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86)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86화
로마의 휴일 (2)
산 프루투오소.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휴양지였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즐겨 찾는다는 장소였지만.
“바닷가를 가자고?”
“예.”
이사벨라가 방긋 미소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같이 아름다운 바닷물에 몸을 담그거나 오일을 바르고 해변에서 느긋하게 쉬다 보면 금방 내상도 치료되실 거예요.”
“그거랑 내상 치료랑 뭔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해수욕하기엔 날씨가 좀 그런 거 같은데.”
숨을 내쉬며 새하얀 입김이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흘러나오는 계절.
춥기로는 러시아 뺨따귀를 후려갈길 정도로 추운 한국보다야 이탈리아 쪽이 훨씬 따듯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해수욕을 즐기기엔 무리가 있는 날씨였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닌가?’
각성자의 초인적인 육체를 생각한다면 한겨울에 바닷가에서 헤엄을 치든 잠수를 하든 아무런 문제가 없긴 할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것처럼 ‘휴양’ 분위기와는 아무래도 좀 거리가 있겠지만.
“후훗.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산 프루투오소의 날씨는 해수욕을 즐기기 딱 좋은 따듯한 날씨니까요. 오히려 너무 더울 수도 있으니 반팔이랑 반바지를 꼭 챙겨주세요.”
“엥?”
따듯한 걸 넘어서 너무 더울 수도 있다고?
‘여기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곳 아닌가?’
스마트폰으로 산 프루투오소의 위치를 검색한 오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탈리아 남부도 아니고 프랑스와 거의 인접해 있을 정도로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날씨가 따듯할 리가 없었다.
“산 프루투오소는 별의 마력의 영향으로 인해 기후가 뒤바뀐 장소 중 하나예요.”
“아, 거기 성유지(星喩地)였구나.”
성유지.
세계 곳곳에 게이트가 열리고, 성좌라는 초월자들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 그 마력의 영향을 받아 지형이나 기후 자체가 뒤바뀐 장소를 일컫는 말이었다.
“근데 거기 괜찮은 거야? 성유지에는 고등급 게이트나 던전이 열리기 쉽다고 하던데.”
“실제 근처 바닷가 깊은 곳에 게이트가 하나 있기는 해요.”
이사벨라가 고갤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콜그란데 가문에서 몇 년째 잘 관리해 오고 있고, 게이트 밖으로 괴수가 나온 적도 없는 곳이라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그렇구만.”
콜그란데 가문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산 프루투오소의 바닷물은 별의 마력의 영향으로 내상 치료에 아주 효과가 탁월해요. 실제 고위 각성자 중에서도 치료 목적으로 여길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래? 그런 것 치곤 인터넷에 그런 말이 하나도 없던데?”
시간 말고는 치료 방법이 극히 적은 내상에 효과적인 바닷가라면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만한데.
인터넷에는 ‘부자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라고만 적혀 있을 뿐 내상 치료에 관한 얘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사벨라는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콤한 케이크를 남과 함께 나눠 먹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
즉.
아는 사람만 아는 명소, 같은 느낌이 돼버린 건가.
아마 재력과 권력을 두루 갖춘 극소수의 사람만이 출입 가능한 장소이리라.
“어떠신가요, 하은 씨?”
이사벨라는 하은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하은은 뭔가 이사벨라의 계략에 말려드는 기분에 굉장히 언짢은 표정을 지었으나.
“뭐… 내상 치료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진을 위한 일이다.
고작 기분이 언짢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럼 결정됐네요.”
이사벨라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환히 웃었다.
“밖에 차량을 준비해 뒀으니 바로 출발하실까요?”
“잠깐. 그래도 짐은 싸야지.”
“후후. 괜찮아요. 이미 필요한 물건들은 다 준비해뒀으니 그냥 편하게 몸만 오시면 된답니다?”
이사벨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오진과 하은의 팔을 잡아끌었다.
오진과 하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사벨라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 * *
성소를 통해 로마로 이동한 후.
공항 쪽에 대기하고 있는 콜그란데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산 프루투오소로 향했다.
“와 씨. 바닷물 색깔 봐라 미쳤네 그냥.”
[아름다운 곳이로구나.]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고 도착한 산 프루투오소의 바닷가는 그 명성대로 찬란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이거 컴퓨터 배경화면 수준 아냐?”
하은이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이제 막 서울에 상경한 시골 처녀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에메랄드빛 바닷물. 설원처럼 펼쳐진 새하얀 모래밭과 깎아지듯 솟은 절벽들이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충 아무 곳이나 찍어도 SNS 인생샷으로 남을 만한 아름다운 장소였다.
“다들 마음에 들어 해주셔서 다행이네요.”
이사벨라는 연신 감탄사를 흘리는 오진과 하은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는 높게 솟은 절벽을 깎아 만든 아름다운 산책길을 익숙한 걸음으로 걸었다.
이사벨라를 따라 5분 정도를 걷자 절벽 위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거대한 저택이 나타났다.
‘여기가 별장이라고?’
베가의 신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웅장한 대저택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전에 아무렇지 않게 아파트 한 채를 통으로 선물해 줬을 때도 살짝 느꼈지만, 이렇게 직접 보니 콜그란데 가문이 지닌 아득한 재력이 절절히 실감 났다.
따랑.
저택에 다가가자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섬세한 장미 문양이 그려진 대문이 열렸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이뤄진 정원길을 따라 수십 명의 고용인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차기 가주님을 뵙습니다.”””
절제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는 고용인들.
차기 가주를 맞이한다고 해서 괜히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 깔끔함이 느껴질 정도로 점잖은 모습에선 고귀한 품격이 느껴졌다.
오진은 괜히 뭔가 압도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이사벨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게 진짜 귀족이구나.’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생각한 이사벨라의 모습이 색다르게 보였다.
탄성을 흘리며 이사벨라를 뒤따르던 도중, 고개를 돌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오진의 표정을 살피며 만족스럽다는 듯 입가를 올리는 이사벨라.
이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 눈을 빛내는 모습에 오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노린 거군.’
여러모로 영악한 여자였다.
“차, 차기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렇게 저택으로 향하고 있던 도중,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복장을 한 중년 사내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값비싼 보석이 박힌 외눈 안경을 쓴 배불뚝이 사내는 점잖았던 고용인과 달리 호들갑을 떨며 연신 허리를 숙였다.
“흐음. 안녕하세요 길포드 외숙부.”
이사벨라가 사내를 바라보며 살며 눈을 찌푸렸다.
“예, 엡!”
길포드는 어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무슨 군대 상관을 만난 듯한 그의 모습에 이사벨라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오진을 향해 몸을 돌리며 길포드를 소개했다.
“저희 외숙부예요. 별장 및 산 프루투오소의 게이트를 관리하고 계시죠.”
“자네가 뇌랑인가?”
길포드가 이사벨라를 대할 때와는 달리 거만한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이사벨라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외숙부님. ‘제’ 손님이에요. 예의를 갖춰주세요.”
“아… 죄, 죄송합니다!”
이사벨라의 한 마디에 바로 쭈그리가 되는 길포드.
콜그란데 가문에서 이사벨라의 입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한 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외숙부라… 방계(傍系)까지는 그래도 내다 버리지 않는 것 같네.’
전에 이사벨라에게 들은 대로면 빡빡한 후계 문제로 인해 가문의 직계는 한 명을 제외하곤 가차 없이 내쫓는다 들었는데.
그래도 외가(外家) 쪽은 별장 관리 같은 잡일을 시키며 내버려 두는 모양이었다.
“저… 가주님은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
“잘 지내고 계세요.”
“그, 그렇군요.”
길포드의 질문에 차갑게 답하는 이사벨라.
가만히 얘기를 듣던 오진은 의외라는 듯 눈을 빛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있긴 한가 보네?’
전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길래 괴수 사태 때 죽은 게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었는데.
어째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편히 휴가를 즐기시길 바라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십시오.”
길포드는 아무리 차기 가주라 해도 자기 딸뻘 되는 이사벨라에게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숙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오진 씨?”
길포드가 물러나자 이사벨라는 언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는 듯 살가운 미소와 함께 오진의 팔을 끌어안으려 했다.
그때.
“그래, 우리 부잣집 아가씨 집이 얼마나 넓은지 구경이라도 해보자고!”
탁!
하은이 이사벨라와 오진 사이에 쑤욱 몸을 들이밀며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이사벨라의 눈이 순간 서늘하게 빛났으나,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선 바다에 가기 전에 식사부터 해요. 저까지 해서 3인분을 준비하면 될까요?”
“아니. 4인분 준비해 줘.”
오진은 어깨 위에 걸터앉아 있는 베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베가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5인분… 아니, 6인분은 준비해야 하느니라.]“그렇게 많이 먹게?”
언제부터 우리 여신님이 그렇게 먹보였지?
[에잇.]딱!
베가가 오진의 이마를 찰싹 때렸다.
[리아크도 휴가에 부른다 하지 않았느냐?]“아.”
그러고 보니 우리 댕댕이도 불러야 했지.
최근 수련에 집중한다고 하도 처박혀 있다 보니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부르게?”
[식사가 준비되면 본녀가 불러 보겠느니라.]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당으로 향했다.
이사벨라에겐 나중에 소환수라고 적당히 소개하면 되겠지.
* * *
그렇게 이사벨라를 따라 저택을 구경하고 리아크를 소환해 간단한 통성명 정도만 마친 후.
표현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식사를 마쳤다.
“인간들의 요리는 언제 먹어도 놀랍군.”
리아크는 전용 그릇에 담긴 요리들을 남김없이 먹어 치운 후 만족스럽다는 듯 그르릉 울었다.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에요.”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늑대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는 괴상한 풍경에도 이사벨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리아크를 대했다.
“그럼 식사도 다 끝내셨으니… 슬슬 해수욕을 즐길 준비를 해볼까요?”
이사벨라가 몸을 일으키자 주변에 있던 고용인들이 다 먹은 접시들을 치웠다.
“나 근데 수영복 안 가지고 왔는데.”
“후훗. 걱정 마세요, 하은 씨. 제가 다 준비해 뒀답니다?”
이사벨라는 방긋 미소 지으며 어지간한 집 한 채보다도 넓은 드레스룸으로 안내했다.
드레스룸 안에는 각양각색의 수영복들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원하시는 디자인으로 아무거나 골라 입으시면 돼요.”
“…더럽게 많긴 하네.”
하은은 방 한가득 채우고 있는 수영복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뒤에서 수영복들을 구경하고 있는 오진 쪽을 힐끔 바라본 그녀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오지니가 좋아할 만한 수영복은….’
둘만 있을 때야 맘 편히 노출도 높은 수영복을 골랐겠지만.
이사벨라나 베가, 그리고 휴양지를 즐기러 온 다른 관광객들까지 있는 마당에 마냥 노출도가 높은 수영복을 고를 수는 없었다.
‘요거 괜찮네.’
드레스룸을 돌아다니던 하은이 발견한 건 멋들어진 장미 문양이 그려진 검은색 비키니.
비키니 치고는 노출이 그리 과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몸의 라인이 드러나는 수영복이었다.
“이걸로 할게.”
하은이 검은색 비키니를 손에 쥐었을 때.
“어머머, 이거 어쩌죠? 제가 깜빡 잊고 있었네요.”
이사벨라가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단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뭘 잊었다는 거야?”
“생각해보니 이쪽에 있는 수영복들은 제 사이즈에 맞춰져 있어서요.”
이사벨라가 하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 하은 씨에겐 너무 ‘헐렁’할 것 같네요.”
“앙?”
빠직.
하은의 이마에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