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4)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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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경기장 위에 떠오른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에 얼굴이 비친 베가는 성좌로 가득 찬 관중석을 쓱 훑어보더니 상석에 앉아 있는 데네브를 향해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오진 또한 베가의 시선을 따라 데네브가 있는 장소를 바라봤다.
‘쟤들이 데네브의 사도들인가.’
화려한 의자에 앉아 있는 데네브의 뒤로 총 열 명의 남녀가 일렬로 서 있는 게 보였다.
데네브의 12사도 중 이 자리에 모습을 비치지 않은 두 명은 알렌 오스칼처럼 ‘칠성’에 속하는 두 명의 각성자.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올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칠성에 속하는 각성자 중에 모습을 비친 건 알렌 오스칼 하나뿐이었다.
‘하긴 굳이 다 올 필요는 없긴 하지.’
이번 대리전은 데네브의 12사도 중에 3명을 꺾으면 된다는 룰이었으니까.
애초에 알렌과 같은 ‘칠성’에 속하는 각성자는 상대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데네브가 직접 선언한 이상 굳이 자리를 채울 이유가 없었다.
‘어디 보자.’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데네브의 뒤쪽에 늘어선 열 명의 각성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과연 북극성의 성흔을 이어받은 각성자라고 할까.
데네브의 사도들에게서는 코가 막힐 정도로 짙은 마력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쟤가 뇌랑이야?”
“직녀성의 사도치곤 뭐 별거 없는데?”
“그치? 느껴지는 기운도 평범하고.”
오진이 그들을 살필 동안, 데네브의 사도들도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오진을 살피고 있었다.
데네브의 사도들은 딱히 특별한 특색이랄 게 없는 오진의 모습에 살짝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제 각성한 지 1년 지났다며?”
“근데 1년 만에 7성에 도달하는 게 말이 돼? 사실 7성 아닌데 거짓말하는 거 아냐?”
“뭐, 그건 상대해 보면 알겠지.”
오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잡담을 나누는 데네브의 사도들.
“조용.”
“읏.”
알렌 오스칼의 입에서 흘러나온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에 잡담을 나누던 데네브의 사도들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곧 시작한다. 데네브 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면 다들 집중하고 있어.”
“옙.”
알렌의 지시를 따라 데네브의 사도들은 입을 꾹 닫은 채로 마력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오진과 데네브의 사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을 때.
[아아. 다들 잘 들리시나요?]베가의 목소리처럼 머리에 직접 울려 퍼지는 목소리.
경기장 입구에서 마주쳤던 처녀자리의 성좌, 스피카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허공을 날아 경기장 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손에 쥐어진 둥그런 구슬에 입을 가까이 대며 특유의 싱그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반가워용! 오늘 대리전의 사회를 맡게 된 스피카라고 합니당~!]황도 12궁에 속하는 성좌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경박한 말투였지만.
복슬복슬한 핑크색 머리칼을 흔들며 허공에서 깡충깡충 뛰는 그녀의 모습이 그런 경박함마저 귀여움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오늘의 대리전은 베가 님과 데네브 님의 대리전! 무려 북극성의 사도끼리 펼치는 대리전이에요!]발랄한 외침에 성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른 성좌도 아닌 북극성의 성좌끼리 벌이는 대리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빅 매치에 흥분하지 않을 성좌는 없었다.
[룰은 간단! 베가 님의 사도가 데네브 님의 12사도 중 3명을 꺾으면 승리하게 됩니다!]“세 명?”
“음… 한 명도 힘들 텐데 너무한 거 아닌가?”
대리전의 룰을 들은 성좌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생겼다.
직녀성의 사도, 뇌랑의 가파른 성장세에 대해서는 그들 모두 들어본 적 있었지만, 아직 데네브의 12사도들에 비할 바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닌 세 명을 연달아 꺾어야 한다니.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베가 님의 사도가 한 명뿐이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이렇게 정하셨다고 합니다!]“으음. 하긴… 사도의 숫자도 중요하지.”
“아무리 그래도 3명은 너무한 거 아닌가?”
다들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도의 숫자 또한 신격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니 마냥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자! 그럼 대리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두 성좌님 모두 앞으로 나와주세요!]상석에 앉아 있던 데네브가 폴짝 뛰어올라 바닥에 착지했고, 베가는 은색 드레스를 사락사락 움직이며 대리전이 치러질 넓은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두 분 모두 이번 대리전에 청렴한 마음으로 임할 것이며, 그 결과에 승복할 것을 별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주세요.]이제까지 호들갑을 떨며 촐싹대던 모습이 연기였다는 듯.
진중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는 스피카.
[맹세하마.]“맹세할게.”
우우우웅!
베가와 데네브의 몸에서 푸른 광채가 뿜어져 나오며 서로 얽히기 시작했다.
[두 분 모두 이 대리전을 끝으로 서로에 대한 감정은 정리하셔야 한다는 점 다 알고 계시죠?]고개를 끄덕이는 베가와 데네브.
스피카가 방긋 미소 지으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자! 그럼 질질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해 볼까요? 우선 청코너! 베가 님의 유일무이한 사도! 뇌랑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각성자죠? 권오진 각성자입니다!]짝짝짝짝짝짝짝!!!
쏟아지는 박수와 함께 오진이 경기장 위로 걸어 올라갔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성좌들의 시선이 오진에게 집중됐다.
뇌랑.
직녀성의 사도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는 듯 들뜬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그럼 다음은 홍코너! 데네브 님의 12사도 중 막내였죠? ‘백은검(白銀劍)’이라는 칭호로 유명한 류이하오입니다!]눈꽃처럼 새하얀 피부를 지닌 청년이 난간을 가볍게 박찼다.
백조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떨어지는 청년.
류이하오는 허리춤에 찬 검 자루 위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경기장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경기장 위에 올라선 류이하오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오진을 쏘아봤다.
“소협(少俠)의 성이 7성이라 들었소만, 사실이오?”
“맞아. 한두 달 전쯤에 찍었지.”
오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을 들은 류이하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두 달 전이라… 확실히 믿기 어려운 속도로구려.”
직녀성의 사도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 이제 1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7성에 올라섰다니.
물론 사도가 하나뿐인 만큼 자신보다 훨씬 짙은 성흔을 이어받긴 했겠지만.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1년 만에 7성에 도달한 건 경이롭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성취였다.
하지만.
“7성이라고 해서 다 같은 7성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 않소?”
이미 한참 전에 7성으로 올라선 류이하오와 오진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둘이 지니고 있는 것이 ‘북극성의 성흔’이라면 더더욱.
“그럼 잘 알고 있지.”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런 긴장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의연한 오진의 태도에 류이하오는 옅게 웃었다.
“이제까지 잡스러운 성흔을 지닌 각성자들을 상대하면서 꽤 기고만장해지신 것 같구려.”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도 처음엔 그러했소. 소인보다 성(星)이 높은 각성자들도 손쉽게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만과 허영에 가득 차 있었지.”
과거를 회상하듯 아련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더구려.”
“너 문과냐?”
“…무슨 뜻이오?”
“아냐. 계속 말해봐.”
말이 끊어진 게 불쾌한지 살며시 눈을 찌푸린 류이하오가 말을 이었다.
“알렌 대협을 만나며 깨달았소. 이제까지 소인이 상대했던 건… 모두 가짜에 불과했다고.”
북극성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자만감.
알렌이 보여준 경이로운 검격은 류이하오가 품고 있던 허영심을 간단하게 갈라 버렸다.
“아마 소협도 머지않아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오.”
마치 어린아이를 보듯 잔잔한 눈으로 오진을 바라보며 류이하오는 자세를 취했다.
[자, 둘 다 준비는 끝났엉?]스피카가 경기장 가운데로 내려오며 물었다.
오진은 허리춤에서 쇠막대기를 꺼내 창으로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류이하오 또한 포권을 취하며 깊게 머리를 숙였다.
[좋아! 준비는 다 끝난 것 같네!]짝!
스피카가 손뼉을 치며 양팔을 넓게 펼쳤다.
우우우웅!
그녀의 몸에서 연분홍빛 광채가 빠져나와 경기장을 뒤덮었다.
[이 성역은 만일을 대비해서 친 거야! 따로 치유 효과 같은 건 없으니까 그 점 잘 알아둬!]스피카는 경쾌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둘 중 하나가 의식을 잃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면 끝! 상대방이 졌다고 인정해도 끝이야!]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검지를 착 추켜올리며 강조했다.
[물론 성역 안이니까 죽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론 서로 죽이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 해! 알았지?]“명심하겠소.”
“예.”
성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펼치는 대리전이라고는 하지만 잔혹한 살육전의 형태가 되어버리면 여러모로 앙금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감정의 골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실전이 아닌 대련에 가까운 형태로 싸우란 의미.
‘그게 말처럼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역 안에서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어디까지 살초를 아끼며 싸울 수 있을지는 서로 알 수 없었다.
[자! 그럼 이 대리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서로 간의 불화를 매듭짓기 위해서란 걸 잊지 말고!]스피카가 다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시이이이이이이작!!]파바바방!
폭죽이 터지듯 연분홍빛 빛줄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관중석에 앉은 성좌들이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터뜨렸다.
“흐음.”
스릉.
류이하오는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을 뽑았다.
‘백은검’이라는 그의 이명에 걸맞게 유려한 백은색으로 빛나는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검을 뽑아 든 순간 주변에 서릿발과 같은 흰색 기운이 휘몰아쳤다.
류이하오는 오진을 돌아보며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각성자 사이의 위계에 있어서 선후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뽑아 든 검을 슬며시 내리며 말을 이었다.
“무릇 선배 된 도리로 소협에게 선수(先手)를 양보하겠소.”
“그래?”
싸움에서 선수를 양보하겠다는 건 대놓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럼 내가 먼저 공격하지 뭐.”
오진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몸을 낮췄다.
저쪽에서 알아서 선수를 양보해 주겠다는 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충전.’
파지지지직!!
두 다리에 뇌전을 응축시켰다.
마치 두 다리가 푸른 뇌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짙게 응축된 뇌전이 불처럼 타올랐다.
“확실히, 북극성의 성흔다운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려.”
놀란 눈으로 오진을 바라보는 류이하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아직 놀랄 때가 아닐 텐데 말이야.’
충전, 충전, 충전, 충전.
총 다섯 번에 걸쳐 응축된 뇌전이 두 다리를 휘감았다.
오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낮게 숙였던 몸을 튕기듯 일으켰다.
그리고.
-파지 지 지 지 직 ! ! !
한 줄기 푸른 뇌전이.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무슨.”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던 류이하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그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에, 오진의 몸이 그의 코앞에 나타났다.
-콰득!
오른팔로 류이하오의 얼굴을 붙잡고, 다리로 바닥을 쓸어 그의 뒷발을 후려쳤다.
두 다리가 떠오르며 뒤로 넘어지려는 그의 얼굴을 붙잡은 채.
-콰아아아아앙!!!
그대로 뒤통수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처참하게 박살 난 경기장 바닥에 류이하오가 눈을 까뒤집은 채 기절해 있었다.
[…어?]“뭐, 뭐야 지금?”
“이게 무슨…?”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는 성좌들.
오진은 의식을 잃은 류이하오를 내버려 둔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입을 쩍 벌린 채 이쪽을 바라보는 데네브를 향해 손을 까딱였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