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10화
올빼미 사냥 (1)
“끄응.”
하은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씨… 대체 뭐가 문젠 거야?”
주방에 선 그녀는 한가득 쌓인 제육볶음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다는 듯 벅벅 머리칼을 긁었다.
지난 며칠 동안 이사벨라가 만들었던 제육볶음과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분명 똑같은 레시피를 따라 만들었음에도 전혀 맛이 달랐다.
“무슨 마약이라도 넣은 거 아냐 그년?”
하은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냄비 위에 한가득 쌓인 제육볶음을 노려봤다.
그렇게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또 만들고 있어?”
“윽.”
움찔.
어깨를 떨며 수련을 마치고 온 오진을 돌아봤다.
“오, 오늘은 좀 일찍 왔네?”
“엉. 좀 있다 협회 가야 해서 일찍 끝냈지.”
“그래도 한 7시간 있다 온 거 아냐?”
“정확힌 9시간. 오늘은 3시쯤 일어나서 갔거든.”
최근 오진은 이사벨라가 선물로 준 아파트에 개인 트레이닝 시설을 만들어 아예 거기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은도 오진과 함께 자주 트레이닝 시설을 이용했지만, 오진처럼 이른 새벽에 나가서 늦은 저녁까지 주야장천 수련만 하지는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오래 수련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그 전에 마력이 먼저 바닥나 버리니까.
‘오진이니까 가능한 거지 저건.’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순수한 마력 양만 놓고 보면 8성인 하은보다 6성인 오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렇다 해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적당히 쉬면서 하고 있어.”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누가 쉬면서 했다는 말이냐.]오진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베가가 눈을 찌푸렸다.
[오늘만 해도 9시간 내내 수련하면서 쉰 시간이 30분도 채 안 되지 않으냐!!]“에이, 오늘은 협회 갈 일이 있어서 그런 거고.”
[하아… 정말 이대로 가다가 그대가 또 쓰러지는 게 아닐까 본녀는 걱정스럽구나.]“지금 빡세게 힘을 길러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건….]곧 큰 전쟁이 벌어질 거란 오진의 말을 떠올리며 베가는 표정을 굳혔다.
[후우.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거라.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그대의 몸이 더 중요하지 않으냐.]“넹.”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은이 만들어 놓은 제육볶음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와, 몇 인분이야 이게 대체?”
헛웃음을 흘리며 한 점 집어먹으려 하자.
“아, 안 돼!”
하은이 다급히 그를 말렸다.
“왜?”
“그, 그… 실수로 좀 태워 버려서 먹으면 안 돼.”
“별로 안 탔는데?”
오히려 적당히 탄 부분이 있는 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어쨌든! 먹지 마!”
하은이 한가득 쌓인 제육볶음을 몸으로 가리며 외쳤다.
“푸흐흐. 이사벨라가 만든 것처럼 맛이 안 나와서 그래?”
“그, 그런 거 아니거든!”
“하여간 우리 누나도 참 이상한 데서 고집이 있다니깐.”
이사벨라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졌다.
“어디 한 번 줘봐.”
“앗!”
냄비 안에 한가득 쌓인 제육볶음을 한 주걱 퍼서 그릇에 담았다.
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음.”
우물우물.
“확실히 우리 누나가 요리를 못 하긴 하네.”
고기는 너무 볶아 딱딱했고 간을 잘못한 건지 짠맛이 너무 강했다.
그래도 며칠간 연습한 보람이 있는지 예전처럼 입안에 넣고 씹는 게 고역일 정도의 맛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 그러니까 말했잖아! 실수했다고!”
하은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외쳤다.
“푸흐흐.”
우걱우걱.
오진은 그릇에 담긴 제육볶음을 복스럽게 입안에 넣었다.
“…맛없다며.”
“응. 맛없어.”
“씨잉. 그럼 왜 계속 먹는 건데?”
“누나가 만들어준 거니까.”
“…….”
하은이 삐쭉 입술을 내밀었다.
“…전엔 버렸으면서.”
“아니 그때는 그냥 숯덩이로 만들어 버렸잖아.”
그건 애초에 음식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그래도 먹을 순 있네.”
맛은 없지만.
“흥. 맛없으면 먹지 말지? 이사벨라인가 뭔가 고년한테 만들어….”
“사는데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사람은 칼로리 바와 물만 있어도 살 수 있다.
지난 몇 년을 그걸로 버텨왔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근데 누나는 내가 사는 데 꼭 필요하거든.”
맛있는 음식 따위 필요 없다.
호화로운 아파트도, 값비싼 명품도 의미 없다.
그딴 건 없어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살아도 의미가 없다
“지, 지금 뭐라고?”
“누난 요리 같은 거 잘할 필요 없다고.”
이제까지 그래왔듯.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아….”
하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 우으. 아으으!”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을 흘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오줌이 마렵기라도 한 듯 베베 몸을 꼬더니, 이내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헤, 헤헤. 하, 하여간 새끼. 이 누나가 그, 그렇게 좋냐?”
하은이 오진의 뺨을 쭉 잡아 늘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으음.]베가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가늘게 눈을 떴지만, 둘 사이에 끼어들어 찬물을 끼얹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우리 누나 참 요리 못하네. 이 정도 만들었으면 좀 늘 법도 한데.”
“닥치고 먹어 짜식아.”
“넹.”
낄낄 웃음을 흘리며 제육볶음을 깔끔히 먹어치웠다.
“그럼 난 협회에 볼일 있어서 가볼게.”
“보상받으러 가는 거야?”
“그것도 있고.”
본격적인 올빼미 사냥을 위해서 협회의 도움이 필요했다.
“누나도 같이 갈래?”
“음….”
잠시 고민하던 하은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오늘은 나도 빡시게 수련 좀 하려고.”
최근 몸을 갈아 넣는 수준으로 수련을 하고 있는 오진을 보며 자극을 받은 모양.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는 안대로 가려진 왼쪽 눈가를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뭘 얻어?”
“히히. 비밀. 나중에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함 보여줄게.”
“흐음.”
아무래도 그녀 또한 최근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던 모양.
‘하긴. 누나가 이래 보여도 재능 하나만큼은 사기적이니까’
흑천을 지닌 자신에게 비빌 수야 있겠냐만.
하은의 성장 속도도 일반적인 각성자 기준에선 사기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끄응. 나도 너처럼 오래 수련할 수 있다면 좀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을 텐데.”
“뭐 누난 마력 양이 적은 편이니까.”
“네가 말도 안 되게 많은 거거든요?”
하은이 발끈한 표정으로 반론했지만.
굳이 자신과 비교하지 않아도 그녀의 마력 양이 적은 편인 건 사실이다.
‘누나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이지.’
아마 마력 양만 많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끄응… 내 마력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 난 협회로 갈게.”
“벌써 가게?”
“아직 시간이 좀 남긴 했는데 미리 가서 가볍게 트레이닝이라도 하려고.”
협회 내부에도 수련할 수 있는 시설은 마련되어 있다.
이용자가 많은 편이라 좀 불편하긴 하지만.
“아니 방금 9시간이나 했으면서 뭘 더하려고!”
하은이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됐으니까 여기서 좀 쉬다가 가.”
“하지만.”
[본녀도 같은 의견이니라. 오늘만 해도 마력 회로가 헐 정도로 무리하지 않았더냐.]베가가 쪼르르 날아와 하은이 잡아당기고 있는 팔을 같이 끌었다.
“푸흐흐. 알았어, 알았어. 좀 쉬다 갈 게 그럼.”
오진은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나 그럼 한 30분만 있다가 깨워줘.”
그렇게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잠깐만.”
하은이 어깨를 붙잡았다.
“왜?”
“나, 낮잠 잘 거면 여기서 자.”
그녀가 가리킨 곳은 거실 소파.
“…굳이?”
“크흠! 무, 무릎 베게 해줄 테니까 얼른.”
아.
그런 의미였군.
하여간 날 너무 챙겨주려 한다니깐.
“뭐, 불만이야?”
“아뇽.”
불만 일리가 없나.
[본녀는 불만이니라.]“앙?”
[어찌 그대만 나의 아이를 독점하려 하느냐? 본녀도 오진을 돌봐줄 것이니라!]어라.
갑자기 이렇게 된다고?
“헹. 그 몸으로 뭘 돌 봐주려고?”
[흥. 30분 정도는 원래 모습으로 현신할 수 있느니라. 그대야말로 다리 한 짝만 가지고 무릎베개를 어떻게 할 생각이느냐?]“뭐, 뭐라고?”
여신님 딜교 미쳤고.
“…저기 두 분. 싸울 거면 난 그냥 침대 가서 자렵니다.”
[앗.]“머, 멈춰!!”
하은이 손바닥을 쫙 내밀며 외쳤다.
베가와 하은의 시선이 허공에 교차했다.
[크흠. 어쩔 수 없구나.]극적으로 타협에 성공한 하은과 베가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이리 와 누워.”
탁탁.
그녀가 베가의 다리와 맞닿아 있는 왼쪽 허벅지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니 근데 자세가 좀.”
지금 소파에는 하은과 베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상태.
여기서 그녀의 다리에 머리를 베려면 등 전체가 베가의 허벅지 위에 올려지게 된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자세.
“잔말 말고 빨리!”
[어서 눕거라.]결국 두 여인의 등쌀에 밀린 오진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머리와 어깨, 등 전체에 믿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이 퍼진다.
“자, 어서 자렴.”
[후후. 본녀에게 편히 몸을 맡기고 눈을 붙이거라.]“…….”
아니.
‘이 상황에서 잘 수 있겠냐고.’
* * *
-달칵.
“오셨군요.”
충분히 힐링(?)을 한 후.
협회장 사무실에 도착하니 한태호와 한준만, 이우혁이 모여 있었다.
예전에 천우성을 잡기 위해 모였던 멤버와 같은 구성.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현재 흑성회의 상황과 주변 움직임들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내 목적은 좀 다르지만.’
상황 파악만 하는 선에서 멈출 생각은 없다.
‘빠르게 올라가기 위해선, 짓밟힐 발판이 필요하지.’
그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협회에 찾아온 것이다.
“음. 잠깐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드륵.
한태호가 서랍에서 고급스러운 은색 케이스를 하나 꺼냈다.
“받게.”
“이건….”
“하하. 전에 보상을 준다 하지 않았나?”
“아.”
오진의 눈이 반짝였다.
다른 건 몰라도 성유물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준비가 끝난 건가.
“김시후 군이 직접 제작한 성유물일세. 성능은… 후후, 직접 써보면 알 걸세.”
한태호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은색 케이스를 내밀었다.
-달칵.
케이스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