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3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39화
별이 버린 땅 (1)
“오지나아아아아! 일어나아아아아아!”
“커헉!”
둔탁하게 배를 울리는 충격.
ㄱ자로 몸을 꺾인 채 눈을 뜨니 배 위에 하은이 올라타 있는 게 보였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돌핀 팬츠에 헐렁한 흰색 박스티를 입고 있는 터라 눈을 둘 곳이 어려운 차림이었다.
“뭐, 뭐야?”
오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오진 5시 38분.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히히! 늑장 부리다가 공항버스 놓친다구!!”
하은이 무슨 소풍 떠나기 전날의 초등학생마냥 눈을 빛내며 외쳤다.
오진은 배 위에 올라탄 그녀를 올려다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12시 비행기인데 놓치길 뭘 놓쳐.”
“새끼가 뭘 모르네! 다 그러다가 놓치게 되는 거야 인마!”
“정도가 있잖아요, 정도가. 이 누나야.”
비행기 시간까지 6시간도 넘게 남았는데 벌써부터 호들갑이란 말인가.
“어쨌든! 잔말 말고 빨랑빨랑 일어나서 준비해!”
하은이 강제로 이불을 뺏어 저 멀리 집어던지며 외쳤다.
오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 잠깐만.”
“엉?”
빨리 일어나라고 들들 볶을 때는 언제고 막상 일어나려 하니 갑자기 손으로 가슴을 꾸욱 눌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올려다보니 발그레 뺨을 붉힌 채 머뭇거리는 하은의 모습이 보였다.
“왜 그래?”
“자, 잠깐 기다려 봐 인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깐.”
웬 마음의 준비?
“후우. 좋아.”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던 하은이 꿀꺽 침을 삼켰다.
배 위에 올라탄 자세로 천천히 허리를 숙여 오진의 입술에 살포시 입술을 겹쳤다.
“후음.”
뺨을 간질이는 머리칼. 달뜬 콧바람과 함께 맞닿은 입술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하은의 혀끝이 오진의 혀를 살짝 찌르더니, 쥐구멍에 숨듯 쏙 안으로 들어갔다.
“푸하!”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하은이 떨어졌다.
오진의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홱 돌리더니 검지 끝을 꼼지락거리며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모, 모닝 키스….”
“…….”
허허 씨벌.
우리 누나가 어디서 이런 요망한 짓을 배운 걸까.
‘돌겠네, 이거.’
과장 좀 보태서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거렸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기에 연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딱히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은의 작은 스킨쉽 하나에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
‘남들이 이걸 보면 오글거려 뒤지겠다고 거품을 물겠구만.’
뭐 그러면 어떤가.
오글거리고, 부끄럽기 짝이 없더라도.
이렇게 행복해 미칠 것만 같은데.
“누나.”
“으, 응?”
하은이 오진을 힐끔 바라보며 고개를 돌렸다.
뜨지도 않은 햇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는 듯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무거워.”
“씨발이?”
하은의 얼굴이 팍 찡그려졌다.
“이 눈치 없는 새끼가…!”
매서운 주먹이 가슴을 후려쳤다.
오진은 가슴에서 올라오는 찌릿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행복하다.
뇌가 녹을 정도로, 혀가 마비될 정도로.
-뱀을 조심하게.
불길하게 울려 퍼지던 천상길의 경고가 머리를 스친다.
“…….”
투닥거리며 가슴을 치는 하은의 팔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손에 움켜쥔 이 온기가.
어딘가로 떠나가 버리지 않도록.
* * *
“공항! 여기가 말로만 듣던 인천 공항이구나!!”
하은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막 서울에 상경한 시골 처녀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지나! 오지나! 진짜 조오오오오온나게 넓다 여기!”
“…누나.”
쪽팔리니까 그만해 제발.
“이야, 우리가 이렇게 같이 해외여행을 가게 될 날이 오다니! 역시 인생 길게 살고 봐야 안다니깐!”
하긴.
보육원에 있던 시절만 해도 이렇게 둘이서 함께 해외를 가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행 아니라니깐. 아, 맞다 통역 장치는 챙겼지?”
“고럼! 아침부터 달고 있었지!”
오진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예약한 비행기표를 확인했다.
‘성소를 통해 갈 수 있으면 더 편했겠지만.’
아쉽게도 일본은 성소를 타고 갈 수 없었다.
일본에는 성소로 통하는 입구 자체가 없었으니까.
‘별이 버린 땅… 이라고 했나.’
성소가 존재하지 않는 일본을 조롱할 때 쓰이는 멸칭이었다.
‘성소가 없달 뿐이지 각성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는 유독 각성자의 숫자가 적었다.
있다고 해도 대부분이 낮은 성(星)을 지닌 각성자들뿐.
9성을 넘어선 고위 각성자는 아예 일본 전체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흑성회 중 가장 서열이 낮은 해마자리 파벌에게 점령당한 거겠지만.’
천도윤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해마자리 파벌은 올빼미자리 파벌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세력이 약하다고 한다.
흑성회 집행관 서열 7위, 해마의 왕이라 불리는 ‘쿠사나기 소스케’가 8성 각성자라는 점에서부터 그 차이는 확연했다.
‘9성이고 아니고는 천지 차이니까.’
그건 하은이 이번에 9성으로 올라서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사냥감으로는 최고야.’
만약 쿠사나기 소스케가 천도윤과 같은 9성 각성자였다면 이렇게 망설임 없이 사냥을 떠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 7성으로 올라섰다 해도 아직 9성 각성자와 싸우기는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오지나! 오지나! 빨리 면세점 구경하러 가보자!”
처음 와보는 공항에 들떠있는 하은이 오진을 잡아끌었다.
오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뭐 살 거라도 있어?”
“담배! 여기서 사면 싸다 하더라고!”
아 맞다.
우리 누나 흡연자였지.
평소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거의 연초를 피지 않다 보니 깜빡 잊고 있었다.
“오키. 나도 뭐 살 거 있나 구경함 해봐야겠다.”
오진은 하은을 뒤따라 면세점으로 향했다.
예전이었다면 장난으로라도 담배를 피는 것에 핀잔을 줬겠지만, 하은이 고위 각성자가 되면서부터 그럴 이유도 사라졌다.
‘육체가 재구성되면서 몸에 노폐물이 아예 안 쌓이게 됐으니깐.’
지금 그녀에게 있어 담배는 주변 사람만 피해서 핀다면 아무런 해악도 없는 완벽한 기호품이었다.
‘하여간 사기적이라니까.’
9성 각성자가 되까지 두 계단.
남은 두 개의 계단을 빠르게 오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면세점에서 담배를 사고 난 후,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게이트를 지났다.
표 확인이 끝나고 통로를 향해 걸어갈 때.
오진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하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참, 누나 내가 어제 말해준 거 기억하지?”
“엉?”
하은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기억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비행기 타기 전에 신발 벗어야 한다는 거?”
“응.”
“후후. 새끼… 이 누나를 뭐로 보는 거냐 대체?”
하은은 기가 찬다는 듯 오진을 바라보다가 운동화를 신은 왼발을 쑥 내밀었다.
“벗기 편하게 운동화도 신고 왔다고!!”
“역시 누나야.”
“헤헹! 이게 ‘준비성’이라는 거다 짜식아!”
오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앞서 걸어가는 하은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그렇게 도착한 오사카 국제공항.
“오, 오지니 너 이 개새끼이이이이!!”
비행기에서 내린 하은이 수치심에 뺨을 붉히며 오진을 노려봤다.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승무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야, 설마 진짜 그 말을 믿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너, 너 이 나쁜…!”
낄낄 웃음을 터트리는 오진의 옆구리를 파멸적으로 비틀었다.
오진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어깨를 들썩였다.
“누, 누나 놀리는 거 질리지도 않냐? 어? 질리지도 않아?”
“그렇지 않아요.”
매 순간 재미있어요.
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고.
“아오 진짜!!!”
“하하하!!”
길길 날뛰는 하은을 데리고 오사카 시내로 나갔다.
난바역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푼 후 밖으로 나왔다.
“자, 그럼 그 해마인지 해삼인지 하는 놈들 찾으러 가볼까?”
호텔로 오는 동안 화가 좀 풀렸는지 하은이 기지개를 켜며 우드득 주먹을 꺾었다.
“웬일이야? 바로 어디 놀러 가자 할 줄 알았는데.”
“뭐, 그러고 싶긴 한데. 그래도 베가 고년 봉인 먼저 풀어줘야지.”
하은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번에 흑천 단계 오르면 확실히 개천인가 뭔가 사용할 수 있는 거야?”
“그건 아직 모르겠어.”
애당초 해마자리 파벌을 사냥한다 해서 흑천이 여섯 번째 개화를 할지도 확실하지 않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거지.”
“…역시 내 눈 쪼끔 흡수하는 게 낫지 않겠냐?”
“안 된다니깐.”
“그래두.”
하은은 안대를 낀 왼쪽 눈가를 더듬으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이 누나는 자기 몸 신경 안 쓰는 건 한결같단 말이야.
“그렇게 베가랑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뭐… 원인을 따지고 보면 내가 븅신처럼 납치당한 게 원인이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뭐냐, 맨날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면서 나의 아이야~ 나의 아이야~ 찡얼거리는게 좀 그립기도 하고 말이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베가랑 꽤 친하단 말이지.
“금방 봉인 풀 수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쩝. 하긴 너 그 아담의 사과인가 그거 구한다고 구라치고 온 거니까 너무 빨리 돌아가도 좀 그렇긴 하겠다.”
하은이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해마자리 놈들은 어떻게 찾게?”
“지부 위치를 몇 개 듣긴 했는데.”
원래는 오사카에 있는 놈들의 지부에 몰래 잠입해 꼬리를 쿠사나기 소스케에 대한 정보를 모을 계획이었지만.
“일단 사카키 료라는 사람을 한 번 만나보려고.”
오진은 천상길에게 받은 연락처를 들어 올렸다.
“오키. 연락은 했어?”
“응. 호텔 쪽으로 차를 보내 줄 테니 차 타고 오라고 하더라고.”
“어떤 사람이디?”
“글쎄다… 통화만 했을 땐 딱히 뭐 이상한 게 없던데.”
약간 무뚝뚝한 목소리였다는 것 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성격이 좀 개성적이라 했었지.’
일단 직접 만나 봐야 뭐가 개성적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응, 뭐 가보면 알겠지. 차는 언제 온대?”
“좀 있으면 올 거야.”
오진이 스마트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4시니 곧 도착할 시간이었다.
-부우우웅.
“아, 저 찬가?”
하은이 손을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멋들어진 리무진 한 대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이야, 리무진이라니. 까리한… 어?”
잠깐 씨발.
뭐야 저거.
-부우우웅!
-부우웅!
-빠아아앙!!
리무진 뒤로 무슨 진형을 펼치듯 검은색 밴 열 대가 우르르 몰려왔다.
리무진이 멈추자 그를 호위하듯 밴이 주변을 둘러쌌다.
-달칵!
검은색 밴의 문이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우르르 걸어 나왔다.
백여 명에 달하는 양복 군단이 무슨 군대 제식 훈련을 하는 것마냥 각을 잡은 채 일렬로 쫙 펼쳐 섰다.
쿵!
“오야붕의 손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편히 모시겠습니다!!!””””
일렬로 선 양복 군단이 동시에 허리를 숙였다.
“…….”
오진과 하은은 입을 쩍 벌린 채 양복 군단을 바라봤다.
“아니 씨발…?”
소개시켜 준다는 지인이 야쿠자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