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8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83화
막간-내일보다 나은 어제를 위해 (2)
부우우웅.
묵직하게 울리는 오토바이의 배기음.
하은을 뒤에 태운 오진은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오토바이 운전은 처음이었지만, 각성자의 초인적인 감각 덕분에 별 어려움 없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
하은은 오진의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은 채, 넓은 등 뒤에 이마를 기댔다.
두근, 두근.
오토바이의 배기음 따위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심장 박동 소리.
뜨거운 물수건을 목에 두른 듯 머리가 뜨거웠다.
‘뭐, 뭐야? 뭔데 이거?’
흑천인가 뭐시긴가를 사용해서 리빙 아머를 흡수한 오진은 갑자기 사람이 돌변한 것처럼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탐했다.
키스만 나눴다면 모를까.
갑자기 집으로 가자며 다소 억지스럽게 팔을 잡아끌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자신의 노골적인 유혹에도 담백하게 대응했던 그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과감한 행동.
‘그… 이신혁인가 그놈 기억 때문인가?’
자세하게는 듣지 못했지만.
그 흑천이란 걸 성장시킬수록 회귀자의 기억이 그에게 흘러들어온다고 한다.
지금 보여주는 그의 행동이 그 기억과 연관이 있는 걸까.
“…흥.”
하은은 그의 등에 이마를 댄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거 신경 쓸 필요 없는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전생의 자신이 뭘 했건, 뭘 당했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금 그녀는 이곳에 있었다.
오진의 곁에. 그의 허리를 등 뒤에서 끌어안으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다.
‘뭐, 나, 나야 좋긴 한데.’
하은은 아까 자신의 허리를 거칠게 끌어안으며 입술을 탐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까지 그와 입을 맞춘 적은 꽤 있었지만.
그토록 격렬하게, 마치 잡아먹으려는 듯이 입술을 탐해진 경험은 처음이었다.
“우으.”
허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하며 뺨을 붉혔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오진이 이렇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건 꽤 드문 일이었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지, 집에 가면.’
무슨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른침을 삼키며 바짝 마른 입술을 연신 혀로 핥고 있을 때.
끼익.
“도착했어.”
오토바이가 멈추며 익숙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온갖 대출과 돈을 끌어들여 오진에게 선물한 집.
물론 이사벨라가 오진에게 선물해 준 호화로운 아파트와 비교하면 그 외관도, 내부도 볼품없었지만.
이제껏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이나 다름없었던 집에 살았던 두 사람에게는 뜻깊은 집이었다.
“어? 어, 어어. 버, 벌써 도착했네.”
하은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내렸다.
오진이 앞장서 걸었고, 그녀는 주뼛주뼛 그의 뒤를 따랐다.
‘아으으으! 미치겠네 진짜!’
평소 같은 분위기였다면 장난이라도 치면서 긴장을 풀었을 텐데.
딱딱하게 굳은 오진의 표정을 보니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하은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초조한 발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을 올라가는 시간이 마치 70층을 올라가는 것처럼 기나길게 느껴졌다.
띠링.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20평 남짓한 집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일 텐데도,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는 집 안 분위기.
“오, 오지나.”
하은은 떨리는 눈으로 오진의 옷소매를 살며시 쥐었다.
오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며 점차 거리가 가까워졌다.
오진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을 때.
“읏!”
하은이 질끈 눈을 감으며 몸을 떨었다.
뺨에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마치 미지근한 음료수가 든 유리병을 뺨에 가져다 댄 듯한━
“응?”
하은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오진이 뺨에 가져다 댄 투명한 유리병을 바라봤다.
“뭐야 이게?”
그 안에는 신비로운 푸른빛을 뿜어내는 액체가 담겨 있었다.
오진은 유리병의 뚜껑을 따더니 그녀에게 내밀었다.
“엘릭서야.”
“…뭐?”
머리가 새하얗게 점멸하는 감각.
오진의 입에서 흘러나온 ‘엘릭서’라는 단어가 그녀의 머릿속을 빠르게 유영했다.
“자, 잠깐. 뭐라고? 엘릭서?”
숨만 붙어 있다면 아무리 위급한 상태의 환자라 해도 되살릴 수 있다는 영약.
물병자리의 고위 각성자가 돈으로도 구하기 힘든 값진 재료들을 수년에 걸쳐 정제해야만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지는 값비싼 포션이었다.
아니, ‘값비싸다’라는 표현은 엘릭서에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엘릭서 정도 되는 물건은 돈을 주고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까.
“마셔.”
오진이 그녀의 입가에 병을 가져다 댔다.
하은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듯 그에게 시선을 향했다.
“대체 어디서 이걸 구한 거야?”
정상적인 루트로 엘릭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데네브랑 내기에 이겨서 받았어.”
“데네브? 설마 그 데네브?”
하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소에서 있었던 데네브의 사도들과 대리전에 대해 얘기했다.
얘기가 이어질수록 하은의 눈동자가 점차 흔들렸다.
“데네브의 사도랑 싸웠다고…? 그것도 네 명이랑 연달아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머리.
하은은 오진의 멱살을 틀어쥐며 울부짖듯 외쳤다.
“왜!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거야!”
그래.
하다못해 처음 약속했던 대로 3명하고만 대리전을 치렀다면 모를까.
마지막 4번째 사도와 대리전을 치른 건 너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베가를 위해서 대리전을 치렀던 거라면 굳이 4번 째까지는….”
“3번째에 멈췄어도 데네브의 신격을 받을 수 있긴 했겠지.”
하지만.
“그러면 엘릭서를 뜯어낼 명분이 없어지잖아?”
“그건….”
하은을 위해서라면.
3번째 대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럼… 나, 날 위해서 싸웠다는 거야? 그것도 백조자리의 고위 각성자랑?”
하은은 떨리는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낄낄 웃음을 터뜨리며,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다.
“…아.”
하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짧은 탄성.
그래.
언제나 그는 이랬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
재가 되더라도, 먼지가 되더라도.
그녀를 위해 기꺼이 그 몸을 태워주는 남자.
“아, 으.”
하은의 눈가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오진이 건네준 엘릭서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며,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오진의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데.
더 이상 좋아질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사랑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러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더 좋아져 버렸다.
그럴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마음속 곳곳까지 그로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 그가 들어찰 자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오진은 피식 웃으며 그녀가 꼭 쥐고 있는 엘릭서를 뺏어 들었다.
“빨리 마시라니까 우리 누나 말 참 안 들어요.”
한 모금 입에 머금은 후.
가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입가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하읍….”
혀를 타고 푸른빛 액체가 그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은의 몸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달그락.
오른쪽 무릎 아래에 채워져 있던 의족이 바닥에 뒹굴었다.
의족이 떨어진 자리에 생긴 것은.
“와, 와아.”
뽀얗고 새하얀 발.
무릎 아래로 잘려 나갔던 그녀의 발이 멀쩡히 재생됐다.
“다, 다리가. 오, 오지나 진짜 다리가 재생됐어!”
하은은 들뜬 목소리로 외치며 오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가 선물해 준 의족이 아무리 편안하다고 해도 진짜 다리와 비교할 수는 없었다.
꼼지락, 꼼지락.
등 뒤에 날개가 돋아난 인간이 난생처음 날개를 펄럭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오른 발가락을 움직였다.
새하얀 맨발이 그녀의 의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아….”
하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 빈자리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던가.
용마안을 선물 받았을 때도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이 짜르르 울려 퍼졌다.
‘다시는…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눈이야 저주가 걸려서 시력을 잃어버렸으니 저주만 해제하면 앞이 보일 거라는 기대라도 있었지.
다리의 경우 잘려 나간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재생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 불편함만 감수하면 그냥 오른발이 없는 채로도 살만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리의 감각이 돌아오니 이제까지 참아오던 ‘불편함’이 얼마나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잘 움직이지?”
오진이 한쪽 무릎을 꿇더니 그녀의 오른발을 붙잡았다.
“하익!!”
이제 막 재생된 탓일까.
민감해진 발을 타고 짜릿한 자극이 퍼졌다.
“마, 만지지 마!”
얼굴을 붉히며 발을 빼내려고 했지만.
“제대로 재생된 건지 확인해야지.”
오진은 그녀의 발을 꾹 잡은 채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
하은이 자지러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넘어졌다.
“멀쩡한 것 같네.”
오진은 새하얀 발을 주무를 때마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하은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너, 너어 진짜….”
하은이 뭔가 불평을 쏟아낼 틈도 없이.
“그럼 이제 참을 필요도 없는 거지?”
오진이 번쩍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려 공주님 앉기 자세로 안아 들었다.
하은의 키가 워낙 큰 탓에 상상했던 것보다 멋들어진 구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뭐, 뭘 하려고?”
품에 안긴 채 조심스럽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은의 모습은 그 어떤 상상 속 그녀의 모습보다 사랑스러웠다.
오진은 하은을 안아 든 채 방문을 뻥 차서 열었다.
침대 아래 서랍장처럼 생긴 부분을 열면 또 다른 침대가 하나 더 생기는 이중 침대였지만.
‘오늘은 쓸 일 없겠지.’
오진은 하은을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올려두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하은을 안심시키듯.
그녀의 위에 몸을 겹쳤다.
* * *
“하아, 하아.”
뜨거운 열락의 시간이 끝난 후.
하은은 달아오른 숨을 내뱉으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배를 매만졌다.
“그, 그게 들어가긴 하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게 한스러울 정도로 아찔한 쾌락의 시간.
하은은 짐승처럼 자신을 갈구하던 오진의 모습을 떠올리며 발그레 뺨을 붉혔다.
좋았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살면서 이보다 기분 좋았던 게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
나만 좋았던 게 아닐까?
혹시 오진은 생각보다 별로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 번 시작된 불안의 씨앗은 무럭무럭 싹을 틔웠다.
하은은 옆에 누워있는 오진의 옆구리를 조심스럽게 찔렀다.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고 있던 오진이 그녀를 향해 고갤 돌렸다.
“왜?”
“그… 저… 그, 그러니까.”
답답하게 말을 더듬던 하은이 이내 자포자기하듯 물었다.
“어, 어떤 느, 느낌이었어?”
“뭐가?”
“그, 그러니까 내… 거, 거기. 어떤 느낌이었냐고.”
“탕 속의 고기 같은 느낌이었어.”
“야 이 씨발아.”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새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