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4화
검은 별의 성유물 (1)
[오오!!]흥분에 찬 탄성.
황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아름다운 금안(金眼)이 반짝였다.
[미미(美味)! 실로 경악스러운 맛이로구나!]와구와구.
30센티 정도로 크기가 줄어든 은발의 여신이 자신의 상반신만한 크기의 햄버거를 갉아먹으며 탄성을 내뱉었다.
크기가 크기다 보니 무슨 햄스터가 단밤을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좌들도 뭘 먹을 수 있는 거였어?”
하은이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먹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지만, 그렇다고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라.]쓱쓱.
베가는 휴짓조각을 뜯어 입술을 닦았다.
입술을 닦는 간단한 동작조차 고귀하고 우아했지만, 몸체 사이즈가 사이즈다 보니 아름답다는 생각보단 귀엽다는 생각이 앞섰다.
“햄버거는 처음 드셔보는 겁니까?”
[인간의 음식 자체가 처음이니라.]뾰로롱.
뭔 이상한 은빛 가루를 뿌리며 허공을 날아온 베가가 착 어깨 위에 앉았다.
[이렇게 사도를 받아들인 것만 해도 이번이 처음이니 말이다.]작은 손을 뻗어 귓불을 잡아당겼다.
간지럽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네.”
하은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왜 하필 오진이를 고른 거야? 저 자식이 뭐가 특별하다고.”
북극성의 사도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오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타이틀이었다.
[뭐가 특별하냐니? 이 아이보다 특별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느니라.]“엥? 그게 무슨 말이야?”
[후훗. 그대는 알 수 없겠구나.]베가는 팔짱을 낀 채 곧게 허리를 폈다.
[언젠가 그대도 알게 될 것이니라. 아니, 온 세상이 알게 되겠지.]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니라.]“…뭐?”
하은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대체 권오진이 무슨 짓을 했길래 북극성의 성좌에게 저런 말까지 듣는단 말인가.
“베가 님.”
[후훗. 잡소리가 너무 길었구나. 미안하느니라]베가는 우아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반짝이는 금안이 하은을 향했다.
[특별한 건 그대 또한 마찬가지 아니더냐?]“…그건 또 무슨 말이야?”
하은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진 또한 마찬가지.
의문에 찬 눈빛으로 베가를 바라보았다.
[흐음. 자각이 없던 게냐?]“뭐가 자각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다. 지금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이니. 괜한 말을 한 것 구나.]베가는 하은의 빛을 잃은 동공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본녀의 힘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안타까운 시선으로 고개를 저었다.
“헹. 도와주긴 뭘 도와줘? 그런 거 없어도 잘만 살고 있으니 신경 끄셔.”
[후훗. 그대의 그런 당당한 태도 하나만큼은 마음에 드는구나.]베가는 쭈욱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본녀는 이만 자야겠구나. 아무리 이런 상태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현신을 하면 제약이 심해지니 말이다.]“그럼 하루에 움직이실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 정도 되시는 겁니까?”
[무리하면 더 가능 하느니라.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으냐?]“뭐, 그건 그렇죠.”
어차피 지금 당장 베가가 깨어 있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럼 나의 아이야, 내일 또 보자꾸나.]가볍게 허공을 부유해 머리 위로 올라간 베가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우우웅!
베가의 몸이 은빛 가루로 변하며 펜던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방 안에 내려앉은 적막.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황량함이 맴돌았다.
“…하아.”
하은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나도 이럴 줄 몰랐다니까.”
하은에겐 자신이 베가의 유일한 사도였기 때문에 그녀가 직접 현신해 따라붙었다고 설명한 상황.
성좌가 이렇게 사도의 곁에 현신해 졸졸 따라다니는 경우 자체가 듣도보도 못한 일이니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했다.
“…야, 권오진.”
“엉?”
“여기 앉아.”
탁탁.
침대 옆자리를 두들기며 명령조로 말했다.
“갑자기 왜?”
“시끄럽고 빨랑 앉아 인마.”
고개를 갸웃거리며 침대 옆자리에 앉으니 하은이 냉큼 그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올렸다.
“…뭐야?”
“가만히 있어.”
“아니 뭔.”
“어허. 누나 말 안 들을래?”
허벅지를 베고 누운 하은은 새우처럼 몸을 말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색하게 손을 뻗어 오진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온기.
한평생을 느껴온 그 익숙한 온기에 그녀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히힛! 역시 우리 오지니 베고 누워 있는 게 짱이네. 너도 좋지 짜식아?”
“존나 무거운데.”
“뭐 이 새끼야?”
“농담이야.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든 것처럼 존나 가벼워.”
“…뭐지? 기분이 더 X 같은데.”
눈살을 찌푸린 하은이 허벅지를 꼬집었다.
아프다.
“음, 그래. 이래야 우리 오지니지.”
하은은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누나 이만 잔다.”
“아니.”
그대로 자면 난 어떻게 자라고.
“꼬우면 나이 두 살 더 처먹던가.”
“너무 억울해.”
“이히히.”
하은이 어깨를 들썩이며 좀 더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액새액 고른 숨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에휴.”
오늘 편히 잠자기는 글렀구만.
* * *
이틀 후.
오진은 목동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짐 체크를 실시했다.
‘신호탄과 연막탄 두 개씩, 비상식량이랑 로프. 마지막으로 중급 포션 세 개까지.’
다른 건 몰라도 중급 포션을 사는데 꽤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신생 게이트면 몇 성급의 괴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여기서까지 억지로 돈을 아끼다간 괜한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씨벌. 근데 진짜 드럽게 비싸네.”
하나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중급 포션을 손에 쥔 채 덜덜 몸을 떨었다.
아무리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해도 그 어처구니없는 가격을 생각하니 위액이 역류할 것만 같았다.
‘미친 약쟁이 새끼들.’
대충 성유석 가루에 성흔의 마력을 때려 넣고 끝이면서 뭐 이렇게 미친 듯이 비싸단 말인가.
‘나중에 물병자리 성흔만큼은 꼭 얻는다.’
물병자리 성흔을 손에 넣으면 포션만 만들어 팔아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예.”
오진은 묵직한 배낭을 등에 메고 문을 열었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코끝을 간질였다.
‘성유물이라.’
성유물마다 능력도 천차만별이고, 등급도 나뉘어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존나게 비싸다는 거지.’
1성급 성유물만 하더라도 천만 원 이상.
3성급이면 1억이 넘고, 5성급부턴 10억이 넘는다.
‘만약 6성급이면….’
최소 수십억에서 최대 100억까지.
괜히 길드에서 눈에 불을 켜고 성유물을 찾는 것이 아니다.
“푸흐흐흐!”
오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입술을 핥았다.
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한 시간.
첫차를 타고 목동에 도착한 오진은 주변에 높은 빌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협회 소속 각성자 권오진이라고 합니다. 이른 아침에 죄송하지만 옥상 문 좀 열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예. 근데 무슨 일이시죠?”
“이 빌딩에 조사할 일이 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처음에 경계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경비원은 협회 소속이란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옥상 문을 열어줬다.
후우웅.
옥상으로 나오니 목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확실히 이럴 땐 협회 소속이라는 게 편리하네.’
오진은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가져온 칼로리 바를 하나 꺼내 아그작 씹었다.
[이곳에서 균열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냐?]“예. 오늘 열린다는 건 알아도,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는 못 들었으니까요.”
회귀자라고 해서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란 법은 없으니 이 정도 모르는 건 상관없으리라.
[흐음. 그렇다면 본녀는 현신을 풀고 들어가 있어야겠구나.]“게이트가 열리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느니라.]베가가 다시금 은빛 가루로 바뀌어 목걸이 속으로 들어갔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같이 있으니 불편한 점이 많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도 신경을 써서 말해야 하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위급 상황일 땐 힘을 빌릴 수 있지.’
얼마나 강력한 괴수가 있을지 모르는 신생 게이트에 큰 걱정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답 없다 싶으면 축복받고 튀어야지.’
베가의 축복이 얼마나 경이로운 힘을 주는지 직접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한 변수가 생기더라도 그녀의 축복을 받으면 도망치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자, 빨랑빨랑 나와라.”
난간에 기대 목동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세 시간쯤 기다렸을 때.
-우우우우웅!!!
저 멀리 푸른 빛무리가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왔다.’
신생 게이트가 생겨나는 전조.
오진은 푸른 빛무리가 치솟아 오르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빌딩 아래로 내려갔다.
“꺄아아아악!!”
“게, 게이트!! 게이트다아아아!!”
“빠, 빨리 협회에 연락해!!”
“요즘 협회가 뭔 소용이야!! 길드! 길드 쪽으로 신고해!!”
푸른 빛무리가 솟구치는 곳으로 가니 주변에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난장판이구만.’
8년 전.
처음 지구에 게이트가 열렸을 때로 되돌아온 기분이다.
그땐 자신도 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중 하나였지만━
‘이젠 다르지.’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우우우웅!!
이제 막 생성된 게이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시야가 뒤틀리며 속이 뒤집힐 듯한 울렁거림이 한 차례 몸을 스쳤다.
“후아!”
뒤틀렸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게이트 내부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넓은 동굴.
짐승의 이빨과도 같은 종유석이 송곳처럼 솟아올라 있었고, 종유석 사이로 회색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부가 어둡긴 했지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주황빛으로 인해 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베가 님. 도착했습니다.”
은색 목걸이를 툭툭 두드리니 밝은 빛무리와 함께 은발의 여신이 나타났다.
[호오. 이곳이 그대가 말한 균열 안이로구나.]베가는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부유하며 떠돌았다.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두리번거리기는 했지만, 게이트가 진짜로 열렸다는 사실 자체에는 그닥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내 말을 믿고 있었다는 뜻인가.’
‘회귀자’인 자신이 한 말이니 이날 게이트가 열리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모양.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미 완벽하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단 뜻이니 당연히 좋긴 한데, 동시에 허망한 기분도 느껴졌다.
이번 계획으로 혹시 모를 의심을 없애버리겠다고 생각한 게 별 의미 없는 짓이 되어버렸으니까.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지.’
플랜 B까지 준비해 뒀는데 A에서 해결됐다고 불평을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여기서 안심할 순 없지.’
원래 신뢰란 게 쌓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쉬운 법이다.
아무리 자신을 회귀자라 믿고 있다 해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신뢰가 깎여나갈 것은 분명했다.
“그럼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죠.”
[알겠느니라.]오진은 다른 각성자들이 뒤따라 오기 전에 동굴 깊숙이 발걸음을 옮겼다.
은은한 주황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찌거억.
귓가에 울려 퍼지는 끈적한 점액질의 소리.
“저건….”
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본 오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