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49)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49화
상성(常性) (1)
“뭐 이 새끼야?”
소스케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몸에서 둥그런 물방울을 숨풍숨풍 만들어내고 있던 그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임신은 갑자기 뭔 임신이야 이 미친놈아.”
“너… 설마 지금 아이를 가졌다는 걸 부정하려고 하는 거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뭔 개소리냐고.”
“갈(喝)!!!!”
저렇게 많은 알을 싸지르고 있으면서 뭔 개소리냐고?
“너 같은 놈 때문에 무책임하게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는 부모가 계속 생겨나는 거야!!”
“나 임신 안 했다고!!”
“아니! 넌 지금 임신 중이다!!”
“뭔 미친 소리야?”
“내가 봤어!!”
“보긴 뭘 봤다는 거야!!”
소스케는 아연한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살다 살다 ‘해마의 왕’ 앞에서 저런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놈을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잊어버린 거냐 소스케? 그날 밤… 길고 굵직한 촉수가 네 안에 들어갔….”
“미친 새끼!”
더 이상 얘기를 나눌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소스케는 만들어낸 둥그런 물방울을 오진을 향해 발사했다.
방금 밑도 끝도 없는 개소리를 들은 탓일까.
왠지 날아가는 물방울이 진짜 알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보여 참을 수 없는 불쾌함을 선사했다.
-투두두두두!
개틀링 건을 쏜 것처럼 쏟아지는 물방울.
소스케의 반응을 살피며 낄낄 웃음을 터트리던 오진이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천도윤과의 격전을 치렀던 덕분일까.
쏟아지는 물방울을 피하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던 게 여기서 또 도움이 되네.’
자기 자신에게 최면에 가까운 ‘거짓말’을 통해 레이저를 피했던 경험.
그때의 경험들이 빗발치는 수백의 물방울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사실 뭐… 굳이 피할 필요도 없지만.’
비릿한 미소를 숨기며 발을 움직였다.
-파아앙! 팡!
오진을 스쳐 지나가 바닥에 부딪힌 물방울들이 맑은 소리와 함께 폭발했다.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무슨 굴착기로 바닥을 판 것처럼 움푹 들어간 바닥을 보니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쏟아지는 물방울을 귀신처럼 피하는 오진을 바라보며 소스케가 거친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쉼 없이 물방울을 쏘아내는 것과 동시에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계속 그렇게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양팔을 검의 형태로 만들며 이리저리 공격을 피하고 있는 오진을 향해 휘둘렀다.
-파지지직!
오진의 앞에 푸른 뇌전이 장벽이 만들어졌다.
소스케의 입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소용없다고 했지!”
촤악!
순수한 ‘물’로 이뤄진 검이 뇌전의 방벽을 잘랐다.
케이크를 자르는 것처럼 가볍게 방벽을 가른 그의 검이 오진의 가슴을 길게 베었다.
“크윽!”
오진은 재빠르게 검을 피하려 했지만 쏟아지는 물방울들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검까지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물로 이뤄진 검이 오진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점이 벌어지며 핏물이 쏟아졌다.
“하하하! 이게 어쩔 수 없는 상성이라는 거다!”
일견 물과 전기의 대결이라면 전기 쪽에 압도적인 우세를 점치지만.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물’을 만들 수 있는 순간 그 상성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어버린다.
물론 무슨 포켓몬 대결도 아니고 각성자끼리의 싸움이 상성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건 아니었지만.
‘7성이라고 했던가.’
애초에 성(星)의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상성까지 불리하게 작용하면 아무리 뇌랑이 북극성의 사도라 할지라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자! 아까 건방을 떨던 아가리는 어떻게 된 거냐?! 앙?”
“크윽!”
사방에서 몰아치는 물방울과 그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검격.
‘모래시계자리의 성흔’을 사용하면 어찌 피할 수 있겠지만, 횟수 제한이 있는 성흔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없던 오진은 조금씩 소스케의 공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커헉!”
날카로운 검격에 살이 베이고, 파괴적인 힘이 담긴 물방울에 얻어맞은 피부가 짓이겨졌다.
“크으으윽!”
“어디 한 번 다시 개소리를 지껄여봐라!”
“아악!”
“비명만 처지르지 말고 지껄여 보라고!”
“비, 빌어먹을!”
“하하하!”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오진을 바라보며 소스케는 폭소를 터트렸다.
자신의 계획을 철저하게 망가트린 것도 모자라 건방진 표정으로 그를 조롱했던 오진이 비참하게 얻어터지는 모습에 짜릿한 전율이 퍼졌다.
“넌 편하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소스케는 입꼬리를 일그러트리며 급소를 피해 공격을 이어갔다.
데미지가 누적됐는지 쥐새끼처럼 재빠르게 공격을 피하던 오진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소스케는 더욱 집요하고 악랄하게 공격을 이어갔다.
“올빼미 새끼를 죽였다 해서 얼마나 강한가 했더니 이 새끼 순 성좌빨이었구만?”
애초에 뇌랑이 천도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직접 겨뤄보니 확실해졌다.
뇌랑이 올빼미의 왕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여신 베가의 힘 덕분이라고.
“하지만 그 직녀성의 도움도 지금은 받을 수 없겠지!”
성좌가 직접 현신하는데 얼마나 큰 제약이 뒤따르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북극성의 성좌라 해도 율법의 제약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천도윤이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또다시 성좌가 현신해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건 불가능하리라.
“제, 제기랄!”
이 정도로 밀릴 줄 몰랐다는 듯 당황한 표정의 오진.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처발리는 주제에 뭐? 혼자서 날 상대한다고?”
“크윽!”
“하하하! 그래! 샌드백처럼 처맞기만 하는 것도 상대하는 건 상대하는 거지!”
조롱의 말을 쏟아내며 더 격렬하게 공격을 쏟아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쉬지 않고 오진을 몰아붙이자 소스케의 입에서도 살짝 거칠어진 호흡이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진을 바라봤다.
급소를 피해 최대한 고통을 주는 방향으로 공격을 했다고 하지만, 무려 5분이 넘게 두들겨 맞았음에도 용케 쓰러지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좀 끈질긴데?’
아무래도 너무 시간을 질질 끌었던 모양.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소스케는 눈을 빛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이 불길한 검은빛으로 빛났다.
-슈우우우욱!
소스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물안개.
“퍼져라.”
나지막한 명령을 따라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짙은 물안개가 폭발적으로 주변을 뒤덮었다.
마치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이 땅을 뒤덮은 듯한 광경.
미카가 사용했던 물안개와는 차원이 달랐다.
늪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끔찍한 안개.
시야도, 움직임도, 호흡마저 앗아가는 악마의 기술이 오진을 옭아맸다.
“커헉! 컥!! 수, 숨이! 숨이!!”
오진이 목을 틀어쥐며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내는 게 보였다.
어찌나 공포에 질려 있는지 눈물까지 뚝뚝 흘리고 있는 한심한 모습.
소스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자, 이제 끝이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처절한 고통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대로라면 사카키나 쿠로우시의 다른 조직원들이 그의 뒤를 쫓을 것이다.
‘모아둔 영약을 쓰면 그놈들을 다 쓸어버리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만.’
숨겨둔 카드는 숨겨져 있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법.
고작 쿠로우시 따위를 멸망시키는데 비장의 수를 썼다가는 나중에 ‘파벌’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죽어라, 직녀성의 똥개야.”
소스케는 차갑게 눈을 빛내며 물안개에 휩싸인 오진을 향해 두 팔을 펼쳤다.
쿠르르르륵!!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수백 개의 물방울이 한곳에 뭉친다.
모여든 물방울의 크기는 무려 직경 10여 미터.
더 이상 ‘방울’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여기에 회전을 더한다.’
거대한 물방울 안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살짝 손을 대는 것만으로 전신이 빨려 들어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파괴적인 공격.
투웅!
응축된 물의 소용돌이가 물안개에 휩싸인 오진을 향해 쏘아졌다.
-콰드드드드득!!!
물방울이 부딪혔을 때 들리는 소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끝이군.”
소스케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그때,
-타앙!
여섯 개에 달하는 와이어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와이어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크윽!”
오진이 죽었다고 생각해 ‘순수한 물’ 상태를 풀려고 했던 소스케가 다급히 전신을 액화시켰다.
가까스로 와이어의 범위에서 빠져나온 후 오진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걸레짝이라 해도 믿을 만큼 전신이 상처투성이가 됐음에도 오진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끈질긴 새끼가…!”
어떻게 그 공격에 죽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죽었다고 생각한 놈이 갑자기 공격을 퍼붓자 짜증이 확 밀려왔다.
“뒤져!”
거칠게 달려들며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어찌 공격을 한 번 버티긴 한 것 같지만 그것뿐.
한 방에 뒤지냐 두 방에 뒤지냐의 차이였다.
-촤악! 촥! 콰득!
주변에 물보라가 휘몰아치며 소스케의 공격이 쉼없이 몰아쳤다.
하지만.
‘이 새끼 뭐 이렇게 안 죽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이상했다.
공격만 해도 벌써 수십, 수백 번은 넘게 성공시켰는데.
대체 왜 이렇게 쓰러지지 않는단 말인가?
“빌어먹을!”
소스케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걸로 끝내주마.”
숨겨뒀던 비장의 카드를 조금 꺼내기로 결정했다.
쿠르르륵!
그가 양팔을 크게 휘젓자 허공에 물줄기가 만들어졌다.
이제까지의 물과는 다르다.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는 물은 납치한 각성자를 녹여 만들어낸 영약.
콸콸 쏟아지는 영약들이 소스케의 몸속으로 조금 흘러들어왔다.
“하아.”
소스케는 낮은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처음엔 지하실에서 시작된 싸움이었지만 각성자라는 초인들의 전투로 인해 주변 전체가 휑한 공터로 변해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주변에 짙게 깔린 물안개가 높이 떠오르더니 그 안에서 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주변 전체가 물에 뒤덮였다.
‘이건 못 버티겠지.’
이 쏟아지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성흔의 마력이 담긴 치명적인 공격.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재앙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그 경이로운 모습에 오진은 경악성을 터트리며 쏟아지는 빗물을 올려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쏟아지는 빗물이 아닌, 눈앞에 떠오른 푸른 메시지창을 올려다봤다.
이미 한참 전부터 떠올라 있었던 메시지창을.
[주변에 물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수력친화(水力親和) Lv MAX》 스킬의 효율이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오진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며 외쳤다.
“무, 물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 정도의 수둔(水遁)을!!!”
성흔의 마력을 한껏 머금은 폭우가 ‘변형’으로 만들어낸 가짜 상처 위에 쏟아졌다.
오진은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