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2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25화
낮에 지는 밤 (1)
“쓰으읍.”
깊게 호흡을 들이쉰다.
지그시 눈을 감고, 왼쪽 가슴에 정신을 집중한다.
━짙게 깔린 어둠.
밤하늘처럼 내리깔린 어둠 속에 형형색색의 별자리가 빛난다.
‘거문고자리의 성흔.’
그중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자리를 향해 손을 뻗는다.
푸른 마력이 별자리를 타고 전신에 퍼진다.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몸을 감싸며 튀어 올랐다.
찰칵.
허리춤에서 창을 꺼내 두 손으로 쥐었다.
란, 나, 찰.
이신혁의 기억을 타고 창술의 원론적인 기본기가 흘러들어왔다.
‘얽매일 필요 없어.’
머릿속에 흘러드는 기본적인 창술의 움직임을 지워낸다.
어차피 자신은 창 한 자루에 인생을 건 무인이 아니다.
찌르고, 벨 줄만 안다면 족하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후우.
깊게 들이쉬었던 호흡을 천천히 내뱉으며 전신의 마력 회로를 짓누르듯 압박한다.
[《익시드 Lv5》를 발동합니다.] [장기간 스킬을 사용할시 ‘과부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푸른 뇌전이 몸을 휘감으며 사납게 타올랐다.
처음 익혔을 때는 사용하는 것만으로 며칠을 기절해 있을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던 기술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됐다.
‘아직도 오래 유지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꾸준한 수련 덕분에 익시드 스킬의 레벨이 3에서 5로 올라가면서부턴 지속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끽해야 5분이 한계였다면 지금은 15분까지는 과부화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수준.
더 이상 수명을 갉아먹는 자멸기가 아니라 하나의 버프 스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어디 그럼.”
오진은 수련장의 벽면으로 가서 스위치를 켰다.
벽에 설치된 레이저 포인터에서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빛이 어지럽게 퍼져 쏘아졌다.
물론 공상과학 소설에서 나오는 레이저 무기와 달리 살상력은 전혀 없는, 노래방에서 흥을 돋울 때 사용하는 요란한 조명에 불과했지만.
‘━저 빛에 닿으면 죽는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속삭인다.
‘살이 타들어 가고, 짓물러지고, 짓이겨진다.’
생각한다.
눈앞에서 요동치는 빛은 단순히 기계장치에서 쏘아지는 빛이 아닌, 올빼미의 왕이 쏘는 치명적인 깃털이라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반복하다.
“흐읍!”
파지지직!
뇌전의 잔상과 함께 몸을 움직인다.
수백, 수천 개의 레이저가 불규칙한 패턴을 그리며 수련실 안에 휘몰아친다.
-슈욱!
어지럽게 움직이는 레이저를 피하는 도중 레이저가 왼쪽 팔뚝을 스쳤다.
파지지직!
순간 팔뚝에 푸른 뇌전이 번뜩이더니 살이 검게 타들어 갔다.
“후우, 하아!”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짜릿한 전율이 퍼지며 아릿한 통증이 퍼진다.
단순한 이미지 트레이닝이 아니다. 레이저에 닿는 순간 몸속의 마력이 멋대로 움직여 닿은 부위를 까맣게 태워 버린다.
마치 세뇌에 걸린 듯, 스스로에게 되뇐 ‘거짓말’에 무의식적으로 마력이 반응한 것이다.
‘최면 어플도 아니고 씨벌.’
이 수련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은 최근.
이미지 트레이닝을 위해 거짓말을 반복했더니 진짜 상처가 생기는 경지까지 도달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실전과 완전히 똑같은 긴장감을 만들 순 없었지만.
-지이이잉!
“하아! 하아!”
그냥 무작정 수련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모래시계자리의 성흔.’
순간.
어지럽게 움직이던 빛들이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제자리에 멈췄다.
느릿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오진은 스텝을 밟아 레이저 사이를 움직였다.
‘천도윤.’
그날 마주쳤던 노인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글자글한 주름을 지닌 노인이 홀홀홀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눈앞에 만들어졌다.
-파지지지직!!
창날을 타고 타오르는 푸른 화염.
뇌염이 맺힌 창을 천도윤을 향해 내질렀다.
-홀홀홀. 느리구나, 직녀성의 늑대야.
상상 속 천도윤이 비웃음을 흘리며 공격을 피했다.
천도윤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검은 깃털이 기다란 검의 형태로 만들어져 오진을 향해 쏘아졌다.
“후우, 후우!”
거친 숨을 내쉬며 창을 고쳐잡았다.
미간을 노리고 쏘아지는 검은 깃털을 창으로 올려쳤다.
까앙!
실제로 깃털에 부딪힌 게 아님에도, 손바닥을 타고 찌르르 충격이 퍼졌다.
‘부족해.’
지금 가진 것만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다.
“쓰읍.”
오진은 왼쪽 가슴에 정신을 집중했다.
짙게 깔린 검은 먹구름. 구름 사이에 몸을 숨긴 채 고고히 똬리를 틀고 있는 용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아직 자유롭게 다룰 순 없었지만.
어느 정도라면 용맥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화르르르륵!
창날에 타오르고 있던 푸른 불꽃이 용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뇌전으로 이뤄진 푸른 용이 창대를 휘감았다.
“흐아아아아아아!!”
쾅!
거칠게 발을 구르며 창대를 내려찍었다.
창대에 똬리를 틀고 있던 청룡이 육방(六方)으로 쫙 퍼져나가더니 이내 한 점으로 모여 천도윤을 향해 쏘아졌다.
-홀홀홀.
청룡에게 난자당한 천도윤이 특유의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
“후우.”
오진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레이저 포인터의 스위치를 껐다.
-띠링!
[용맥의 마력 일부를 다루는 데 성공했습니다!] [《청룡진(靑龍鎭) Lv1》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뇌전(雷電) Lv9》 스킬의 영향으로 《청룡진(靑龍鎭) Lv4》로 상승합니다.] [《익시드 Lv5》 스킬이 《익시드 Lv6》으로 상승합니다.] [《뇌염(雷炎) Lv4》 스킬이 《뇌염(雷炎) Lv5》으로 상승합니다.]“오우야, 쫙쫙 오르네 아주.”
자기 자신을 속여버리는 극한의 이미지 트레이닝이 효과 덕분일까.
최근 여러 스킬들의 레벨이 한두 단계씩 쭉쭉 성장하는 중이었다.
‘정작 중요한 뇌전은 아직 9레벨이지만.’
리아크의 말마따나 뇌전 9레벨에서 10레벨로 올라가는 건 쉽지 않았다.
“10레벨이 되면 뭐 특별한 게 생긴다곤 했는데…….”
사실 이미 10레벨 보상이라는 뇌염을 미리 익혀버린 입장에서 뭐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었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오진은 상태창을 주르륵 내려 ‘개천’이라 적힌 부분을 빤히 바라봤다.
‘이게 뭔지 영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이번에 수련에 집중하면서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여전히 개천이 무슨 능력이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없었다.
“쯧.”
혀를 차며 상태창을 닫았다. 모르는 걸 계속 본다고 해서 알 수는 있는 건 아니다.
“쓰으… 뒤지게 아프네.”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는 도중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몸 곳곳에 검게 탄 상처가 꽤 많이 새겨져 있었다.
‘치료하고 가야겠네.’
미리 물을 받아둔 초대형 욕조에 들어가 상처를 치료한 후 집으로 향했다.
-달칵.
“누나~!”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하은에게 다가갔다.
“…수련 끝나고 온 거야?”
“엉.”
“수고했어.”
하은은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돌렸다.
‘또 이러네.’
저번에 던전에 갔다 온 이후로 쭉 이런 상태였다.
“왜 또 죽을상을 짓고 있어?”
“신경 꺼, 인마.”
“누나 일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읏….”
하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녀는 떨리는 눈으로 오진을 살며시 바라보더니 이내 쓱 몸을 일으켰다.
“잠만 기다려. 저녁 차려줄 테니깐.”
“살려줘.”
“앙?”
“아니 너무 기대된다고.”
하은은 흥, 코웃음을 치며 주방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샤워를 마친 오진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벌써 자냐?”
“요즘 빡시게 수련했더니 좀 피곤해서.”
최근 이미지 트레이닝 수련을 하고 난 이후로는 몸이 하도 만신창이가 되다 보니 피로가 금방 쌓였다.
“…그래. 자라.”
오진이 스르륵 잠에 빠졌다.
“…….”
침묵이 내려앉은 방안.
하은은 풀썩 침대에 누웠다.
아직 주문한 의족이 도착하지 않은 탓에 오른쪽 다리 아래가 허전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한심하게 궁상이나 떨고.”
자책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하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많이 피곤했는지 누운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잠에 곯아떨어진 오진의 모습이 보였다.
-스륵.
오진이 잠든 아래 칸 침대 옆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누운 오진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쿡쿡.
송곳으로 가슴을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누나!!!!
던전에서 있었던 일들이 머리를 스쳤다.
무너져내리는 바닥. 자신을 향해 다급히 손을 뻗고 있는 오진의 모습.
‘이번에도 또… 도움만 받았네.’
잘근. 입술을 깨문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결국 또 짐덩이가 되고 말았다.
‘예전부터 그랬지.’
오랜 기억의 창고를 뒤적여봐도, 언제나 오진에게 보호받은 기억밖에 없었다.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녀 앞에는 오진이 서 있었다.
“…….”
불안했다.
언젠가 그가, 지긋지긋하다며 자신의 곁을 떠나버리는 게 아닐까.
짐덩이에 불과한 자신의 곁을 떠나 다른 누군가에게 가버리는 게 아닐까.
‘이사벨라, 라거나.’
백금발을 지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유럽 내에서 손꼽히는 명가의 영애.
그녀에 비해 아직 ‘성’은 자신이 높다지만 이사벨라 또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슈퍼 루키인 만큼 언제 추월당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굳이 추월 어쩌고 할 것 없이 파티에서 귀족 취급받는 서포터 계열인 그녀는 지금만 해도 오진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어떤가.
“…싫어.”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다시 함께 있을 수 있게 됐는데, 그가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다.
‘오지나.’
잠든 그의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은 오랜 과거.
처음 그와 만났을 때의 기억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되게 음침했었지.’
보육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오진은 말 수가 거의 없는, 흔히 말하는 음침한 아이였다.
당시 보육원 아이들 사이에서 리더 격 존재였던 그녀는 몇 번인가 그에게 말을 건네봤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던 중 대머리 원장에게 심하게 두들겨 맞은 날.
원장을 피해 옥상에 몰래 올라간 그녀는 멍하니 서 있는 오진과 처음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뭐라 했더라.’
이제 와선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때 이후, 오진이 자신을 ‘누나’라 부르며 조금씩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존나 오래되긴 했구나.”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잠든 오진의 뺨을 손으로 매만졌다.
‘뺏기지 않을 거야.’
하은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눈을 빛냈다.
염치없다 해도 좋다.
이기적이라 해도 상관없다.
‘오지니는 내 거야.’
불끈 주먹을 쥐었다.
하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자신의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언제 곁을 떠날지 모르는 오진을 확실하게 붙잡아두는 방법은 하나.
“어디 보자….”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남동생, 한테, 고백하는, 법… 아니 씨발 근친이 아니라 미친 새끼들아.”
하은은 눈살을 찌푸리며 검색창을 새롭게 열었다.
“연하남한테… 먹히는 고백 방법….”
달칵달칵.
어둠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스마트폰의 빛만이 별빛처럼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