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1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15화
뱀의 머리 (8)
밤하늘을 옮겨 담은 듯한.
짙은 어둠으로 채워진 먹구름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케르륵?”
오진을 향해 달려들던 어미 마수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어미 마수는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시각이 퇴화한 대신 그에게는 주변 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 뛰어난 후각과 청각이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케르륵! 케륵! 크르르르륵!”
맡아지지 않는다.
들리지 않는다.
피와 살점으로 이뤄진 적의 냄새도. 허겁지겁 도망치던 발소리도.
감각이라는 전원의 스위치가 내려간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왜 그래.”
콰드드득!
그때.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외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들린 것은 몸 내부.
살점을 뚫고 들어온 기다란 창이 그의 정수리를 꿰뚫는 소리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잖아?”
파지지지지지직!
“케에에에에엑!”
어미 마수는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뒤틀었다.
끔찍한 격통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육체가 파괴되어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공포에 마수는 괴성을 토해냈다.
콰르르르릉!
수천, 수만의 촉수들이 미친 듯이 주변을 휩쓸었다.
몸의 절반 정도가 먹구름으로 변한 오진이 눈먼 촉수에 얻어맞고 강하게 뒤로 튕겨 나갔다.
쿠웅!
묵직한 굉음과 함께 몸을 이루고 있는 먹구름이 크게 출렁거렸다.
“아, 으.”
오진은 먹구름으로 변하지 않은 손을 들어 머리를 움켜쥐었다.
뜨겁게 달궈진 팬에 버터를 녹이듯.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집중해.’
흑천의 구름에 의식이 모조리 녹아 들어가기 전에.
어미 마수를 처치해야 한다.
“하아.”
낮은 숨을 토해내며 가볍게 발을 박찼다.
뇌흔 밟기를 사용한 것도 아닌데 몸이 저절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진짜 구름이 된 것처럼.
자유롭게 허공을 유영하며 날아간 오진이 하늘 위에서 몸부림치는 어미 마수를 내려다봤다.
‘일단 감각 차단은 어느 정도 먹혔어.’
개천을 사용하면 일정 반경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의 ‘감각’이 사라지게 된다.
마수의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모든 감각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니 일단 어느 정도는 감각 차단에 성공했다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접근하기가 너무 어려워.’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촉수들 때문에 어미 마수의 몸에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아으, 아. 크윽!”
평소라면 어찌 몸을 피해 가며 접근할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희미하게 점멸하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상태에서는 제대로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다.
‘최대한 먹구름으로 변한 쪽으로 공격을 유도한다면.’
개천을 사용한 후 절반 가까이 먹구름으로 변한 육체.
이 중에서 먹구름으로 변한 부분은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듯 공격을 받아도 그대로 통과시키는 게 가능했다.
“하아, 하아. 할 수 있어.”
지금 가장 많이 먹구름으로 변한 부분은 오른쪽 가슴과 팔 부근.
나머지는 통째로 바뀐 게 아니라 옷에 얼룩이 진 듯 그 일부만 바뀌었기 때문에 공격을 통과시키긴 어려웠다.
“흐읍!”
깊게 숨을 들이쉬며 어미 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안개처럼 몸 주변에 깔려 있던 먹구름들이 오진을 뒤따라 어미 마수의 몸을 덮었다.
먹구름으로 뒤덮인 어둠 속에서, 중구난방으로 휘둘러지고 있는 촉수가 그를 향해 쇄도했다.
‘오른쪽.’
슈욱!
오른편을 파고드는 흉측한 촉수.
몸을 비틀어 검은 먹구름으로 변한 곳으로 촉수를 받아냈다.
높게 솟은 암석도 송두리째 무너트리는 힘을 지닌 촉수가 검은 먹구름을 통과해 그대로 지나갔다.
“그렇지.”
오진은 씨익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어미 마수를 향해 다가갔다.
커다란 코와 관자놀이까지 찢어진 흉측한 입만이 있는 어미 마수의 머리에는 조금 전 오진이 박아 넣은 창이 아직 박혀 있었다.
촉수를 피해 머리에 내려앉은 오진은 칠흑의 창을 움켜쥐었다.
‘충전.’
파지직! 파직!
칠흑의 창 내부에 뇌전을 응축시켰다.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를 더해갈수록 창이 고통을 호소하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직.’
당장이라도 창이 박살 나 버릴 것만 같았지만, 이 정도로는 수백 미터에 달하는 덩치를 지닌 어미 마수를 쓰러트릴 수 없었다.
‘충전, 충전, 충전.’
그렇게 여섯 번을 넘어 일곱 번의 충전이 이뤄졌을 때.
카각! 칵!
창대에 살며시 금이 가는 게 보였다.
오진은 움켜쥔 창을 어미 마수의 정수리를 향해 힘껏 밀어 넣으며 응축된 뇌전을 해방시켰다.
“방전.”
콰자자자자작!!
검은 뇌전의 격류가 어미 마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키에에에에에엑!”
끔찍한 괴성이 희미 해져가는 의식을 뚫고 들려왔다.
그렇게 전력을 쏟아낸 공격을 했지만.
“하아, 하아… 제기랄.”
몸속에 직접 창을 박아 넣고 내부에 직접 뇌전을 흘려 넣었음에도 어미 마수는 죽지 않은 채 오히려 더 격렬하게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단단한 거야.’
오진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뇌신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일격을 사용했음에도 어미 마수를 죽일 수 없었다.
‘지금 뇌신체는 사용 못 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데 무슨 수로 뇌신체를 사용하겠는가.
“하아, 하아. 아, 으.”
검은 먹구름에 녹아가는 의식.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라갔다가 검은 먹구름에 녹아 사라져갔다.
‘안 돼.’
시간이 없다.
“후우.”
오진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창날에 꿰뚫려 벌어진 어미 마수의 머리에 검은 먹구름으로 변한 팔을 박아 넣었다.
맑은 물에 검은 잉크 방울을 떨어트리듯.
어미 마수의 몸속으로 흑천의 구름이 사납게 파고들었다.
‘물리적인 타격으로 죽일 수 없다면.’
남김없이.
영혼이 말라 비틀어 바스러질 때까지.
먹어 치워버리면 될 뿐이다.
쿠르르르르륵!
어미 마수의 몸속으로 파고든 흑천의 기운이 탐욕스럽게 마력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이게… 성좌의 영혼.’
성령 안에 녹아 들어있던 성좌의 영혼 일부가 흑천에 흡수되어 오진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아득한 힘에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환희에 떠는 듯한 전율이 밀려왔다.
‘더, 더, 더!’
오진은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탐욕스럽게 어미 마수의 마력을 흡수했다.
“아아.”
성좌의 영혼을 먹어 치운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을 줄이야.
“하, 하하하. 하하하하!”
아득한 쾌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름도 모를 성좌의 영혼 일부만으로 이 정도의 쾌락이 밀려오는데.
‘과연.’
‘베가’를 통째로 먹어 치우게 되면.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지, 랄…!”
오진은 마수의 정수리에 막아 넣은 오른팔을 거칠게 잡아 뽑았다.
마력을 흡수하는 걸 멈추고 어미 마수의 머리 위에서 발을 박찼다.
쿠웅!
수백 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오진의 몸이 묵직한 충격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허억, 허억, 허억!”
오진은 거친 숨을 내쉬며 다급히 흑천의 문을 닫았다.
절반 가까이 검은 먹구름으로 변했던 육체가 점차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씨발, 씨발!”
방금 전 자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역겨운 생각에 거친 욕지기를 쏟아냈다.
-띠링!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푸른 메시지.
하지만 지금 오진에게는 느긋이 메시지를 읽고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허억, 허억.”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오진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원래대로 돌아온 오른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들끓는 욕망과 갈증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흐릿하게 점멸하던 의식의 끈을 다시 붙잡았다.
“후우.”
미쳐 날뛰는 흑천의 기운을 간신히 진정시킨 오진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을 때.
“케르르르르르륵!”
쿵! 쿵! 쿠궁!
어미 마수가 길게 찢어진 입을 벌리며 오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미친…!”
오진은 경악에 찬 눈으로 어미 마수를 돌아봤다.
중간에 흡수를 멈췄기 때문일까.
어미 마수는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와중에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빌어먹을!’
빨리 피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아직 개천을 사용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케라라라라락!”
수백 미터에 달하는 어미 마수가 전차처럼 오진을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육체가 오진을 짓누르기 직전.
“시끄러운 아이로구나.”
스르륵.
바닥에 쓸리는 칠흑빛 드레스.
백금발을 지닌 가녀린 체형의 여인이 어미 마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케륵.”
길게 찢어진 입을 벌리며 달려들던 수백 미터 크기의 마수가 우뚝 멈춰 섰다.
여인은 우뚝 멈춰선 채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마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옳지. 착하지, 착하지.”
쓱, 쓱.
가냘픈 손을 뻗어 우뚝 멈춰선 어미 마수를 쓰다듬었다.
“케륵, 케르륵, 케륵.”
어미 마수는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발작을 일으키듯 덜덜 몸을 떨었다.
코와 입뿐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오진의 눈에는 어미 마수의 얼굴이 두려움에 질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용서해주기엔 네가 지은 죄가 너무 크구나.”
여인의 녹색 눈동자에 섬뜩한 살기가 맺혔다.
그녀는 검지를 길게 뻗어 어미 마수의 몸을 아주 살짝 톡, 건드렸다.
“죽으렴.”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명령을 끝으로.
“케르르르륵!”
어미 마수가 미친 듯이 자해하기 시작했다.
기다란 촉수를 입 안에 집어넣어 내장을 짓이기고, 뾰족한 다리 끝을 자기 정수리에 박아 넣어 뇌를 헤집었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끔찍한 광경.
오진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금발의 여인을 돌아봤다.
나이는 20대 중반쯤 됐을까.
고혹적인 외모에 비해 그녀의 몸은 마치 잘 못 건들면 부서져 버릴 것처럼 가냘팠다.
하지만.
‘미친.’
느껴지는 기운만큼은.
이제껏 만났던 그 어떤 각성자보다도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절대 못 이겨 이건.’
이제까지 이 정도로 터무니없는 압박감을 주는 존재가 있었던가.
오진은 자기도 모르게 덜덜덜 떨리기 시작한 손으로 주먹을 움켜쥐며 여인을 돌아봤다.
“아아, 아아아!”
여인은 오진을 바라보며 환희에 찬 탄성을 내뱉었다.
흙먼지 가득한 바닥에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은 그녀는 마치 신을 찬양하는 광신도처럼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찾았습니다!”
광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나의 신, 나의 구원자, 나의 주인이시여!”
그녀는 환한 미소와 함께 오진을 올려다봤다.
“천마 님의 미천한 종, 카시아가 인사드리옵니다.”
자신의 이름을 카시아라고 밝힌 여인이 오진을 향해 깊게 머리를 숙였다.
오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마? 날 보고 천마라고? 대체 이게 뭔 지랄 맞은 상황이야?’
왜 자신을 천마라 부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토록 광적으로 천마를 따르는 여인은 오진이 알고 있는 한 한 명 말고는 없었다.
‘설마… 뱀자리 여왕?’
오진의 등골을 타고 쫘르르 소름이 퍼졌다.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알!’
거친 욕지기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성령 다음은 뱀자리의 여왕?
“아아, 천마 님. 천마 님. 천마 님. 천마 님.”
카시아는 애타는 눈빛으로 오진을 올려다봤다.
“너무나… 너무나 간절히 뵙고 싶었사옵니다.”
“…….”
오진은 바닥에 무릎 꿇은 카시아를 내려다보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공손하게 두 손을 모은 채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오진은 낮은 숨을 토해내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카시아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늦었구나.”
서릿발처럼 차가운 목소리.
“언제까지 날 기다리게 할 셈이었지?”
한심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자.
“아아! 죄, 죄송합니다 나의 신이시여!”
쿠웅!
카시아가 거칠게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오진은 땅에 머리를 박은 카시아를 내려다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X됐다.’
이거 어쩌지,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