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1화
사냥개를 풀어라 (2)
여의도에 위치한 각성자 협회 본부.
여느 때와 같이 등록 심사를 보기 위해 몰려든 각성자들을 지나치며 직원들만 출입 가능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똑똑.
“예, 들어오십쇼.”
팀장실의 문을 두드리자 굵직한 저음이 흘러나왔다.
달칵.
문을 열자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근육질 거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러다 의자 부러지는 거 아냐?’
끼기기긱.
한 팀장이 엉덩이를 떼자마자 억눌렸던 비명을 토해내듯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요.”
가벼운 인사치레를 하며 소파에 앉았다.
당장 20억이라는 정신 나간 액수의 의뢰에 대해 샅샅이 캐묻고 싶었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혹시 흑성회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흑성회요?”
한준만 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뇨. 처음 들어보는군요.”
“그럼… 이 성흔은 본 적 있으신가요?”
종이를 한 장 짚어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그려 보여주었다.
“이건… 잠시만요.”
서랍에서 두꺼운 책자를 꺼낸 한 팀장이 펄럭펄럭 페이지를 넘겼다.
이내, 가늘게 눈을 뜨며 성흔이 그려진 종이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이 성흔은… 올빼미자리의 성흔이군요.”
“아시는 겁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잊혀진 성흔’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잊혀진 성흔?
뭐여 그건 또.
“8년 전 성좌들이 막 지구에 나타났을 당시에는 분명 존재했던 기록이 남아 있지만,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된 성흔들을 그렇게 부릅니다.”
잊혀진 성흔이라.
“왜 사라졌는지는 기록되지 않은 겁니까?”
“예. 아무래도 그때 당시 상황이… 뭔갈 기록할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요.”
한 팀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오진은 짧은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8년 전.
외계로 통하는 게이트가 처음 열렸을 때.
수십 개의 국가가 사라지고, 지구의 3분의 2가 괴수로 뒤덮였던 악몽의 시절.
그때라면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오늘 뒤지게 생겼는데 뭘 기록을 해.’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불리던 시절이지 않았던가.
‘어쨌든 올빼미자리의 성흔이 8년 전부터 존재했다면.’
검은 별의 성흔은 무려 8년 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 어쩌면 흑성회도….’
8년 전부터 쭉 음지에서 활동해온 조직일 수도 있단 의미.
‘급조된 조직이 아니었어.’
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숨죽여 몸집을 키워온 조직이라면 보통 규모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스케일이 커지는데?’
오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벌집을 건드린 게 아닌, 말벌집을 건드린 모양.
‘대비를 좀 빡세게 해야겠구만.’
방법은 몇 개 생각해둔 게 있지만, 아직 확 끌리는 게 없었다.
“흐음.”
올빼미자리의 성흔이 그려진 종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한 팀장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성흔은 어디서…?”
“며칠 전, 게이트에서 시비가 좀 있었습니다.”
“시비요?”
“예. 게이트에서 성유물을 하나 찾게 됐는데… 유진이라는 각성자가 다짜고짜 자신의 것이라며 공격하더군요.”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들을 아주 살짝 과장해서 설명했다.
“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보시다시피.”
“휴우… 다행이군요.”
한준만 팀장은 짧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오진 씨와 시비가 붙은 그 각성자가 올빼미자리의 성흔을 지니고 있었던 겁니까?”
“예.”
“아, 그럼 혹시 흑성회라는 곳도…?”
“하하. 역시 눈치가 빠르네요. 예, 맞습니다. 놈이 자신을 ‘흑성회’라는 곳의 일원이라 하더라고요.”
“흐음.”
오진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도 갑작스럽게 공격을 당한 입장이다 보니 정체를 알아보려고 물어본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올빼미 자리에 대한 건 저희 쪽에서 한 번 조사해보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흑성회에 대한 것도요.”
한 팀장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협회가 직접 나서서 조사한다면 좋은 소식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아무리 협회가 여기저기에서 무시당한다고 해도 정부 직속 기관 중 가장 큰 덩치를 지닌 조직.
정보력만 따지면 어지간한 길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 하나 여쭤볼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아, 예. 물론입니다.”
“이거, 대충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습니까?”
오진은 유진에게서 받은 주먹만 한 크기의 성유석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오… 이건 꽤 상등품 성유석이네요.”
한 팀장은 짧은 탄성을 흘리며 주먹 크기의 성유석을 살폈다.
“성유물은 따로 감정이 필요하지만… 이 성유석만으로도 못 해도 5억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5억!!
입이 쩍 벌어지는 금액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크으! 최고다 흑성회!!’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혀를 놀린 것만으로 이 정도 챙길 수 있다니.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협회 쪽에서 처분해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시세보다 좋게 받으실 수 있도록 해드리죠.”
한 팀장이 자신 있게 웃으며 어깨를 쫙 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거구의 사내가 어깨를 쫙 펴니 뭔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힘자랑을 하는 수컷 고릴라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세금은….”
“당연히 없습니다.”
뭐지.
나 이 고릴라한테 반할 것 같아.
“아 참, 겸사겸사 이것도 감정해 주실 수 있을까요?”
흑성회가 검은 술잔과 바꿔치기했던 성유물을 내밀었다.
“이게 그 시비가 붙었다는 성유물입니까?”
“하하, 예. 맞습니다.”
“벌써 성유물을 찾으시다니….”
한준만 팀장은 짧은 탄성을 흘렸다.
게이트에서 성유물이 발견되는 건 그리 드문 일까지는 아니지만, 이제 막 등록 심사를 마친 초짜가 성유물을 손에 넣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아니, 오진 씨라면 가능할 수도.’
등록 심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해서 그를 ‘초짜’라고 폄하하기에는 오진에게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노련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몇 년을 넘게 게이트 안에서 굴러본 솜씨야.’
각성하기 전에는 평범한 일반인이었을 테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한 팀장은 오진이 내민 푸른 술잔을 받아들였다.
“저희 쪽과 연결된 감정사에게 의뢰를 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진은 꾸벅 머리를 숙였다.
변종의 성유석도 같이 처리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은 좀 더 가지고 있기로 했다.
‘흑성회 놈들과 연관된 걸 수도 있으니.’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으리라.
“자, 그럼. 더 물어보실 건 없으십니까?”
“예.”
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흥분에 찬 콧김을 내뿜으며 눈을 반짝였다.
‘이제 슬슬 메인디쉬가 나올 차례지.’
연락을 받자마자 발바닥에 땀 나도록 협회로 튀어온 가장 큰 이유.
“━의뢰 내용이 뭡니까?”
“하하. 안 그래도 지금 설명해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한 팀장은 털털하게 웃으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일단 이번 긴급 의뢰를 요청한 건 발할라 길드입니다.”
“…발할라 길드?”
처음 들어보는 길드 이름이었다.
‘의뢰 보수로 20억을 던졌을 정도면 그래도 나름 규모 있는 길드라는 건데.’
미간을 좁히며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아마 처음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길드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예. 소수 정예로 이뤄진 길드로, 하나하나의 길드원들이 모두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 평이 자자한 길드입니다.”
소수 정예라.
규모가 있는 길드인 줄 알았는데, 양보다 질에 투자한 길드였나.
“무엇보다 거기 길드 마스터가 어마 무시하죠. 차세대 ‘칠성(七星)’ 후보로 꼽힐 정돕니다.”
칠성(七星).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과 권력을 지녔다는 일곱 명의 각성자를 일컫는 호칭이다.
그 후보로 거론될 정도면 보통 각성자가 아니리라.
“뭐… 제 개인적으로는 오진 씨가 더 대단하다 생각하지만요.”
한 팀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전 오진 씨도 나중엔 칠성의 한 축을 담당할 거라 확신합니다.”
“너무 큰 기대를 걸어주시는군요.”
오진은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겸손을 떨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대로 강해지다 보면 언젠간 되겠지.
‘칠성이라.’
인류를 아득히 초월한 강자들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국에 한 명밖에 없기도 하고.’
일곱 명 중 여섯이 외국에 있다 보니 소식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에 한 명 있는 칠성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크흠. 그럼 다시 본론을 돌아가서 의뢰 관련 내용인데…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또 쉬운 그런 의뢰입니다.”
뭔 소리야.
“의뢰 내용이 뭐기에 그렇습니까?”
“…사람 찾기, 입니다.”
사람 찾기?
“흥신소처럼 사람 찾아서 조사하고 뭐 이런 겁니까?”
근데 보수가 20억이라고?
‘아무리 돈이 썩어 넘친다 해도 그게 20억이나 한다고?’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한 팀장을 바라봤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누굴 조사해달라는 의뢰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정확히는 실종자를 찾는 일이죠.”
“아.”
그런 거였군.
실종자를 찾는다면, 그중에서도 ‘게이트 내에서 사라진’ 실종자를 찾는다면 실력 있는 각성자가 아니면 안 된다.
“실종자가 누굽니까?”
“어디 보자… 잠시만요.”
한 팀장이 의뢰서를 뒤적였다.
“아, 여깄네요.”
서류더미에서 종이 한 장을 집어 든 그가 테이블 위에 척 의뢰서를 올려뒀다.
“실종 날짜는 11월 6일.”
“2주 정도 지났군요.”
지금이 22일이니 정확하게는 2주하고도 2일이 더 지났다.
“실종 장소는… 당일 아침 이후로 흔적이 끊어져 잘 모르겠다고 하네요. 아마 인천 쪽에 있는 1~2성급의 저급 게이트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합니다.”
“한 여덟 군데 정도 돌아봐야겠네요.”
지금 기준으로 인천에 있는 저급 게이트는 총 8개.
지난 몇 년간 저급 게이트 위주로 사기를 치고 다녔기에 그쪽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여덟 군데면 뭐 금방이지.’
3성에 도달한 지금이라면 이틀, 길어도 삼일 안에 모두 조사를 마칠 수 있다.
“성별은 남자. 나이는 20대 중후반에 키는 182센티. 검은 머리에 날렵한 체격이라 하네요. 아 참, 그리고 이름은… 어디 보자. 아, 여기 적혀 있네요.”
서류를 쭉 읽어내리던 한 팀장이 어느 한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신혁. 실종자 이름은 이신혁입니다.”
“━예?”
누구요 씨발?
“어때요. 찾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니.
찾긴 뭘 찾아.
‘걔 이미 뒤졌는데요.’
미치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