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화
사기꾼 새끼 (1)
‘역천의 별? 회귀자?’
뭔 개소리야 그게.
‘회귀자라면…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다.
그는 미래에서 돌아오기는커녕, 당장 내일까지 살아남을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내일까지 갈 필요가 있나.
이대로라면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위를 둘러싼 괴수들의 이빨에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침착해. 당황하지마.’
각성자조차 아닌 자신이 이 끔찍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생각하고, 파악하고, 결단해야만 한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머리를 굴렸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게 무슨 빌어먹을 상황인지 파악해야 해.’
오진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까맣게 타 죽어버린 이신혁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몇 시간 전.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 * *
“자~ 그럼 어디 오늘도 적당한 호구하나 찾아볼까?”
여느 날과 같은 오후.
오진은 찌뿌둥한 몸을 풀며 발걸음을 옮겼다.
초보 각성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게이트로 향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
게이트 앞을 서성거리며 파티를 구하고 있는 각성자들.
그중 눈에 확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딱 좋네.’
쓸데없는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가죽 갑옷과 허벅지 보호대.
손에 쥔 2미터 길이의 창은 꽤나 고가의 물건인지 은은한 푸른 빛이 잔향처럼 창날에 맺혀 있었다.
주변에 서성거리는 ‘초보’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청년을 향해 느긋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짓도 벌써 8년째인가.’
8년 전.
지옥 같았던 보육원을 막 나와 먹고살 직장을 알아보던 시절.
하늘이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듯 이번에는 세상 전체가 지옥이 되어버렸다.
‘참 지랄 맞은 세상이 됐지.’
북극에서 최초의 균열이 관측된 이후.
댐이 무너지듯 세계 곳곳에 외계와 통하는 게이트가 생겨났다.
게이트 속에서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고,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괴수들에게 쓸려나갔다.
그렇게 지구의 반 이상이 괴수에게 뒤덮였을 무렵.
━성좌(星座)라는 초월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성흔을 내려 괴수와 싸울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별을 깨달은 자’.
흔히 각성자(覺星者)라 불리는 초인들이었다.
‘난 각성자가 되지 못했지만 말이야.’
격변한 세상.
끝없는 혼란과 환란 속에서 각성자조차 되지 못한 고아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이야~ 이거, 딱 봐도 이런 곳에 계실 분이 아니신 분이 한 분 계시네요!”
아득바득. 아등바등.
거머리처럼 남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살아남은 것이다.
“당신은…?”
“저는 물병자리의 1성 사도, 권진오라고 합니다.”
“무, 물병자리요?!”
청년의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하긴.
저렇게 놀랄 만도 하지.
물병자리는 수백에 달하는 별자리 중 최상급으로 꼽히는 ‘황도 12궁’의 별자리니까.
“황도 12궁 소속 사도라니… 실제로는 처음 보네요.”
“에이, 황도 12궁이라 해도 아직 1성 따리인데 뭘 그러십니까.”
너스레를 떨며 친근히 웃었다.
“그런데 혹시 성함이…?”
“아! 저는 나침반자리의 2성 사도 이신혁이라고 합니다.”
“나침반자리의 사도!”
괜히 손뼉을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크으! 멋집니다! 모든 방위(方位)와 방향(方向)을 자유롭게 다루는 성흔! 나침반자리의 각성자들은 아무리 다루기 어려운 무기라도 마치 수족처럼 다룰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황도 12궁의 성흔에 비하면 제건 아무것도 아니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하지만, 이신혁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딱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을 보이는 이신혁의 모습에 씩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그럼.’
사냥감을 정했으니.
본격적으로 작업을 쳐볼까.
“하하! 그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저희 파티라도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파티… 말씀입니까?”
이신혁은 황도 12궁에 속하는 각성자가 먼저 파티를 맺자 제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는 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야 당연히 환영이지만 진오 씨는….”
진오.
그의 본명인 오진을 거꾸로 쓴 간단한 가명.
너무 어설픈 위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런 어설픈 가명이 더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어느 누가 사기를 치면서 그냥 본명을 거꾸로 썼을 뿐인 조잡한 가명을 쓰리라 생각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 당한 각성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끝까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들키지 않는 선에서 빨아먹어야지.’
각성자라는 초인들에게 있어 그는 모기와 같은 존재.
피를 빨고 있다는 것이 들키면 너무도 간단하게 죽일 수 있는 약자에 불과했다.
‘여기선 좀 밑밥을 깔아둬야겠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신혁에게 입을 열었다.
“음…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저는 성흔의 힘을 다루는 데 영 재주가 없어서요.”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다른 파티에는… 솔직히 끼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
이신혁이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자에게는 그들에게 성흔을 부여한 성좌가 얼마나 강력한 별자리에 속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 말고도 성흔 자체를 ‘얼마나 잘 다루냐’도 중요했다.
“그래서 각성한 지 1년이 넘도록 아직 1성에 머물러 있죠….”
오진은 푸념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들 사이에서 ‘성’이라고 나뉘는 계급.
일종의 레벨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1성부터 12성까지 존재하는 그 계급에는 부여받은 성흔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도 중요한 평가요소였다.
“1년이라면… 확실히 길긴 하네요.”
이신혁이 끄응, 침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균적으로 1성에서 2성으로 승격하는 데는 6개월 정도가 걸렸다.
“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아닙니다, 진오 씨. 아직 1년이지 않습니까. 원래 처음에 헤매다가 한 번 승격하면 파바박 오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까요. ”
이신혁이 위로하듯 말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오진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인 그의 눈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뭐, 밑밥은 이 정도면 됐고.’
이 정도로 말했으면 당장 파티 플레이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럼.’
조금 더 작업을 쳐둬 볼까.
“신혁 씨를 처음 본 순간 딱, 느낌이 들었습니다.”
“크흠. 무, 무슨 느낌 말입니까?”
“신혁 씨에겐… 다른 각성자와는 다른 특출난 재능이 있다는 걸요.”
“재능, 말씀입니까…?”
“예. 제가 이래 봬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자신 있어서요.”
“하, 하하. 뭐… 다른 각성자들보다는 조금, 아주 조금 빨리 2성으로 승격하긴 했죠.”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호들갑을 떨며 손뼉을 칠 때마다 이신혁의 입꼬리가 환하게 올라갔다.
성좌에게 성흔을 부여받은 초인이라고 해도 그 본질은 인간이다.
칭찬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 좋고, 들뜨게 된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같이 파티를 맺으시겠습니까?”
“음. 그전에 그….”
이신혁이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통 처음 보는 각성자들끼리 파티를 맺기 전, 의례처럼 하는 행동이 있었다.
다 큰 남자끼리 하기는 좀 민망한 의례가.
“그럼 서로 성흔을 확인할까요?”
오진은 흉부 쪽에 덧대어 입은 갑옷을 쓱 벗으며 물었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 각성자들끼리 파티를 맺을 때는 왼쪽 가슴 위에 새겨진 성흔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었다.
“예, 그러죠.”
이신혁도 입고 있던 레더 아머를 벗고 옷을 끌어 내렸다.
왼쪽 쇄골 아래쪽.
나침반자리의 성흔이 보였다.
“확인했습니다.”
이젠 자신의 차례.
오진은 이신혁처럼 입고 있는 셔츠를 어깨 아래로 끌어내렸다.
왼쪽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물병자리의 성흔이 드러났다.
“와아… 저게 바로 황도 12궁의 성흔….”
이신혁의 입에서 짙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탄성을 내지르는 그를 바라보며 오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얼마나 개고생하면서 새긴 건데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지.’
처음 이 일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
칼로 가슴의 살점을 후벼 파서 직접 새긴 가짜 성흔이다.
적어도 겉모습만으로는 진짜와 구별할 방법이 없다.
“하하, 고작 이런 저급 게이트를 들어가면서 성흔 확인을 하는 것도 좀 웃기네요.”
끌어내린 옷을 다시 고쳐 입은 이신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급이라고 해도 방심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각성자 아닙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죠.”
오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들이 가려고 하는 게이트는 대부분 1성, 아주 가끔 2성급 괴수가 출현하는 저급 게이트였지만, 치사율로 따지면 오히려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게이트였다.
‘이제 막 각성한 초짜들이 혼자 설치다가 뒤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도 이신혁은 적어도 ‘초짜’라 불릴 정도의 각성자는 아니었다.
“그럼, 들어가죠.”
“예.”
이신혁과 파티를 맺은 오진은 게이트 너머로 들어갔다.
시야가 뒤바뀌며, 어두컴컴한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숲에는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이형적인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있었다.
입구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다른 각성자들을 피해 숲속 깊이 들어갔다.
-카르륵.
사락, 사락.
수풀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풀숲 사이로 괴수의 노란 안광이 보였다.
이신혁이 창을 움켜쥐며 자세를 낮췄다.
“잠시만요.”
당장에라도 괴수를 향해 달려들려는 이신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신혁이 의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돌아보았다.
“전투 전에 먼저 버프를 걸어드리겠습니다.”
물병자리의 성흔을 받은 각성자들은 직접적인 전투력이 거의 없는 대신 회복이나 버프와 같은 서포팅에 특화되어 있다.
이신혁이 아차,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병자리의 성좌━ 알바일이여.”
오진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나지막이 주문을 읊었다.
우우웅!
그의 왼쪽 가슴에서 옅은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옷 속에 숨겨 놓은 초소형 LED를 킨 것뿐이지만.’
적어도 겉에서 보기엔 성흔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미천한 사도의 앞길에 어둠을 밝힐 별빛을 비춰주소서.”
공손히 포갠 두 손을 활짝 펼치며 양팔을 벌렸다.
반짝이는 빛의 가루가 이신혁을 향해 날아갔다.
“《호수의 서광(曙光)》.”
마치 유릿가루를 허공에 뿌린 듯한 광경.
아니.
‘그냥 유릿가루에 형광도료를 섞어서 뿌리는 거 맞아.’
어두컴컴한 숲속이다 보니 유릿가루에 섞은 파란색 형광도료가 한층 더 잘 빛났다.
“이건….”
“후우. 가장 기초적인 버프입니다. 어떻습니까?”
“으음.”
“지금 당장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뇨.”
이신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창을 움켜쥔 손가락을 하나씩 펼쳤다가 접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변화가… 느껴집니다.”
어?
진짜?
“처음엔 목구멍이 따끔거리더니, 조금씩 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입니다.”
유릿가루 삼켰구나.
그거 몸에 안 좋은데.
“뭔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듯한, 그런 신비로운 감각이 느껴집니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이게… 이게 말로만 듣던 물병자리 성흔의 힘이로군요!!”
아닌데.
“버프 감사합니다, 진오 씨! 이젠 제 힘을 보여드릴 차례로군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