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50화
상성(常性) (2)
쏴아아아아아!
짙은 물안개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우.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 정도로 세찬 빗줄기가 여름철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소스케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그는 빗물을 얻어맞으며 비틀비틀 위태롭게 서 있는 오진을 바라봤다.
‘뭐야, 이게?’
뭔가 이상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쯤 이미 전신이 피곤죽이 된 채 쓰러져야 정상일 텐데.
‘왜 이렇게… 안 뒤지는 거야?’
분명 상처는 생기고 있다.
온몸은 피범벅이 됐고, 끔찍하게 뒤틀린 팔다리가 빗물을 따라 흔들거리고 있다.
그런데.
대체, 왜.
“하아! 하아! 빌어먹을!”
거친 욕지기를 내뱉으며 ‘영약’을 좀 더 흡수했다.
수년에 걸쳐 무려 1700여 명에 달하는 각성자들의 성흔을 녹여 만든 영약.
물론 실제 물병자리의 각성자가 만드는 영약에 비해서는 그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만.
“왜, 왜 안 쓰러지는 거냐고!!!”
헤아릴 수 없는 목숨을 산 제물로 바쳐 만들어낸 영약.
그 아득한 마력이 깃든 공격을 맞고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허억! 허억!”
무슨 짓을 해도 오뚜기처럼 쓰러지지 않는 오진을 향해 의미 없는 공격을 이어가기를 몇 분.
소스케는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아무리 영약을 통해 막대한 마력을 거머쥐게 됐다고 해도 그걸 사용하는 건 소스케 본인.
한계 이상의 마력을 사용한 마력 회로가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게 느껴졌다.
“다 끝났어?”
피투성이가 된 채.
비참하기 짝이 없는 비명을 지르며 일방적으로 공격을 얻어맞던 오진이 피식 웃으며 숙였던 허리를 폈다.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까 전 겁에 질려 있던 꼴사나운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
소스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은 탄성.
그제야 그는 왜 그토록 오진이 쓰러지지 않았는지.
마력 회로가 타들어 갈 정도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그를 죽일 수 없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너… 처음부터 다 연기였던 거구나.”
궁지에 몰린 것처럼 겁에 질린 표정을 지은 것도.
꼴사납게 비명을 내질렀던 것도.
모두 무리한 공격을 유도해 체력을 고갈시키기 위한 연기에 불과했다.
“대, 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 공격을 다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설사 상대방이 방패자리의 고위 각성자라 해도 제대로 된 방어도, 회피도 하지 못한 채 이 정도로 공격을 얻어맞는다면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가 알고 있는 뇌랑은 방패자리가 아닐뿐더러 고위 각성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대체… 뭐, 냐고.”
수십 번 넘게 칼에 찔리고, 불에 태워지고, 짓뭉개졌던 시체가 멀쩡히 몸을 일으키면 이런 기분일까.
B급 호러 무비에나 나올법한 장면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다리 후들후들 떨리고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까 상성이 어쩌고 했지?”
오진은 짙게 웃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성흔의 마력이 담긴 빗방울이 몸을 때릴 때마다 살점이 찢어지는 상처가 생겼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을 되돌린 듯 아물어버렸다.
예전에 폭풍우 속에서 아샤드 칸과 싸웠을 때보다 더욱 강해진 재생력.
지난 3일간 해마자리의 각성자와 싸우면서 확인한 결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을 수력친화 스킬로 흡수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센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역으로 재생력이 올라가게 되지.’
물론 처음 상처가 생겨나고 재생되는 사이에 날카로운 메스로 살점을 저민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정도 고통을 참는 것은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가 말했던 대로━ 어쩔 수 없는 상성이라는 게 존재하나 보네.”
하은에게 소스케와 홀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던 이유.
그가 숨기고 있는 수가 뭐든 상관없었다.
그의 성흔이 ‘해마자리의 성흔’인 이상.
‘날 이길 순 없거든.’
오진은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며 천천히 창을 들어 올렸다.
데미지를 입은 척 연기를 하면서 소스케의 체력을 어느 정도 빼두는 데는 성공했다.
이젠 체력이 빠진 그를 입맛대로 요리하면 될 뿐.
‘물론 놈에게 뇌전이 통하지 않긴 하지만.’
상관없다.
오진이 가지고 있는 성흔은 거문고자리의 성흔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우우우웅!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이 빛을 뿜었다.
오진의 몸 주변으로 수백, 수천 장에 달하는 검은 깃털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올빼미자리의 성흔?”
소스케의 눈이 부릅뜨였다.
“네, 네가 어떻게 그 성흔을…?”
직녀성의 사도가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사용하는 모습에 오싹한 전율이 퍼졌다.
하지만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틈도 없이, 검은 깃털로 이뤄진 날개가 크게 펄럭였다.
“흑익만화.”
천도윤이 즐겨 사용했던 기술이 오진을 통해 발현됐다.
슈슈슈슉!!
검은 날개의 궤적을 따라 쏘아진 수천 장의 깃털이 소스케를 덮쳤다.
“그딴 공격은 안 통한다고 했지!”
소스케는 몸을 액체로 만들며 수천 장에 달하는 깃털을 몸으로 받아냈다.
날카로운 깃털이 그의 몸을 뚫고 뒤로 지나갔다.
“글쎄, 과연 안 통할까?”
오진은 비릿하게 웃으며 쏘아낸 깃털의 움직임을 ‘멈췄’다.
“크윽!”
소스케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
수천 장의 깃털들이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게 아닌, 움직임을 멈추고 액체로 변한 그의 몸 안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몸 안에서 노폐물을 빼내어 순수한 물을 만들었던 것처럼 검은 깃털을 빼내려 했지만.
워낙 몸 안에 틀어박힌 깃털이 많은 탓에 쉽게 빼낼 수 없었다.
검은 깃털 뭉치가 뒤섞인 그의 육체는 찢어진 오리털 파카를 세탁기에 돌린 듯한 모습으로 변했다.
“자, 이 정도면 좀 덜 순수한 물이라고 봐도 되겠지?”
오진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다시 거문고자리 성흔을 활성화했다.
‘충전.’
파지지직!
사납게 타오르는 푸른 뇌전이 응축됐다.
한 번, 두 번, 세 번.
빛을 더해가며 응축된 푸른 뇌전이 창끝에 맺혔다.
“터져라.”
호흡을 깊게 들이쉬며 창을 들어 올렸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창을 든 오른팔을 활시위를 당기듯 뒤로 당겼다.
허리의 탄력을 이용하며 손에 든 창을 전력으로 내던졌다.
-파지지지지직!!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푸른 뇌전.
소스케의 명치를 파고든 창이 응축된 뇌전을 해방했다.
쿠르르르릉!!
천둥이 내려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뇌전의 폭발이 소스케를 집어삼켰다.
“아, 으.”
소스케는 덜덜 몸을 떨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명치 부근에서 폭발한 뇌전에 오른쪽 상반신 전체가 날아가 버렸다.
“빠, 빨리, 재, 생을….”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한쪽만 남은 팔을 더듬더듬 움직였다.
몇 년에 걸쳐 만들었던 영약들이 그의 부름을 듣고 상처를 재생하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안 되지.”
오진이 소스케를 향해 몰려드는 영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메마른 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소스케가 만들어냈던 푸른 영약들이 오진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머, 멈춰!”
소스케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영약들을 바라보며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인공적으로 ‘용맥’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영약.
수년에 걸쳐 1,700명에 달하는 각성자의 목숨을 녹여 만들어낸 마력의 덩어리가 엉뚱한 사람의 손에 넘어가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건… 우리의, 희망이란, 말이다.”
소스케는 절박한 표정으로 오진에게 흡수되고 있는 영약들을 향해 팔을 뻗었다.
빛바랜 영광을 되찾아줄 희망.
‘별에게 버림받은 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줄 유일한 방법이 눈앞에서 송두리째 빼앗기고 있었다.
“이거 진짜 흑우는 따로 있었네.”
오진은 몸속으로 스며드는 영약을 느끼며 짙게 웃었다.
물론 이미 순수한 마력 양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인 양을 자랑하는 그에게 있어 이 정도 마력쯤은 그닥 큰 의미 없었지만.
‘나한테는 의미 없어도, 저놈한텐 다르겠지.’
절박한 표정으로 손을 뻗는 소스케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수백 억대의 자산가에게 있어 10억의 가치와 일반 서민층에게 있어 10억의 가치가 다르듯.
오진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마력이라 할지라도 지금 소스케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절실할 수 없는 마력이었을 것이다.
“으아아아아!!”
영약을 통째로 빼앗긴 소스케가 눈이 뒤집혀 오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의 마력을 소모한 그에겐 오진을 상대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터억.
오진은 달려드는 소스케의 머리를 손을 움켜쥐었다.
마력이 고갈됐는지 물처럼 출렁거리던 그의 육체가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공포에 질린 눈동자.
“충전.”
오진은 붙잡은 소스케의 머리에 ‘충전’을 사용했다.
붙잡은 머리 안에 푸른 뇌전이 응축됐다.
“아아아아아악!!”
소스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오진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마력이 고갈된 그에게 파괴적인 악력에서 벗어날 수단은 없었다.
“충전, 충전, 충전, 충전, 충전.”
파지지지지직!!
한계 이상으로 응축된 푸른 뇌전이 소스케의 머리 안에서 휘몰아쳤다.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선 듯 눈을 뒤집어 깐 채 기절한 소스케의 머리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파드드득!!
뇌수와 안구, 으깨진 광대뼈와 치아들이 후드득 쏟아졌다.
“쯧.”
오진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소스케와의 전투 자체는 딱 예상했던 전개대로 흘러갔지만.
“너무 쉬웠네 이건.”
수력친화가 있는 이상 아무리 심한 외상을 입는다고 해도 금방 재생되어 버리니 딱히 전투에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확실히 7위인 이유가 있네.’
아무리 최악에 가까운 상성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래도 일전에 상대했던 천도윤과 비교해 소스케의 무력은 별 볼일 없게 느껴졌다.
‘6위와 7위의 격차가 이 정도라면.’
과연 다른 집행관들을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을까.
“…….”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오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소스케의 시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이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모조리 먹어 치워서 그보다 강해지면 그만이지.’
꾸르르륵.
흑천의 구름이 해마자리의 성흔을 뒤덮었다.
꿀렁이는 구름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마력.
[‘흑천’의 개화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흑천’의 여섯 번째 개화가 시작됩니다!]맑은 방울소리와 함께 푸른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쿠르르르륵!
왼쪽 가슴에서 빠져나온 검은 먹구름이 전신을 휘감았다.
[흑천의 개화에 따라 각성자 이신혁의 기억 일부가 전승됩니다!]치지지직.
노이즈가 낀 듯 시야가 뒤틀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을 따라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려오는 눈꺼풀을 따라 세상이 꺼지고, 또 다른 세상의 기억이 켜진다.
눈앞에 보이는 건 휘황찬란한 야경.
오진이 하은에게 용마안을 선물해줬던, 용산 경매장 위에 설치된 공중 정원.
-크흠! 누, 누나!
그곳에는 잔뜩 긴장한 표정의 이신혁이 하은을 앞에 두고 무슨 대기업 면접을 치르러 온 것 마냥 빳빳이 굳어있었다.
그는 하은에게 손바닥만 한 크기의 네모난 상자를 건네며 외쳤다.
-좋아… 해. 처음 누날 만났을 때부터… 쭉.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무슨 철 지난 러브코메디에서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고백을 입에 담았다.
‘이 씹새끼가?’
이신혁의 기억을 지켜보던 오진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