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5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58화
낙원으로 (1)
강화대교를 타고 넘어가는 길.
천혜 길드가 정착하며 새롭게 개축된 다리는 무슨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아스가르드로 통하는 다리처럼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와 씨, 저거 만드는 데 대체 얼마를 처발랐을까?”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하은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그녀의 말마따나 강화도 특별 자치 구역, 속칭 ‘낙원’으로 통하는 다리는 그 이름에 걸맞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뭐,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길드인데 돈은 끝장나게 많겠지.”
“이사벨라 고년이랑 비교하면 누가 더 부자려나?”
“글쎄다?”
정확히는 몰라도 일단 둘 다 오진이 상상할 수 없는 터무니없는 재산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나저나 이사벨라 걘 요즘 뭐 한다냐?”
“잘 모르겠네. 일단 카톡은 가끔 하고 있긴 한데.”
이사벨라와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바빠서 만나러 갈 시간이 없다든지 강우 씨가 너무 보고 싶다든지.
그런 얘기만 주로 했기 때문에 그녀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최근 흑성회 쪽도 난리가 났을 테니까.’
서열 6위의 집행관에 이어 7위의 집행관까지 연달아 죽었으니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건 분명했다.
아예 숨어버리거나 오히려 더 활발하게 움직이거나.
뭔가 액션을 취하긴 하겠지.
“…걔랑 별로 연락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은이 가늘게 눈을 뜨며 말했다.
딱히 이사벨라에 대한 질투심을 느끼는 게 아닌, 순수하게 오진을 걱정하는 말투였다.
하긴.
그녀도 이사벨라의 정체를 전해 들었으니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으리라.
“최대한 조심하고 있으니까 걱정 마.”
일단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직 이사벨라는 오진에게 있어 통제 불가능한 변수였다.
‘내 쪽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흑성회를 무너뜨리는데 큰 힘이 되겠지만.’
보상이 큰 만큼 감수해야 할 리스크도 컸다.
오진은 이사벨라에 대한 생각을 잠시 이어가며 차를 운전했다.
그렇게 다리 끝에 도착했을 때.
“정지해 주십시오.”
경호복을 입은 두 사람이 차를 막아섰다.
날카로운 눈빛과 절제된 동작을 보니 녹록지 않은 실력을 지닌 각성자처럼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차로 다가왔다.
“입주권을 확인하겠습니다.”
오진은 천상길이 건네준 낙원의 입주권을 경호원에게 내밀었다.
꼼꼼히 입주권을 확인한 경호원은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굳게 닫힌 입구를 열었다.
“입장하셔도 좋습니다.”
“수고하세요.”
오진은 무슨 성문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문을 지나 낙원의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지나 펼쳐진 것은 정갈하게 꾸며진 도로.
도로 양옆으로 줄지어 늘어진 전통 한옥 스타일의 집들이 무슨 민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곳이 낙원이란 곳이더냐?]“엉. 나도 얘기로만 들었지 와 보는 건 처음이야.”
100억이라는 거금을 지불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낙원.
그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은 많았지만, 정작 낙원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연 낙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오진은 천천히 차를 몰며 낙원 안을 구경했다.
눈에 보이는 낙원 풍경은.
“어… 음. 여기 낙원 맞지 오지나?”
[낙원이라는 이름치고는 굉장히 삭막한 곳이로구나.]베가와 하은의 말마따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낙원이라고 하기게 무슨 천룡인들이 사는 도시처럼 말끔하게 꾸민 사람들이 하하 호호 웃으며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무슨 유령 도시에 온 것처럼 거리는 삭막했다.
그나마 몇몇 보이는 사람들도 천혜 길드의 제복을 입은 각성자 말고는 없었다.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다르네.”
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상길이 있다는 중앙 가옥으로 향했다.
천상길의 거처는 ‘탐랑성’이라는 칭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촐한 가옥이었다.
쿠로우시의 아지트보다도 훨씬 작은 가옥.
작은 마당에는 상추와 파까지 기르고 있는 모습이 어딜 어떻게 봐도 시골에 있는 흔한 집처럼 보였다.
“왔나.”
끼익.
낡은 문이 열리며 곱게 다린 한복을 입은 노인이 걸어 나왔다.
깨달음을 얻은 도인처럼 현기(賢氣)에 가득 찬 눈빛.
경건함까지 느껴지는 그의 분위기는 마치 같은 인간이 아닌 성좌를 마주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탐랑성 천상길.
세계 최강의 각성자로 꼽히는 칠성의 일원인 그가 오진을 반겼다.
“으음?”
천상길의 눈이 오진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베가를 향했다.
자신의 수호령이라는 변명을 할 새도 없이, 천상길은 베가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호오. 본녀가 누군지 알아본 것이냐?]“이토록 정순한 ‘소리’를 내는 영혼은 별에서 탄생한 신들 외에는 없으니까요.”
깍듯이 예를 차리는 천상길의 모습에 베가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성좌님께서 직접 현신까지 하실 수 있다니… 과연 북극성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군요.”
[어디까지나 제한적인 현신에 불과하느니라.]계속 베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는지 허리를 숙였던 천상길이 오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은 사카키에게 전해 들었네. 고생이 많았구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허허. 그리 말해주니 이 늙은이의 마음이 든든하네.”
천상길은 흡족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게. 손님을 밖에서 서 있게 만드는 것도 예가 아니니.”
“예.”
오진과 하은은 천상길의 안내를 따라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촐했던 외관처럼 집안 내부도 거의 텅 비어 있다시피 가구가 없었다.
“그래, 오는 길은 좀 어땠나?”
천상길이 차를 내오며 물었다.
“아무 문제 없이 왔습니다.”
“다행이군.”
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낙원의 모습이 생각과는 달라 놀랐나?”
“예.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그러겠지.”
천상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낙원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다른 구역이 있는 겁니까?”
“아니. 자네가 본 풍경대로네. 낙원… 아니, 강화도에는 우리 길드원 외에는 거의 살고 있지 않네.”
“…….”
소문으로 듣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옆에서 가만히 차를 홀짝이고 있던 하은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물었다.
“저… 그럼 낙원에만 가면 삼시 세끼 잘 챙겨 먹으면서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뭐 그런 소문들은 다 뭐예요?”
평소 어색하다는 이유로 존칭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하은도 득도한 도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천상길에게 반말을 하긴 어려운지 꽤나 점잖은 말투로 물었다.
그녀의 질문을 들은 천상길은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살며시 쥐며 입을 열었다.
“그건 우리 길드에서 일부러 만든 가짜 소문들이라네.”
가짜 소문.
즉.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낙원’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라는 의미였다.
“왜 그런 소문을 내신 겁니까?”
오진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상길의 대답은 간결했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지.”
희망? 무슨 희망 말인가?
“그러고 보니 자네는 각성자가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네만. 사실인가?”
“예. 1년 좀 안 됐습니다.”
“허허. 1년 만에 흑성회의 집행관을 둘이나 죽일 정도로 강해지다니… 눈으로 봐도 믿기 어렵구만.”
천상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잠시 얘기가 딴 길로 새서 미안하네. 1년 전에 각성했다면 자네도 잘 알고 있겠군.”
“뭘 말씀이십니까?”
“성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들의 삶, 말일세.”
“…….”
성좌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
비각성자들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오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또한 삶의 밑바닥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지금이야 여건이 많이 좋아졌네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들의 삶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선 자네처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예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네.”
북극에 마경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열린 후 3년.
아직 각성자들이 많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성장도 덜 했던 그 시기는 말 그대로 혼돈의 시대였다.
경제는 개 박살 나고, 직장이라는 건 찾아볼 수도 없었던 시기.
밖에는 괴수가 나돌아다니는데 밥 한 끼 챙겨 먹을 돈조차 벌 수가 없다.
그 상황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래서 정부와의 협의하에 ‘낙원’이라는 곳을 만들었지.”
“사람들에게 헛소문을 퍼뜨려 희망을 심어주려 했던 겁니까?”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천상길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 속에서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 가기 위해 살고 싶은 의욕도 생기지 않겠나.”
“…….”
천상길의 말을 들은 오진은 눈을 찌푸렸다.
일단 뭘 의도했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설프네요.”
거짓된 ‘희망’으로 사람들을 구하려 했다면.
“더 좋은 방법이 많았을 텐데 말이죠.”
“…….”
천상길은 놀란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허허.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구만.”
비난이든 질책이든.
자신이 한 거짓말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 들어오리라 생각했는데.
설마 거기서 ‘어설프다’라는 대답을 할 줄이야.
“자네 말대로 어설픈 방법이었다네. 지금에 와서도 많이 후회하고 있지.”
당시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오진의 말마따나 ‘낙원’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지는 못했다.
실패한 거짓말.
어설프다는 지적이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팠다.
천상길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화제를 돌렸다.
“뭐…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또 궁금한 건 없나?”
“안 그래도 여쭤볼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오진은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둥그런 패를 꺼냈다.
섬뜩한 뱀 문양이 새겨진 패.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문양을 확인한 천상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전에 ‘뱀’을 조심하라 말씀하셨죠?”
천상길은 심각한 표정으로 패를 받아들였다.
“집행관들에게 얻은 겐가?”
“예.”
“후우… 벌써 흑성회 내부에서 그녀의 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구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주름진 이마를 쓰다듬었다.
“오늘 천상길 님을 찾아온 건 그 ‘뱀’에 대해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서입니다.”
“흐음.”
천상길은 침음을 삼키며 눈가를 좁혔다.
“뱀자리의 여왕… 아니, 여제(女帝)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그리 많지는 않네. 그녀가 극도로 위험한 존재이며… 흑성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네.”
흑성회의 지배자.
그렇다는 건.
“집행관 서열 1위, 라는 뜻입니까?”
“그러네.”
집행관 서열 1위.
6위였던 천도윤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오진의 입장에서 서열 1위라는 직책이 가져다주는 압박감은 상당했다.
3위인 이사벨라만 해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각성자인데 1위는 대체 얼마나 강한 존재일까.
“원래 흑성회가 파벌마다 제각각 목적과 행동이 다르다는 건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런 흑성회를 하나로 모으려 하고 있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즉, 같은 아군조차 힘으로 찍어누르며 강제로 따르게 하고 있단 의미였다.
“뱀자리 여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신 겁니까?”
“한 가지 더, 들은 정보가 있네.”
후륵.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는 ‘천마’라 불리는 존재를 광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하더군.”
“예?”
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