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70화
막간–여신의 속죄 (2)
“뭔 소리야 그게.”
[말 그대로의 의미니라.]베가는 결심을 굳힌 표정으로 두 주먹을 꼬옥 움켜쥐었다.
[어리석은 행동을 했으면 응당 그에 맞는 속죄를 해야 하는 법.]뜨거운 열기까지 느껴지는 시선.
[본녀는 그대에게 벌을 받아야만 하느니라.]“아니 그러니까 무슨 벌을….”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오진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저, 저기!”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 조심스럽게 다가온 스피카.
바짝 다가온 스피카가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오진의 두 손을 꽉 쥐었다.
“혹시 나중에 내 신전 한 번 구경하러 올래?!”
“예?”
얜 또 뭔 소릴 하는 거야.
“아니, 별 뜻이 있는 건 아닌데에~ 솔직히 아까 싸우는 모습을 보고 흥미가 좀 생겼다고 할까?”
분홍빛으로 뺨을 붉히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
별 뜻이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만, 식탁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바라보는 듯한 뜨거운 눈빛은 별 뜻이 없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오진에게 관심을 보인 건 스피카만이 아니었다.
“저… 가능하시면 제 신전에도 한 번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크하핫!! 자네에 패기에 반했네! 본좌의 신전에 출입을 허가하지!”
어느 틈에 관중석에서 내려온 건지 우르르 주변을 채운 성좌들이 오진에게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앗! 내, 내가 먼저 찜했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는 스피카.
“…….”
오진은 주변에 모여든 성좌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이번 대리전에서 보여준 모습이 성좌들에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모양.
하긴.
그땐 머리에 피가 쏠려 있어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꽤나 미친 짓을 하긴 했다.
‘그래도 이런 반응은 좀 의왼데.’
솔직히 자신이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정신 나간 놈이라며 경계를 하거나 불쾌하게 보거나 할 줄 알았지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소란스럽구나.]베가가 오진 주변에 몰려든 성좌들을 바라보며 살며시 눈을 찌푸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나의 아이를 신전으로 초대하고 싶다면 본녀에게 직접 말하거라.]“…어.”
“그, 그게.”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는 성좌들.
확실히 이런 모습을 보면 성좌들 사이에서 ‘북극성’의 성좌가 지니는 위치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없느냐?]있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일 듯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는 베가.
오진에게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던 성좌들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없다면 이만 가보겠느니라.]베가가 획 몸을 돌리며 오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베가 잠깐….”
[빨리 오거라.]아무래도 멈출 생각은 없는 모양.
오진은 끄응 침음을 삼키며 베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크르릉. 성좌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구나 애송이.”
“잘 됐지 뭐.”
중간에 너무 열이 올라서 실수를 했다 생각했는데, 이 정도 반응이면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피곤해질 거다.”
“알고 있어.”
제대로 어그로를 끈만큼 좋든 나쁘든 귀찮은 일이 생기게 될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꼭꼭 숨긴 채 숨죽여 지내는 것보단 나았다.
“그나저나 베가.”
[무슨 일이느냐?]“아까 전에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한 거. 자세하게 얘기해 줄래?”
[…그 이야긴 신전에 가서 얘기하자꾸나.]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를 올렸다.
아직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탓에 몸 곳곳이 쑤시고 피곤했지만.
‘이건 확실히 알아둬야지.’
자신이 어디서 실수를 한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 * *
“…그렇게 된 거였구나.”
신전에 도착한 후.
오진은 베가에게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율법의 속박에서 풀려난 후 방에 남아있었던 ‘흑천’의 기운이 서린 파편.
애초에 그 방에 출입했던 게 오진과 리아크 말고는 없으니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하리라.
‘제기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오진은 개천을 사용하던 도중 들었던 소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긴 들렸는데.’
설마 거기에 흑천의 기운이 묻은 파편이 있을 줄이야.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가느냐?]“…….”
오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해야 이 치명적인 실수를 무마할 수 있을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담의 사과.”
[아담의 사과라면… 율법의 속박을 풀었을 때 사용했던 성유물 말이더냐?]“응. 아무래도 거기에 천마가… 아니, 정확히는 ‘뱀’이 손을 뻗은 것 같아.”
맞물리지 않은 퍼즐 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추듯.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번에 해마자리 파벌을 상대하면서 이런 걸 얻었어.”
오진이 꺼낸 것은 섬뜩한 뱀 문양이 그려진 둥그런 패.
[그때 보여준 것이구나.]“응. 흑성회 집행관이 이걸 가지고 있다는 건 일본 쪽에도 ‘뱀’의 손이 뻗었다는 뜻이니까.”
[그대가 구한 성유물에도 뭔가의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느냐?]“그렇지.”
다소 궁색한 변명이긴 했지만.
‘천마’라는 존재가 흑성회에 있다는 게 밝혀진 이상 그의 광적인 추종자라는 뱀자리 여왕이 흑천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 그랬던 게로구나.]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에 찬 숨을 내뱉는 베가.
아직 걸리는 부분이 있는 듯 완전히 납득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에 대한 의심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어떻게 넘기긴 했어.’
한 발만 삐끗하면 추락하는 절벽에서 간신히 나무뿌리를 움켜쥔 느낌.
[미안하구나. 가장 먼저 그대에게 얘기했으면 됐을 것을.]베가는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것도 잠시.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오진의 두 손을 움켜쥐었다.
[역시! 본녀에겐 따끔한 체벌이 필요하니라!]아까도 했던 얘기다.
“아니 체벌은 무슨 체벌.”
[나의 아이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지 않았느냐.]베가는 뜨거운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본녀가 속죄할 수 있도록 따끔한 벌을 내려주거라.]형형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를 보니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오진은 난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성좌에게 체벌을 한다니.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우선 본녀의 뺨을 세게 때려주거라!]“아니 그건 좀.”
베가의 뺨을 때린다니.
뭐 사실 전력으로 때린다고 해도 티끌만큼의 상처도 낼 수 없겠지만.
‘그건 싫은데.’
베가의 뺨을 때리는 상상을 하자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격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뺨은 좀 그래.”
[으음. 그러느냐?]고민에 잠긴 베가.
그녀는 신전 안을 서성이며 고민을 이어가더니 뭔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엉….]“엉?”
베가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리, 리아크여.]“예, 베가 님.”
[나가 있거라.]“예?”
[나, 나가 있으라 하지 않았느냐!]다급히 리아크를 신전 밖으로 내쫓는 베가.
리아크는 영문도 모른 채 끼이잉 울며 신전 밖으로 내쫓겼다.
‘대체 뭘 하려고.’
오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장한 표정을 짓는 베가를 바라봤다.
베가는 발끝으로 신전 바닥을 쓱쓱 쓸며 입을 열었다.
[왜… 그, 그런 거 있지 않으냐.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어, 엉덩이를 때려주는 것 말이다.]베가 님?
[그… 이, 이번엔 본녀가 성좌로서 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으니… 어,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볼 수 있지 않겠느냐?]논리가 좀 이상한데요. 여신님.
“설마 지금…?”
[크, 크흠!]뺨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는 베가.
그녀가 말하는 ‘체벌’이 뭔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정리해 보면.
별에서 탄생한 초월자,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북극성의 성좌에게 자신의 빵댕이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려달라고 부탁받은 거지?
‘오.’
아니 오가 아니고 씨발!!!
“아무래도 그건… 좀.”
[…이번에도 안 되는 게냐?]베가가 슬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본녀에게 속죄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이대로 타들어 가는 죄책감에 평생을 고통받게 할 생각이느냐?]아니.
[그래. 그게 그대의 뜻이라면… 달게 받겠느니라.]베가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며 처연한 표정으로 눈을 글썽였다.
오진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을 뒤틀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이거!!’
베가의 엉덩이를 때린다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에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라리 하은이었다면 으레 하는 농담 정도로 넘어가기라도 하지.
한없이 진지하게 나오고 있으니 이걸 뭐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뺨을 때렸지!!’
이제 와서라도 말을 바꿀까 생각했지만.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처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가의 뺨을 때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나의… 아이야?]조심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베가.
살짝 겁에 질린 듯한 눈빛도, 달아오른 뺨도, 주저하는 몸짓 하나하나 모두 오진의 죄책감을 극렬하게 자극했다.
‘빌어먹을.’
만약 진짜 그녀가 벌 받아 마땅할 죄를 지었다면 모를까.
실제로 속이고 있는 상대에게 의심해서 미안하다며 체벌을 요구받으니 끓어오르는 죄책감에 뇌가 타버릴 것 같았다.
[정말… 안 되는 게냐?]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베가는 젖어 든 눈으로 오진을 재촉했다.
오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알았… 어.”
쥐어짜듯 말하자 베가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 그럼. 부탁하느니라.]신전 벽을 짚은 채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는 베가.
그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엉덩이를 살며시 내밀었다.
은색 드레스 위로 아름다운 엉덩이 라인이 드러났다.
“…….”
꿀꺽.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마른침.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오진의 손이 달달달 떨렸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불꼬챙이로 쑤시듯 머리가 뜨겁다.
이성과 본능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뒤엉켜 사고를 흐트러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선 채 갈등을 이어가고 있을 때.
[때려주지… 않는 게냐?]벽을 짚은 채 엉덩이를 내밀고 있던 베가가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흔들었다.
“…….”
뚝.
무언가 머릿속에 끊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성의 멱살을 쥐고 있던 본능이 승리의 미소를 씩 짓는 것이 느껴졌다.
‘에라 모르겠다, 시바!!!’
오진은 결심을 굳힌 듯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 힘을 빡 준 채. 부릅뜬 눈으로 베가의 엉덩이를 노려봤다.
‘은발 여신님의 엉덩이 팡팡 체벌 타임 간다!!!’
인간의 언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저속한 단어의 나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손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