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0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07화
누나와 여왕님 (2)
“누, 누나?”
오진이 기겁하며 고개를 돌리자.
“━푸흡!”
하은의 입에서 억눌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수건 아래 검은색 오프 숄더 비키니를 입은 채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고 있는 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오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캬하하하하하핫!!! 왜? 이 누나가 홀딱 벗고 들어오는 걸 기대했냐?”
하은은 뭐가 그리 기쁜지 배를 부여잡으며 폭소를 터트렸다.
“응~? 어디 한번 말해보렴. 누나의 알몸이 보고 싶었습니다~ 라고.”
“…….”
쿡쿡.
하은이 뺨을 손가락 끝으로 찌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오진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그래.”
“엉? 뭐가?”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 이런 천 쪼가리로 가릴 필요 없잖아?”
그녀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어, 어어?”
하은이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자, 벗어 누나.”
그녀의 몸을 가리고 있는 비키니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이, 이 미친놈이! 벗긴 뭘 벗어?!”
하은이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오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 그건… 나, 나, 나중에.”
“뭐라고?”
“다, 닥치고 여기 앉아 짜식아!”
탕탕!
하은이 욕실 의자를 거칠게 두드리며 외쳤다.
오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아니 진짜 씻겨주게?”
“그럼 가짜로 씻겨줄까?”
“내가 뭐 애도 아니고.”
“누나 눈에는 애로 보이거덩요.”
고작 한 살 차이나면서 무슨.
“하긴. 누나랑 나는 앞자리가 다르긴 하지.”
자신은 아직 팔팔한 이십 대지만 누나는 이제 서른━
“앙? 지금 뭐라 씨불였냐?”
“응애. 나 아기 오진. 씻겨줘.”
“뭐래.”
하은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타올을 들어 올렸다.
오진은 한숨을 내쉬며 아까 하은이 몸에 두르고 있었던 수건을 손목으로 짚어 다리 사이를 가리며 의자에 앉았다.
-쏴아아아아!
샤워기에서 흘러나온 따듯한 물이 몸을 적셨다.
“손… 아직 아파?”
“이젠 아프진 않아. 움직이지만 않을 뿐이지.”
“하여간 진짜.”
짜악!
하은이 등짝을 후려쳤다.
탄탄한 근육이 들어찬 등에 선명한 붉은 손자국이 새겨졌다.
“…맨날 어디 가서 다쳐서만 돌아오고.”
툭.
하은이 오진의 등에 이마를 기댔다.
“내가… 너 쓰러졌단 얘기 듣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인마?”
울먹이는 목소리.
천우성과 싸운 후 5분만 자겠다던 오진은 그대로 3시간을 넘게 기절해 있었다.
쓰러진 그를 발견한 것은 전견 최우진.
천우성이 이끌고 온 올빼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그는 상황이 모두 정리된 후 도망친 천우성의 흔적을 쫓고 있던 도중 오진을 발견했다.
발견됐을 당시 오진의 양팔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뭐, 그 뒤에 수력친화를 써서 치료하긴 했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손가락이 꿈쩍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 내상이 심하긴 했던 모양.
“미안.”
“이번만 그런 것도 아냐.”
하은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손을 뻗어 오진의 등을 매만졌다.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그의 등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얻은 무수한 상처들.
그 상처들 사이엔 각성자가 되기 전, 천주룡의 저주에 눈이 먼 그녀를 보살피며 얻었던 상처들도 섞여 있었다.
“정말… 바보 같다니까.”
“바보 같은 건 아니지.”
오진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없었으면 이렇게 누나랑 같이 있지도 못했을 거 아냐?”
“…….”
하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이래저래 많이 다치긴 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 상처쯤은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다.
“아, 으. 이, 이 새끼가 또 그런 말을.”
하은은 사과처럼 발그레 달아오른 뺨을 숨기며 다시 한번 등짝을 쳤다.
이번에는 쓰다듬는 것처럼 살짝.
“하여간… 못 말린다니깐.”
배시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타올에 바디워시를 짰다.
쓱쓱 오진의 몸을 타올로 상냥하게 문질렀다.
“손 다 나을 때까진 누나가 돌봐줄 테니까 얌전히 있어야 한다?”
“…설마 씻을 때마다 따라 들어오게?”
“히히. 왜? 이 눈나의 아리따운 몸매도 구경하고 좋지 않냐?”
확실히.
어지간한 모델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몸매를 지닌 하은이 아슬아슬한 비키니까지 입으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매력적이긴 했지만.
“…그랬다간 내가 못 버틸 것 같은데.”
파괴력이 커도 너무 컸다.
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있었다 해도 사지 멀쩡한 남자인데 매번 몸을 씻을 때마다 그녀가 같이 들어오면 욕구를 참을 자신이 없었다.
“…않아도 되는데.”
“뭐?”
“아, 아무것도 아냐 짜식아.”
벅벅.
하은이 무슨 때를 미는 것처럼 타올을 세게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베가는?”
“시간제한 됐다고 성소로 돌아갔어.”
그래서 이렇게 조용했던 거구만.
“어쨌든. 다음부터 리아크한테 도와달라 할 테니까 누난 들어오지 마.”
“뭐야. 부끄러워서 그러냐?”
하은이 장난스럽게 옆구리를 간질였다.
“사내새끼가 쪼잔하게씨리. 어차피 볼 거 다 봤는데 인제 와서 뭘 숨기려고?”
“…….”
그러고 보니 전에 베가랑 하은이 합심해서 홀딱 옷을 벗겨버린 적이 있었지.
“히히. 괜히 자존심만 드럽게 센 늑대 자식한테 부탁해서 욕이나 먹지 말구 얌전히 누나한테 맡기렴?”
하은이 실실 웃으며 물을 틀어 타올로 몸 구석구석을 문질렀다.
타올 사이로 느껴지는 가느다란 손가락이 몸을 간지럽혔다.
‘이거 진짜 위험한데.’
슬슬 이성이 못 버틴다.
“나머진 내가 할게.”
“엥? 아직 거품투성인데 뭔 소리….”
“빨리.”
하은의 시선이 오진의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는 수건 쪽으로 향했다.
“크, 크흠!!”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
“그, 그럼 먼저 나간다!!”
후다닥.
하은이 다급히 샤워실 밖으로 나갔다.
“하아.”
오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걸 매일 한다고?’
비키니를 입은 하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몸에 닿은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
정성스럽게 몸을 닦아주는 타올의 움직임까지.
“…빨리 나아야겠네.”
참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다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 같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손가락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흐른 후였다.
“후아!”
간만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 근처에 있는 각성자 전용 트레이닝 시설로 온 오진은 새벽부터 점심까지 장장 6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몸을 움직였다.
“크으! 이제 좀 살겠네.”
지난 일주일 동안 하은과 베가에게 꼼짝없이 붙잡혀 보살핌이라는 이름의 구속을 당하고 나니 이렇게 자유롭게 몸을 움직인다는 것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뭐, 좋긴 했지만.’
오히려 너무 좋아서 문제였달까.
간단한 식사부터 옷을 입고 몸을 씻는 것까지 하나하나 다 보살핌을 받다 보니 이렇게 지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슬슬 정신 차리고 다시 수련에 매진해야지.’
6성으로 올라서면서 생긴 신체 변화와 마력 상승에 적응하기도 해야 했고.
충전과 방전이라는 새로운 스킬을 시험해볼 시간도 필요했다.
‘일단 오늘 수련하면서 어느 정도 감은 잡았어.’
오진은 오른손에 마력을 집중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충전.’
파지지지지직!!!
사납게 타오르는 푸른 뇌전.
‘방전.’
콰자자자작!!
오른손에 맺혀 있던 푸른 뇌전이 난폭한 기세로 전방을 휩쓸었다.
“한 번 쓴 거로는 별로 위력이 크지 않네.”
한 번 충전해서 쓸 바에 폭뢰나 창뢰를 사용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최소 세 번은 써야 제대로 된 위력이 나와.’
지금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쌓을 수 있는 충전은 5번까지.
그 이상은 손 전체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몸에 부담을 줬다.
‘충전에 필요한 시간도 많이 들고.’
전투에서 쓰기 알맞은 건 3스택 정도가 적당했다.
“일단 오늘 수련은 여까지만 하고.”
오진은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한 부장에게 온 메시지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소고기 사준 사람 : 오진 씨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띡띡띡.
답장을 보냈다.
[오진 : 예, 다 나았습니다.] [소고기 사준 사람 : 그러면 오늘 협회로 한 번 들러주실 수 있나요? 협회장님께서 오진 씨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 하셔서.]음.
할 말이라니.
‘보상 건인가?’
오진은 기대에 찬 눈으로 재빠르게 자판을 눌렀다.
[오진 : 2시쯤에 찾아뵙겠습니다.] [소고기 사준 사람 : 넵넵! 그때 봬요!]한 부장과의 약속을 잡은 후 트레이닝 룸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6시간 27분 개인 트레이닝 룸 이용료 10프로 할인해서 67만 8천 원 나왔습니다~”
“씨발.”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 아무리 각성자 전용 트레이닝 시설이 값비싸다고 해도 무슨 6시간에 70만원 가까이 이용료가 나온단 말인가.
그것도 할인까지 받아서.
‘그… 없나?’
오진은 죄 없는 직원을 날카롭게 쏘아보며 카드를 내밀었다.
“하아.”
수련하기 위해선 각성자 전용 트레이닝 시설만한 곳이 없었지만 너무 이용료가 비싼 게 흠이었다.
‘시설도 썩 좋지 않고.’
정확히는 오진의 경지가 너무 높아진 탓에 상대적으로 시설 내구도가 부실하게 느껴졌다.
‘맘 편하게 수련할 만한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장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강 변에 나와 가벼운 러닝이나 체조 같은 건 할 수 있지만 성흔을 사용한 본격적인 수련을 하기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쩝… 뭐 어쩔 수 없지.’
돈에 여유가 좀 생겼다고는 해도 서울 한복판, 그것도 ‘초’가 붙어도 좋을 중심지에 개인 트레이닝 시설을 구할 정도로 썩어 넘치지는 않았다.
“이번에 보상으로 돈 좀 땅기면 트레이닝 시설이나 알아볼까.”
오진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의 획수는 6개지만.
이미 8성 각성자, 그중에서도 9성으로의 격상을 목전에 둔 최상위 8성 각성자와 대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마력을 견딜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수십억이 필요했다.
‘…드럽게 아깝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그와 하은이 즐겨 찾는 트레이닝 시설은 값비싼 이용료도 이용료지만 7, 8성급 이상 각성자의 마력을 제대로 견디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탓에 매번 힘 조절을 하면서 수련을 해야만 했다.
“쩝…. 그래도 수련에 돈을 아낄 순 없지.”
돈은 결국 목적이 아닌 수단이지 않은가.
한시라도 빨리 힘을 쌓아야만 하는 상황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불편한 수련을 이어가는 건 미련한 짓이다.
-쿵! 뚝뚝!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도중.
오진의 집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공사하나?’
고개를 돌려 공사 현장을 바라봤다.
30층 정도 높이의 주상복합 아파트.
무슨 5성급 호텔이나 대기업의 사옥처럼 화려한 외관을 지닌 아파트 앞에서 노란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흐음. 한동안 좀 시끄럽겠구만.”
잠시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오진은 이내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달칵.
“오, 수련 끝났냐?”
“엉.”
“새끼 며칠 더 쉬지. 손꾸락 움직인다고 바로 새벽부터 튀어 나가네.”
“흐흐. 충분히 쉬었잖아. 이젠 다 나았어.”
“흥. 진짜지?”
하은은 아직 불안하다는 듯 오진을 위아래로 쭉 훑어봤다.
그의 말마따나, 오진의 몸은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어 보였다.
“아, 맞다. 누나 나 잠깐 협회 좀 다녀올게.”
“협회는 왜?”
“협회장이 할 말이 있다네.”
“오, 보상 주려 하나? 너 이번에 엄청 큰 공 세웠다며.”
“몰라. 그렇지 않을까?”
“흐응.”
하은이 눈을 빛내며 성큼 다가와 팔짱을 꼈다.
“나도 같이 갈래.”
“혼자 가도 되는데.”
“우리 오지니 나쁜 사람 따라가면 어떻게 해.”
“뭐래.”
피식.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샤워실로 향했다.
“그럼 나 씻고 같이 가자.”
“누나가 씻겨줄까?”
매력적인 제안이긴 했지만.
“됐네요.”
더 이상 그녀에게 어리광을 피울 수는 없었다.
“…쩝.”
하은은 샤워실로 향하는 오진을 바라보며 뭔가 아쉽다는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 *
샤워 후에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오진과 하은은 함께 협회로 향했다.
마중 나온 한 부장을 따라 협회장실로 이동했다.
“오, 왔는가?”
“예.”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대감에 찬 눈으로 한태호를 바라봤다.
“하실 말씀이란 게 뭡니까?”
“으음. 자네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어서 말일세.”
“…음.”
오진의 얼굴에 노골적인 실망이 서린다.
“하하하! 그렇게 실망하지 말게. 저번 일에 대한 보상이라면 잊지 않았네. 50억의 포상금과 대통령 표창장, 김시후 군이 개발 중인 성유물을 보상으로 지급할 생각이라네.”
허.
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탄성.
대통령 표창장이야 별 관심 없었지만, 50억이라는 거금과 성유물은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보상이었다.
“에이, 제가 뭐 보상을 바라서 그 일을 했겠습니까?”
“호오. 그럼 안 줘도 되는 겐가?”
이 노친네가 미쳤나.
“하하! 농담이라네.”
한태호는 시원스레 우스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래서 흑성회 사이에서 독사라 불렸던 거구만.
“그럼 그 부탁이란 건 뭡니까?”
“아, 이번에 외국에서 아주 귀한 손님이 와서 말일세. 자네의 팬이라며 꼭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겸사겸사 둘이 친분이라도 쌓을 겸 서울 안내라도 해주면 어떨까 하네.”
“제 팬이라고요?”
누구지?
“잠시만 기다리게.”
한태호가 옆방을 향해 걸어가더니 똑똑 문을 두드렸다.
-달칵.
조심스럽게 열린 방문 사이로.
“오랜만이에요, 오진 씨.”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거머리 여왕이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