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2화
성소(星所) (1)
정식으로 협회 소속이 된 후 일주일.
그동안 3성으로 올라서기 위해 쉬지 않고 게이트를 드나들었지만, 결국 거문고자리의 성흔의 획이 더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하긴 일주일 만에 3성이 되려는 건 양심이 없는 거지.’
예상했던 일이기에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후우.”
긴장에 찬 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11월 13일.
베가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성소라.’
별들의 신전.
성좌들이 기거하고 있는 세계.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직접 가는 건 처음이었다.
“어으, 똥줄 타네 쓰바.”
준비는 나름 철저하게 했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베가를 직접 만나 얘기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정신 차리고.’
깊게 호흡을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여기서 실수하는 순간,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되어버린다.
“가볼까.”
짝!
가볍게 양 뺨을 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웅성웅성.
서울 홍대.
한때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거리는, 이제 다른 종류의 열정으로 들끓고 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아아, 위대한 성좌시여!!!”
“미천한 벌레에게 별자리의 힘을!”
1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광기나 다름없는 열기에 휩싸인 기도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전에 뉴스에서 보던 건가.’
성소로 향하는 게이트 앞에 바글바글 모인 사람들은 각성자가 되기 위해 성좌를 향해 애달픈 구애를 보내는 중이었다.
“…저런 꼴을 본다면 오히려 선택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겠다만.”
낡아빠진 옷과 까무잡잡하게 낀 때.
대체 며칠을 씻지 않은 건지 끔찍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생명의 가치가 우스운 농담이 된 세계다.
무력도, 재력도, 권력도 없는 이들의 삶이란 한 없이 비참하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것뿐이다.
남들의 삶까지 신경 써줄 의무도, 의지도 없다.
-우우우우웅!
게이트 앞에 모인 사람들을 지나쳐 성소로 통하는 게이트로 다가갔다.
30여 미터는 넘을 듯한 거대한 게이트.
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균열은 보는 것만으로 압도될 것 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게 세계적으로 수백 개는 넘게 있다고 했던가.’
드럽게 크구만.
“어디 그럼.”
푸른 균열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입구를 지키거나 신분을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굳이 지킬 이유가 없지.’
호랑이굴 앞을 토끼가 지키는 격이다.
수백의 성좌들이 한곳에 모인 신전에서 어느 미친 각성자가 깽판을 치겠는가.
‘심지어 성소 안에서는 율법의 제약이란 것도 훨씬 덜하다고 했던가.’
함부로 소란을 일으켰다가는 말 그대로 참사가 일어나리라.
-우우우웅!
푸른 빛으로 타오르는 균열을 넘었다.
몸이 붕 뜨는 듯한 감각과 함께━
“…허.”
눈앞에 우주가 펼쳐졌다.
검은 어둠 속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우주를 반으로 가르듯 길게 뻗어 있는 은하수.
별빛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는 곳.
‘여기가 성소.’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오진은 입이 헤, 벌어진 줄도 모르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은빛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은빛의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여러 갈래로 갈라진 갈림길이 나타났다.
갈림길의 끝에 각양각색의 형태를 지닌 신전의 모습이 보였다.
‘은하수로 이루어진 나무를 보는 느낌이구만.’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나무줄기 끝에 달린 열매처럼 느껴졌다.
“…근데 여기서 베가를 어떻게 찾냐.”
눈에 보이는 신전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데 그중 어디서 베가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눈살을 찌푸리며 멈춰 서 있자, 근처를 지나가던 각성자 하나가 말을 걸어왔다.
“성소는 처음이신가요?”
2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상냥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성좌님을 찾아뵈러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요.”
“하하. 저도 처음에 많이 헤맸죠. 이쪽으로 오세요. 지도가 있는 곳 가르쳐 드릴게요.”
역시 지도가 있는 건가.
하긴.
지도 없이는 당최 찾아갈 방법이 없는 곳이다.
“여깁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에는 무슨 관광지 안내도처럼 생긴 큰 지도가 있었다.
‘성좌가 이렇게 많았나.’
생전 처음 보는 별자리들도 많이 보였다.
‘어디 보자. 베가가 있는 곳은….’
거문고자리를 찾아 지도를 살폈다.
수백 개에 달하는 별자리가 그려져 있었지만, 거문고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소의 가장 높은 곳.’
나무로 치면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베가가 진짜 대단한 성좌긴 하나 보네.’
그녀와 같은 높이에 있는 것은 폴라리스, 데네브와 같은 다른 북극성 말고는 없었다.
“찾으셨습니까?”
“예. 위로 한참 올라가야 하네요.”
“…위로 한참 올라가신다면.”
청년이 크게 눈을 떴다.
“호, 혹시 황도 12궁의 각성자신가요?!”
그는 선망에 가득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슬쩍 돌려 확인해 보니 황도 12궁의 별자리들은 거문고자리의 바로 아래 위치해 있었다.
피식.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이 좋았죠.”
“와아… 진짜 황도 12궁의 사도셨다니.”
부러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황도 12궁?”
“어디?”
청년의 목소리를 들은 걸까.
주변에 있던 다른 각성자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다.
“으… 부럽다 진짜.”
“나도 황도 12궁의 별자리만 있으면….”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뜨거운 시선이 오진에게 집중됐다.
특히 지도 주변의 각성자들은 성소에 처음 출입한 초보 각성자들이 많다 보니 유독 많은 시선이 쏠렸다.
오진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들을 느긋이 지켜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여기 제 명함입니다! 혹시 더 물어보실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몸을 돌려 가려 하니 상냥한 인상의 청년이 불쑥 명함을 내밀었다.
황도 12궁의 사도와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보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오진은 명함을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별자리의 이름값이 중요하긴 하네.’
먼저 나서서 뭘 할 필요도 없이 저쪽에서 알아서 넙죽 엎드리며 다가와 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었다.
“하하. 그럼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갓 전입해 온 이등병처럼 차렷 자세로 답하는 청년.
이쯤 되면 도움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누군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자, 그럼.”
우리 여신님을 만나러 가볼까.
오진은 은빛 빛무리로 이뤄진 길을 천천히 올라갔다.
“에휴.”
“난 언제 저쪽 길로 올라가 보냐.”
“꿈 깨라 인마. 황도 12궁 쪽으로 가는 길을 우리가 어떻게 가냐.”
각성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황도 12궁의 별자리라.’
피식.
오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황도 12궁을 지나쳐.
직녀성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 * *
[왔구나.]성소 꼭대기에 있는 은빛 신전에 들어가니 아름다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종교적인 심볼도, 화려한 벽화나 문양도 없는 텅 빈 신전.
그 안에━ 찬란히 빛나는 은발의 여신이 부유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어, 베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다,
“아.”
흠칫 어깨를 떨며 발걸음을 멈췄다.
“…죄송합니다.”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구나.]베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허공을 날아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에겐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기억.
그 기억과 현실의 괴리감에 고통받고 있는 회귀자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다.
[본녀는 그대가 기억하는 여인이 아니다.]“…아뇨.”
오진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 기억 속의 베가 님은━ 언제나 지금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으음. 또 부끄러운 말을 하는구나.]베가는 크흠,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아부를 떨어도 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느니라.]보석처럼 빛나는 금색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일단 스타트는 좋고.’
아침에 먹은 칼로리바가 목구멍 밖으로 올라올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어쨌든 잘 먹히긴 한 모양.
[그건 그렇고.]그녀는 다급히 화제를 돌리며 오진의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고작 일주일 안 본 사이에 2성에 올라서다니… 과연, 역천의 별이로구나.]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답했다.
“이미 해본 일이니까요.”
[후훗.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구나.]베가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선 그대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고 싶구나. 그대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본녀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씨버럴.
드디어 올 게 왔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준비해둔 이야기를 풀어냈다.
“머지않은 미래에… 천마란 존재가 나타날 겁니다.”
[천마?]“예.”
이건 ‘흑천을 지닌 자가 세계를 멸망시킨다’라는 베가의 말에서 대충 생각해 낸 칭호였다.
흑천을 지닌 악마이니 천마.
단순하기 짝이 없는 칭호였으나, 원래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울수록 거짓말은 잘 통하는 법이다.
‘진짜 천마라고 불렸을 리는 없겠지만.’
천마라니.
무슨 B급 무협지도 아니고 그딴 칭호를 쓸 리가 없잖아.
[그럼 그 천마라는 자가 흑천을 지니고 있단 말이냐?]“그렇습니다. 하지만….”
쓰읍.
한 번 심호흡하고.
“천마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하게 숨기고 지냈기 때문에 그의 얼굴도, 이름도, 아니 애초에 그가 인간인지 아닌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예. 회귀하는 그 순간까지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으음?]베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가 ‘별의 맹약’을 사용해 과거로 회귀했다면 필시 흑천의 주인을 죽였단 의미인데… 그가 죽고 나서 얼굴조차 확인하지 못했던 게냐?]“예?”
별의 맹약은 또 뭔데요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