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0)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10화
뱀의 머리 (3)
“크윽….”
깨질 듯 욱신거리는 머리.
오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천천히 눈을 떴다.
‘여긴.’
검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거인의 검을 거꾸로 뒤집어 꽂아 놓은 듯한 뾰족한 암석들이 높게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사이로는 일곱 개의 검은 별이 불길한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먹구름이 뒤덮은 하늘에 검은 별이 떠올라 있어봤자 검은색 종이에 검은 잉크를 떨어트린 것처럼 구별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어째서인지 불길한 빛으로 반짝이는 일곱 개의 검은 별은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기괴한 풍경.
오진이 지금 자신이 눈을 뜬 곳이 어딘지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경.”
북극에 열린 직경 50km에 달하는 초대형 게이트.
‘최초의 균열’을 통해서만 오갈 수 있다고 알려진 괴수의 세계.
자신은 지금 그 미지의 세계 안에 빨려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것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하.”
오진은 헛웃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너무 방심한 건가.’
사실 방심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베가를 직접 소환해서 균열이 안전한지 아닌지 확인한 후에 만진 거니까.
그리고 이제까지 수백 번 넘게 게이트에 출입했지만, 고작 손가락 하나 대자마자 수십 미터 크기로 팽창하면서 주변을 집어삼키는 형태의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나의… 아이야?]오진의 근처에 함께 쓰러져 있던 베가가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지러운 듯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던 그녀가 주변을 광경을 돌아보고는 폴짝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여, 여기는 마경 안이 아니더냐?!]“그런 것 같아.”
[대, 대체 이게 무슨….]베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오진의 손이 닿자마자 뱀이 먹잇감이 집어삼키는 것처럼 검은 균열에 집어삼켜졌던 기억.
베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본녀의 잘못이니라.]균열이 안전하다고 말했던 건 베가 자신이었다.
“아니.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
손끝이 닿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예상했겠는가.
[분명 균열의 상태는 지극히 안정적이었건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본녀도 이해할 수가 없구나.]베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그녀는 알 수 없겠지만, 오진에게는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흑천에 반응한 거야.’
검은 균열에 손이 닿는 순간.
미세하지만 흑천이 반응을 보였다.
검은 균열은 그에 공명하듯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즉.
애초에 그 균열은 오진을 마경에 빨아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함정이었다는 것.
누구의 짓인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균열 앞에 떡하니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고 갔었으니까.
중요한 건 누가 했느냐가 아닌.
‘어떻게… 내가 흑천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던 거지?’
북극성의 성좌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 어떻게 뱀자리 여왕은 알 수 있었을까.
오진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일단 나중에.’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아으… 골이야. 뭔 일이야 대체?”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신가요, 오진 씨?”
균열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와이어로 몸을 묶은 덕분인가.
다행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던 하은과 이사벨라가 오진을 향해 걸어왔다.
“나는 괜찮아. 누나랑 이사벨라는?”
“대가리 빠개질 것 같은 거 말고는 딱히.”
“저도 괜찮아요.”
멀쩡해 보이는 두 여인의 모습에 오진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건 그렇고.’
오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여기 빨려 들어왔을 때 목소리 못 들었어?”
“엥? 무슨 목소리?”
“아뇨. 못 들었어요.”
고개를 젓는 두 여인.
“왜, ‘기다리고 있었다’고 속삭이는 거. 진짜 아무도 못 들은 거야?”
“환청이라도 들은 거 아냐?”
하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두 여인 모두 목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
베가를 향해 고개를 돌려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본녀도 못 들었느니라.]“…그래?”
그렇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였단 말인가.
“뱀자리 여왕의 목소리 아니었을까요? 아마 이 균열을 만든 것도 그녀의 짓인 거 같은데.”
“…아냐.”
오진은 나지막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뱀자리 여왕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었지만.
“남자의 목소리였어.”
정확히 어떤 목소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여자가 아닌, 남자의 목소리였다는 것.
“뱀자리 여왕이 혹시 달려 있다거나?”
뭔 소리 하는 거야 이 누난.
“아니, 왜. 그 있잖아. 뭐라고 부르더라… 아, 맞다! 후타나….”
“시끄럽고.”
재잘거리는 하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으으읍!”
뭐 하는 짓이냐는 듯 눈을 찌푸리던 하은이 낼름 혀를 내밀어 손가락을 핥았다.
말캉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오진은 눈을 찌푸리며 손을 뺐다.
“드럽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게 누가 남의 입술을 막 멋대로 짚으래?”
콧방귀를 낀 하은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뭔 씨바 하늘이 이렇게 칙칙하냐.”
쯧. 혀를 차며 품속에서 연초를 하나 꺼냈다.
치이이익.
연초 끝이 밝게 타오르며 주변에 반딧불처럼 불꽃이 떠올랐다.
어두컴컴했던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땡큐 누나.”
“근데 할부지랑 천혜 길드원들은 다 어디 갔지?”
“글쎄. 일단 이 주변부터 살펴보자.”
오진이 앞장서 걸으며 높게 솟은 암석들 사이를 지나갔다.
“와, 오지나. 저것 좀 봐.”
하은이 앞장서 걸어가는 오진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한쪽을 가리켰다.
암석 사이에 난 좁은 틈 사이로 자라난 나무 하나가 보였다.
나무 끝에는 몽환적인 빛을 머금은 연녹색 열매가 맺혀 있었다.
속이 비칠 정도로 반투명한 열매는 마치 보석이 맺힌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저 열매… 되게 이쁘다. 그치?”
열매를 바라보던 하은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 하은이 연녹색 열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사벨라가 다급히 하은의 어깨를 붙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언니.”
“어…? 왜?”
“저, 열매 피 냄새가 나요.”
가늘게 눈을 뜨며 열매가 달린 나무를 향해 돌조각을 집어 던졌다.
돌조각에 맞은 열매가 가볍게 흔들리는 순간.
콰드드드드드득!!
순간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나무뿌리가 맹수의 아가리처럼 쩍 벌어지더니 돌조각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뭐, 뭐야 저건?!”
몽롱하게 풀렸던 하은의 눈빛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우드득우드득 돌조각을 부서트리는 나무뿌리를 바라보며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연초를 나무를 향해 집어 던졌다.
화르르르륵!
사납게 타오른 불길이 나무를 불태웠다.
“와 씹… 혼자였으면 걍 손도 못 쓰고 당했겠네.”
순간 자기도 모르게 열매를 향해 다가갔던 걸 떠올렸는지 하은이 소름 끼친다는 듯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초인적인 단단함을 자랑하는 고위 각성자의 육체 덕분에 죽지는 않았겠지만, 큰 상처 정도는 입었을 것 같았다.
“…여기가 괜히 마경이라 불리는 곳이 아니라는 거지.”
오진은 사냥개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후우! 자네 여기 있었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천상길이 나타났다.
마수와 몇 번 격전을 치렀는지 입고 있는 한복에는 붉은 핏자국이 가득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우린 별일 없었어. 할부지는?”
“하아. 자네들을 찾는 길에 마수 무리가 습격을 했네만… 다행히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다네.”
천상길은 안도에 찬 숨을 내쉬며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네.”
“괜찮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던 사람은 여기서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요.”
오진은 허리춤에서 수통을 꺼내 천상길에게 내밀었다.
“고맙네.”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어르신?”
“물론이네.”
물을 시원하게 들이켠 천상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눈을 뜨신 장소가 여기서 어느 정도 떨어진 장소였습니까?”
“글쎄… 꽤 거리가 떨어진 장소였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는지는 모르시는 겁니까?”
“아마 5킬로? 아니, 한 10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네.”
확실히.
동시에 균열에 빨려 들어간 것치고는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럼 눈을 뜨시자마자 바로 저흴 찾으러 움직이신 겁니까?”
“그렇다네.”
“대략 몇 분 정도 걸리셨죠?”
“흐음. 한… 한 시간? 그 정도 찾아다닌 것 같군.”
“저희랑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나셨군요.”
오진이 눈을 뜬 것도 대충 1시간 정도 전이었다.
“오시는 길에 마수 무리를 마주쳤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네.”
“어떤 놈들이었습니까? 생김새라든지… 덩치 같은 거요.”
“으음. 잠시만 기다려주게나. 워낙 어둡고 정신이 없어서 잘 생각이 안 나는군.”
천상길은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덩치가 3미터 정도 되는 표범이었다네. 표범이라고 해도 머리만 표범이지 몸은 인간의 것이었네만.”
“늑대인간처럼 말입니까?”
“그렇다네.”
“숫자는 몇 마리 정도였습니까?”
“한 백 마리는 넘었던 것 같군. 못해도 7성급은 될 법한 괴수였다네.”
그럼 7성급이나 되는 백 마리 괴수 무리를 그 짧은 시간에 처치한 건가.
오진은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탐랑성이시군요.”
“끌끌. 이 늙은이가 자랑할 만한 게 그 정도뿐이지 않은가.”
천상길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마시고 있던 수통을 오진에게 내밀었다.
괴수 무리와 싸우며 조금 지쳤는지 꽤나 많은 물을 마셨지만, 성유석을 이용한 마법으로 내부 공간을 확장한 수통 안에는 아직 많은 물이 남아있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 물어보게나.”
“이제까지… 앗.”
질문을 하며 수통을 받아들던 오진이 깜빡 수통을 놓쳤다.
수통 안에 들어있던 물이 콸콸 쏟아져 천상길의 한복을 적셨다.
“어이쿠.”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끌끌. 괜찮다네. 오히려 마수들의 피를 씻을 수 있어서 잘됐구만.”
천상길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수통을 집어 오진에게 줬다.
“그래,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뭔가?”
“아, 별건 아닙니다.”
오진은 수통을 허리춤에 매달며 물었다.
“이제까지 제가 질문드린 거, 거꾸로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천상길은 무슨 소릴 하냐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오진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천상길을 노려봤다.
“거꾸로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으음.”
식은땀을 흘리며 데굴데굴 눈을 굴리는 천상길.
그는 오진의 시선을 피한 채 신경질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진은 천상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물에 젖은 한복이 손바닥을 축축하게 적셨다.
“대답해 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