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02화
사기꾼의 승리법 (4)
‘어디에 있는 거지?’
슈슈슈슈슉!
천우성은 올빼미들과 함께 건물 옥상과 옥상을 뛰어넘으며 박건우를 찾았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아무리 주변을 뒤져도 박건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을 때.
-우우우웅!
품속에 넣어둔 통신 구슬이 진동했다.
“……!”
마력을 흘려 넣어 확인해 보니 박건우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천우성은 다급히 구슬을 들어 올렸다.
-우, 우성 님!!
구슬에 비친 것은 피범벅이 된 박건우의 모습.
오른쪽 눈가를 가로 짓는 선명한 검흔.
굵은 눈썹과 우직한 입술, 툭 튀어나온 광대까지.
의심할 여지 없는 박건우였다.
-하아! 하아!
지금 한창 도망치는 중인지 화면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흑사자까지 끼어드는 바람에 붙잡히고 말았….
“그 얘긴 나중에!”
박건우의 구차한 변명을 들어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 어딥니까?!”
-하수도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쪽에서 봤을 때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건가.
“추적자는 몇이나 됩니까?”
-하아, 하아! 다행히 아직까진 꼬리가 붙지는 않았습니다!
박건우는 자리에 멈춰선 채 주변을 살폈다.
구슬 너머로 보이는 화면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흐를 뿐.
누가 쫓아오는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휴우.”
천우성의 입에서 안도에 찬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추격이 따라붙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 시름 놨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장소로 가세요.”
-예, 알겠습니다!
“통신은 계속 유지하고요.”
천우성은 박건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
‘추격이 붙기 전에 먼저 만나야 해.’
만나서 그를 구출하든 제거하든 선택해야 했다.
‘…제거해야겠지?’
박건우는 그의 오른팔 격인 부하였지만.
이미 협회 쪽에 그의 얼굴이 다 알려진 이상 살려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용서한다고 해도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천도윤은 실수를 저지른 부하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의 손으로 직접 박건우를 죽여주는 편이 더 나으리라.
“…….”
천우성의 눈에 슬픔이 맴돌았다.
올빼미 파벌 내에서도 박건우는 가장 오래 함께한 부하.
그의 뜻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 하나뿐인 이해자였다.
‘어쩔 수 없어.’
천우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자신의 팔을 잘라내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지만.
박건우의 이번 실수는 자비를 베풀어주기에는 너무 컸다.
‘이건….’
꽈악.
천우성은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언젠가 박건우와 함께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를 위한 숭고한 희생.’
그래.
박건우의 말마따나 이건 숭고한 희생이었다.
더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협회를 손에 넣기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보호할 수 있어.’
각성자라는 끔찍한 재앙 앞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도,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계세요.”
천우성은 굳은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박건우를 숨긴 장소는 흑성회 내에서도 그만이 알고 있는 은신처.
추격이 따라붙을 걱정은 없었다.
“가죠.”
천우성을 따라 수십 명의 올빼미가 이동했다.
올빼미 파벌 내부에서도 강자들을 모아 만든 그의 직속 부대.
이 정도 전력이라면 중간에 어지간한 변수가 생기더라도 힘으로 무마할 수 있었다.
-찰박, 찰박.
습기에 젖은 하수도를 지나 은신처로 향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지하철 공사 도중 게이트 사건이 일어나 공사가 중단된 장소.
이젠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는 버려진 지하 세계.
그곳에는━
“음?”
죽음과 같은 적막만이 맴돌고 있었다.
“지금 어딥니까?”
천우성은 손에 쥔 통신 구슬을 가까이 가져대며 물었다.
-…….
“건우 씨? 지금 어디 있으시냐고요!”
길게 이어진 침묵을 깨뜨리며.
-우, 우성 님.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짜 절… 구해주러 오신 거 맞으시죠?
“…….”
-설마… 절 주, 죽여 입을 막으신다거나 그럴 생각이신 건….
천우성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인제 와서 죽을 걸 두려워해 몸을 숨긴 건가?’
상급 정무관이라는 자가 이 얼마나 꼴사나운 모습인가.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건우 씨.”
천우성은 최대한 평온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함께 해왔던 시간을 떠올려 보세요.”
최대한 점잖게.
“검은 별의 뜻을 따르기 위해 해왔던 피나는 노력들… 건우 씨는 제게 있어 둘도 없는 친우이자 유일무이한 이해자입니다.”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파리지옥처럼.
먹잇감을 유도했다.
“이번에 한 번 실수했다 하셔도 건우 씨를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쉽게 뒤를 잡히시긴 했지만, 마수를 풀어 구로동을 습격한다는 계획은 성공하셨잖아요? 협회에 붙잡히신 후에도 검은 별의 뜻을 입에 담지 않으셨고….”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펼쳤다.
“건우 씨를 죽일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 안심하고 나와주세요.”
부스럭.
그의 말에 호응하듯.
누군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박건우가 아닌.
지금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정말 자네가 범인이었군.”
낮고 굵은 목소리.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천우성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뒷걸음질 쳤다.
“…하, 한태호?”
왜 여기서 협회의 늙은 독사가 나온단 말인가.
“솔직히 믿고 싶지 않았네.”
한태호는 주먹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자네가 아무리 영악한 인간이라 해도… 적어도 힘없는 자들에게 칼을 겨누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하지만.
천우성은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학살했다.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몸을 던졌다.
“천우성. 자네를 민간인 학살 및 테러의 주도자로 체포하겠네.”
“…….”
천우성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섬뜩한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이곳에 한태호가 있다는 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
“박, 건우…!”
그가 배신했다.
검은 별의 뜻을 등지고, 알량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함정을 파 그를 끌어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자리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한태호가 걸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 이, 이 불경한 자가아아아아!!!!”
천우성은 야차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사납게 소리쳤다.
“감히! 감히 네놈이 검은 별의 뜻을 등지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
표독스러운 증오에 번들거리는 눈빛이 어둠 너머를 응시했다.
“나와라! 모습을 보이란 말이다!!”
아마 박건우는 저 어둠 너머에 비겁하게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착각이라고요?”
“박건우라 했던가? 이번 테러 사건의 실행범 말일세.”
쯧.
한태호는 가볍게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그자는 이미 한참 전에 죽었네.”
“……뭐?”
한참 전에 이미 죽었다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박건우 본인과 통신을 주고받았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게 무슨 헛소리….”
“설마 자네가 이런 어설픈 분장에 속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말이야.”
“어설픈… 분장?”
천우선의 시선이 한태호 뒤로 향했다.
“어, 어설프다뇨! 나름 메이크업만 3시간을 받은 겁니다 이게!”
그곳에는 박건우의 모습으로 변장을 한 한 부장이 있었다.
“그게 분장… 이라고요?”
절로 터져 나오는 헛웃음.
오른쪽 눈가의 검흔이나 입술 형태 등 나름 공을 들이긴 한 것 같지만 그것뿐.
어설프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지리멸렬한 분장이었다.
‘아니야.’
자신이 봤던 것은.
자신과 얘기했던 것은.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박건우로 분장한 한 부장이 아니다.
“자네도 어지간히 초조했나 보군.”
아니야.
아니라고.
‘그건… 진짜 박건우였어.’
착각할 리가 없다,
아무리 다급하고, 초조하더라도.
자신이 박건우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긴. 자네 쪽에서 먼저 허겁지겁 연락했을 때부터 많이 조급해 보이긴 했지.”
“…뭐?”
자신이 먼저 연락했다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다.
자신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탈출한 박건우가 먼저 보내온 연락을 받았을 뿐이다.
“…뭐, 야?”
주춤주춤.
천우성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쳤다.
━뭔가 어긋나 있다.
결정적인 무언가가.
치명적인 무언가가.
도저히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렸다.
‘달라.’
자신이 기억과.
한태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일치하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질감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마치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듯 자신과 한태호의 움직임을 조종하고 있는 듯한 불쾌함.
“얘기는 이쯤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저벅, 저벅.
어둠 너머에서 또 다른 인영이 나타났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을 지닌 청년.
싸늘한 눈빛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수 같은 기세가 주변을 잠식했다.
“…흑사자.”
그만이 아니다.
협회의 특무관들과 발할라 길드의 길드원들까지.
모두 이 자리에 함정을 판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한태호와 특무관들만 해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강자들인데 발할라 길드까지 끼어든 이상 지금 전력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이토록 허망하게.
붙잡힐 수는 없었다.
“가랏! 올빼미들이여!”
부하들에게 시간을 벌게 만든 후 다급히 몸을 돌렸다.
“놓치지 마!!”
흑사자가 그의 뒤를 쫓았다.
-콰아아아앙!!!
무시무시한 폭음이 버려진 지하철 내부를 뒤흔들었다.
* * *
“하아! 하아!”
절뚝, 절뚝.
피범벅이 된 천우성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몸을 휘청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크으…!”
옆구리를 가로 짓는 깊은 검흔.
자잘한 상처까지 합치면 수십 개가 넘는 상처가 몸을 뒤덮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도망치긴 했나.’
천우성은 입술을 짓씹으며 주변을 살폈다.
부하들이 몸을 던져 막아준 덕분에 어찌 도망치는데 성공하긴 했다.
“빨리… 아버지에게 연락해야 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비틀비틀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때.
“이런 곳에 있으셨습니까?”
어둠이 내려앉은 통로 너머.
한 쌍의 푸른 귀화(鬼火)가 타오르고 있었다.
“너, 는.”
천우성의 눈이 부릅뜨였다.
박건우.
통로 너머에서 걸어오고 있는 건 틀림없는 박건우의 모습이었다.
어설픈 분장을 한 한 부장이 아닌.
통신 구슬로 봤던.
바로 그 얼굴.
“…누구, 야.”
딱딱딱.
영혼을 잠식하는 공포에 이가 부딪힌다.
“누구냐고 이 새끼야아아아아!!!”
절규하듯 외쳤다.
“나?”
박건우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천천히 고개를 기울인다.
꾸르륵.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얼굴이 우그러진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근육이 뒤틀린다.
“…아.”
박건우의 얼굴이 한태호의 얼굴로.
한태호의 얼굴이 이우혁의 얼굴로.
이우혁의 얼굴이 천우성의 얼굴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수도 없이 얼굴이 뒤바뀐다.
“내가 누구로 보여?”
낄낄낄.
섬뜩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