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34화
막간–용의 심장
“그, 그러니까….”
화등잔만 하게 커진 하은의 눈이 오진을 향했다.
쩝 벌어진 그녀의 입이 묘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으음.’
잠시 망설이던 오진은 참지 못하고 벌어진 그녀의 입안에 검지를 콕 찔러 넣었다.
“아 씹! 퉷퉷!! 뭐 하는 짓이야 이 미친놈아?!”
“아니, 그냥.”
뭔가 너무 충격받은 것 같길래 정신 좀 차리게 하려 했지.
“방금 그 얘길 듣고 어떻게 충격을 안 받아?!!”
하은이 오진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며 소리쳤다.
“후우. 그러니까… 네가 회귀자… 라고?”
“정확히는 회귀자인 척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랬지 씨벌.”
하은은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래… 그 이신혁이란 놈이 원래 회귀자였는데… 흑천인가 뭐시긴가 그걸로 그 새끼 성흔을 흡수했더니 베가가 널 회귀자로 착각해 버렸다고?”
“정확해.”
“아니 대체 그게 뭔 지랄맞은….”
아연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뭐, 이런 반응이 당연하겠지.
“그 흑천이란 게 뭔데? 그때 사용한 그 또도가스 빵구 같은 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존나 하찮아 보이잖아.”
그래도 나름 세상을 멸망시킬 힘이니 뭐니 온갖 있어 보이는 설정은 다 가지고 있는 건데.
“나도 정확히 흑천이 뭔지는 몰라.”
“뭔지도 모르는 힘을 쓰고 있던 거야?”
“누나는 그럼 성흔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쓰고 있어?”
“어….”
하은의 말문이 막혔다.
적갈색 머리칼을 긁적이며 혀를 찼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별을 깨달을 자’라는 의미로 각성자라 부르긴 해도.
성흔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그 흑천이란 게 성흔 같은 거야?”
“아니, 성흔이랑은 아예 달라.”
오진은 흑천에 깃든 여러 기능을 그녀에게 설명했다.
“…뭐 그런 사기적인 게 다 있어?”
하은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모른다니깐.”
“하아.”
“뭐, 여튼. 내가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선 베가 앞에서 회귀자인 척 연기해야 해.”
“…만약 들키면 어떻게 되는데?”
“글쎄.”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 성좌들은 이게 세계를 멸망시키는 힘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좋은 꼴을 보진 못하겠지.”
“하, 하지만 오지니 네가 세계를 멸망시킬 리가 없잖아!”
“글쎄. 그건 어떨까.”
기억은 없지만 자신은 이미 한 번 세계를 멸망시켰다.
물론 지금은 세계를 멸망시킬 생각 같은 건 당연히 없었지만.
“혹시 모르지. 이번에 누나를 못 구했으면 또 확 돌아버려서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읏.”
하은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살포시 뺨을 붉히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새, 새끼 오바 떨기는.”
“뭐… 솔직히 멸망까지는 좀 과장이라 해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긴 어려웠을 거야.”
“으음.”
하은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네 회귀자 연기를 도와달라 이 말이지?”
“도와줄 필요까진 없어.”
방해만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뭐야, 이 누날 못 믿겠다 이거야?”
“누난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서 안 돼.”
“아, 아니거든!”
“봐봐. 또 그런다.”
오진은 씩씩 성을 내는 하은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누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하은이 삐쭉 입술을 내밀었다.
“맨날 지 혼자 하겠데.”
그런 그가 듬직하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했다.
구시렁거리는 하은을 향해 오진이 살며시 다가왔다.
삐쭉 튀어나온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손가락 끝으로 콕 찍으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알았어. 도움이 필요하면 꼭 얘기할게.”
“…약속이다?”
“옙.”
“하아. 하여간….”
머리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오진의 뺨을 쭉 잡아 늘렸다.
“아아아아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까지 누나한테 말도 안 하고 말이야. 앙? 잘못했어, 안 했어?”
뺨을 쭉쭉 잡아당기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뺨에 입을 맞췄다.
“…앞으론 누나가 도와줄 테니 너무 혼자 끙끙 앓지 마.”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는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아참, 누나 이거 받아.”
오진은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 수정을 꺼냈다.
천도윤을 먹어치우고 얻은 용의 심장이었다.
‘용자리의 각성자가 사용했을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했었지.’
그렇다면 그녀가 사용하는 게 맞다.
“이, 이거 그거 아냐? 용의 심장?”
“맞아.”
“…이걸 날 준다고? 그냥?”
하은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전에 그에게 선물로 받은 영약도 귀하긴 했지만, 용의 심장은 격을 달리할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돈으로는 감히 그 값어치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성유물.
그걸 이렇게 무슨 편의점에서 사온 초콜릿 건네주듯 아무렇지 않게 준다니?
“왜, 뭐라도 좀 받을까?”
오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 가까이에 다가갔다.
“어, 어어?”
하은이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발그레 뺨을 붉히며 다가왔다.
“…뭐가 받고 싶은데?”
살짝 가슴골을 비치며 유혹하는 듯 물었다.
왼쪽 가슴에 찍힌 작은 점 하나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쏠렸다.
끈적한 색기가 담긴, 이제까지 보지 못한 그녀의 몸짓에 되려 당황한 것은 오진이었다.
“크, 크흠! 노, 농담이야.”
벌렁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오진은 깊게 호흡을 들이켰다.
‘뭐야 이거.’
원래라면 이런 농담을 하면 당황한 채 허둥거리는 건 하은의 몫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한방을 얻어맞아 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이건 누나가 가져.”
“응. 고마워.”
하은이 배시시 웃으며 용의 심장을 받아들였다.
“근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설마 그 노망난 늙은이처럼 가슴에 쑤셔 박는 건 아니지?”
“글쎄.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뭔 아이언맨도 아니고 가슴에 정중앙에 보석을 쑤셔박는 무식한 방법이 용의 심장 안에 담긴 마력을 다루는 방법일 리가 없었다.
“그치? 이게 아무리 귀한 성유물이라 해도 라이트닝 찌찌를 가지고 싶지는 않은데.”
라이트닝 찌찌는 또 뭔데.
“일단 성흔에 가져다 대보는 건?”
“오, 그거 괜찮다.”
용자리의 성흔을 지닌 존재가 용의 심장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다 했으니.
성흔에 용의 심장을 가져다 대면 뭔가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흐으음.”
한 손에 용의 심장을 쥔 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하은이 뭔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손에 쥔 용의 심장을 오진 쪽으로 내밀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오지니 네가 성흔에 가져다 대줘.”
“…뭐?”
“내가 직접 하다가 갑자기 뭐 마력의 공명 이런 거 일어나서 손에서 놓칠 수도 있잖아? 이런 건 중간에 실수로 끊어지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다구.”
“…….”
실제 영약이나 성유물의 힘을 받아들이는 도중 의도치 않게 끊어지게 되면 주화입마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위험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째 그런 걸 걱정하는 것처럼은 전혀 보이진 않는데.’
용의 심장을 건네는 하은의 눈은 기대감에 부푼 채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하아. 알았어.”
“앗싸아~!”
한숨을 내쉬며 용의 심장을 받아들였다.
고백 이후로 그녀는 오진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대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그럼….”
꿀꺽.
하은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옷을 살며시 끌어내려 왼쪽 가슴께를 보여줬다.
소복히 쌓인 눈을 연상시키듯 새하얗고 매끄러운 피부.
그 위에 발자국처럼 찍힌 용자리의 성흔.
‘씨벌.’
얼굴에 열이 몰려 화끈거렸다.
오진은 떨리는 손으로 용의 심장을 들어 그녀의 성흔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었다.
-우우우우웅!!!
“으읏!”
순간.
아득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며 용의 심장이 푸른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말했던 마력 공명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누나?”
“하읏! 괘, 괜찮아!”
하은은 몸속으로 밀려드는 힘을 견디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맹렬한 푸른 빛을 뿜어내던 용의 심장이 아이스크림이 녹듯 서서히 녹아내려 그녀의 성흔에 흡수되는 게 보였다.
천도윤이 용의 심장을 사용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현상.
-달칵.
하은은 답답한 옷을 벗듯 왼쪽 눈가를 가리고 있는 안대를 풀었다.
“하아, 하아, 하아!”
용안이 흉포한 빛으로 번들거리며 빛을 뿜어내는 게 보였다.
나무뿌리처럼 왼쪽 눈가를 뒤덮은 힘줄이 뺨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까지 뒤덮었다.
“으읏! 아악! 하으윽!”
“…….”
고통스럽다는 듯 신음을 흘리는 그녀에게 뭐라 응원의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여기선 누나를 믿고 기다려야 해.’
집중이 깨지는 순간 이신혁이 그랬던 것처럼 흘러들어오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다른 한 손에 흑천을 일으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녀가 용의 심장 안에 담긴 마력을 견디지 못할 것 같으면 바로 흑천을 사용해 마력을 흡수할 생각.
“하아, 하아. 후우우우.”
하지만 그런 오진의 걱정을 불식시키듯.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던 하은의 호흡이 점차 진정됐다.
목덜미까지 뒤덮었던 굵은 힘줄이 점점 더 범위를 넓히더니 그녀의 성흔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성흔이 맹렬한 빛을 뿔리며 붉은 화염이 장막처럼 펼쳐졌다.
화염이라고 해도 주변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사나운 불꽃이 아닌, 어딘가 포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따스한 불꽃이었다.
“이건….”
오진은 놀랍다는 듯 주변을 살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화염이 자신이나 집 안의 가구들을 모두 뒤덮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불타지 않고 있었다.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비현실적인 광경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우우우우웅!
그렇게 손에 쥔 용의 심장이 모조리 녹아 성흔으로 빨려들어 갔을 때.
“하읏!”
주변을 뒤덮고 있던 따스한 화염이 그녀의 몸속으로 다시금 빨려들어 갔다.
목덜미를 지나 왼쪽 가슴까지 뻗어나갔던 흉측한 힘줄이 점차 줄어들었다.
“오지나….”
“괜찮아 누나?”
“어, 응. 괜찮아.”
하은은 어딘가 몽롱한 표정으로 비틀거렸다.
그녀의 어깨를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살며시 끌어안았다.
품속에 쏙 들어온 하은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용의 심장에 있던 마력을 다 흡수한 거야?”
“으응. 흡수하긴 했는데… 아직 다 다룰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슬며시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여기 성흔 아래쪽에 덩어리진 채 남아 있는 기분이야.”
“보형물 넣은 것처럼?”
“새끼 비유를 해도 보형물이 뭐냐 보형물이.”
하은이 콧방귀를 끼며 씩 웃었다.
“누나 가슴이 보형물이 필요한 가슴은 아니잖아?”
“얼씨구.”
“절씨구.”
돌겠네.
“어디 아픈 건 없어?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없는데… 읏!”
자신의 몸을 살피던 하은이 갑작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우우우우웅!!
잠잠해졌던 그녀의 성흔이 찬란한 푸른 빛을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누나?!”
오진은 다급히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려다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뚝 움직임을 멈췄다.
“…허.”
그녀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용자리의 성흔.
여덟 개의 획(劃) 옆에 한 줄의 획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니까.
“오, 오지나.”
하은은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쩍 입을 벌린 채 가슴을 내려다봤다.
“나… 9성 된 것 같은데?”
하은이 고위 각성자가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