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77)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77화
리빙 아머 (2)
“마수에게 당한 걸까요…?”
조심스럽게 제갈소영의 사체를 살피는 이사벨라.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던 오진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이사벨라 쪽으로 향해버리고 말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녀가 제갈소영을 죽였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나랑 계속 같이 있었잖아.’
아무리 그녀가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경지를 지녔다고 해도 바로 옆에 같이 있었는데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제갈소영을 죽일 방법은 없었다.
아니, 설사 그런 방법이 있다고 해도 제갈소영을 죽일 이유가 없다.
‘질투에 눈이 멀어 죽였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억지지.’
만약 질투가 이유였다면 그녀의 첫 번째 표적은 제갈소영이 아닌 하은이 됐을 것이다.
오진은 차갑게 식은 이사벨라의 눈빛을 다시금 응시했다.
그녀의 눈에 서린 눈빛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사이코패스의 눈빛이 아니라, 사건을 조사하는 베테랑 형사의 날카로운 시선에 가까웠다.
즉.
‘이사벨라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는 거지.’
오진은 반으로 쪼개져 허연 뇌수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제갈소영의 시체를 살폈다.
사과를 베어 문 것처럼 사라진 머리 반쪽.
‘통째로 뜯어먹힌 거야.’
오진은 차분히 상처 부위를 살피며 가늘게 눈을 떴다.
부릅뜬 제갈소영의 한쪽 눈이 경악에 가득 차 있는 게 보였다.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어.”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순간에.
그녀는 목숨을 잃었다.
“그럼 소영 씨와 같이 있던 유미 씨는….”
“잠깐만.”
오진은 통신용 수정 구슬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구슬이 푸른 빛으로 반짝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연락이 안 되나요?”
“응.”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쪽으로.”
“조, 조심하세요 오진 씨.”
핏줄기가 이어진 곳을 따라 움직이려 하자 이사벨라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시선.
오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빵조각처럼 일정 간격으로 떨어진 핏자국.
“제길.”
핏자국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갑자기 흔적이 뚝 끊어져 버렸다.
‘진짜 유령이라도 되는 건가.’
무슨 허깨비를 쫓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쪽이에요 오진 씨. 저쪽에서 피 냄새가 풍기고 있어요.”
그때 한쪽을 가리키는 이사벨라.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활성화하며 그녀가 가리킨 쪽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맡았다.
사냥개자리까지 활성화했지만 그녀가 말한 피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거머리 여왕이라 이건가.’
적어도 피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은 그녀를 따라갈 수 없었다.
“그쪽으로 가보자.”
“예.”
이사벨라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한참을 걸어가니 그녀의 말대로 점차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대체 이 거리에 있는 피 냄새를 어떻게 맡은 거지.’
오진은 작게 혀를 내두르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빌어먹을.”
그래피티 아트처럼 벽을 칠하고 있는 붉은 핏물.
머리가 없는 제갈소영의 시체가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제갈소영의 시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최유미.’
봉황자리의 고위 각성자, 최유미의 시체가 상반신과 하반신이 잘린 채 나뒹굴고 있었다.
질척거리며 쏟아진 내장.
생기를 잃은 공허한 눈동자가 허망하게 골목길 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우.”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시체를 살피던 오진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최유미와 제갈소영의 시체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심장이 없어.’
다른 장기는 멀쩡한데 유독 심장만 보이지 않았다.
오진은 파헤쳐진 두 여인의 가슴 부분을 살폈다.
늑골을 부수고 들어간 손이 심장을 통째로 뜯어냈다.
뜯어낸 심장이 보이지 않은 걸 보니.
‘먹었겠지.’
유명 브랜드의 사과 로고처럼 머리가 으깨져 있던 제갈소영의 시체를 떠올렸다.
‘머리는 반쯤 먹다가 말았는데, 심장은 남김없이 먹어 치웠어.’
각성자에게 있어 심장은 단순한 장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성좌에게 부여받은 성흔이 뿌리를 내리는 곳이 바로 심장이었으니까.
오진이 지닌 흑천만 하더라도 그 근간은 심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즉. 각성자의 ‘심장’만 골라 먹어 치웠다는 건.
‘성흔의 마력을 노리고 각성자들을 사냥하고 있는 거였군.’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오진 씨. 이쪽에 싸운 흔적이 있어요.”
이사벨라가 가리키는 쪽을 확인했다.
핏물이 튀지 않은 벽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그 아래는 망치로 내려찍은 듯 움푹 들어간 발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직녀성의 사냥개.’
오진은 스킬을 사용하며 주변 흔적들을 살폈다.
“크윽.”
해일처럼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피, 목이 잘린 시체,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과 움푹 들어간 발자국.
골목에 새겨진 작은 흔적들만으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선공을 한 건 제갈소영이야.’
시야 밖에서 날카롭게 쏘아진 마력의 화살.
마수는 음속을 넘어 쏘아진 화살을 가볍게 몸을 틀어 피했다.
‘그리고 최유미가 달려들었고.’
바닥이 움푹 파일 정도로 강력한 진각을 밟으며 그녀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대략 1분… 아니, 2분 정도 접전이 벌어졌어.’
벽과 바닥 이곳저곳에 전투 흔적이 남아있었다.
최유미가 몰아치듯 검격을 쏟아냈고, 제갈소영이 그 뒤를 보조했던 흔적이.
‘그리고 당했군.’
불시의 기습을 당한 것도,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먼저 마수를 발견하고 선공을 취했음에도 역으로 당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변변찮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압도적으로.
“돌아가자.”
오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사벨라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마수는 어떻게 하고요?”
“우리가 상대할만한 수준의 마수가 아니야.”
물론 이사벨라가 본 실력을 드러낸다면, 아니 하다못해 자신의 몸 상태가 멀쩡하기라도 했다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 만 했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마수의 뒤를 쫓는 건 너무 위험했다.
“…예, 알겠어요.”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이사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진과 함께 돌아가려는 도중, 그녀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오진의 옷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오진 씨, 그러고 보니 우혁 씨한테도 연락해야 하지 않나요?”
“아, 잠깐만.”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통신용 수정 구슬을 꺼냈다.
마력을 흘려 넣자 푸른 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구슬.
망가진 전등처럼 깜박이던 구슬의 빛이 이내 환하게 빛났다.
-하아, 하아!
거칠게 뒤흔들리는 화면.
이우혁의 거친 숨소리가 구슬 너머로 들려왔다.
-오, 오진 씨?
“무슨 일입니까?”
-크윽!
챙! 채재재쟁!
다시 한 번 화면이 흔들리며 이우혁이 거칠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이우혁의 등 뒤에는 축 늘어진 오현빈이 업혀 있었다.
‘제길.’
구슬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던 오진이 입술을 짓씹었다.
설마 아까 사라졌던 마수가 이우혁 쪽으로 간 건가?
-두꺼비! 두꺼비 파벌입니다!
“예?”
하지만 이우혁의 입에서 나온 것은 전혀 생뚱맞은 존재였다.
-두꺼비 파벌이 저흴 습격했습니다!
두꺼비 파벌.
얼마 전 한국에 밀입국했다는 두꺼비 파벌이 이우혁을 습격했단 건.
‘역시 용현동 마수와 두꺼비 파벌 사이에 연결점이 있었다는 건가.’
오진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위치가 어딥니까?”
-크윽! 하, 항구 근처입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마수를 피해 도망칠 생각이었지만.
이우혁이 습격을 당했다는 걸 안 이상 가만히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사벨라, 항구 쪽으로 가자.”
“예! 속도가 빨라지는 버프를 걸어드릴게요!”
“아니, 필요 없어.”
“예?”
이사벨라의 몸을 끌어안았다.
“꺄악?!”
“가만히 있어.”
오진은 한쪽 팔로 그녀를 끌어안은 후 건물 옥상을 향해 와이어 슈터를 발사했다.
타앙!
튀어나온 철근을 휘감는 와이어를 타고 오진의 몸이 높게 치솟았다.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며 추적을 할 필요 없는 이상, 와이어를 통해 이동하는 편이 훨씬 빨랐다.
-파직!
뇌흔 밟기를 사용해 허공을 박찬 오진이 빠른 속도로 항구 쪽을 향해 쏘아졌다.
-쿵! 콰르르릉!
컨테이너가 한가득 쌓여 있는 부둣가 쪽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오진은 굉음이 들리는 쪽으로 날아갔다.
“제길! 빠, 빨리 저놈을 죽여!”
“여기 있다는 게 들키기 전에 빨리!”
동남아 계열로 추정되는 수십 명의 각성자가 오현빈을 등에 업은 이우혁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게 보였다.
오진은 뇌흔 밟기를 사용해 공중에서 방향을 틀며 높게 날아올랐다.
한 손에 창을 움켜쥐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낙뢰.’
파지지지지직!!
유성처럼 떨어져 내린 오진.
오진이 떨어진 장소를 주변으로 푸른 뇌전 폭풍이 휘몰아쳤다.
“아아악!”
“이, 이 자식은 또 뭐야?!”
“빌어먹을!”
갑작스러운 오진의 등장에 혼란에 빠진 두꺼비 파벌의 각성자들.
“오진 씨!”
“괜찮으십니까?”
“예. 저는 괜찮지만 현빈이가….”
이우혁의 등에 업혀 있는 오현빈은 식은땀을 흘린 채 거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오현빈의 등을 길게 가로 지은 흉악한 상처가 눈에 띄었다.
“죄송합니다. 놈들의 집행관한테 기습을 당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집행관이라고요?”
“예.”
흑성회의 집행관까지 여기 온 건가.
두꺼비 파벌의 집행관이 서열 몇 위의 집행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6위의 서열이었던 천도윤과 최소한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자라는 걸 생각하면 집행관에게 기습을 당하고도 살아남은 게 기적이었다.
“그 집행관은 어딨죠?”
“모, 모르겠습니다. 처음 기습을 한 이후 쫓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쫓아오지 않았다, 라.
‘부하들에게 귀찮은 일을 떠넘긴 건가?’
글쎄. 그렇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치고는.
“제길! 뭐 하고 있어? 빨리 죽여!!”
“시간이 없다고!!”
주위를 둘러싼 두꺼비 파벌의 각성자들의 표정이 절박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은 마치 뭔가에 쫓기듯 오진과 이우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일단 도망치죠.”
두꺼비 파벌의 집행관까지 여기 있다는 걸 안 이상, 저들을 상대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파지지지직!
오진은 달려드는 두꺼비 파벌의 각성자들을 향해 뇌전을 쏘아내며 시내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차츰 거리를 벌리고 있을 때.
-쉬이이이이익.
다시금 울려 퍼지는 스산한 소리.
“오, 오진 씨.”
오진에게 버프를 넣어주고 있던 이사벨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진이 도망치려고 하는 방향.
항구에서 시내로 향하는 쪽에서 들려오는 음산한 울음소리.
‘빌어먹을.’
오진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앞에는 두꺼비 파벌의 각성자들, 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수라니.
최악도 이런 최악의 상황이 없었다.
“쉬익, 쉬이이익.”
음산한 기운을 뿌리며 나타난 건 검은 갑주로 전신을 뒤덮은 괴물.
갑옷 이음새 사이로 검푸른 불꽃이 섬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검은 갑주의 마수는 검푸른 불꽃이 일렁이는 기다란 창을 한 손에 쥔 채,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윽!”
오진은 침음을 삼키며 다급히 창을 들어 올렸다.
검푸른 창을 쥔 채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던 검은 갑주의 괴수.
둘의 거리가 급격히 좁혀졌고━
검은 갑주의 괴수는 그대로 오진을 지나쳐 달려갔다.
“어?”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오진을 뒤로한 채.
-콰직!!
“커헉!! 컥!”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두꺼비자리의 각성자를 거칠게 꿰뚫은 창.
“쉬이이이이익!!”
검은 갑주의 투구 부분이 쩌억 벌어지며 마치 닭꼬치를 뜯어먹듯 창으로 꿰뚫은 두꺼비 자리의 각성자를 통째로 씹어 삼켰다.
“아악!! 사, 살려줘!!”
“그놈이야!! 그놈이 왔어!!”
“도망쳐!! 빨리!!!”
두꺼비 파벌의 흑성회원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뭐야 이건 또?”
오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도망치는 흑성회원들의 등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