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22화
용이 잠든 곳 (5)
“하.”
강찬혁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신경질적으로 올라간 눈꼬리.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단검을 빙글 돌렸다.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여전하군.”
“그 헛소리에 통째로 길드가 날아간 병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참 무섭기도 하네.”
랄부가 덜덜 떨리는 느낌이야.
“이 새끼가…!”
와락.
강찬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손에 쥔 단검을 역수로 쥐더니 사납게 발을 박찼다.
슈욱!
사납게 발을 박찬 것치고 땅이 울리지도, 바닥이 움푹 패지도 않았다.
마치 푹신한 침대 위에서 점프한 것처럼.
소리 없이 날아오른 강찬혁이 동굴 벽을 타고 질주했다.
“모가지에 구멍이 뚫리고도 그딴 건방을 떨 수 있는지 보자!”
“새끼들 어째 레퍼토리가 다 한결같냐.”
검은 별을 섬기면 언어 능력이 퇴화라도 하는 걸까.
뭐 만나는 새끼마다 하는 말이 다 거기서 거기야.
-슈욱!
뒤로 넘어지듯 등을 굽혀 목덜미를 향해 날아드는 단검을 피했다.
오른발을 축으로 빙글 몸을 돌려 강찬혁의 뒤통수를 잡아 동굴 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크윽!”
강찬혁이 다급히 텀블링하며 동굴 벽에 충돌하는 걸 가까스로 피했다.
-파자자자작!!!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강찬혁에게 푸른 뇌전의 격류가 쏟아졌다.
“이따위 것…!”
강찬혁은 쏟아지는 푸른 뇌전을 향해 역으로 달려들었다.
현재 협회를 통해 공표된 뇌랑의 성은 5성.
8성 각성자인 그와는 무려 3성의 차이가 있었다.
3성의 격차라면 어설픈 공격 따위는 적당히 몸으로 때워도 충분━
-파지지지지직!!!
“아갸갸갸갸갹!!!!”
푸른 뇌전이 정수리부터 사타구니를 관통하며 끔찍한 격통이 퍼졌다.
순간적으로 전신이 마비되며 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빠악!
앞으로 고꾸라지는 강찬혁의 머리를 마치 축구공을 차듯 걷어찬다.
빙그르르 팽이처럼 돌아간 강찬혁의 몸이 동굴 벽에 처박힌다.
“커헉! 컥! 쿨럭!”
강찬혁은 피를 토하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뜬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미, 미친 이게 5성의 힘이라고?”
방금 몸을 강타한 뇌전에 담긴 힘은 아무리 못해도 자신과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성(星)’을 지닌 각성자의 것이었다.
‘이제 8성 정도는 어렵지 않네.’
오진은 충격에 몸을 떠는 강찬혁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8성 각성자 중에서도 최상위의 실력을 지닌 이우혁이라면 모를까.
좋게 쳐줘도 중간이 될까 말까 한 실력을 지닌 강찬혁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저놈들인데.’
슬쩍 시선을 돌려 묵묵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다섯 명의 올빼미를 바라봤다.
밤 사냥꾼이라 불리는 흑성회의 정예들.
그들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쉽게 승부를 점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좋아.”
쿵쿵.
거칠게 뛰는 심장.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거기서 구경만 하게?”
오진은 올빼미들을 향해 느긋하게 손을 까딱였다.
“…….”
“…….”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채 묵묵히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올빼미들이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도로 훈련받은 암살자를 연상케 하는 정갈한 움직임.
-슈슈슈슈슉!!
셀 수 없는 숫자의 깃털이 검은 빗물이 되어 동굴 안에 몰아쳤다.
깃털이 폭발하며 일어난 강렬한 열폭풍이 오진을 덮쳤다.
타닥!
오진은 다리에 뇌전을 집중하며 발을 박찼다.
“흐읍!”
길게 이어지는 뇌전의 흔적.
날아드는 깃털을 피하면서 올빼미들을 향해 와이어 슈터를 발사했다.
-타앙! 타앙! 타앙!
여섯 줄의 와이어가 올빼미들을 노리고 쏘아졌다.
“…큿!”
미처 피하지 못한 한 올빼미가 와이어에 걸려들었다.
“폭뢰.”
“크으으으윽!!”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의 격류가 와이어를 타고 올빼미에게 흘러 들어갔다.
“커헉… 컥! 끄륵.”
입에서 새하얀 거품을 쏟아내며 기절한 올빼미.
“엥? 한 방에 기절한다고?”
밤 사냥꾼이니 뭐니 온갖 폼을 잡아 놓고 꼴랑 한 방에 기절하다니.
오진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는 올빼미를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새끼들 원래 이렇게 약했나?’
아니.
풍기는 기운이나 기민한 움직임, 깃털이 폭발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하면 밤 사낭꾼의 실력은 모두 아샤드 칸 이상이었다.
‘밤 사냥꾼이 약한 게 아니야.’
자신이.
지나치게 강해진 거다.
“뭐 빠지게 돌아다닌 보람이 있구만.”
씨익.
오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창을 들어 올렸다.
남은 올빼미들이 네 방향으로 흩어져 오진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뒤에서 두 놈, 위에서 하나, 앞에서 하나.’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사용해 그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오진이 창대를 넓게 잡으며 빙글 몸을 돌렸다.
‘우선 뒤에 두 놈!’
촤악!!
반원을 그리며 넓게 창을 벤다.
창날을 타고 일렁이는 뇌염이 부채꼴 형태로 퍼져나갔다.
“크윽!”
“큭!”
올빼미들은 다급히 무기를 들어 공격을 막았지만 뇌염의 속성은 어디까지나 불이 아닌 뇌전.
무기를 타고 흘러든 전격에 올빼미들이 침음을 삼키며 비틀비틀 물러났다.
“하압!”
앞쪽에서 달려든 올빼미가 송곳 형태로 뭉친 깃털을 내질렀다.
오진은 왼팔을 들어 깃털로 이뤄진 송곳을 막았다.
카각!
왼팔에 착용한 건틀릿에 송곳이 격돌했다.
“뒤졋!!!”
올빼미의 성흔이 밝게 타오르더니 송곳 끝부분에서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뒤진 건 네 엄마고 인마.”
“무슨…!”
건틀릿이 붉게 달아오르며 폭발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오진은 건틀릿을 찬 왼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콰아아앙!
건틀릿에 흡수됐던 폭발이 그대로 올빼미를 덮쳤다.
“커헉!!”
피를 쏟으며 튕겨 나간 올빼미.
‘마지막은.’
오진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검은 깃털로 이뤄진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던 올빼미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사납게 떨어져 내렸다.
‘이건 피하기 어렵겠구만.’
상관없다.
피할 수 없다면 막으면 될 뿐이었으니깐.
-우웅!
“크윽! 이건 또 뭔…!”
오렌지색 팔찌가 빛을 뿜으며 오진의 앞에 반투명한 보호막이 만들어졌다.
-카가가가강! 콰작!
물론 1초 만에 보호막이 박살 났지만.
‘1초면 충분하지.’
오진은 창대를 빙글 돌려 공중에 날고 있는 올빼미의 배를 쑤셨다.
-푸욱!
“커헉!!”
창날을 타고 쏟아지는 핏물.
“크으으윽! 지, 지금!”
“음?”
배가 꿰뚫린 채 꼬치에 꿰인 닭고기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올빼미가 두 손으로 창날을 움켜쥐었다.
“흐흐! 잘했어!”
올빼미의 희생으로 생긴 짧은 빈틈.
강찬혁이 단검을 쥔 채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단검 자루 바닥에 손바닥을 붙이고 손가락을 오므렸다.
그 상태로 팔을 높게 들어 올리니, 마치 전갈이 꼬리를 높게 들어 올린 듯한 자세가 됐다.
“《천독극(千毒戟》!”
성흔이 타오를 기세로 빛나며 단검 끝에 녹색 빛무리가 맺혔다.
천 가지의 극독이 서린 단검.
스치기만 해도 죽음으로 이끄는 전갈의 꼬리가 오진을 노리고 쏘아졌다.
-츠즛!
오진은 창을 버리며 공격을 피했다.
재빠른 반응 덕에 오른팔 살짝 베이는 정도로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하하핫!! 엔드 게임이다 이 자식아!!”
강찬혁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피부를 얇게 벤 정도에 불과하지만.
단검에 서린 극독은 그 정도만으로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 충분했다.
하지만.
“새끼 엔드 게임 뜻을 모르네.”
“뭐?”
오진은 바닥에 내던진 창을 집어 들며 망설임 없이 오른팔을 잘라냈다.
촤악!
어깻죽지부터 잘려나간 오른팔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뭐, 뭐 이런 미친 새끼가….”
창백하게 질린 강찬혁의 얼굴.
오진은 환하게 웃으며 왼팔을 들어 올렸다.
타앙!
와이어가 강찬혁의 목을 휘감았다.
“이럴 땐 엔드 게임이 아니라 체크 메이트라 해야 하는 거야 모지리 새끼야.”
씨이이이이잉!!
강찬혁의 목을 휘감은 와이어가 급속도로 수축하며 강찬혁의 몸이 쭈욱 딸려왔다.
“으아아아아아!!!”
뇌전을 머리 쪽에 집중시킨 후 망치를 내려찍듯 강찬혁의 인중을 향해 이마를 내려찍었다.
파각!!!
섬뜩한 파골음과 함께 강찬혁의 안면이 움푹 함몰됐다.
“하아.”
오진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돌렸다.
남은 올빼미들의 숫자는 둘.
처음 그를 뒤에서 습격했던 두 명이었다.
핏물에 젖은 시선이 올빼미를 향했다.
“뭐해? 안 와?”
잘려나간 오른팔에서 피를 쏟아내면서도.
오진은 느긋한 걸음으로 남은 두 올빼미를 향해 다가갔다.
“크읏!”
“퇴, 퇴각. 퇴각한다!”
두 올빼미가 몸을 돌려 도망쳤다.
“어딜 도망가려고?”
창을 집어 들어 도망치는 둘을 겨눴다.
‘충전 3스택.’
파지지지직!!
뇌전이 응축된 창을 도망치는 두 올빼미를 향해 집어 던졌다.
-콰자자자작!!
“아아아악!!”
“으갸갸갸갸갸아갹!!!”
창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는 뇌전에 휩쓸린 올빼미들이 까맣게 타들어 간 채 쓰러졌다.
“쯧.”
바닥에 나뒹구는 여섯 구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꾸르륵.
흑천의 먹구름이 빠져나와 시체 안에 깃든 성흔의 마력을 흡수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여섯 명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오른팔이 날아갈 줄은 생각 못 했는데 말이지.”
설사 팔 한 짝이 잘려나갔다 해도 물만 충분하면 수력 친화 스킬로 금방 재생시킬 수 있었지만.
이 칙칙한 암석들로 가득한 동굴에 팔을 재생시킬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독부터 제거해볼까.’
강찬혁의 독 때문인지 보랏빛으로 변한 오른팔에 손을 댔다.
‘전갈자리의 성흔.’
전갈자리의 성흔을 지니고 있다 해서 독에 중독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시간만 넉넉하다면 걸린 독을 해독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보랏빛으로 변했던 오른팔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흐읍.”
짧게 숨을 들이쉰 후.
잘려나간 오른팔을 들어 단면에 가져다 댔다.
슬링백에서 비상용 포션을 꺼내 상처에 들이부었다.
오진 자신이 물병자리의 성흔을 사용해 직접 제작한 포션으로 어지간한 상급 포션 못지않은 성능을 자랑하는 포션이었다.
“크윽!”
치이이익!
찌릿한 통증과 함께 오른팔이 어설프게 이어붙여 졌다.
‘제대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아무리 상급 포션을 사용했다 해도 엘릭서가 아닌 이상 팔 한짝이 잘려나간 걸 단시간에 완벽하게 치료할 순 없었다.
‘밤 사냥꾼이들이 여기 있다는 건 천도윤도 같이 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아직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뜨지 않을 걸 보면 천도윤도 용의 심장을 찾지 못한 것 같지만.
이대로 앞으로 나아간다면 천도윤과 마주칠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고 말이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무너진 천장에서 쏟아진 암석들로 완전히 막혀 버린 통로.
다른 입구를 찾으러 간다 해도 도중에 천도윤을 마주칠 위험이 있는 건 똑같았다.
‘어차피 뭘 선택하던 천도윤과 마주칠 위험이 있다면.’
천도윤이 용의 심장을 찾기 전에.
자신이 먼저 찾아서 들고 짼다.
“좋아.”
물론.
최악의 경우 도중에 천도윤과 마주친다 해도 목숨 하나는 건질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뒀다.
‘그래도 최선은 놈보다 먼저 용의 심장을 찾는 거지.’
오진은 눈을 빛내며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용맥’의 흐름을 느꼈다.
몰아치는 마력의 격류 사이.
강물이 고여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마력이 모인 장소.
‘저기.’
오진은 마력이 가장 짙게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미로처럼 얽힌 통로를 나아갔다.
화아아아악!
어둠이 내려앉은 동굴에 해가 떠오른 듯, 눈 부신 빛으로 가득 찬 거대한 공동이 보였다.
벽면부터 천장까지 수백 미터의 공간 전체가 푸른 수정으로 이뤄진 장소.
그곳에는━
“홀홀홀. 이거 불청객이 하나 끼어들었구먼 그려.”
검은 도복차림의 노인이 불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늦었나.’
올빼미의 왕, 천도윤.
마치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팔짱을 낀 채 유유자적 공동 중앙에 서 있는 노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오진을 응시했다.
“뇌랑이라 했던가? 분명 주변에 사냥꾼들을 깔아뒀는데… 어찌 이곳까지 온 게냐?”
“다 쳐 죽이고 왔지 뭐.”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홀홀홀!! 그랬구먼!”
천도윤은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뜻 보면 수양을 쌓는 도인처럼 보이지만.
그의 눈빛에 서린 일그러진 욕망과 광기를 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와서 운이 다했구나.”
혀를 내밀어 입술을 훑으며 오진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무시무시한.
아찔할 정도의 마력이 천도윤의 손에 맺혔다.
“죽거라, 직녀성의 늑대여.”
느긋하고, 평온하게.
마치 수업시간에 일어나 국어책에 적힌 지문을 담담하게 읽어내리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오진의 죽음을 선언했다.
“날 죽이는 순간 너도 살아서 여기 밖으로 나가진 못할 거야.”
“음?”
천도윤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홀홀홀! 무슨 숨겨둔 수라도 있는 말투로구나?”
“있지.”
“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겠다만, 그깟 허세가 통하리라 생각했다면….”
“날 죽이는 순간, 우리 여보야한테 바로 정보가 전달될 거야. 여기 위치랑 누가 나한테 손을 댔는지까지 전부.”
“…여보야?”
천도윤이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그를 바라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지 감이 안 와? 들은 적 있을 텐데?”
“…설마.”
“거머리 여왕.”
“……!!!”
“난 이사벨라 콜그란데의 남편이다.”
느긋하던 천도윤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