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40화
별이 버린 땅 (2)
리무진을 타고 간 곳은 오사카 근교에 위치한 넓은 사유지.
무슨 에도 시대에 온 것마냥 일본 전통 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오사카가 아닌 교토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주변을 살피자 대문 옆에 걸린 간판에 멋들어진 붓글씨로 쓰인 일본어가 보였다.
‘어떻게 읽는 거지?’
통역 장치를 쓰더라도 글자까지 읽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 쓰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글자를 찍어 번역기를 돌렸다.
‘쿠로우시?’
‘검은 소’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
“저 쿠로우시라는 건 조직 이름입니까?”
안내역으로 나왔다는 코시로라는 이름의 청년에게 물어봤다.
리젠트 스타일로 파마를 한 험악한 외모의 청년은 외모에 맞지 않은 명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 맞습니다! 오야붕께서 황소자리의 각성자셔서 쿠로우시라는 이름을 지으셨죠!”
아니 어떻게 조직 이름이 흑우.
“좋은… 이름이네요.”
“하하핫! 사나이의 기상이 느껴지는 이름 아닙니까?”
얘는 흑우가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고 있을까.
뭐,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겠다만.
‘그나저나 황소자리의 각성자라.’
아무리 별이 버린 땅이니 뭐니 해도 이런 큰 조직의 보스를 맡을 정도면 황도 12궁급이 돼야 하나보구만.
그런 생각을 하며 코시로의 뒤를 따르고 있을 때.
“오, 오지나 너 얘들이 야쿠자라는 거 들었어?”
옆에서 따라오던 하은이 팔을 잡아끌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몰랐어.”
“아니 뭔 소개를 해줘도 야쿠자를 소개해주냐.”
하은은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딱히 두렵거나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아무리 흉흉한 분위기를 지닌 야쿠자들이라 해도 9성 각성자인 그녀 입장에선 그냥 동내 양아치 꼬맹이들을 보는 느낌이겠지.
사실 오진만 해도 두렵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조금 황당하기만 할 뿐.
“이쪽입니다.”
드르르륵.
앞서가던 코시로가 10미터는 넘을 것 같은 기다란 미닫이문을 열었다.
“오야붕!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코시로가 안으로 들어가며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교실만한 크기의 넓은 방 안에는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양쪽으로 쫙 줄지어 앉아 있었고, 가운데엔 유카타 차림의 사내가 정좌를 한 채 소나무처럼 앉아 있었다.
야쿠자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광경.
‘저 사람이 사카키 료인가.’
오진은 상석에 앉은 사내를 바라봤다.
반삭으로 짧게 자른 머리.
왼쪽 눈썹에 새겨진 선명한 칼자국과 헐렁한 유카타 사이로 비치는 터질듯한 근육이 위용을 뽐냈다.
좌중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내였다.
과연 야쿠자 보스는 느껴지는 포스부터 다르다며 내심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코시로.”
목석처럼 앉아 있던 사카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멍청한 자식이!!!”
콰아앙!!
포효를 내지르는 듯한 호령.
무형의 파동이 터져 나오며 허리를 숙인 코시로의 몸을 후려쳤다.
“커헉!!”
파동에 얻어맞은 코시로의 몸이 붕 떠오르더니 공중 3회전을 하며 아크로바틱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하은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바다에 처박힌 코시로와 사사키를 번갈아 봤다.
사사키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타오를 것처럼 뜨거운 시선을 코시로에게 향했다.
“사나이는 함부로 허리를 숙이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오야붕!”
“목소리가 작다!!”
“죄송합니다!”
“조금 더! 혼을 울릴 정도의 패기를 담아 외쳐라!!!”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앜!!!”
“그렇지! 바로 그거다 코시로!!”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사카키가 씨익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뚜벅뚜벅 걸어와 넘어진 코시로를 일으켜줬다.
“다친 곳은 없냐?”
“멀쩡합니다, 오야붕!!”
“그래! 그래야 우리 식구지!”
코시로의 등을 팡팡 치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손님 모시느라 수고했다! 오늘은 들어가 쉬어라!”
“아닙니다, 오야붕! 더 일하고 싶습니다!”
“이 멍청한 놈이이이이!!”
파앙!!
다시 한 번 코시로의 몸이 공중을 부유했다.
“커헉!!”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두는 것도 사나이의 자세다!!”
“아, 알겠습니다!”
“목소리!”
“알겠습니다아아아앜!!”
이 새끼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오진은 입을 쩍 벌린 채 눈앞에서 펼쳐진 웃지 못할 콩트를 바라봤다.
하은이 몸을 가까이 붙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지나. 야쿠자가 원래 이런 거야?”
“아니 얘들이 좀 이상한 거 같은데.”
“진짜 야쿠자 맞긴 맞아?”
“…글쎄다.”
험악하고 사나운 조폭들을 상상하며 왔는데 막상 눈앞에 보이는 건 무슨 B급 감성 야쿠자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람들이었다.
“어쨌든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네.”
“이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천상길이 말했던 개성적인 성격이라는 게 이런 거였던 건가.
“들어가보겠습니다, 오야붕!!”
“푹 쉬고 내일 보자!”
“옙!!”
코시로가 이번엔 머리를 가볍게 숙이더니 미닫이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사카키가 빙글 몸을 돌리며 오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거 손님들 앞에서 실례를 저질렀구만.”
다행히 방금 그게 실례라는 걸 알고는 있구나.
“처음 뵙겠습니다. 권오진이라 합니다.”
오진은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사카키의 손을 마주 잡았다.
굳은살이 가득 박힌 손에서는 뭔지 모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직녀성의 늑대! 소문으로는 몇 번 들었지! 그래, 어르신의 소개로 날 찾아왔다고?”
“예.”
“크하하핫! 어르신에겐 많은 신세를 졌었지. 환영하네!”
사카키는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마주 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근력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다는 황소자리의 각성자라서 그런가 사카키에게 붙잡힌 오진의 팔이 새로 오픈한 가게 앞에 세워진 풍선처럼 흔들렸다.
“애들아!! 상 두 개 더 내와라!”
“예! 오야붕!”
줄지어 앉아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일어나 후다닥 어딘가로 달려갔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고급스러운 좌탁 두 개를 들고 와 사카키의 자리 앞에 깔았다.
“이리와 편히 앉게나.”
사카키는 좌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길 편히 앉으라고?’
오진은 실소를 흘리며 좌탁에 앉았다.
양옆으로 험악한 인상의 야쿠자들이 일렬로 쫘악 앉아 있는 게 도저히 편히 있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어르신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아주 정정하십니다.”
“하핫! 하긴, 그 탐랑성이 빛을 잃을 리가 없지!”
“두 분은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칠성의 일원과 야쿠자 조직의 보스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조합이었다.
“일본에 각성자가 많지 않다는 건 알고 있나?”
“아, 예.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상황이 나아졌지만, 예전엔 각성자가 워낙 부족하다 보니 괴수들이 도시 한복판에 무리를 지어 다닐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네.”
오진도 익히 알고 있던 사실.
일본에게 ‘별이 버린 땅’이라는 멸칭이 생기게 된 이유기도 했다.
원래라면 일본처럼 각성자의 숫자가 부족한 나라는 아예 나라 자체가 사라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은 각성자가 적은 만큼 게이트 또한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도 나라 전체가 지도에서 지워지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난 그때 한창 자경단을 만들어서 괴수들과 싸우고 있었는데… 솔직히 가망 없는 싸움이었지.”
사카키는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던 중 어르신을 만나게 됐네.”
“천상길 님이 괴수들을 몰아내 주신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사카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대신, 그분은 괴수들과 싸울 수 있도록 가르침을 내려주셨지.”
가르침?
“스킬을 알려줬다는 겁니까?”
각성자가 다른 각성자에게 스킬을 전수해 주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같은 별자리일 때 가능한 얘기였다.
성흔마다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별자리가 다르면 스킬 전수는 불가능하다.
오진이 알고 있기로는 천상길은 염소자리의 각성자.
사카키에게 가르침을 내려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스킬을 가르쳐주신 건 아니네. 정확히는 성흔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셨다고 해야 하나… 아니, 알려주셨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군. 그분께서는 성흔을 다루는 방법을 ‘깨닫게’ 만들어주셨네.”
성흔을 다루는 방법을 깨닫게 만들어줬다고?
“…성흔이 다른데도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게 바로 어르신의 대단하신 점이지.”
사카키는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어쨌든 그분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신 덕분에 우리 자경단은 괴수들을 몰아낼 수 있었네.”
그리고 그 자경단이 지금의 흑우… 아니, 쿠로우시라는 조직이 된 건가.
“그렇군요.”
“자네는 어르신과 어떤 관계인가?”
“음.”
천상길과 무슨 관계냐고 물어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관계고 뭐고 한 번 만나서 얘기를 나눈 게 전부니까.
“하핫! 곤란하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네. 그분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자네를 내게 보내지는 않았을 테니.”
“감사합니다.”
오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뭔가?”
“흑성회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물론. 안 그래도 그놈들 때문에 요즘 시끌벅적하지.”
사카키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맺혔다.
그의 눈에 서린 살기를 본 오진은 씩 입꼬리를 올리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그 흑성회를 처단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더니 이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어르신의 손님에게 뭔 도움을 줘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구만!”
그는 좌탁을 쾅, 내려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그 악마 같은 놈들의 뒤를 쫓고 있다네!!”
악마 같은 놈들이라.
해마자리 파벌이 일본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사벨라가 이끄는 거머리 파벌과 다르게 ‘흑성회다운’ 짓을 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목적이 같다면 얘기가 빠르겠네.’
쿠로우시 조직과 협력할 수 있다면 해마자리 파벌을 사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서로 협력하는 건 어떻습니까?”
“좋지!”
사카키는 고민할 여지도 없다는 듯 바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직녀성의 늑대가 함께 한다면 이보다 든든할 수 없구만!”
크하하하핫!!
생각지도 않던 아군이 생긴 것에 흥분한 건지 사카키는 방이 터져나갈 듯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소리가 커질 때마다 유카타 사이로 비치는 터질 듯한 근육들이 불긋불긋 맥동하는 게 보였다.
“뭣들 하냐 애들아!!! 당장 술 가져오지 않고!!”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오야붕!”
“무니(無二)! 무니로 준비해라!”
“앗. 하지만 그건 형수님께서 아끼시는….”
“이 멍청한 놈!!!”
“으아아아악!”
파앙!
파동에 얻어맞은 조직원 하나가 뒤로 튕겨 나갔다.
“사나이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 아내한테는 나중에 코시로가 몰래 빼서 마셨다고 얘기하면 된다!!!”
“그, 그런 방법이!!”
사나이 어디 갔는데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