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6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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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가 나간다고?”
데네브는 당황한 표정으로 샤오린을 바라봤다.
샤오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곤란해하는 데네브.
샤오린은 방금 전 출전한 이반과 같은 8성이긴 했지만.
그녀에게는 감히 이반이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9성 각성자를 꺾은 적도 있는 널 내보내는 건….”
바로 황도 12궁 자리의 고위 각성자를 일대일로 꺾은 전적이 있다는 것.
그것도 갓 9성에 올라선 초짜 고위 각성자를 상대한 것도 아니고, 나름 오랫동안 9성의 경지를 유지하고 있던 진짜배기 고위 각성자를 일대일로 꺾었다.
당시 사건은 북극성의 각성자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을 정도.
“이번이 마지막이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데네브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갑자기 서열 5위의 샤오린을 내보내면 성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럴 바에는 그냥 내가 나가는 게 낫지 않아?”
샤오린의 옆에 건들건들 앉아 있던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샤오린이 설원에 핀 한 송이 꽃과 같은 이미지였다면, 그녀는 들판 핀 화사한 들꽃처럼 생기발랄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언니는 안 되지.”
샤오린은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다는 듯 방정맞게 몸을 들썩이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샤오란.
샤오린의 언니이자 데네브의 12사도 중 네 번째 서열을 지닌 여인.
서열은 서로 고작 한 단계 차이였지만, 샤오린과 샤오란 사이에는 결정적인 격차가 존재했다.
“언니는 9성이잖아.”
“너도 9성 꺾은 적 있잖아?”
“그건 상대가 북극성의 각성자가 아니어서 가능했던 거고.”
북극성의 고위 각성자.
그 이름이 지닌 무게감은 다른 별자리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뭐, 네가 나가나 내가 나가나 똑같을 것 같은데.”
“그래도.”
아무리 다른 성좌들의 비난을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샤오란이 나서는 건 선을 넘은 짓이었다.
“끄응! 나도 나가서 싸우고 싶은데!”
샤오란이 아쉽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샤오린은 철없는 언니를 바라보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왜 그렇게 나가고 싶은 건데?”
“저 건방진 자식 얼굴을 한 대 콱! 후려쳐주고 싶거든.”
샤오란은 대놓고 데네브의 사도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던 오진을 날카롭게 노려봤다.
샤오린은 그런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말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건 내가 대신해줄 테니까 언니는 가만히 있어.”
“끄응.”
“어쨌든, 제가 나가도 괜찮죠 데네브 님?”
데네브는 고민에 잠긴 표정으로 샤오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마지막 기회인 이상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전력이 나서는 게 맞았다.
샤오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뿐히 난간을 밟았다.
백조가 날갯짓을 하듯 우아하게 날아오른 그녀가 경기장에 내려앉았다.
[다음 상대는… 어? 서, 설백화(雪白花)?]스피카는 경기장에 내려온 샤오린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으음.”
“아무리 그래도 샤오린을 내보내는 건 좀….”
“데네브 님이 정말 지기 싫으셨던 모양이네요.”
“에잉, 이럴 거면 차라리 대리전을 하지 말지.”
성좌들의 반응 또한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예상과는 달리 뇌랑이 데네브의 사도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대뜸 서열 5위를 내보내다니?
청소년 대표를 뽑는 대회에 뜬금없이 국가대표 선발전 출신 선수가 난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으음. 예상외의 강자가 나왔네요! 데네브 님 쪽에서 나온 다음 각성자는 설백화 샤오린! 무려 9성 각성자를 꺾은 걸로 유명한 각성자죠!]성좌들은 박수조차 치지 않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내려다봤다.
이걸 굳이 경기를 하는 의미가 있냐는 듯한 눈빛.
샤오린은 그런 성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오진을 향해 다가갔다.
“귀공의 실력은 잘 봤어요. 제게도 한 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며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올렸다.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그녀의 기운을 살폈다.
‘아예 작정하고 내보냈구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방금 전 상대한 이반과 진짜 같은 성(星)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짙고, 깊었다.
등골을 타고 퍼지는 전율.
이제껏 잠잠했던 심장이 두근거리며 맥동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네.’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한 긴장감.
뒤통수가 뜨거워지며 마약을 한 듯 의식이 붕 뜬다.
진짜배기 ‘강자’를 만났을 때만 느껴지던 짜릿한 감각이 오진의 몸을 떨리게 했다.
“좋아, 이래야지.”
오진은 환하게 웃으며 창을 고쳐잡았다.
류오하오와 이반을 상대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긴장감.
이 숨통을 옥죄는 듯한 긴장감을 느끼기 위해 리아크에게 수십 번이 넘는 죽음까지 맛봤던 그다.
지금 이 상황이 즐겁지 않을 리가 없다.
“아까 이반과 싸우실 때도 느꼈지만, 공포라는 걸 느끼지 못하시는 분 같군요.”
“멀쩡한 사람한테 뭔 소릴 하는 거야?”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고?
“지금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죠?”
샤오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오진을 바라봤다.
“무서운 건 참으면 되니까.”
“예?”
“참아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콰아아앙!!
발을 박차며 질주한다.
파지지직!
바닥에 선을 긋듯 발자국을 따라 타오르는 뇌전.
샤오린을 향해 달려가던 오진이 가볍게 허공을 밟았다.
“흐읍!”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창을 내려쳤다.
2차원적인 공격이 아닌, 뇌흔 밟기를 사용해 내리친 3차원 적인 공격.
마치 말 위에 올라탄 장수가 창을 내려치는 것처럼 샤오린의 정수리를 향해 창이 내리쳐졌다.
“적어도 멀쩡한 사람, 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 같네요.”
샤오린은 정수리를 노리며 휘둘러지는 창격을 의연히 올려다보더니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휘이이잉!
검을 뽑는 순간 한겨울에 빤스차림으로 밖에 나간 것 같은 무시무시한 한기가 휘몰아쳤다.
-깡!
요란한 굉음도, 지축이 뒤흔들리는 충격도 없다.
종을 울리는 것처럼 맑은소리와 함께 정수리를 노리고 휘둘러지던 창이 거칠게 튕겨 나갔다.
“크윽!”
창대를 타고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한기.
고작 한 번 부딪힌 것에 불과했음에도, 창 전체가 서리가 낀 듯 새하얗게 변했다.
“공간을 3차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해도.”
샤오린이 뽑아 든 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모래시계자리의 성흔을 사용한 것처럼 느릿하게 움직이는 검격.
백조의 날갯짓처럼 우아한 검격을 따라, 백색 기운이 허공을 수놓았다.
“결국 공격 지점이 정해져 있는 이상 큰 의미 없죠.”
그녀의 말마따나.
허공을 자유롭게 밟을 수 있건 날아다닐 수 있건.
공격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지점은 그녀의 몸이었다.
최종적으로 오진의 창끝이 향하는 장소만 캐치할 수 있다면 그걸 막는 건 어렵지 않은 일.
그리고 거기에 더해.
“몸까지 굳어버리게 되면 더욱 단순해질 테고요.”
휘이이잉!
설산 꼭대기에 올라선 듯 몰아치는 찬바람.
허공을 수놓은 백색 기운을 따라 아찔한 한기가 독처럼 퍼졌다.
“하아, 하아.”
새하얀 입김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창을 뒤덮고 있던 서리가 어느새 오진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확연히 느려진 움직임.
한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몸 전체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앗! 몸이 완전히 얼음에 뒤덮여 버린 권오진 각성자! 역시 아까와 같은 위용은 보여줄 수 없는 걸까요?!]차게 식어버린 분위기를 달구려는 듯 한층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는 스피카.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경기 전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던 성좌들이 조금씩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우.”
오진은 새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화륵! 화르르륵!
손바닥 위에서 타오르는 푸른 화염.
이제까지 무기에만 덧씌워 사용했던 뇌염을 전신에 퍼트렸다.
푸른 화염이 몸을 태우듯 전신을 뒤덮으며 피부 위에 내려앉은 서리가 녹아내렸다.
“과연, 쉽게 당하진 않으신다는 거군요.”
샤오린은 차가운 눈으로 고갤 끄덕이며 검을 쥐었다.
어차피 한 번의 공격으로 그를 간단히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다.
간단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면 류이하오와 이반이 그토록 허망하게 당했을 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샤오린이 검을 쥔 채 가볍게 발을 박찼다.
입고 있는 무복(武服)이 펄럭이며 미끄러지듯 그녀의 신형이 움직였다.
유려한 검격이 오진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카앙! 카가각!
창을 들어 검격을 막는다.
검격을 막을 때마다 창을 타고 전해지는 아릴 듯한 한기.
‘이대로는 오래 못 버텨.’
공방을 이어갈수록 손의 감각이 점차 마비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몰아치는 한기와 검격을 버텨내고 있던 도중.
‘지금!’
오진은 창을 뒤로 쭉 뺐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빈틈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검격.
왼팔을 쭉 뻗어 검격을 받아냈다.
왼팔에 찬 건틀릿이 그녀의 검에 서린 성흔의 마력을 흡수했다.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달아오르는 건틀릿.
오진은 왼팔에 찬 건틀릿을 샤오린 쪽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붉은빛으로 달아올랐던 건틀릿에서 흡수했던 성흔의 마력이 폭발하며 샤오린을 노렸다.
“흐음.”
샤오린은 고운 눈썹을 살며시 찡그리며 폭발을 피해 뒤로 이동했다.
오진은 미끄러지듯 뒤로 이동하는 그녀를 빠르게 따라붙으며 뒤로 빼냈던 창을 일(一)자로 쭉 내질렀다.
‘창뢰(蒼雷).’
파지지지직!
부채꼴의 형태로 넓게 펼쳐진 푸른 뇌전이 샤오린을 노렸다.
“소용없어요.”
샤오린은 차갑게 말하며 바닥에 선을 긋듯 검을 휘둘렀다.
콰자자자작!
검격을 따라 거대한 얼음벽이 만들어지며 높게 솟구쳐 올랐다.
해일처럼 쏟아지던 푸른 뇌전이 얼음벽에 튕겨 흩어졌다.
그 순간 얼음벽이 폭발하며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오진을 덮쳤다.
“빌어먹을!”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오진.
샤오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지럽게 비산하는 얼음 조각 사이로 그녀의 검이 유려한 선을 그었다.
-푸욱!
“커헉!”
오진의 배가 샤오린의 검에 꿰뚫렸다.
간신히 급소를 피하긴 했지만, 파고든 검날을 타고 흘러나오는 아찔한 한기에 상처 주변 살점이 빠르게 괴사하기 시작했다.
오진의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며 두 다리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드넓은 설원에 조난당해 추위에 죽어가는 사람처럼 오진의 눈빛이 흐릿해졌을 때.
[권오진 각성자 위기! 위기입니다! 이대로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데요!]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스피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성좌들도 탄성을 흘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역시 반전은 없었던 건가’,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실력은 증명했다’와 같은 말들이 성좌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끝이네요.”
샤오린은 오진의 배를 꿰뚫은 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차갑게 읊조렸다.
[나, 나의 아이야!]베가의 다급한 외침이 귓가에 들려옴과 동시에.
“끝이라고?”
새파랗게 질렸던 오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배를 파고든 검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샤오린이 눈을 크게 뜨며 검을 빼내려고 하는 순간, 오진은 검날을 오히려 더 깊게 쑤셔 넣으며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누구 맘대로 끝이래?”
파지지직!!
붙잡은 팔을 타고 푸른 뇌전이 샤오린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꺄힉!!”
샤오린의 입에서 깜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