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11화
올빼미 사냥 (2)
“이건….”
케이스 안에 들어있던 은색 건틀릿 한 짝.
모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무식하게 큰 건틀릿이 아닌, 꽤나 세련되게 생긴 디자인의 건틀릿이었다.
“한 번 착용해 보게.”
“예.”
오진은 한 짝 밖에 없는 건틀릿을 어디 착용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왼팔에 끼웠다.
-찰칵.
‘오.’
왼팔에 착용하자 사이즈가 저절로 줄어들어 오진에게 딱 알맞은 사이즈로 변했다.
‘생각보다 엄청 편한데?’
과장 좀 보태서 아무것도 착용하지 않은 기분이 들 정도로 편안한 착용감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무슨 솜뭉치로 만들어진 건틀릿을 낀 듯한 느낌.
“시후가 예전에 유행했던 히어로 영화를 보더니 호들갑을 떨면서 만든 겁니다.”
한 부장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진짜 영화를 보고 만든 거였냐.’
김시후다운 행동이었다.
“근데 한 짝밖에 없는 겁니까?”
“건틀릿은 원래 한 짝만 쓰는 게 간지라면서 도통 말을 듣지 않아서요.”
“…….”
하여간 이 간지충 꼬맹이 새끼.
“뭐, 그만큼 한 짝에 모든 재료랑 기술력을 집중시킨 모양입니다.”
“효과가 뭔데요?”
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왼팔에 찬 건틀릿을 툭툭 두드렸다.
딱 봐도 엄청난 강도를 지녔다는 건 알겠는데, 다른 기능이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음… 우혁 씨 잠깐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이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건틀릿을 향해 검을 한 번 휘둘러주세요. 물론, 마력을 최대한 담아서.”
“…진심입니까?”
이우혁이 놀란 표정으로 한 부장을 바라봤다.
그는 9성을 눈앞에 뒀을 정도의 실력자.
마력을 전력으로 담아 내려친다면 5미터 두께의 철판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릴 수 있었다.
“예. 오진 씨는 건틀릿으로 우혁 씨의 공격을 한 번 막아보세요.”
“으음. 알겠습니다.”
평소 조심성이 많은 한 부장이 이렇게까지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건틀릿의 내구도가 상당한 모양.
오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우혁과 대치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한번 해보죠.”
“하지만….”
이우혁은 갈등에 찬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자신이 멍청하게 놓칠 뻔한 형의 원수를 잡아준 은인.
혹여나 귀중한 은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게 아닐까 망설여졌다.
“하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쿵!
한 부장이 듬직한 가슴을 치며 자신 있게 외쳤다.
“…그렇다면.”
이우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후우우웅!!!
강렬한 돌풍이 사무실 안에 몰아쳤다.
회오리치던 돌풍이 검날에 응축되더니,
-쏴아아아악!
무시무시한 기세와 함께 오진을 향해 쏘아졌다.
“크읏!”
오진은 피부를 따금따금 자극하는 강렬한 마력을 느끼며 날아드는 돌풍을 향해 왼팔을 들어 올렸다.
-슈우우우욱!
“무슨…?”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돌풍이 건틀릿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은색 건틀릿이 당장에라도 녹아내릴 듯 붉게 달아올랐다.
‘이건.’
오진은 건틀릿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마력을 느끼며 눈을 빛냈다.
우우우웅!
붉게 달아오른 건틀릿이 폭발하는 것처럼 사납게 진동했다.
“흐읍!”
오진은 반사적으로 건틀릿을 낀 왼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엇… 자, 잠깐만요 오진 씨!”
한 부장이 다급히 그를 말리려 했지만.
-쏴아아악!!
그보다 먼저 건틀릿에서 강렬한 돌풍이 뿜어져 나와 이우혁을 향해 쏘아졌다.
“……!”
이우혁은 엄청난 반응속도로 날아드는 돌풍을 쳐냈다.
콰아아아앙!
사무실 벽 한쪽이 산산이 박살 나며 무너졌다.
“휴우. 다행이네요. 죄송합니다, 바로 그렇게 쏘실 줄은 생각 못 했습니다.”
“이건…?”
“마력이 담긴 공격을 흡수해서 저장했다가 쏠 수 있는 성유물입니다.”
“허.”
오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완전 개사기잖아 이거?’
무려 흑사자 이우혁이 전력을 다한 공격까지 흡수할 수 있다니.
김시후가 만들어냈다는 건틀릿의 성능은 상상했던 것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사기적인 물건이었다.
“하하.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시후 그 꼬맹이 자식이 성격은 괴짜여도 실력 하나는 어디 가도 안 꿀린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일 줄은….”
“아, 물론 저장할 수 있는 마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흡수량을 넘어선 마력이 한 번에 밀려들어오면 피해를 입기도 하고요.”
“그걸 감안해도 엄청난데요.”
흡수량의 제한이 없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일단 이우혁의 공격을 막았을 정도면 흡수량이 나쁘지 않은 거야.’
아마 그대로 몇 번 더 공격이 이어졌다면 버티지 못했겠지만, 한 끗 차이로 승패가 갈리는 전투 속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한 번이나마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거였다.
‘그리고 단순히 무력화만 시키는 것도 아니고.’
오진은 박살 난 사무실 벽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수비용으로도 공격용으로도 완벽한 성능을 자랑하는 성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하하. 오진 군은 우리 ‘협회’의 에이스 아닌가. 이 정도 보상은 아무것도 아닐세.”
한태호는 노골적으로 ‘협회’라는 두 마디를 강조하며 씩 웃었다.
“음… 이러면 제가 좀 곤란해지는데요.”
이우혁은 오진의 팔에 낀 건틀릿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곤란하시다뇨?”
“저도 오늘 오진 씨에게 드릴 물건을 준비해왔거든요.”
“아.”
전에 부탁한 성유석인가.
‘이젠 필요 없는데 그거.’
생각지 않게 퀘스트를 깨버리는 바람에 굳이 고등급의 성유석이 필요하지 않게 됐다.
“끄응. 그 건틀릿에 비하면 별 게 아니지만.”
이우혁이 네모난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그 안에는 주먹 크기의 성유석이 세 개 들어있었다.
‘미친.’
성유석을 살펴본 오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최상급 품질의 8성급 성유석입니다.”
“허….”
8성급 성유석은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특히 최상급 품질이라면 더더욱.
‘8성급 괴수라 해서 꼭 8성급 성유석을 떨구는 건 아니니까.’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긴 하지만, 사실 8성급 괴수 자체는 그렇게까지 드물지 않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8성급 괴수가 그보다 낮은 품질의 성유석을 지니고 있다는 것.
때문에 8성급 괴수를 사냥해도 실제 8성급 성유석이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걸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품질 높은 성유석을 구해달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의 물건을 준비해 왔을 줄은 몰랐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값진 걸 준비해 주셨을 줄은 몰랐네요.”
“오진 씨는 저희 길드원은 아니지만, 사실상 같은 목표를 지닌 동료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정확히는 조련사와 사냥개의 관계였지만.
저쪽에서 저렇게 생각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에 쓴다.’
그냥 흡수해버리는 건 너무 아깝다.
마력이 모자란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물병자리의 각성자는 고등급 성유석을 이용해 영약을 만들 수 있다 했던가.’
만드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한다.
고등급 성유석을 구하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그러면.’
오진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 하은이 겪고 있는 마력 부족.
그걸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누나 영약 만들어서 주면 딱이겠네.’
방방 뛰며 기뻐할 하은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입가에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죠.”
보상 타임도 끝났겠다, 슬슬 이 자리에 모인 목적을 달성할 때였다.
“우선 대략적인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부장이 빔프로젝터를 가지고 와 프레젠테이션을 켰다.
“흑성회의 만행에 대해 공표된 후, 여러 길드에서 흑성회를 척살하겠다며 성명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레이저 포인터로 가리킨 곳에는 이번에 성명문을 발표한 대형 길드와 중소 길드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사실상 한국 전체가 나서서 흑성회를 소탕하려고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테러를 일으킨 조직이다.
주변 눈치 때문에라도 성명문을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중 주목할만한 건 역시… ‘천혜’길드까지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천혜 길드가요?”
천혜 길드.
7성 중 하나인 탐랑성 천상길이 이끄는 길드로 명실상부 한국 최강의 길드라 불리는 곳.
‘거긴 낙원에서 일어나는 일 아니면 개입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강화도 특별 자치 구역.
일명 낙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그들은 왕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뭐, 왕이라 해도 중세 시대의 왕처럼 폭정과 억압으로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건 아니다.
‘국가의 공권력이 아예 미치지 않은 장소여서 왕처럼 군림한다고 표현하는 거지.’
적어도 낙원 내에서는 그들이 법이고 정의였다.
그 때문일까.
천혜 길드는 어지간해서는 낙원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런 천혜 길드가 움직였다, 라.’
그만큼 이번 사건이 컸다는 뜻일까.
‘…이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
글쎄. 정말 순수하게 흑성회를 처치할 목적으로 그들이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워낙 폐쇄적이고 비밀이 많은 길드였으니까.
“문제는… 이렇게 수많은 길드가 들고 일어나도 흑성회의 꼬리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한 부장이 표정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몇몇 지부는 전에 오진 씨가 주신 정보를 토대로 드러났지만, 정작 중요한 본부의 위치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전에 붙잡은 흑성회에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신 겁니까?”
이우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최대한 빡세게 심문을 해봤지만… 무슨 금제라도 걸려 있는 건지 절대로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중에 몇 명은 심문 도중 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고요.”
한 부장의 말마따나, 정보를 철저하게 은폐하는 능력만큼은 흑성회를 따라올 조직이 드물었다.
“전에 이탈리아에도 흑성회가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애초에 본부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까?”
“아뇨.”
한 부장이 고개를 저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흑성회와 한국에 있는 흑성회는 파벌 자체가 다릅니다. 그 두 파벌의 움직임도 어느 한쪽의 지시를 받고 있다기엔 너무 다르고요. 솔직히 이름만 같을 뿐 완전 별개의 조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확하다.
“그리고… 본부의 위치는 몰라도 대략적인 규모에 대한 정보는 얻었습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최소 3천 명 이상의 흑성회원이 본부에 있다고 하네요.”
“……!”
이우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대형으로 분류되는 길드의 평균적인 인원이 대략 2~3백 명 사이.
중소 길드면 기껏해야 50명 정도 되는 게 현실인데 3천 명 이상이라니.
규모만 놓고 봤을 때 대형 길드의 열 배가 넘는 엄청난 숫자였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부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인원을.”
아무리 그들이 비각성자를 각성자로 만들 수 있다 해도 수천 명이나 되는 인원을 은밀하게 흑성회원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하는 게 있습니다.”
한 부장이 프레젠테이션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화면에는 거대한 교도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혹시 3년 전에 있었던 사건 기억하십니까? 철원 교도소 집단 실종 사건.”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3년 전에 꽤 유명했던 사건.
‘악질 범죄자들 수천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사건이었나.’
게이트 사태가 일어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범죄율이 급상승했고, 그에 따라 범죄자들의 숫자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철원 교도소는 범죄자 중에서도 살인, 강도, 인신매매 등을 저지른 가장 악질적인 범죄자만 모아두는 교도소였다.
“이번에 붙잡은 올빼미들 중에 그때 실종됐던 범죄자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때 집단 실종 사건을 일으킨 게 흑성회였군요.”
“예.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흑성회의 대부분은 그때 실종된 범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인가.
‘하긴.’
이제까지 그들이 해온 짓을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하기엔 무리가 많은 일이 많았다.
‘장석호가 특수 케이스였던거군.’
강압적으로 흑성회를 따르는 인원은 많지 않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그럼 흑성회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힌 건 2년 전부터겠군요.”
“그렇죠.”
좋아.
이제 대충 윤곽이 잡히는구만.
‘올빼미자리의 성흔은 게이트 사태가 일어났던 직후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 뒤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장석호의 말에 따르면 흑성회는 마경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즉.’
게이트 사태가 일어났던 9년 전, 흑성회는 괴수들의 세계인 마경으로 넘어갔고 그곳에서 6년간 숨어 힘을 키운 것이다.
‘그리고 3년 전부터 나와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흑성회의 정체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뭐, 그 새끼들의 정체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지만.’
오진은 한태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에 붙잡은 올빼미들의 심문이 거의 진척이 없다 하셨죠?”
“그러네.”
“제가 한 번 심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자네가 직접 말인가?”
“예.”
“흐음. 자네도 특무관이니 붙잡은 범죄자들을 심문할 권리는 충분하네만… 금제가 있으니 큰 소득을 거두긴 어려울 걸세.”
“한 번 해보는 거죠 뭐.”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소득을 거두긴 어려울 거라고?’
글쎄.
‘과연 그럴까?’
오진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