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9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92화
성유지의 괴물들 (3)
촤아아악!
앤트혼들로 뒤덮인 검붉은 바다.
그 바다 위를 가르며 오진의 몸이 빠르게 쏘아졌다.
바다 깊은 곳으로 다가갈수록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열기가 느껴졌다.
‘바다가 아니라 화산에 온 기분이네.’
그렇다면 이 바다를 가득 채운 앤트혼들은 화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되는 걸까.
오진은 마력으로 전신을 감싸며 두꺼비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피부가 탁한 회색빛으로 변하며 피부를 지져 버릴 듯한 열기가 조금 옅어졌다.
‘확실히 신체 강화 효과가 심플하니 쓰긴 좋단 말이야.’
단순하게 힘이 세지는 것만이 아닌, 내구도와 민첩성까지 두루두루 올라가니 범용성 면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크르르륵!”
“쿠오오오오오오!”
괴성을 지르며 빠른 속도로 바다를 유영하는 앤트혼들.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사용해 시력을 높이며 개미 떼처럼 바글거리는 앤트혼 무리를 살폈다.
‘찾았다.’
앤트혼 사이로 둥둥 떠다니는 ‘진입 금지’라는 주의 문구가 적힌 부표.
베가를 태우고 수영을 했을 때 마주쳤던 콜그란데 가문의 관리구역이었다.
‘이 주변에 게이트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게이트 안에는 용맥이 흐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뜬 채 바닷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글거리는 앤트혼 무리를 내려다봤다.
“그럼 일단 저걸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수백, 수천, 수만의 앤트혼 무리를 뚫을 수 있을 만한 강력한 한 방을 지닌 기술.
지금 오진이 사용할 수 있는 무수한 기술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뇌신체.’
차갑게 가라앉는 오진의 눈빛.
강력한 만큼 부담이 큰 기술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건 뇌신체 말고는 없었다.
“충전.”
파지지직!
왼손으로 창을 쥔 채, 오른팔을 길게 늘어뜨린다.
길게 늘어뜨린 오른팔에 사납게 타오르는 푸른 뇌전이 맺혔다.
‘충전, 충전, 충전.’
두 번, 세 번, 네 번.
충전을 연달아 사용할수록 오른팔에 타오르는 푸른 뇌전이 한층 거칠어졌다.
“크윽.”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
고무줄놀이를 하듯 혈관이 뒤엉키며 마력 회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 이대로라면 팔이 뻥, 터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파지지지지지직!
푸른 뇌전에 휩싸여 있던 오른팔이 뇌전 그 자체로 모습을 바꿨다.
범위는 손끝에서부터 어깻죽지까지.
뇌신(雷神)의 육체로 변한 오른팔에서 막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크륵?”
“쿠오오! 카르르륵!”
머리 위에서 태양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마력의 기운을 느낀 걸까.
눈깔이 뒤집혀 미친 듯이 해변을 헤엄쳐 나가고 있던 앤트혼들의 시선이 일제히 오진을 향했다.
뇌신의 팔을 올려다보며 파르르 떠는 앤트혼들.
바다를 헤엄치던 그들이 한점에 모여들더니 서로 몸을 겹쳐 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바닷속에서 거인이 몸을 일으켰던 것처럼.
무수한 앤트혼들로 이뤄진 거대한 군체가 오진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대형 쓰나미가 밀려오듯 오진을 덮치는 괴수의 군체.
“늦었어 새끼들아.”
오진은 덮쳐오는 엔트혼의 해일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푸른 뇌전으로 변한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갈라져라.”
콰
자
자
자
자
작!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앞으로 쭉 뻗은 오른팔에서 푸른 벼락이 뿜어져 나와 밀려드는 해일을 두 쪽으로 갈라졌다.
코를 찌르는 메케한 냄새.
찢겨나간 앤트혼의 팔다리와 내장이 후두둑 비처럼 쏟아졌다.
“하아, 하아!”
오진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입술을 짓씹었다.
대체 몇 마리를 한 방에 죽여 버린 걸까.
천 마리? 만 마리?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미쳤네 이거.’
원래도 북극성의 고위 각성자를 한 방에 무력화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기술이었지만.
흑천이 일곱 번째 개화를 하며 한층 더 그 위력이 강해졌다.
물론, 그 위력이 강한 만큼 반동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크으으으!”
오진은 낡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고작 벼락 한 번 내뿜었을 뿐인데 팔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오른팔의 감각이 사라졌다.
순간 시야가 뒤틀리며 의식이 흐릿하게 점멸했지만.
‘지금 가야 해.’
두 쪽으로 쪼개진 앤트혼의 해일이 꿈틀거리며 서서히 복구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천, 수만 마리에 달하는 앤트혼들이 번개에 휩쓸려 즉사했지만.
아직 산 프루투오소의 바다를 뒤덮고 있는 앤트혼들의 숫자는 아찔할 정도로 많았다.
지금 기회를 놓친다면 바닷속에 있는 게이트를 찾기란 요원할 것이다.
“흐읍!”
조각난 앤트혼들의 시체가 둥둥 떠다니는 바다를 향해 발을 박찼다.
촤아아아악!
수직으로 떨어진 오진의 몸 주변으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크윽.’
바닷속으로 들어간 오진은 펄펄 끓는 기름통에 들어온 것 같은 아찔한 열기에 눈을 찌푸렸다.
수만 마리의 앤트혼들이 죽으며 흩뿌려진 끈적한 핏물이 원래 아름다운 에메랄드빛이었을 바다를 루비 빛으로 물들였다.
‘해마자리의 성흔.’
슈우우욱!
해마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가볍게 발장구를 치자 모터를 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쭈욱 앞으로 쏘아졌다.
그뿐일까.
‘물속에서 숨도 쉴 수 있네 이거.’
오진은 탁한 핏물에 뒤덮인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단 걸 깨닫고 난 후 바다 깊은 곳으로 거침없이 헤엄쳤다.
주의 문구가 적힌 부표가 떠올라 있던 곳을 지나 바다 깊숙이 들어가자 열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마치 용암 속으로 잠수해 들어간 듯한 끔찍한 열기.
‘찾았다.’
오진은 전신을 불태울 듯한 맹렬한 열기를 가까스로 참으며 눈을 빛냈다.
깊숙이 잠수한 오진의 눈에 뜨인 것은 거대한 해저 동굴.
아니, 정확히는 해저 동굴 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완전히 박살 났구만.’
앤트혼 무리가 게이트를 빠져나올 때의 충격으로 무너진 걸까.
원래라면 단단한 껍질처럼 게이트를 보호하고 있어야 했을 해저 동굴이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쿠르르르륵!”
“카라라락!”
게이트에 다가간 오진을 노리며 수백 마리의 괴수들이 헤엄쳐 왔다.
오진은 몸을 비틀며 거칠게 창을 내질렀다.
파지지지직!!
푸른 뇌전이 바닷물 속에 퍼져나가며 헤엄쳐 다가오는 괴수들을 감전시켰다.
‘시간이 없어.’
빨리 용맥이 있는 장소를 찾아야 했다.
가늘게 눈을 뜨며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암석들 사이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게이트가 보였다.
게이트 안에서는 마치 폭주하는 것처럼 막대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기다.’
게이트 쪽으로 다가간 오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한 마력의 흐름이 뒤엉켜 만들어진 장소.
용맥.
그곳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흑천.’
쿠르르륵.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먹구름이 바닷속에 넓게 퍼졌다.
화산처럼 끓어오르는 붉은 마력을 검은 먹구름이 뒤덮었다.
‘크윽!’
먹구름을 타고 밀려드는 아찔한 마력.
흑천이 탐욕스럽게 용맥을 먹어치우며 막대한 마력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마력의 양이 적어.’
해일처럼 밀려드는 마력에 흐릿하게 점멸하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들며 흑천 속으로 용맥의 마력을 유도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검은 하늘에 용맥의 마력이 남김없이 흡수됐다.
펄펄 끓는 기름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바닷물의 온도가 점차 낮아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치이이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거문고자리의 성흔 옆에 새겨진 일곱 줄의 획(劃).
그 아래 여덟 번째 획이 새롭게 새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띠링!
[용맥의 마력을 성공적으로 흡수했습니다!] [‘거문고자리의 성흔’이 8성으로 격상합니다!]8성.
드디어 고위 각성자가 되기까지 딱 한 걸음 남은 경지에 발을 디뎠다.
‘안 그래도 슬슬 올라갈 때가 됐다 싶었는데.’
뇌전 10레벨을 달성하고 뇌신체라는 기술까지 새롭게 얻으면서 조만간 8성으로 올라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설마 용맥을 흡수하며 8성으로 올라설 줄이야.
오진은 왼쪽 가슴에 새겨진 여덟 번째 획을 내려다보며 눈을 빛냈다.
‘그나저나… 이걸로 된 건가?’
용맥을 흡수하자 뜨겁게 달아올랐던 바닷물이 점차 식어가며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던 마력이 사라진 것이 느껴졌다.
지금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으나, 용맥의 마력이 끊어졌으니 마을을 습격하고 있는 앤트혼들에게도 그 영향이 갔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노리고 헤엄쳐 오던 괴수들을 바라보니 아까와 비교해 그 움직임이 훨씬 둔해진 게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끝났네.’
물론 오진에게 용맥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는 흑천이라는 규격 외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별다른 고생 없이 사건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슬슬 돌아가 볼까.’
용맥의 마력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앤트혼 무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픽픽 쓰러져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힘의 원천을 잃고 약해진 놈들의 숨통 정도는 직접 끊어야 하리라.
그렇게 몸을 돌려 하은과 베가가 있는 해변 쪽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음?’
무너진 암석 잔해 사이로 뭔가 보였다.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파편.
‘…성유물?’
아니.
정확히는 ‘이미 사용한’ 성유물의 잔해였다.
오진은 가늘게 눈을 뜨며 성유물의 파편이 널브러진 장소를 살폈다.
해저 동굴을 지탱하고 있었을 큰 기둥마다 성유물의 파편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거대한 폭발의 흔적이 보였다.
이 흔적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결론은 하나.
‘자연 현상으로 무너진 게 아니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동굴을 무너트리고, 용맥을 자극해 폭주시켰다.
‘왜?’
오진은 가늘게 눈을 떴다.
용맥을 폭주시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
의문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은 채.
장막처럼 몸을 감싼 바닷물은 서서히 그 온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 * *
“카르르륵!”
“쿠오오오오오!!”
마을 전체를 뒤덮으며 날뛰는 괴수들.
이사벨라는 가문의 고용인들을 풀어 밀려드는 괴수를 막으려 했지만, 워낙 숫자가 많은 탓에 점차 밀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새하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
금빛으로 빛나는 지팡이를 쥔 이사벨라의 입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이대로는 못 버텨.’
그렇다고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지금 그녀가 지키고 있는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 산 프루투오소에 놀러 온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근처에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까지 괴수들의 이빨에 갈가리 찢겨나갈 테니까.
“읏.”
이사벨라는 쨍쨍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슬며시 올려다보며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여긴 제가 막을 테니 다들 마을 쪽으로 가주세요.”
“예?”
“하, 하지만 아가씨를 두고 갈 수는….”
“지금 차기 가주의 명령을 거스르실 생각이신가요?”
이사벨라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고용인들이 우물쭈물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앞으로 5초 안에 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으면 전원 해고에요.”
“예, 옙!”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던 고용인들이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하아.”
홀로 남은 이사벨라는 가늘게 눈을 뜨며 밀려드는 괴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주’의 영향으로 성흔이 새겨진 왼쪽 가슴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되도록 낮에 힘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크르르르륵!”
“쿠오오오!”
이사벨라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괴수들을 돌아봤다.
흠칫.
이성을 잃고 달려들던 괴수들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하찮은 것들이.”
짙은 피비린내가 퍼지며 붉은 기운이 이사벨라를 휘감았다.
이사벨라는 괴수들을 향해 느긋하게 손을 뻗었다.
퍼석! 퍽! 콰드득!
한계까지 바람을 집어넣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괴수들의 몸.
수천, 수만에 달하는 괴수들의 몸에서 분수처럼 핏물이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질척이는 핏물 속에서, 거머리 여왕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