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14화
올빼미 사냥 (5)
“헤….”
검은 단발을 한 여인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변했다.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로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중급 정무관까지는 지배할 수 있네.’
물론 독에 중독시킨 상태에서 위협까지 해야 지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고작 몇 개월 전만 해도 먼지 나게 두들겨 처맞았던 아샤드 칸과 동급의 직책에 있는 각성자를 이렇게 쉽게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내가 진짜 빠르게 강해지긴 했구만.’
뭐, 솔직히 방금 제압한 여인은 직급만 같을 뿐 아샤드 칸보다 훨씬 격이 떨어져 보이긴 하지만.
설사 아샤드 칸과 동급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보면 성(星)만 따지면 아직 아샤드 칸보다도 아래네.’
당시 아샤드 칸이 7성이었으니 단순히 성의 등급만 따지면 자신보다 아직 한 단계 높지만.
최근에 8성 각성자와 하도 싸우다 보니 7성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지금 그에게 7성 각성자는 별다른 위협조차 되지 못한다.
‘아직 6성인데 이 정도라면….’
과연 자신은.
나중에 가면 얼마나 규격 외의 존재가 되는 걸까.
“흐음.”
오진 자신도 예측할 수 없었다.
‘뭐, 직접 겪어보면 알겠지.’
어차피 멈출 생각은 없다.
지금 위험을 감수하고 올빼미 파벌의 본부에 잠입한 것만 해도 더욱 빠르게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자, 그럼.”
오진은 꼭두각시가 된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흑성회 지부의 위치와 규모가 기록된 곳으로 안내해주실까?”
“…예.”
여인이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버실 안으로 들어간 오진은 슬링백 안에서 준비해온 USB를 꺼냈다.
“여기에 담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담아.”
“알겠… 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USB를 꽂았다.
“현재 흑성회의 지부는 전국에 걸쳐 총 32개가 존재합니다.”
32개나 있었던 건가.
“그중 대형 지부는 몇 개지?”
“상급 정무관 이상이 이끄는 지부는 총 6개입니다.”
“지부들의 규모는?”
“대형 지부가 대략 200명, 중소지부는 30~50명 정도입니다.”
확실히 많다.
‘지부까지 다 합치면 5천 명 이상인가.’
머릿수만 따지면 10대 길드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성흔을 부여해줄 수 있는 능력이 사기적이긴 하네.’
물론.
대가 없는 힘은 없다.
별의 힘을 받을 재능이 없는 자에게 억지로 힘을 부여했으니 그만한 부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이제까지 몇 명이 희생됐지?”
“희생… 말씀입니까?”
“올빼미 자리의 성흔을 받다가 몇 명이 뒤졌냐고.”
“아, 결함품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결함품?”
“파벌 내에선 검은 별의 은총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그리 부르고 있습니다.”
“…….”
결함품이라고?
이 새끼들 지금 사람한테 결함품이라는 말을 한 거야?
“너희들…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예?”
“사람 목숨이 무슨 도구나 부품이냐? 앙?”
“그, 그건….”
당황하는 여인.
“그런 게 아니라….”
“존나 정확해.”
“…예?”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씨익.
오진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설마 이런 부분에서 흑성회랑 통하는 게 있을 줄 몰랐네?”
찌찌뽕.
“…….”
여인은 지배를 당한 와중에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올려다봤다.
“그럼 서로 같은 생각인 사람들끼리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자고. 몇 명이나 뒤졌어?”
“…죽은 결함품의 숫자는 2천 정도입니다.”
2천이라.
‘나름 성공률이 높은데?’
현재 올빼미파벌의 총원이 5천 명 정도니 대충 4명 중 3명은 성흔을 받고 견뎠다는 뜻이다.
뭐, 물론 뒤지지 않았다뿐이지 수명 단축이나 신체 일부가 망가지는 등 다른 부작용도 줄줄이 뒤따랐겠지만.
‘어쨌든 각성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하겠지.’
75%의 확률로 비루하고 비참한 인생에서 벗어나 초인이 될 수 있다.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렇게 흑성회원이 바글거리는 거고.’
흑성회가 아이들을 유괴해 인질로 쓰다 죽이건, 힘없는 민간인들에게 마수를 풀어 학살하건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도덕은 욕망 앞에서 빛이 바래기 마련이니까.
“여기… 말씀하신 정보입니다.”
여인이 USB를 내밀었다.
‘좋아.’
이 정보를 길드에 퍼트린다면.
눈에 불을 켜고 흑성회의 뒤를 쫓고 있는 수십, 수백의 길드가 그들을 덮칠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고 해도 한 나라 전체가 움직이는 건 막을 수 없겠지.’
막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지금처럼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있을 이유도 없다.
“푸흐흐.”
올빼미 파벌을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정보가 든 USB를 내려다보며 오진은 짙게 웃었다.
“더… 물어보실 건 없습니까?”
“흐음.”
원래 목표로 했던 정보는 이미 손에 넣었지만.
“천도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흑성회의 핵심정보를 쥐고 있는 정무관도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다른 흑성회 파벌들의 움직임은?”
“현재 이탈리아에 있는 거머리 파벌과 일본에 있는 해마 파벌 외에는 움직임이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해마 파벌?
“해마 파벌은 몇 위의 집행관이 이끌고 있는데?”
“서열 7위의 집행관입니다.”
천도윤보다 아래인가.
‘일본이면 많이 가깝긴 한데.’
지금은 외국까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일단 이 정도로 끝낼까.’
죽치고 앉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건 많지만.
이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는 잠입했다는 게 들킬 위험이 있었다.
‘여기서 걸리면 끝이지.’
빈집이니 뭐니 해도 본부에 있는 흑성회원만 3천이다.
재수 없이 둘러싸이기라도 했다가는 도망칠 수 없다.
“좋아. 여기까지.”
오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여인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있었던 일들은 다 잊고 아무런 신경도 쓰지 마.”
“…예.”
그녀를 제압하는데 사용했던 독은 이미 해독해뒀다.
꼬리가 잡힐 만한 일은 없으리라.
‘그럼 나가볼까.’
오진은 USB를 챙기고 밖으로 향했다.
혹시 돌아가는 길에 다른 흑성회원과 마주칠까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돌아갔지만,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복도는 텅 비어있었다.
“푸흐흐. 가뿐하구만.”
흑성회의 본부에 혈혈단신으로 잠입한 것치고는 별다른 위기 없이 잘 넘어갔다.
‘이제 내려가기만 하면….’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우우우웅!
“에이 씨, 갑자기 뭔 일이야?”
“다른 지부에서 긴급 요청이 왔다더라고.”
갑자기 게이트 밖으로 우르르 흑성회원이 몰려나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어 씨발?’
순식간에 출근길 만원 전철마냥 흑성회원으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이런 미친.’
마지막에 와서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요즘 거머리 여왕에 협회에 아주 정신이 없네.”
“에휴, 이럴 때 도윤님이라도 있었다면.”
“계획이 있으시겠지. 우리는 잠자코 시키는 일만 하면 돼.”
다행히 그들은 오진이 같은 흑성회원이라 착각했는지 별 신경 쓰지 않고 잡담을 나눌 뿐이었다.
‘빌어먹을.’
하지만 그것도 시간 문제.
누구 한 명이라도 자신을 알아보는 순간 기껏 세워둔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지배.’
다급하게 지배를 사용했다.
검은 먹구름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퍼졌다.
-띠링!
[지배하려는 대상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지배에 실패했습니다!]염병할.
‘여기서 다 때려눕힐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때려눕히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그 정도로 큰 소란을 일으켰을 때의 후폭풍이었다.
‘본부에서 바로 지원 병력이 튀어나올 거야.’
바로 코앞이나 마찬가지니 1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수백, 수천의 병력이 우르르 몰려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끝장.
아무리 오진이라 해도 그 인원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이대로 날 못 알아보고 1층까지만 내려가면….’
오진은 초조한 표정으로 6층에서 5층으로 바뀌고 있는 전광판을 바라봤다.
그때.
“…어?”
“왜?”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다른 팀 아냐?”
“잠깐 기다려 봐.”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흑성회원 하나가 오진을 빤히 주시했다.
‘씨바.’
엿됐다.
“어, 잠깐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뇌, 뇌랑! 뇌랑이잖아!!!”
“뭐, 뭐야? 뇌랑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흑성회원들이 오진을 둥그렇게 포위했다.
“…….”
오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싼 흑성회원들을 돌아봤다.
“소란스럽군.”
“…어?”
“어느 팀 소속이지?”
역으로 흑성회원들에게 물었다.
“흐, 흑익 3팀 소속… 입니다?”
“3팀이라. 거기면 날 모를 수도 있겠군.”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올빼미들.
“하여간 도윤님도 정보 통제를 너무 철저하게 하셔서 문제란 말이야.”
“설마….”
“아, 아니 뇌랑은 직녀성의 각성자 아니었어?”
오진은 그들을 쭉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검은 별의 은총을.”
“……!”
올빼미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띠링!
그와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긴급 지원을 간다 했던가?”
“예, 옙! 그렇습니다!”
“수고들 해.”
탁탁.
흑성회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올빼미들을 뒤로한 채.
* * *
“와 씨! 뇌랑이 흑성회 소속이었다니!”
빌딩 밖으로 나온 올빼미들은 호들갑을 떨며 차에 탑승했다.
“그러면 천우성님이 죽으셨다는 것도 거짓말 아냐?”
“아! 맞아! 우성님을 쫓아가 잡은 게 뇌랑이라 했잖아!”
“푸하하핫! 뭐야? 그럼 협회 놈들 우리 손에 놀아나고 있었던 거였어?”
올빼미들은 상상도 못 했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이야, 역시 도윤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니깐!”
“설마 뇌랑까지 끌어들였을 줄 누가 알았겠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직녀성의 사도가 사실은 흑성회와 한 패였다니!
“캬하! 이거 우리 파벌이 사실상 한국을 다 먹은 거 아냐?”
“도윤님께서 그러셨잖아. 곧 검은 별이 지배하는 세계가 올 거라고.”
“흐흐. 그때가 되면 우리도….”
올빼미들의 입가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와… 그나저나 뇌랑이라니. 전에 뇌랑 싸우는 거 방송으로 본 적 있는데 진짜 말도 안 되게 세던데.”
올빼미 중 하나가 수줍은 표정으로 꾸욱 주먹을 쥐었다.
“나중에 나도 뇌랑이 소속된 팀으로 옮길 수 있을까?”
주먹 쥔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