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19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195화
정의의 검 (1)
산 프루투오소에서 게이트 폭주로 인한 대대적인 습격이 일어난 지 일주일.
오진과 하은, 이사벨라는 일단 거처를 옮겨 로마에 위치한 콜그란데 가문의 본가로 이동했다.
사건 자체가 워낙 대규모 사건이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소문이 퍼져나갔고, 이사벨라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이로 인해 붕 뜨게 된 건 오진과 하은.
이사벨라가 이건 콜그란데 가문의 일이니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딱 선을 그어버리는 바람에 두 사람은 하는 일도 없이 넓은 콜그란데 가문의 저택에 덜렁 남겨지게 됐다.
“흐아아아암.”
오진의 방 침대 위에 누운 하은은 늘어지는 하품을 흘리며 둥글게 이불을 말았다.
꼬물꼬물.
우화 중인 번데기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하은.
그것도 잠시.
“으아아!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침대 위에서 뒹구는 것도 질렸는지 하은이 이불을 발로 뻥 차며 몸을 일으켰다.
오진은 하은이 걷어차 바닥에 떨어진 이불을 주워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일단 사건이 좀 진정될 때까진 있어야지.”
“그냥 집에 돌아갔다가 나중에 오면 안 되나? 어차피 로마엔 성소도 있어서 집까지 금방이잖아.”
“그 말도 맞긴 한데.”
성소를 통해 이동한다고 해도 각 성소 앞마다 외국인 각성자들을 대상으로 한 입국 관리처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시간이 소요됐다.
“일단 범인을 찾기 전까지는 여기 있으려고.”
“범인?”
“용맥을 건드린 놈 말이야.”
“아.”
하은이 끄응-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콜그란데 가문의 저택에 살면서 부족한 건 하나도 없었다.
방은 무슨 농구 경기를 해도 될 정도로 넓었고, 끼니마다 나오는 음식들은 이제까지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화로웠다.
목욕탕은 또 어떤가.
하은은 처음 콜그란데 가문 저택의 욕탕에 들어갔을 때 무슨 그리스 로마 신화에나 나올법한 신들의 궁전에 발을 디딘 줄 알았다.
모든 게 지나칠 정도로 호화로웠고, 화려했으며,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뭔가 존나 안 맞는단 말이지.”
하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벌렁 침대에 누웠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나도, 라고 답했다.
밑바닥 중의 밑바닥 생활을 보냈던 둘에겐 콜그란데 가문에서 보내는 사치스러운 생활이 오히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이게 우리 집이었으면 또 몰라.”
친구 집에 놀러 왔다가 갑자기 친구가 바쁜 일이 있다며 집을 나가 버린 격이니 불편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참아. 지금 이사벨라가 위태로워 보인다고 한 건 누나였잖아?”
“뭐, 그렇긴 한데.”
하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저택에 있는 동안 오진이 이사벨라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모를까.
이사벨라 본인이 코빼기도 비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니 모든 게 다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심심하면 나랑 대련이나 할래?”
“대련?”
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맥을 흡수하고 8성에 도달한 이후 아직 새로운 힘을 완전히 몸에 체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솔직히 오진은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보통 각성자라면 얼마나 강한 성흔인지, 성(星)이 몇 성인지에 따라 대략적으로 그 힘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난 다르니까.’
흑천의 힘과 성흔 중에서도 최상위의 힘을 지닌 거문고자리 성흔.
북극성의 성좌인 베가조차 경악시켰을 정도의 재능까지.
오진 자신도 스스로가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은과의 대련이라…… 확실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구나.]뾰로롱.
오진의 어깨 위에 앉아 다람쥐처럼 오독오독 과일을 갉아먹고 있던 베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아직 8성 주제에 이 누나한테 대적해 보겠다는 거야?”
하은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옆구리를 찔렀지만,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가 육체 재구성을 마친 고위 각성자라 하더라도 오진을 쉽게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아니, 마음속 한구석에선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을 거란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건 나도 한번 보고 싶군.”
넓은 카펫 위에 앉아 있던 리아크가 몸을 일으키며 다가왔다.
“좋아. 그럼 정원으로 나가자.”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은과 베가, 리아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 * *
일단 ‘정원’이라 부르긴 했지만.
콜그란데 가문의 저택 밖에 펼쳐진 건 정원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지나치게 넓은 장소였다.
“아니, 뭔 X바 집 안에 호수랑 산이 있냐.”
하은이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콜그란데 가문의 정원을 거닐며 혀를 내둘렀다.
자본주의의 정수가 느껴지는 집이랄까.
“혁명 마렵네.”
“혁명은 무슨.”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련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여기 괜찮네.”
경호원들의 수련을 위해 만들어둔 듯 초등학교 축구장처럼 넓은 황무지에 각성자 전용 트레이닝 장비가 놓여 있었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
하은이 불끈 주먹을 움켜쥐며 자세를 취했다.
[잠시 기다리거라.]베가가 뽀르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높게 손을 뻗었다.
파지직!
그녀를 중심으로 푸른 뇌전의 장막 같은 게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잠깐. 설마 지금 성역을 쓴 거야?”
[성역을 펼친 건 아니니 걱정 말 거라. 그저 주변에 충격과 소음이 덜 퍼지게 만드는 일종의 결계이니라.]“신격에 부담이 가는 건 아니지?”
[후후. 걱정이 많은 아이로구나. 본녀가 그 정도도 조절 못 하겠느냐?]하긴.
고작해야 대련에 신격을 훼손시켜가며까지 결계를 펼칠 이유는 없다.
“좋아! 그럼 맘대로 날뛰어도 된다는 거지?”
[그리 튼튼한 결계는 아니니 적당히 힘 조절을 하거라.]“오키오키. 알았엉.”
하은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딱, 손가락을 튕겼다.
“오지나. 그냥 대련만 하긴 좀 심심하니까 내기 하나 할래?”
“내기?”
“응. 지는 사람이 상대편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뭐.
무슨 소원을 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히히! 약속한 거다?”
하은이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가느다란 연초를 하나 꺼내 손가락에 끼운 후.
“불이여.”
생각한다.
상상한다.
갈망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용이 내 뿜는 숨결처럼, 찬란히 타오르는 홍염을.
“존나게 타올라라.”
화르르르륵!!
거대한 불길이 파도처럼 오진을 덮쳤다.
“크윽!”
불에 닿은 것이 아닌데도 그 열기만으로 피부가 붉게 달아올랐다.
‘저걸 정통으로 맞으면.’
바짝 탄 통구이가 되어 쓰러지겠지.
‘확실히 누나가 화력 면에서는 나보다 위야.’
과거 유행했던 게임으로 비유하면 그녀는 시즈 탱크와 비슷했다.
움직임은 굼뜨지만, 그만큼 긴 사거리와 강력한 한 방을 지닌 존재.
‘하지만.’
오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단순 화력에서는 뇌신체를 쓰지 않는 이상 하은을 따라잡을 수 없었지만.
그 외의 부분에 있어서는 그녀에게 전혀 꿀리지 않았다.
아니, 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익시드.”
파지지직!
푸른 뇌전이 오진의 몸을 휘감았다.
거칠게 발을 구르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어딜!”
하은이 손가락 사이에 낀 연초를 오진을 향해 들어 올렸다.
관현악단을 이끄는 지휘자가 지휘봉을 휘두르는 것처럼 연초의 움직임을 따라 불꽃이 방향을 틀고 솟구쳐 올랐다.
파지직!
뇌흔 밝기를 사용해 불꽃을 피한 오진이 유성이 떨어지듯 빠르게 낙하했다.
‘낙뢰.’
파지지지지직!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 하은을 노렸다.
“흣차!”
하은이 기합을 터뜨리며 양발을 굴렸다.
불꽃이 폭발하며 그녀의 몸이 쏘아지듯 뒤로 이동했다.
투두두두두!!
낙하한 오진은 그 기세를 이용해 거칠게 질주하며 하은을 향해 달려들었다.
칠흑의 창을 손에 쥐고 바닥을 쓸 듯 넓게 휘둘렀다.
“읏!”
하은이 폴짝 뛰어오르며 창을 피했다.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손가락 사이에 낀 연초를 오진을 향해 튕겼다.
화아아아악!!
넓게 펼쳐진 불꽃의 장막이 오진을 뒤덮었다.
‘이건 못 피하겠네.’
치이이익.
장막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열기에 피부가 타들어 간다.
“헹! 암것도 못 하겠지 짜식아?!”
하은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외쳤다.
오진은 다가오는 불의 장막을 바라보며 몸을 낮게 숙였다.
‘아니.’
할 게 없는 건 아니다.
“폭뢰.”
콰아아앙!
창끝에 뇌전을 집중시킨 후 폭뢰를 터뜨렸다.
노리는 건 불의 장막이 아닌, 그 아래 땅.
‘불은 위로 솟기 마련이니까.’
폭뢰의 충격으로 3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생겼다.
오진은 구덩이 사이로 몸을 던져 불길을 피했다.
“어, 어어?”
당황한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는 하은.
오진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하은에게 달려들었다.
창을 반대로 잡고 창대로 그녀의 배를 찔렀다.
뒷걸음질 치던 하은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 같을 때.
“이 누나가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니?”
당황한 표정을 짓던 하은이 언제 그랬냐는 씩 입꼬리를 올리며 촤악 몸을 틀었다.
배를 노리고 쏘아지는 창대를 한 손으로 붙잡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화르르륵!
움켜쥔 주먹에 사나운 불길이 타올랐다.
“흐차아!”
뻐억!
인중을 얻어맞은 오진의 몸이 거칠게 뒤로 튕겨 나갔다.
“히히! 어때? 이번엔 진짜 한 방 먹었지?!”
하은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형편없이 뒤로 튕겨 나가던 오진이 양팔을 교차했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악!
폭뢰로 만들었던 구덩이 안에서 여섯 줄의 와이어가 솟구쳐 하은의 몸을 휘감았다.
“읏!!”
하은은 이번엔 진짜 당황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이깟 와이어 따위 불로 지져 버리면 금방 끊어지겠지만.
씨이이이잉!
그녀의 몸을 휘감은 와이어가 굉음을 뿜으며 슈터로 되돌아왔다.
하은은 다급히 발을 땅에 박아 균형을 유지했지만, 오히려 오진의 몸이 하은 쪽으로 쏘아지듯 가까워졌다.
파지지직!
칠흑의 창을 뒤덮은 푸른 뇌전이 사납게 튀어 올랐다.
“빌어먹을!”
도망칠 수 없단 걸 직감한 하은이 담뱃갑에서 연초 여섯 개비를 꺼냈다.
“불이여!”
화르르르륵!!
연초 끝에서 솟구친 여섯 마리의 붉은 화룡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존나 세게 타올라라!!!”
사나운 외침과 함께 오진과 하은이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주변을 휩쓸었다.
흩어진 돌조각을 흡수하며 주변을 초토화하던 바람이 공터를 감싸고 펼쳐진 푸른 뇌전의 결계에 막혀 튕겨 나왔다.
안개처럼 펼쳐진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타난 건.
“쿨럭!”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은 채 쓰러진 오진의 모습.
“어? 이, 이긴 거야 나?”
하은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입고 있는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전신이 불길에 그을린 오진에 비해 하은의 상태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끄응. 그래. 누나가 이겼어.”
오진은 못 당하겠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앗싸아!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구!”
하은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
오진은 좋아 죽겠단 표정으로 뛰어오르는 하은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소원!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했지!”
“응. 소원이 뭔데?”
“으음. 자, 잠깐만! 지금 생각할 테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봐!”
설마 자기가 이기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듯.
하은은 허둥지둥하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애송이.”
그렇게 하은이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리아크가 조용히 오진에게 다가왔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져준 거냐?”
역시 리아크의 눈을 속이진 못한 건가.
오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더니 아무 말 없이 하은에게 다가갔다.
“…….”
멀어지는 오진의 뒷모습을 지그시 노려보는 리아크.
‘잘못 봤을 리 없다. 저 애송이는 충분히 도마뱀 여자를 이길 수 있었어.’
그런데 마지막 격돌의 순간.
일부러 힘을 풀어버렸다.
“허.”
대련 도중 상대방에게 일부러 져주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걸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괴물 자식.’
리아크는 흔들리는 눈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이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받은 지 이제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났다.
아무리 북극성보다 격이 좀 떨어진다고 해도 자신보다 성(星)이 높은 각성자에게, 그것도 육체의 재구성을 마친 9성 각성자를 ‘봐주’면서 싸울 수 있다니.
‘저놈이 9성에 올라서면…… 여기서 얼마나 더 괴물이 된다는 거냐.’
등골을 타고 흐르는 아찔한 전율.
마치 먹구름이 가득 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아득한 공포가 리아크를 짓눌렀다.
‘……그럼 나는.’
리아크는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소원 하나 생각났어!!”
하은이 씨익 웃으며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는 오진의 팔을 가볍게 끌어안으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내 소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