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23)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23화
지워진 것, 사라지지 않는 것 (1)
“…예?”
오진은 벙진 표정으로 이사벨라를 바라봤다.
메이드복을 입은 이사벨라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은 채 오진의 뺨을 쓰다듬던 손길을 천천히 아래로 내려 목덜미를 만졌다.
“저, 오진 씨와 떨어졌을 때 많이 무서웠다고 그랬죠?”
“그랬… 지.”
“이제 다시는 그런 무서운 기분 느끼고 싶지 않아요, 오진 씨.”
대신 이제 제가 좀 무섭긴 하거든요 이사벨라 씨.
“오진 씨는 가만히 내버려 두면 또 어딘가로 가버리실지 모르니까.”
“…그래서 묶어둔 거야?”
“예!”
잘했죠? 라는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미소 짓는 이사벨라.
오진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뭐야 이 아가씨.’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거야.
전부터 살짝 불안한 조짐을 보이긴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한 모양.
“우선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 그보다 이것 좀 일단 풀어줘 봐.”
“오늘은 영양식으로 전복죽을 만들었어요~♬”
이상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아.
“자, 아~앙 하세요, 오진 씨.”
죽이 든 그릇을 가져온 이사벨라가 스푼으로 죽을 퍼 오진의 입술에 대었다.
살짝 입을 벌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죽을 머금었다.
입 안에 퍼지는 참기름의 고소한 향과 말캉한 전복의 식감.
얌전히 죽을 받아먹는 오진을 바라보며 이사벨라는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었다.
“아, 좀 흘렀네요.”
자세가 불편하다 보니 입술 옆으로 살짝 전복죽이 흘렀다.
“내가 닦을게.”
오진이 티슈를 향해 손을 뻗으려 했을 때.
“가만히 있으렴.”
우뚝 멈추는 오진의 팔.
‘명령’을 사용해 오진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 이사벨라는 티슈를 뽑아 오진의 턱에 묻은 전복죽을 닦았다.
“옳지, 옳지. 말 잘 듣네?”
그녀는 티슈에 손을 뻗는 자세로 딱딱하게 굳은 오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핥았다.
나긋한 손길로 오진의 뺨을 쓰다듬으며 전복죽이 든 그릇을 옆으로 치웠다.
“이, 이사벨라.”
“저, 그날 이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아요?”
침대에 누운 오진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인 이사벨라가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풍만한 중량감을 지닌 무언가가 부드럽게 오진의 가슴을 짓눌렀다.
“매일, 매시간, 1분, 1초도 쉬지 않고 후회했어요.”
이사벨라는 오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부드러운 손길로 그의 왼쪽 가슴에 새겨진 성흔을 매만졌다.
“…무슨 후회?”
“만약 그때 오진 씨를 제 명령에 거스르지 못하는 노예로 만들었다면… 그런 일도 없었지 않을까, 하는 후회요.”
“…….”
누나.
어딨어 누나!
빨리 여기 좀 와줘 봐!
“오진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성흔을 쓰다듬던 이사벨라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오진에게 몸을 한층 더 밀착했다.
이불처럼 오진의 위에 올라탄 이사벨라.
VIP 병실 침대의 이불도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져 부드러운 감촉을 자랑했지만, 지금 몸을 뒤덮고 있는 이 감촉과 비교하면 마른 부직포나 다름없었다.
“대답하렴?”
귓불을 살며시 깨물며 속삭이듯 명령하는 그녀의 모습은 메이드라기보단 왕좌 위에 도도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만인을 지배하는 여왕처럼 느껴졌다.
‘거머리 여왕.’
흑성회의 집행관들이 으레 서로를 부를 때 붙이는 칭호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칭호 그대로 ‘여왕’이나 다름없었다.
“저를… 이사벨라 님의 노예로 만들어주세요.”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명령에 따라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이 움직였다.
오진에게 원하는 말을 강제로 짜낸 이사벨라는 기쁘다는 듯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존칭을 붙여가며 정중하게 말하던 그녀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사벨라는 핏빛으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윽하게 오진을 바라봤다.
천천히 고개를 기울여 오진의 목덜미를 요염하게 혀로 핥았다.
목덜미를 타고 퍼지는 간질거리는 쾌감에 오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있으렴.”
이사벨라는 부드러운 손길로 오진의 뺨을 쓰다듬으며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았다.
등골을 타고 퍼지는 짜릿한 쾌감.
피가 빨리는 감각와 함께 이사벨라의 마력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설마 이대로 영영 이사벨라의 노예가 된 채 혈액 자판기 신세가 되어버리는 건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오진이 당황하고 있을 무렵.
“후훗, 농담이에요.”
이사벨라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오진에게서 떨어졌다.
그녀는 포션 뚜껑을 열어 상처가 난 오진의 목덜미에 꼼꼼히 발라줬다.
“많이 놀라셨나요 오진 씨?”
“…그 상황에서 어떻게 안 놀랄 수 있겠어?”
“어머, 제가 오진 씨를 진짜 노예로 만들 리 없잖아요?”
순식간에 아문 상처를 매만지며 이사벨라는 방긋 미소 지었다.
“적어도 ‘지금’은요.”
“…나중엔 만들 수 있다는 거야?”
“글쎄요? 그건 오진 씨 하는 걸 봐서 결정하지 않을까요?”
즉.
한 번만 더 멋대로 움직였다간 진짜 노예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경고인 건가.
‘경고 한번 살벌하네.’
새빨간 핏빛으로 번들거렸던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녀의 말마따나, 다음엔 단순한 경고로는 끝나지 않으리라.
“알았어. 다음부터 안 그럴게.”
뭐, 만약 다음에 다시 똑같은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아마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그녀를 안심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약속이에요?”
이사벨라가 오진의 뺨을 콕 찌르며 귀여운 콧바람을 내뿜었다.
오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과 발목에 묶인 붉은 사슬을 가리켰다.
“약속할 테니까 우선 이것부터 좀 풀어줘.”
“잠시만요.”
이사벨라가 사슬을 풀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사슬에 손을 올린 그녀가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췄다.
“이사벨라?”
“…….”
사슬 위에 손을 올린 채 고심에 빠진 이사벨라.
한동안 멈춰선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이사벨라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오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오진 씨, 그때 저한테 키스하셨죠?”
“어?”
이사벨라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첫 키스였는데.”
“…그건.”
오진은 뭐라 할 말이 없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뭐가 됐든 아무런 동의도 없이 그녀의 입술을 훔친 건 사실이었으니까.
“콜그란데 가문의 일원에겐 정절이 얼마나 중요한 재산인지 아시나요?”
“아니 뭔 조선시대 양반집도 아니고.”
그리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키스 가지고 정절 운운하기엔 너무 가지 않았나?
“흠흠! 어쨌든! 제 입술을 빼앗았으니 책임을 져주셔야겠어요.”
자신이 말하면서도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지 이사벨라의 뺨이 살며시 붉어졌다.
깜찍한 투정을 부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오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떤 책임?”
“그, 그러니까….”
말끝을 흐리며 불안한 듯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이사벨라.
손가락 끝을 맞대어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방금 전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오진을 노예로 만들려고 했던 여왕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번 더.”
“응?”
“하, 한 번 더 해주세요.”
이사벨라는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에 오진의 입에서 무심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앗! 우, 웃지 마시고요!”
이사벨라는 사과처럼 뺨을 붉히며 투닥투닥 오진의 가슴을 때렸다.
“오, 오진 씨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 할 테니까요!”
그녀는 흥분에 찬 콧김을 내뿜으며 침대에 묶인 오진을 향해 다가왔다.
“하아.”
물기에 젖은 숨결.
이사벨라는 질끈 두 눈을 감은 채 오진의 입술을 향해 천천히 얼굴을 기울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콰앙!
병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하은이 나타났다.
“드, 드디어 찾았다!”
병원 전체를 뒤진 듯 하은의 숨은 거칠었다.
“오지니한테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 이년아?!”
“칫.”
이사벨라는 문을 박차고 들어온 하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칫? 칫이라고?”
“어머, 진정하세요 언니. 제가 그런 품위 없는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이사벨라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씩씩거리며 다가온 하은이 오진의 팔다리를 묶고 있는 핏빛 사슬을 바라보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하아. 잘하는 짓이다, 아주.”
오진에게 다가간 하은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이게 다~ 네 업보 때문이야 이것아.”
“크흠.”
오진은 할 말이 없다는 듯 하은의 시선을 피했다.
“빨리 이거 풀어.”
“예, 언니.”
이사벨라가 못내 아쉽다는 듯 오진의 팔다리를 묶고 있는 핏빛 사슬을 풀었다.
몸을 묶고 있는 사슬이 풀리자 오진이 끄응 기지개를 켜며 굳은 몸을 풀었다.
“몸은 좀 어때?”
“지금 당장 마경에 떨어져도 살아나올 수 있을 정도야.”
“지랄.”
하은이 피식 웃으며 오지의 이마에 손가락을 탁 튀겼다.
“또 누나 가슴 타들어 가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하은은 이사벨라의 반대편에서 침대에 올라가더니 누워있는 오진의 몸을 끌어안았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다시 못 보는 줄 알았다고 이 나쁜 놈아.”
“…미안.”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훌쩍이는 하은의 어깨를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었다.
훌쩍이던 하은이 오진이 입고 있는 병원복을 끌어당겼다.
“패앵!”
“아니.”
병원복에 뭔 짓을 하는 거야 이 누나.
“뭐, 어쨌든 몸은 멀쩡하다는 거지?”
“응.”
“그러면….”
하은이 입꼬리를 슬며시 올리며 이사벨라 쪽을 바라봤다.
“우리 동생, 잠깐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지?”
“읏.”
이사벨라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앞으로 둘이 뭘 할지 대충 예상이 간다는 표정.
“시, 싫어요.”
“싫다고?”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은 하은이 오진을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오지니가 누구 건지는 알고 있지?”
“…….”
“설마 연인끼리 오붓한 시간을 방해할 셈이야?”
“으으.”
이사벨라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분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알고 있다.
오진이 하은의 연인이라는 것을.
자신은 아직 둘 사이에 끼어들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두고 봐요 언니.”
“3류 악당이 도망치면서 할 법한 대사네.”
“시, 시끄러워요!”
이사벨라가 버럭 소리치더니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콰앙!
거칠게 병실 문이 닫혔다.
“이사벨라 쟤도 참 애가 보면 볼수록 귀엽다니깐.”
하은은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던 이사벨라를 떠올리며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오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첫 번째는 이 누난 걸 잊으면 안 된다 오지나?”
“…….”
“오지나? 뭔 일 있어?”
오진은 멍한 눈빛으로 하은을 바라봤다.
끔찍한 악몽 속을 헤매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인?”
언제부터.
하은과 자신이 연인 사이가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