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1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16화
올빼미 사냥 (7)
“아으….”
“끄윽. 꺽.”
헐떡이는 숨소리.
보랏빛 연무가 가득 찬 교도소 내부에 처절하게 울려 퍼지던 비명 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안 뒤졌으니까 쇼하지 마 새끼들아.”
오진은 구속복에 묶인 올빼미들을 바라보며 피식 입꼬리를 울렸다.
“여기서 뒤지면 안 되지.”
이들에게 죽음은 지나친 사치였다.
“아, 아으.”
올빼미가 눈물에 젖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차라리 죽여달라는 듯한 표정.
오진은 느긋하게 고개를 저었다.
“살아서 죗값을 치러야 하잖아? 그치?”
“하으. 으… 아.”
끊어질 듯한 신음을 흘리며 풀썩 고개를 떨궜다.
‘이 정도면 됐겠지.’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이렇게 약해진 상태라면 어렵지 않게 성흔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성흔 흡수에 무조건 죽어야 흡수할 수 있다는 조건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팔팔할 때 흡수하는 건 아직 불가능했지만.
빈사에 가까운 상태라면 말이 달랐다.
‘흑천.’
꾸르륵.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검은 먹구름이 보랏빛 연무에 뒤섞어 교도소 내부에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탐욕스럽게 꾸물거리는 먹구름.
검은 먹구름은 묶여 있는 올빼미들의 왼쪽 가슴을 향해 움직였다.
“하아.”
꾸르르르륵!
흑천의 구름을 타고 성흔의 마력이 흘러들어왔다.
여기 붙잡힌 각성자 모두 같은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지니고 있어 새로운 성흔을 얻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무려 2천 명이 넘는 각성자들에게서 마력을 뽑아먹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푸흐흐! 이거 영약이 따로 없네!’
당연히 질적인 측면에선 한창 떨어지는 마력이었지만.
압도적인 양이 그 단점을 커버하고도 남았다.
-쿠르르륵!!
‘미쳤네 이거.’
해일처럼 밀려 들어오는 마력에 오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그가 생각했던 가장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
‘꾸준히 수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남의 걸 통째로 뺏어 먹는 것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력이 부족할 일은 없겠구만.”
뭐, 사실 전에도 마력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이젠 진짜 펑펑 성흔을 사용해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마력이 쌓였다.
‘그리고.’
한 번에 무려 2천 명이 넘는 각성자의 성흔을 흡수했다면.
‘…혹시?’
오진은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왼쪽 가슴을 내려다봤다.
그에 호응하듯.
-쿠르르르르륵!!!!
왼쪽 가슴에서 폭발하듯 검은 먹구름이 치솟아 올랐다.
-띠링!
[막대한 양의 성흔을 흡수했습니다!] [‘흑천’의 다섯 번째 개화가 시작됩니다!]“그렇지.”
오진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한 번에 2천 명이 넘는 각성자의 성흔을 흡수했는데 당연히 이래야지.’
처음부터 평소에 그닥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던 마력보다 흑천의 개화를 기대하고 짠 계획이었다.
-쿠르르르륵!!
폭발하듯 몸 주변에 회오리치던 먹구름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흑천이 ‘오성개화(五星改化)’에 도달했습니다.] [흑천의 특성들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봉인되어 있던 거문고자리 성흔의 힘이 일부 해방됩니다.] [신규 특성 ‘개천(開天)’을 습득했습니다!]흑천이 오성개화에 도달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강렬한 힘이 들끓어 올랐다.
“하아.”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한층 더 굵고, 짙어진 뇌전 줄기가 사납게 타올랐다.
전신을 뜨겁게 달구는 힘을 즐기는 것도 잠시.
오진의 시선은 ‘신규 특성’이 적힌 메시지창으로 향했다.
‘개천?’
뭐지?
“어디 보자.”
오진은 상태창을 열어 ‘개천’의 상세 정보를 확인했다.
치직!
상태창에 노이즈가 생기며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떠올랐다.
“뭐야?”
몇 번을 해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뭔 문제가 생긴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아직 내가 열람할 수 없는 정보거나.’
이런 현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기에 뭐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끄응.”
몇 번 더 시도해보던 오진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네.’
고민해도 알 수 없는 것에 괜한 시간을 빼길 여유는 없었다.
“그러면….”
오진은 가스통 위에 앉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흑천의 개화 단계가 높아지면서 얻을 수 있는 건 막대한 힘만이 아니다.
회귀자를 연기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어쩌면 힘보다 더 중요한 것.
-치직!
[흑천의 개화 단계가 높아짐에 따라 전승이 시작됩니다.]‘와라.’
이신혁이 겪은 1회차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백두산에 성유물이 묻혀 있다고?
-응. 선영이가 가져온 확실한 정보야.
이우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신혁 앞에 앉았다.
-위성교 녀석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 성유물을 찾는 중이라 하더라고.
-몇 성급이길래?
-그것까진 모르겠어.
이우혁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위성교 녀석들이 혈안이 나서 찾는 걸 보면 보통 성유물은 아닐 거야.
-하긴, 쉽게 움직일만한 놈들은 아니지.
이신혁이 눈을 빛냈다.
-이거 우리가 찾으면 대박 아냐?
-…형,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윽.
움찔.
이신혁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성유물을 찾는 것보다 위성교 녀석들을 처단하는 게 더 중요해.
-끄응. 아, 알고 있거든?
-…하아.
시선을 피하는 이신혁을 바라보며 이우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시간이 남으면 한 번 찾아보자. 놈들이 혈안이 돼서 찾고 있는 성유물을 우리가 가로채면 미끼로도 쓸 수 있을 테니까.
-그, 그치? 그 말을 하려 했던 거였어!
-예, 예. 알겠습니다 형님.
이우혁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형….
-아, 잠깐만.
이신혁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물끄러미 화면을 바라봤다.
그의 입꼬리가 씰룩쌜룩 올라갔다.
-…하은 씨한테 연락 온 거야?
-어? 으, 응.
-뭐라고 왔는데?
-자기 이제 동생 간병하다 잘 테니까 잘 자라고.
-…그걸 보고 그렇게 좋아했던 거야?
이우혁이 헛웃음을 흘리며 쯧쯧 혀를 찼다.
-무, 뭐! 무슨 문제라도 있냐?
-하여간 형도. 그렇게 해서 언제 고백하려고?
-지, 지는!! 너도 아직 선영 씨한테 고백 못 했잖아!
-크, 크흠!
이우혁이 뺨을 붉히며 헛기침을 흘렸다.
-그나저나 하은 씨의 동생이라는 사람.
-어, 응.
-만나봤어?
-…아니.
-음. 형 그 사람 얼굴이나 이름도 모르지 않아?
-응.
이신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겠는데. 그 동생이라는 사람이 날 좀 꺼리는 거 같더라고. 이름도 가르쳐주지 말라 했다더라.
-혹시 하은 씨랑 그 동생이란 사람이랑 사귀는 거 아냐? 친동생도 아니라며.
-그, 그런 건 아냐!!
쾅!
이신혁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며 벌떡 일어났다.
이내 뻘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전에 한 번 물어본 적 있거든. 그 보살펴준다는 동생이랑 사귀는 사이냐고.
-아니래?
-응. 연인 사이는 아니래.
이신혁이 고개를 저었다.
-뭐 그럼 가족 같은 관계인가? 보육원 시절부터 쭉 같이 있었다며.
-아니, 그것도 아니라던데.
-엥? 그럼 무슨 대체 무슨 사이래?
이우혁은 동그랗게 눈을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이신혁은 잘근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쥐어짜내듯.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함께 있는 게 당연한 사이━ 라고 하더라.
한숨 섞인 말을 마지막으로.
-치지직!
[각성자 ‘이신혁’의 일부 기록이 성공적으로 전승됐습니다!] [《나침반자리의 창술 Lv8》 스킬이 《나침반자리의 창술 Lv9》으로 상승합니다.]전승이 끝났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침반자리의 창술이 9레벨로 올라갔다.
“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을 천천히 되새기던 오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 있는 게 당연한 사이, 라.’
그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건가.
“푸흐흐.”
어째서인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한동안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던 오진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가늘게 눈을 떴다.
‘일단 얻은 정보를 정리해 볼까.’
우선 1회차 자신에 대한 것.
‘간병을… 하고 있다 했지.’
그렇다면 자신은 그녀에게 간병을 받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던 걸까.
‘뭐, 앤트혼 무리에 버려졌을 테니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신혁을 피했던 것도 이해가 가네.’
1회차 때.
하은은 자신이 아닌 이신혁에게 구원받았다.
그 소식을 들었다면.
‘…만날 수 없었겠지.’
자신을 괴수 무리에 던지고 도망친 놈이 하은의 눈을 치료해줬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과연 1회차 때 자신은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
글쎄.
직접 겪지 못했던 일이기에, 그때 느꼈을 감정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뭐… 이건 제쳐두고.”
한동안 생각을 이어가던 오진은 이내 고갤 저었다.
이신혁의 기억에서 얻은 또 다른 정보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백두산에 묻혀 있다는 성유물이랑 위성교.’
위성교.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이름.
‘백두산에 가면 놈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가?’
글쎄.
이번 기억에선 ‘언제’ 있었던 일인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알 방법이 없었다.
‘이우혁이 위성교에 대해 모르는 시점이니까 지금보단 이후 같긴 한데.’
대체 위성교가 어떤 단체인지.
왜 이우혁과 이신혁이 위성교의 뒤를 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가볼 만한 가치는 충분할 것 같네.”
성유물이 묻혀 있다는 곳의 위치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간다 해도 성유물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 번 가볼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당장 급하게 갈 필욘 없고.’
아직 이우혁이 위성교에 모르는 시점이니 시간적 여유는 있다.
‘이번에 얻은 힘을 몸에 익힐 시간 정도는 충분하겠네.’
파지지직!
오진은 한층 짙어진 뇌전을 손바닥 위에 만들어내며 씩 웃었다.
“어디 그럼.”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아… 으.”
“끄헉… 억.”
흑천의 구름에 마력을 빨아 먹힌 올빼미들이 눈을 하얗게 까뒤집으며 바들바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에게선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실낱같은 마력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오진이 일부러 남겨둔 마력.
한 줌에 불과한 양이었지만, 성흔의 마력을 남겨둔 이유는 하나였다.
“지배.”
다시 한번.
검은 먹구름이 교도소 전체에 퍼져나갔다.
“…헤.”
“헤, 헤헤.”
곧이어 흐리멍덩한 눈으로 멍청한 표정을 짓는 올빼미들.
흑천의 단계가 올라서며 특성이 강화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올빼미들의 정신 상태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일까.
한 번에 2천 명이 넘는 숫자의 올빼미들에게 지배를 성공시킬 수 있었다.
“오늘 여기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려.”
“…예.”
“명을… 따르겠습니다.”
“앞으로 평생에 걸쳐 성실하게 죗값으로 치르고 새끼들아.”
푸흐흐.
오진은 웃음을 흘리며 독가스가 든 가스통의 벨브를 잠갔다.
“그럼.”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빙글, 몸을 돌렸다.
붙잡힌 올빼미들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자알~~~~ 먹고 갑니다!!!”
꺼-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