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61화
백조자리의 성좌 (2)
“오랜만이야, 베가! 잘 지냈어?”
기괴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옷차림의 소년.
데네브는 환한 미소와 함께 베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명랑하게 손을 흔드는 데네브의 뒤에는 한 청년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데네브와 똑같이 검푸른 머리칼을 지닌 청년.
허리까지 기른 머리를 말총머리로 묶은 청년의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검이 채워져 있었다.
‘저 사람은.’
그 청년은 오진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데네브의 12사도 중 한 명이자 ‘칠성’의 일원.
무곡성(武曲星) 알렌 오르카.
영국 출신의 각성자인 그는 무곡성이라는 칭호보다는 ‘검성’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을 정도로 경이로운 검술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긴 무슨 일이느냐?]베가가 가늘게 눈을 뜨며 데네브를 노려봤다.
데네브는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긴! 오랜 친우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와봤지!”
[친우라… 그대와 친우라 부를 정도로 연을 쌓은 기억은 없구나.]“하하! 그런가? 하긴, 베가 넌 예전부터 스피카 말고는 얘기조차 거의 섞지 않으니까 말이야.”
데네브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이내 그의 시선이 오진에게로 향했다.
“헤에, 네가 그 유명한 뇌랑이구나? 우리 위~대하신 직녀성 님의 첫 번째 사도.”
휘파람을 불며 베가의 허벅지 위에 누워있는 오진을 바라봤다.
“둘이 사이좋은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 마치 엄마랑 그 자식을 보는 것 같은데?”
“…….”
오진이 끄응 침임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베가에게 무릎 베게를 받고 있을 때 불쑥 찾아오다니.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뻘쭘해졌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냐 물었을 텐데.]베가가 차게 식은 목소리로 다시금 물었다.
데네브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에이,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마. 베가 네가 첫 사도로 삼은 각성자가 어떤 사람인지 구경하러 온 것뿐이니까.”
[그럼 확인이 끝났으니 이만 가면 되겠구나.]베가는 차가운 태도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지 말고 조금 더 있어도 괜찮잖아? 내가 뭐 해코지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데네브는 그런 베가의 축객령에도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베가의 눈썹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흐응. 직녀성의 사도가 된 지 1년쯤 됐다고 했나?”
데네브는 팔짱을 낀 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꼼꼼히 오진을 살피던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1년 치고 빠르게 성장하긴 했네. 뭐, 물론….”
입가에 지어진 선명한 비웃음.
“내 아이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말이야.”
그는 자랑스럽다는 듯 옆에 선 알렌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근거 없는 허세에 찬 조롱이 아니었다.
데네브의 12사도.
그들은 영향력만 놓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각성자들이었으니까.
‘일단 칠성 중에 무려 세 명이 데네브의 사도라는 게 가장 크지.’
세계에서 가장 강하는 일곱 명의 각성자.
그들 중 무려 세 명이 데네브의 성흔인 백조자리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였다.
다른 네 명이 제각기 다른 별자리의 성흔을 지니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확실히 그들의 존재는 규격 외라 부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아홉 명의 사도들도 최소 7성 이상이라고 했던가.’
심지어 그들은 평범한 별자리가 아닌 오진과 같은 ‘북극성’의 성흔을 지닌 각성자들이었다.
북극성의 성흔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힘을 지녔는지는 거문고자리의 성흔만 생각해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
[호오. 지금 본녀의 아이보다 그대의 아이가 더 뛰어나다 말하고 싶은 게냐?]“그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더 뛰어난 게 사실이잖아?”
베가와 데네브의 시선이 교차했다.
쿠구구구궁!
살짝 기운을 내뿜는 것만으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거대한 신전 전체가 뒤흔들렸다.
“크윽….”
북극성과 북극성의 신경전.
두 초월자들이 내뿜는 거대한 기운에 오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
제대로 숨을 쉬기조차 어려운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그렇게 몸이 짜부라질 듯한 압박을 느끼고 있을 때.
“데네브.”
겨울철 몰아치는 눈보라처럼 차가운 목소리.
검푸른 머리칼이 매끄럽게 흔들리며 알렌이 한 걸음 내디뎠다.
주변을 짓누르는 초월자들의 기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데네브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렸다.
“진정해.”
“으음. 뭐, 우리 알렌이 그렇게 말한다면.”
데네브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벽을 압박하던 기운이 눈 녹듯 사라졌다.
“결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거문고자리의 여신이시여.”
알렌은 자로 잰 듯 유려한 동작으로 고개를 숙였다.
허리까지 기른 검푸른 머리칼이 스르륵 몸을 타고 흘러내리며 이우혁에 비견될 만큼 잘생긴 외모가 가려졌다.
[알았으면 됐느니라.]“허나.”
살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
“데네브에 대한 여신님의 태도 또한 결례라 부르기 충분했음을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한편 상대방의 잘못 또한 칼같이 지적하는 화법.
감정의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와 어우러져 그를 한층 더 기계처럼 느껴지게 했다.
“글쎄요. 결례라는 말의 뜻을 잘 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나의 아이야?]오진이 한 걸음 나섰다.
눈앞에서 베가에게 대놓고 꼽을 주고 있는데 가만히 듣고 있을 순 없었다.
“무슨 뜻이죠?”
“이곳은 베가 님의 신전입니다. 밖에서 마주쳤다면 모를까, 원치 않는 손님에게 축객령을 내리는 것 정도는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 아닙니까?”
“…그건.”
말끝을 흐리는 알렌.
데네브는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혀를 내밀었다.
“이곳이 베가의 신전이라고?”
그는 빙글 한 바퀴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글쎄… 과연 언제까지 베가의 신전일 수 있으려나?”
“…무슨 뜻입니까?”
오진은 눈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베가의 신전일 수 있냐니?
무슨 전세 계약이 끝난 것도 아니고 신전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의문을 담은 눈으로 베가를 돌아봤다.
[…….]베가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지그시 데네브를 노려보고 있었다.
“베가, 너도 알고 있잖아? 그치?”
[…여전히 입이 경박하기 그지없구나.]뭐야.
진짜 전세였어?
“베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번에 베가가 율법의 제약을 받게 됐잖아?”
데네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다는 듯 말을 이었다.
“율법의 제약을 받은 성좌는 그 ‘신격’이 떨어지게 되지. 특히 사도가 꼴랑 한 명밖에 없어서 ‘신격’을 지킬 수단이 성좌라면 더더욱 말이지.”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
오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성좌들 사이에서 말하는 ‘신격’이 뭘 의미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성좌라고 해서 다 같은 급이 아니지.’
가장 높은 신격을 지닌 세 명의 성좌가 바로 북극성.
그 아래 황도 12궁의 성좌들이 존재했고, 또 그 아래에는 한 단계 급이 낮은 성좌들이 존재했다.
성소만 해도 성좌의 ‘신격’에 따라 신전이 위치한 높이가 다르지 않던가.
낮은 곳에 신전이 있는 성좌는 그만큼 낮은 신격을 지니고 있고, 높은 곳에 신전이 있는 성좌는 그만큼 높은 신격을 지니고 있었다.
‘성좌들이 그 신격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성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에게 성흔을 부여해 그 힘과 영향력을 키우는 것.
비유하자면 과수원과 비슷하다.
나무를 기르기 좋은 땅, 즉 인간을 골라 성흔이라는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 그에 따라 성좌의 신격은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베가의 과수원에 있는 나무는 꼴랑 한 그루.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숫자에서 다른 성좌들에게 처참하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북극성이니 황도 12궁이니 하는 위계는 모두 각성자가 나타나기 전에 정해진 위계에 불과하잖아?”
데네브는 빙글빙글 웃으며 경박하게 말을 이었다.
“시대가 변했으니 고리타분한 위계도 바뀔 때가 됐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베가. 이제 슬슬 ‘북극성’에서 내려가지 그래? 하하! 황도 13궁! 딱 좋네!”
손뼉을 치며 웃고 있는 데네브와 그를 차갑게 노려보는 베가.
‘뭔 개소리야.’
오진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베가를 북극성에서 좌천시키고 황도 12궁에 넣겠다고?
[아직 북극성의 위계를 유지할 정도의 신격은 있으니 헛소리 말려무나.]“그래? 내가 알기론 아슬아슬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비릿하게 웃는 데네브.
“그럼 이렇게 하자, 베가. 나랑 내기를 하나 하는 게 어때?”
[내기?]“응. 내기에 이기게 되면 내 신격의 일부를 줘서 위계가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있게 해줄게.”
[…….]베가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가늘게 눈을 떴다.
[무슨 내기 말이냐?]“성좌들의 내기라고 하면 하나밖에 없잖아?”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슬쩍 오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성흔을 내려준 사도끼리 한 판 붙어보는 거지.”
[불가하느니라.]베가는 생각할 여지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진이 경악스러울 만큼의 빠른 성장을 이룩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 데네브의 12사도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에이, 나도 당연히 알렌과 붙일 생각은 없어. 우리 막내들이랑 한 번 붙여보려고 하는 거지.”
‘막내’라고 낮춰 부르긴 했지만 데네브의 12사도들이라면 그 얘기가 다르다.
데네브의 12사도 중 가장 낮은 성(星)을 지닌 각성자도 오진과 같은 7성에 도달한 각성자였으니까.
“아니면 혹시 겁나는 거야? 우리 위대하신 직녀성 님의 유일무이한 사도가 내 아이들에게 처참하게 깨지는 게.”
[그 입 다물 거라!]“잠깐만, 베가.”
다시 기운을 폭발시키려는 베가를 말리며 오진이 앞으로 나섰다.
“그 내기란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나, 나의 아이야!]“흐응, 겁쟁이 여신님과 달리 넌 좀 흥미가 있는 것 같네.”
데네브는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뭐, 룰은 간단해. 일대일로 붙어서 내 아이들 중 3명을 꺾으면 이기는 거야.”
일대일로 세 명?
[치졸하구나 데네브!]“치졸한 게 아니지. 베가, 네가 사도를 많이 만들지 못한 건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을 못 찾았기 때문이잖아?”
데네브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도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숫자도 ‘신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냥 일대일 대결 한 번으로 끝낼 순 없어. 솔직히 3명만 꺾으면 된다는 것도 많이 양보한 거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쟁에서 적군이 10배 많은 병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치졸하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승부를 이기면 베가에게 신격 일부를 건네준다, 라.’
오진의 시선이 베가를 향했다.
그녀는 아직 북극성의 위계를 유지하기 충분하다고 했지만, 데네브의 말에 제대로 반박을 못 하는 걸 보면 마냥 여유로운 상태는 아닌 게 확실했다.
애초에 그녀의 신격이 줄어든 게 된 것은 지난번 천도윤과의 싸움에서 힘을 사용한 탓이다.
‘어느 정도는 내 책임이 있단 말이지.’
그렇다면.
소실된 베가의 신격을 돌려주는 것도 자신의 역할일 터.
‘그리고.’
오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데네브의 몸에 주렁주렁 달린 보석들로 향했다.
다이아나, 사파이어처럼 반짝거리는 것 외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치품이 아니었다.
저 하나하나가 모두 최상급 품질의 성유석들.
‘데네브만큼 값진 성유석과 성유물을 지닌 존재가 없겠지.’
그가 이끄는 12사도 중에 무려 3명이 칠성에 속해 있다.
데네브가 지닌 보화는 그 끝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진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데네브님의 사도 ‘세 명’을 꺾으면 약속하신 신격을 주시는 겁니다.”
“히히! 그렇게 나와야지!!”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데네브.
[불가하다 하지 않았느냐!]“괜찮아, 베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말리는 베가를 뒤로 하고 오진은 데네브를 응시했다.
“대신 결투를 치르는 건 한 달 후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응. 고작 한 달 만에 뭐가 바뀔 거라 생각하는 거야?”
비웃음을 흘리던 데네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정도는 들어줄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네가 졌을 때 뭘 줄지 안 듣고 냉큼 결투를 받아들여도 되겠어?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데네브가 물었다.
“아, 그건 굳이 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
“…왜?”
오진은 백조자리의 성좌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제가 이길 테니까요.”
“…….”
능글맞게 미소 짓고 있던 데네브의 표정이 살며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