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5화
검은 별의 성유물 (2)
슈우욱!
질척한 점액질 소리와 함께 검은 빛을 띤 물체가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흐읍!”
짧게 숨을 들이켜며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손에 쥔 창을 앞으로 내밀며 종유석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쏘아진 물체를 확인했다.
‘촉수?’
끈적한 점액질이 흘러내리는 검은색 촉수.
촉수를 따라 시선을 내리니 종유석 틈 사이에 숨은 슬라임 비슷한 괴수가 보였다.
마치 타르가 뭉쳐진 것처럼 끈적이는 부정형(不定形)의 몸체를 지닌 슬라임이 꾸물거리며 촉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뭐야 저건.”
듣도보도 못한 생김새의 괴수였다.
[불쾌한 생물이로구나.]“딱히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요.”
생긴 건 끔찍하게 생겼지만 움직임도 그렇고 딱히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파직, 파지지직!
왼쪽 가슴의 성흔이 빛나며 푸른 뇌전이 타올랐다.
쇄도하는 촉수를 가볍게 피하며 검은 슬라임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퍼엉!
“씨벌!”
검은 슬라임의 몸이 폭발하며 사방에 점액질이 튀었다.
다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옷깃에 조금 점액질이 묻어버렸다.
치이이익!!
염산을 뿌린 듯 메케한 연기와 함께 옷깃에 닿은 점액질이 타들어 갔다.
‘살아 있을 때보다 뒤졌을 때가 더 까다로운 놈이네.’
어쨌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꾸륵, 꾸르륵!
“한 마리가 아니었네.”
소리를 듣고 모여든 건지 사방에서 꾸물거리며 다가오는 검은 슬라임들의 모습.
오진은 창을 핑그르르 돌리며 몸을 낮췄다.
‘뒤지면서 폭발하는 놈이라면.’
최대한 거리를 벌리면서 싸우는 게 기본.
오진은 창을 직접 찔러넣는 것이 아닌, 가까운 거리에서 뇌전을 쏘아 보내는 방식으로 차례차례 검은 슬라임들을 줄여나갔다.
‘이번 기회에 그걸 한 번 써볼까?’
검은 슬라임들이 쏘아 보내는 촉수 공격을 피해 Z자로 스텝을 밟고 있던 오진이 눈을 반짝였다.
원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으며, 범위까지 넓은 공격.
‘창뢰.’
베가의 축복을 받았을 때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그 스킬을 자신의 힘만으로 직접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읍. 후우.”
호흡은 낮고 길게.
허리를 숙이고, 오른손에 쥔 창을 최대한 뒤로 빼낸다.
우우우웅!!!
푸른빛으로 타오르는 성흔.
전신에 흘러넘치는 마력을 있는 대로 성흔에 때려 박는다.
[…무슨.]전투를 지켜보던 베가가 두 눈을 부릅떴다.
-파직, 파지지직!!
타오르듯 몸 주변을 휘감고 있는 푸른 뇌전.
기름에 불을 붙인 듯 성흔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간다.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마력은 차고 넘치도록 있으니까.
‘효율은 필요 없어.’
능률도 의미 없다.
부족한 숙련도는 무식한 양의 마력으로 채워 넣으면 된다.
-쿠웅!!!
거칠게 발을 구르며 뒤로 빼낸 오른팔을 전력으로 내지른다.
[《창뢰(蒼雷) Lv1》를 발동합니다.]붙들고 있던 야수의 목줄을 풀어주듯, 창끝에 맺힌 뇌전을 일제히 해방시킨다!
-콰자자자자자자작!!!!!
부채꼴 모양으로 전방을 휩쓴 푸른 뇌전.
퍼엉! 퍼엉! 퍼엉!
사방에서 터진 슬라임 파편이 비산했다.
“하아, 하아!”
창을 지팡이처럼 땅에 박아 넣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켰다.
‘됐다.’
어설프고, 반쯤 억지에 가까운 방식이지만.
‘축복’을 받은 상태에서만 쓸 수 있었던 스킬을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허어….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렵구나.]오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베가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대라면 당연히 빠르게 익힐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거문고자리의 성흔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는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사도를 만들지 못했던 이유도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 없었기 때문 아닌가.
‘그런데 고작 며칠 만에.’
자신이 제약을 감수하고 축복을 내려야만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을 직접 발현시킨 것이다.
아무리 한 번 경험해 봤던 일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속도.
“반쯤 억지로 한 거죠, 뭐.”
[흐음. 하긴. 아직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이 있었느니라.]《창뢰》를 발현시키는 것 자체는 성공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솔직히 형편없었다.
10정도의 힘을 들여 할 수 있는 일을 100을 들여 억지로 성공시켰다고 해야 할까.
비효율적인 두말할 것 없고 그 위력도 본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창뢰를 사용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라.]《창뢰》는 거문고자리의 성흔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에서도 중급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기술이었다.
아무리 회귀자라 해도 이제 막 각성한 거나 다름없는 그가 사용하기는 어려운 기술.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다행이네요.”
[나중에 본녀가 다른 기술들도 알려주겠느니라. 아 참, 생각해 보니 그대는 이미 다 알고 있겠구나.]“아뇨, 그건 아닙니다.”
오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회귀하면서 기억이 흐릿해진 부분이 몇 개 있습니다. 거문고자리 성흔의 기술들도 그중 하나고요.”
[흐릿해졌다니?]“모르겠습니다. 마치 필름이 끊어진 것처럼 그 부분만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어설프기 짝이 없는 변명을 하고 싶진 않지만.
‘갑자기 전혀 모르는 스킬을 써보라 할 수도 있으니깐.’
그건 뭐 입을 털어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으음. 별의 맹약으로 인한 회귀라면 기억이 유실될 일은 없을 터인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구나.]베가는 의문스럽다는 눈빛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의심에 찬 눈빛을 받으면서도, 오진은 조금의 당황조차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일종의 제약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제약 말이느냐?]“성좌의 경우도 율법의 제약이란 걸 받지 않습니까? 비슷한 원리로 뭔가 초월적인 힘이 제 기억에 일부 관여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남이 듣는다면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냐며 눈을 찌푸렸겠지만.
실제 초월적인 힘에 제약을 받고 있는 그녀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랐다.
[확실히… 가능성이 없는 얘긴 아니로구나.]베가가 지그시 입술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도 중요한 건 잊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요한 거라면…?]“예를 들어 베가 님에 대한 기억, 같은 거요.”
방긋 미소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으읏!]움찔. 베가가 몸을 떨었다.
[또, 또 그대는 그런 부끄러운 말을 하는구나!]얼굴을 붉힌 채 여신님의 모습이 귀엽다.
[크, 크흠. 그나저나….]고개를 끄덕인 베가가 몸을 돌려 검은 슬라임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가늘게 눈을 뜨며 끈적한 점액질로 뒤덮인 종유석들을 바라보았다.
[음… 뭔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꺼림칙한 기운이요?”
[본녀도 정확히 표현하기 어렵구나. 그냥 느낌일 뿐이니라.]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산산조각이 난 검은 슬라임들의 사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베가가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라고 하니 뭔가 더 있을 수도 있다.
‘음? 저건….’
조각난 검은 슬라임의 사체를 뒤지던 오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체 사이로 보이는 손톱만 한 크기의 검은 보석들.
‘변종의… 성유석?’
그건 분명 얼마 전에 발견했던 변종의 성유석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
‘뭐지?’
변종이 또 나온다고?
‘이렇게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녀석들이 아닐 텐데?’
변종의 성유석이 괜히 비싸겠는가.
일반 개체에 비해 그 숫자가 확연히 적기 때문에 적게는 수 배, 많게는 수십 배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베가 님. 이 검은 성유석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본녀도 모르겠느니라.]베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저 검은 성유석에 대한 기억도 사라진 게냐?]“예. 전혀 모르겠….”
아차.
“…짐작 가는 건 있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예 다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보단 그래도 짐작 가는 게 있다는 느낌으로 여지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회귀자가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면 말이 안 되니까.’
어쨌든 갑자기 왜 이렇게 변종 괴수가 많이 발견되는지는 베가도 알지 못한다는 것.
‘일단 안으로 더 들어가 볼까.’
오진은 창날에 튄 검은 점액질을 털어내며 동굴 깊숙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어쩐지 같은 곳을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이건 어쩔 수 없네.’
되도록 베가 앞에서는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시켰다.
민감해진 후각을 통해 오만가지 냄새들이 훅 밀려 들어왔다.
“우욱!”
[왜 그러느냐?]“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아까 전 검은 슬라임들의 냄새.’
불쾌하고, 끈적한 냄새의 흔적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꼬인 동굴 사이를 지나치자 탁 트인 넓은 공동이 나타났다.
“후우.”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온 모양.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해제하니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들이 사라졌다.
[이곳은….]베가가 가늘게 뜬 눈으로 넓은 공동을 살폈다.
[아까 전에 느꼈던 꺼림칙한 기운이 더 짙어졌구나.]“여기 주변에 성유물이 있을 겁니다.”
오진은 공동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 어디 있으려나.’
보물 지도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저건.’
공동 끝에 보이는 거대한 석상.
마치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석상의 이마 정중앙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불길한 흑빛 아우라가 일렁거리는 검은 술잔.
주먹보다 살짝 더 큰 크기를 지닌 검은 술잔이 석상의 미간 사이에 박혀 있었다.
‘찾았다!!!’
뭔가 익히 들었던 성유물과는 차이가 좀 있었지만, 어쨌든 누가 봐도 신묘한 힘이 깃들어 있는 성유물이 맞았다.
‘크으! 미쳤다, 미쳤어!! 저게 대체 얼마짜리냐!!’
말로만 들었던 성유물을 직접 눈앞에 두니 벼락을 맞은 듯 부르르 몸이 떨렸다.
‘성유물!’
진짜 성유물이라니!
━쌉소름.
불알 잔주름까지 쫙 퍼지는 전율.
심장이 벌렁거리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능력이 쓸만하면 내가 쓰고, 애매하면 팔면 돼.’
어느 쪽이건 좋다.
“푸흐흐흐!!!”
아 씨.
이거 웃음이 멈추질 않네.
[저게 그 성유물이더냐?]“그렇습니다.”
오진은 환하게 웃으며 석상 쪽으로 걸어갔다.
-꾸르륵. 꾸륵.
그때, 공동에 울려 퍼지는 질척이는 점액질의 소리.
[또 불쾌한 것들이 왔구나.]베가가 눈살을 찌푸리며 뾰로롱 허공을 날아 오진의 어깨에 안착했다.
“흐흐. 이미 알고 있던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창을 움켜쥐며 검은 슬라임 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냄새를 추적해 따라왔을 때부터 이곳에 슬라임 무리가 있을 거란 예상은 했다.
‘성유물을 지키는 가디언 같은 건가.’
저런 X밥들을 가디언으로 두다니.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후딱 쓸어버리고 성유물을 가져가 볼까.’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은 슬라임들을 향해 걸어갔다.
-찌걱. 꾸륵. 꾸르르륵.
공동 중앙으로 모여드는 검은 슬라임의 숫자는 대략 50여 마리.
무시무시한 숫자긴 하지만, 상대 못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솔직히 슬라임 하나하나는 앤트혼보다 약했으니까.
‘폭발만 조심하면 되지.’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쿠륵, 쿠르륵, 쿠르르르륵!!
“음?”
근데 이 새끼들 안 달려들고 뭐 하는 거지?
“…어?”
검은 슬라임들을 향해 걸어가던 오진의 발걸음이 멈췄다.
공동 중앙에 모인 50여 마리의 검은 슬라임.
촉수를 뻗은 슬라임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뒤엉키고 있었다.
-찌걱!
불쾌한 소리와 함께 슬라임의 몸이 터졌고, 붙어 있는 슬라임과 하나로 합쳐졌다.
“잠깐.”
오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꾸르르르르륵!! 쿠륵!! 찌걱! 쿠륵, 크르르르르르르륵!!!
수십에 달하는 검은 슬라임들이.
하나로 ‘합체’했다.
“야, 야, 야. 잠깐만.”
무려 5미터에 달하는 거인의 형태로 합체한 슬라임들.
검은 점액질로 이루어진 괴수가 가슴을 쿵! 쿵! 쳤다.
“크라라라라라라라!!!!”
무시무시한 포효가 공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어, 시발?’
뭐야 저거.
존나 세 보이는데?
[후훗. 과연, 그대는 이리될 줄 알고 있었던 게로구나.]아뇨.
몰랐는데요.
[그대가 말한 대로, 걱정 없이 지켜보겠느니라!]어쩌지.
“하하!! 저만 믿으십쇼 베가 님!!!”
X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