾼들은 알아서 치워뒀네.’
딱히 참관을 금지해둔 것도 아니라서 등록 심사에서 몇 명씩 지나가던 구경꾼이 끼는 경우도 있다 들었는데, 아무래도 한준만이 직접 통제를 해둔 것 같았다.
‘의외로 센스가 좋아.’
생긴 것만 보면 무슨 쇳덩어리도 씹어먹을 것처럼 생겼는데 말이야.
“전사 계열이라 하셨으니 심사 방식은 심플하게 대련으로 하겠습니다.”
보호 글러브를 주먹에 낀 한준만 팀장이 자세를 잡았다.
“진짜 대련용 무기 말고 이걸 써도 되는 겁니까?”
오진은 협회 건물에 들어오기 전 보관소에 맡겨뒀던 이신혁의 창을 툭툭 두드렸다.
“하하.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저쪽에서 괜찮다 하니 상관없겠지.
‘6성 각성자라.’
아무리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사기적이라고 해도 4성의 격차를 메울 수 있을까?
그것도 황도 12궁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를?
‘해봐야 알겠지.’
그걸 위해 심사를 받아들인 것 아닌가.
“쓰읍.”
자세를 취하며 깊게 호흡을 들이킨다.
호흡은 낮고 길게.
뇌리에 새겨진 ‘나침반자리의 창술’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우우우웅!!
왼쪽 가슴의 성흔이 푸른빛으로 타오른다.
파직,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사납게 튀어 올랐다.
“차핫!!”
쿵!
거칠게 발을 구르며 질주했다.
푸른 뇌전이 맺힌 창을 전력으로 내질렀다.
-카앙!!
한준만의 팔뚝에 닿은 창날이 거세게 튕겨 나왔다.
사람의 팔이 아니라 무슨 단단한 무쇠를 찌른 듯한 감각.
“…음?”
가볍게 창을 막아낸 한준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무슨….”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