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36화
꺼진 별빛 (2)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엮어 만든 듯, 은하수로 이뤄진 길.
거대한 나무에서 뻗어나 가는 줄기처럼 수백 갈래로 갈라진 은하수의 길을 따라 올라갔다.
목표로 하는 곳은 기나긴 은하수의 끝.
성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세 개의 신전 중 하나였다.
“오지나, 저거….”
“…….”
직녀성의 신전에 도착한 하은과 오진의 표정이 굳었다.
원래라면 은은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어야 할 신전에서 아무런 빛이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꺼진 별빛처럼 어두운 신전.
오진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쾅!
“베가!”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사납게 눈을 빛내고 있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
오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신전 안에 우두커니 서 있던 리아크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애송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리아크는 흉포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오진을 노려봤다.
파직, 파지직!
은색 갈기 사이에 푸른 뇌전이 사납게 타올랐다.
“…리아크.”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우드드득!
리아크의 몸이 인간의 것으로 변하며 거칠게 발을 박찼다.
신전 전체가 뒤흔들리는 굉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리아크가 오진의 멱살을 거칠게 틀어쥐었다.
타오르는 듯한 푸른 안광이 오진을 향했다.
“베가가 날 구해줬어.”
“뭐라?”
오진은 천도윤과 있었던 일들을 차분히 얘기했다.
올빼미의 왕과 싸우던 도중 위기에 처한 것, 올빼미자리의 성좌 녹투아가 축복을 사용한 것, 베가가 성역을 사용해서 녹투아를 물리친 것까지.
“그래서 베가 님께서….”
리아크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지금 베가 상태가 어떤데?”
“…….”
리아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따라와라.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리아크의 뒤를 따라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기나긴 복도를 걸어 신전 끝으로 향하자, 은은한 은빛이 뿜어져 나오는 문이 보였다.
원래라면 신전 전체를 뒤덮고 있어야 할 그 빛은 당장이라도 꺼질 것처럼 위태롭게 점멸하고 있었다.
“…여긴.”
“평소 베가 님이 계시는 곳이다. 들어와라.”
20미터가 넘을 듯한 거대한 문을 열자 은빛으로 가득 찬 공동이 나타났다.
은빛으로 휩싸인 공간.
수십 줄에 달하는 빛의 사슬에 묶인 베가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번데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빛의 사슬에 묶여 있는 여신의 모습.
“베가!”
오진은 베가를 묶고 있는 빛의 사슬에 손을 뻗으려 했지만 뒤따라온 리아크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함부로 만지면 아무리 네놈이 율법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인간이라 해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어떻게 된 거야?”
“제약으로 인해서 의식이 봉인 당하신 상태다.”
봉인.
오진은 빛의 사슬에 묶인 베가를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사슬에 묶인 베가는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시체와도 같은 그 모습에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스쳤다.
‘이렇게 될 때까지 힘을 사용한 건가.’
그때 베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한 건지 이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는 제약을 받는다 해도 지구에 현신만 하지 못할 뿐 적어도 성소 안에서는 멀쩡히 지낼 수 있었기에 막연히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안일한 착각이었다.
“서, 설마 계속 이렇게 봉인당해 있는 건 아니지?!”
하은 또한 베가가 이런 상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리아크가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리실 거다.”
“휴우. 그건 당행이네.”
하은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얼마 정도 있으면 봉인이 풀리는 거야?”
“50년.”
“…뭐?”
오진과 하은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리아크는 베가를 묶고 있는 수십 줄의 빛의 사슬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사슬이 한 줄 사라지는 데 지구의 시간으로 딱 1년이 걸린다. 지금 베가 님을 묶고 있는 사슬이 총 50개니 50년이 지나야 의식을 차리시겠지.”
“…….”
50년.
아득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시간에 오진과 하은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굳었다.
“…50년이라고?”
망치를 세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감각.
각성자가 되면서 수명의 제약이 사라지긴 했지만, 한평생을 인간으로 살아온 입장에서 50년은 너무 까마득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자, 잠깐! 원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부, 북극성의 성좌면 제약을 덜 받는 거 아니었어?!”
하은이 따지듯 물었다.
리아크는 날카로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그치? 뭔가 착오나 문제가 생겨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지?”
“아니, 그 반대다 도마뱀 여자.”
“…뭐?”
반대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란 말인가.
“이번에 베가 님께서 받으신 제약은 ‘백년 사슬’이라는 제약이다. 소멸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힘을 사용한 성좌들에게만 주어지는 형벌이지.”
백년 사슬.
“…어?”
오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고개를 돌려 베가의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의 숫자를 세었다.
리아크의 말대로 사슬의 숫자는 정확히 50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래. 내가 말한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라는 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리아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베가에게 다가갔다.
“원래라면 100줄이어야 할 사슬이 50줄로 줄어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처음 베가 님이 봉인당하신 걸 발견했을 때부터 50줄의 사슬만 남아 있었다.”
“…….”
원래라면 100줄이어야 할 빛의 사슬의 반으로 줄어있었다, 라.
“북극성의 성좌라서 그런 건 아니고? 성좌들의 격이 높아질수록 율법의 제약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커지잖아.”
“그것과는 관계없다. 만약 베가 님께서 북극성의 성좌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백년 사슬’의 제약을 받으시는 게 아니라 영혼째로 소멸하셨겠지.”
아무리 성좌로서의 격이 높다 해도 제약 자체는 모든 성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건가.
그렇다면 리아크의 말대로 원래 100줄이어야 할 빛의 사슬이 50줄로 줄어든 건 확실히 ‘일반적’이지 않다.
“…….”
오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내리깔린 침묵 속, 하은이 눈을 찌푸리며 외쳤다.
“지금 100줄이니 50줄이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 아무리 그래도 50년이라니…!”
제약을 어기고 힘을 사용한 대가라고는 해도 너무 가혹했다.
“제길… 내가 그때 병신처럼 납치만 안 당했어도!”
이번 사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걸까.
입술을 깨문 하은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을 글썽이고 있었다.
물론 오진 또한 그녀와 같은 심정이었지만.
‘왜 100줄이 아니라 50줄인 거지?’
눈물을 흘리며 후회와 자책의 시간을 가지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베가를 묶고 있는 빛의 사슬을 끊어낼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반으로 줄어들었을 리가 없어.’
‘백년 사슬’이라는 명칭이 붙을 정도로 성좌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진 제약이다.
아무런 인과도 없이 이런 현상이 일어날 리는 없다.
‘율법의 제약이 줄어든 원인이 있을 거야.’
오진은 날카롭게 눈을 뜬 채 베가의 몸을 묶고 있는 50줄의 사슬을 살폈다.
‘리아크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50줄 밖에 없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베가가 성소로 역소환되고 리아크가 도착할 때까지 뭔가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율법의 제약을 약화시킨 뭔가가.
“…설마.”
오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거냐 애송이?”
리아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회귀자라면 이 정체 모를 현상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푼 표정.
오진은 리아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리아크. 누나 데리고 밖으로 나가 있어 줘. 확인할 게 있어.”
“알겠다.”
리아크는 군말 없이 몸을 돌렸다.
“뭔데? 왜 갑자기 밖으로….”
“잔말 말고 나와라, 도마뱀 여자.”
“윽.”
하은은 짧은 침음을 삼키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라.”
크그그긍.
밖으로 나간 리아크가 문을 닫았다.
은빛으로 가득 찬 공간에 오진과 베가만이 남았다.
“…….”
오진은 베가에게 다가가 그녀를 묶고 있는 빛의 사슬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꾸르르륵.
손바닥에서 검은 먹구름이 빠져나와 빛의 사슬에 닿았다.
-파지지지직!!!
흑천의 구름이 빛의 사슬에 닿자 불꽃이 튀어 오르며 거친 반응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빛의 사슬에서 뿜어져 나온 빛무리에 흑천의 구름이 튕겨 나가듯 흩어졌다.
“역시.”
베가가 성소로 역소환되고 리아크가 도착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율법의 제약을 약화시키는 뭔가가 일어났다면.
가능성이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개천.’
흑천의 해방이 율법의 제약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베가가 율법의 제약이 갑자기 약해졌다고 한 적이 있었지.’
아마 아샤드 칸을 처치한 직후였을 것이다.
그때는 원인을 확정 짓기에는 단서가 너무 적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해도, 두 번째부턴 우연일 수가 없지.’
흑천에는 율법의 제약을 약화시킬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다.
방금 전 빛의 사슬과 흑천의 구름이 닿았을 때 거친 반응이 일어난 것만 봐도 가설을 증명하기는 충분했다.
“문제는… 그냥 흑천을 쓰기만 해선 이걸 끊을 수 없다는 건데.”
오진은 몇 번 더 흑천을 일으켜 빛의 사슬에 가져다 대었지만, 그때마다 강한 빛무리와 함께 먹구름이 흩어져 버렸다.
전력을 다해 흑천을 끌어내도 마찬가지.
그냥 평소 상태의 흑천으로는 빛의 사슬을 끊어낼 수 없다.
‘개천을 써서 끊어야 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자력으로 개천을 사용할 수 없다.
물론 한 번 더 하은의 용안을 흑천으로 흡수한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
최악의 경우.
하은에게서 용안이 완전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용안이 사라지게 되면 이번에 흡수한 용의 심장을 제어하지 못하게 될 테고.’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져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으리라.
“…일단 자력으로 개천을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대로 놔둘 수밖에 없나.”
오진은 곤히 잠들어 있는 베가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까득.
움켜쥔 주먹 위에 굵은 힘줄이 돋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개천을 사용해 그녀를 묶고 있는 빛의 사슬을 끊어내고 싶었지만.
‘참아.’
지금 당장은 일단 봉인을 풀 방법을 찾았다는 것으로 만족하자.
최소한 자력으로 개천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후에.
그녀를 묶고 있는 사슬을 끊는 게 옳으리라.
“빨리 흑천의 단계를 높여야겠네.”
개천의 핵심이 되는 건 지난번 던전에서 흡수한 용맥의 마력.
흑천의 개화 단계가 높아질수록 다룰 수 있는 용맥의 마력 또한 늘어난다 했으니, 한시라도 빠르게 흑천의 개화 단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단계를 높일 방법은 생각해둔 게 있고.’
오진은 베가를 뒤로한 채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리아크를 속일 방법부터 생각해둬야겠네.’
당연한 말이지만.
자신이 흑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은 채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리아크부터 속일 필요가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갑자기 와서 뚝딱 사슬을 끊어내면 당연히 의심을 사게 될 테니깐.
-그그긍.
거대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뭔가 알아낸 게 있나 애송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아크가 초조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율법의 제약을 풀 수 있을지도 몰라.”
“그, 그게 사실이냐!”
콰앙!
리아크가 거칠게 발을 구르며 다가왔다.
오진은 경악에 차 있는 리아크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아크. 혹시━ ‘아담의 사과’라는 성유물… 들어본 적 있어?”
“아, 아니. 처음 들어본다! 그게 무엇이냐?!”
나도 몰라.
방금 지어낸 거거든.
“율법의 제약을 줄일 수 있는 성유물이야.”
“그, 그런 성유물이 존재한다는 건 들어본 적 없다! 대체 어디서 그런 정보를….”
리아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씨익 입가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지 잊었어 리아크?”
나 회귀자야, 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