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3화
성소(星所) (2)
‘뭔데 시벌.’
이신혁이 날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그럼 이 새끼 애초에 왜 회귀한 거야?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문이 커질 것은 생각해 볼 것도 없는 일.
여기선 최대한 자연스럽게 흘려 넘겨야 한다.
“그의 심장에 창을 꽂는 순간, 한 줌의 검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렸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차피 천마가 어떻게 뒤졌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는 이상 자신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증거가 없는 사건에선 증인의 진술이 곧 진실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된 게로구나.]베가는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의심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흑천의 주인을 찾을 방법은 있는 게냐?]찾을 방법이고 뭐고 눈앞에 있습니다만.
“당장은 없습니다. 그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방법 외에는.”
[으음. 그 천마는 언제쯤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냐?]“3년 후입니다.”
그동안 충분히 대비해 둘 수 있도록 넉넉하게 기간을 잡았다.
3년이면 없던 천마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니까.
“그때까지 최대한 힘을 길러야 합니다. 물론, 그 사이 기회가 있다면 천마의 단서를 찾아가면서요.”
[그게 타당하겠구나.]베가가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마무리를 지어볼까.’
중간에 좀 위험이 있긴 했지만, 지금까지는 의도한 대로 잘 흐름을 만들었다.
이제 준비해둔 비장의 카드를 내밀 타이밍.
“앞으로 이틀 뒤, 목동에 신생 게이트가 열리게 됩니다.”
이신혁의 기억을 통해 얻은 미래의 정보.
이게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 자신은 모든 의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건 진짜 회귀자가 아니고선 알 수 없는 정보니까.’
예언자가 ‘예언자’라 불리는 순간은 그 예언을 했을 당시가 아니라, 예언이 실제로 이뤄졌을 때다.
회귀자 또한 마찬가지.
‘회귀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이뤄지는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회귀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새로운 균열이라… 그곳을 신경 쓰는 이유가 따로 있더냐?]“그곳에 성유물이 잠들어 있습니다.”
실제 그 성유물이 어떤 성능을 지녔는지는 모른다.
아니, 알 필요조차 없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이틀 뒤에 생기는 게이트 안에 성유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 자체를 증명하는 게 이번 계획의 핵심이다.
[과연. 회귀자만이 누릴 수 있는 이권을 챙기겠다는 말이로구나.]베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아이야.]펄럭.
별빛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드레스가 넓게 펼쳐졌다.
그녀가 천천히 허공을 부유하며 다가왔다.
‘나의 아이라니.’
원래 성좌들은 다 자기 사도들을 아이라고 부르는 건가.
‘그럼 나도 베가 마마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 나간 호칭이다.
[네 어깨에 세계의 명운이 짊어져 있다고는 하나, 부디… 무리하지는 말거라.]천천히 손을 뻗은 그녀가 뺨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뺨을 간질였다.
“…….”
영혼까지 포근해지는 듯한 맘스터치(Mom’s touch).
순간적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양심이 비명을 내질렀다.
자신은 과연 이 상냥한 성좌를 속이고, 이용해야만 하는가.
‘당연히 그래야지.’
안 그러면 내가 뒤지는데.
비명을 지르는 양심을 사뿐히 짓밟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양심 따위 얼마든 팔아치울 수 있다.
‘아니, 이젠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이지.’
시작한 이상 철저하게 이용할 것이다.
그게 아무리 북극성이라 불리는 성좌라 할지라도.
“무리하는 게 아닙니다.”
고개를 저으며 방긋 미소지었다.
여기선 마무리로 MSG 한 번 쫙쫙 뿌려줘 볼까.
“베가 님… 아니, 베가. 널 위해서라면.”
뺨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난 뭐든지 할 거야.”
시선 처리는 살짝 아래로.
목소리는 낮고 굵게.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추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흥분하지 않고 담담하게.
시를 읊는 것처럼 평온하게.
“네가 지금처럼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마지막은 씁쓸한 미소로 마무리!
‘크으! 그래, 이거지!!’
손발이 찌그러들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이 타이밍과 분위기에선 충분히 먹혀들 것이다.
[아….]베가가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마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그대는 어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여신의 뺨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좋아.’
마무리로 뿌린 MSG가 아주 효과적이었던 모양.
‘성좌도 감정 자체는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네.’
그럼 먹힐 수밖에 없지 이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며 몸을 돌렸다.
‘나쁘지 않았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이신혁의 기억이 컸어.’
흑천을 통해 그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면 이렇게 순조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계획만 잘 풀린다면, 그 뒤는 껌이지.’
어차피 성좌는 제약을 감수하지 않는 한 신전 밖으로 쉽사리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실시간으로 사도의 행동을 감시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즉.
자신이 설사 ‘회귀자답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 해도 이쪽에서 말하지 않는 이상 들킬 일이 없단 의미.
‘이걸 못 속이면 사기꾼 딱지 떼야지.’
사실 여기까지 왔으면 사기꾼 경력이 없다 해도 속이는 건 어렵지 않다.
의심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감시까지 안 당한다면 이걸 어떻게 들키겠는가.
‘감독관 없는 시험에서 컨닝하는 수준이지.’
게임으로 치면 이지 모드나 다름 없━
[잠깐.]“음? 무슨 일입니까?”
[본녀도 함께 가겠느니라.]“…예?”
뭐요?
“같이 가시겠다는 게 무슨….”
[말 그대로의 의미니라.]무언가 결단하기라도 한 듯 베가는 황금빛 눈을 빛내며 척, 허리에 손을 올렸다.
[본녀가 직접 지구에 현신하여 그대와 함께 다니겠다.]아니 잠깐.
그게 뭔 소리야 시바.
“하, 하지만 성좌님들은 율법의 제약 때문에 지구에는….”
[후훗. 본녀를 누구라 생각하느냐?]그녀는 으스대듯 가슴을 슬쩍 내밀며 말을 이었다.
우우우웅!
베가의 몸에서 찬란한 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과 함께 그녀의 몸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30cm 정도 되는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뭔데 이건 또.’
입을 쩍 벌린 채 인형 사이즈로 쪼그라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베가는 후훗, 웃으며 허공을 부유해 자신의 어깨에 날아와 앉았다.
[자, 이걸 받거라.]어깨에 날아온 베가가 은색 펜던트를 목에 채웠다.
“이건….”
[그걸 끼고 있으면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이런 상태로 그대 주변에 현신해 있을 수 있느니라.]“이,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발.
나한테 대체 왜 그래요 마마.
[…본녀도 처음엔 이럴 생각까진 없었다. 이런 편법을 쓴다 해도 율법의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그렇다면.”
[하지만 그대가 말하지 않았느냐? 본녀를 위해서 뭐든지 하겠다고.]어깨에 앉은 베가가 작은 손을 뻗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자애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찌 본녀의 아이에게 그런 말을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어 시발?
아까 그 말 때문이었어?
[걱정하지 말거라. 본녀가 그대의 짐을 함께 짊어지겠느니라.]아니.
[어둡고 고독할 그대의 앞길을━ 함께 걸어가겠느니라.]MSG 몸에 나쁘다는 거 헛소리라며.
뿌려도 괜찮다며.
“…….”
아.
‘조졌다.’
인생 씨발.
* * *
[흐음, 이렇게 느긋하게 지구의 풍경을 구경한 건 실로 오랜만이로구나.]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깨 위에 올라탄 베가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
찰랑거리는 은발이 뺨을 스쳤다.
간지럽다.
[왜 이리 아까부터 말이 없느냐?]“…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저으며 힘 풀린 다리에 빡 힘을 넣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이제 와서 후회와 좌절을 곱씹어도 바뀌는 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철저하게 그녀를 속이면 될 뿐이다.
감독관이 있다고 컨닝을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달동네로 들어서자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이곳이 그대가 사는 곳이냐?]“예.”
[꽤나 허름한 곳에 살고 있구나.]“돈이 없으니까요.”
태연하게 답했다.
가난은 불행한 일이지만,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으음. 본녀가 도와주고 싶지만… 인간들에게 금전적인 가치가 있는 걸 지닌 게 없구나.]“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각성자가 됐으니 앞으로 얼마든 벌 수 있다.
‘그리고 뭐,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옮길 수 있으니까.’
지난 8년간 그 정도 돈은 모았다.
단지 집을 옮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뿐.
-끼익.
녹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그 베가인가 뭐시긴가 잘 만나고 왔냐 새끼야?”
이번에도 목발을 짚고 서성이던 하은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왤케 늦었어?”
“누나,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엉? 뭔 얘기?”
“그게….”
사정을 설명하기도 전에, 베가가 하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본녀의 아이와 함께 산다는 아해더냐?]“꺄아아아악!! 씨발!!!”
쿠당탕!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지려는 하은의 몸을 다급히 붙잡았다.
“뭐, 뭐야?? 누구 목소리야 이거?!”
그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허둥거렸다.
[흐음.]베가는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허리를 꼿꼿이 펴고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본녀의 이름은 베가. 거문고자리의 성좌니라.]“서… 성좌?”
하은이 더듬더듬 손을 뻗어 오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뭐, 뭔 일이야 이게? 서, 서, 성좌가 왜 여기 있어?”
“설명해줄게.”
“빨리. 누나 지금 정신 나갈 것 같아.”
비틀거리는 하은을 침대에 앉히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오진은 오늘 있었던 일을 짧게 설명했다.
물론, 회귀자에 대한 것은 숨기기로 미리 베가와 말을 맞춰놨다.
“…아니, 성좌랑 같이 다니는 각성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없다 해서 못 할 일은 아니지 않으냐?]“…….”
하은은 기가 찬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나저나….]베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의 시선이 하은의 눈과 오른쪽 다리로 향했다.
[몸이 불편한 아이였구나.]“…….”
[어쩌다 그리된━]“베가 님.”
오진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 얘기는 하지 말죠.”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베가는 오진을 돌아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도… 그런 표정을 지을 줄 알았구나.]“예?”
[본녀의 무례를 사과하마.]꾸벅.
베가는 하은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니! 그보다!! 베, 베가…님? 성좌는 무슨 제약 어쩌구 때문에 지구에 못 있는, 아니 못 계신, 아니 있는도 상관없나? 그, 그, 어쨌든 그런 거 아니었어…요?”
[말이 엉망진창이로구나. 불편하다면 편히 말해도 괜찮다.]“대체 지구에 왜 온 거야 이년아.”
[너무 편해졌느니라.]…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