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25)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25화
칠성 의회 (1)
“후아아아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나른한 하품 소리.
“오지나아….”
늘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하은이 오진의 몸을 끌어안았다.
서로 옷을 입지 않아 부드러운 살결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에헤헤. 우리 오지니 너무 좋아.”
아직 달콤한 꿈속을 헤매고 있는지 하은이 고양이처럼 뺨을 비벼왔다.
“…….”
오진은 그녀가 깨지 않도록 가만히 누워 방 천장을 올려다봤다.
병원 옥상에서 꼴사납게 눈물을 질질 짠 다음 날.
의사에게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들은 오진은 할 일이 있다며 이탈리아에 남은 이사벨라를 두고 하은과 함께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둘만 남게 된 하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굶주린 야수처럼 오진을 덮쳤고.
‘설마 동정을 두 번 떼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지.’
오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처음에 마치 당연하다는 듯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는 하은의 모습에 얼마나 기겁했던가.
그녀와 연인 사이였다는 기억이 사라진 오진에게 있어 지난 며칠 간은 새로운 자극의 연속이었다.
“으음.”
“일어났어?”
하은이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죽겠네 아주.”
하은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찌푸렸다.
피로에 찌든 눈으로 오진의 뺨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하여간 짜식 정도란 걸 모른다니깐.”
투정을 부리듯 귀엽게 입술을 삐쭉였다.
“뭔 처음 해본 사람처럼 그렇게 눈 뒤집혀서 하냐?”
“…….”
처음 해봤으니까, 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히히. 그래도 개좋았다 진짜.”
하은이 배시시 웃으며 오진의 뺨에 입을 맞췄다.
“슬슬 아침 먹을래?”
“아니, 너 혼자 먹어라. 누구씨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한숨 더 잘란다.”
하은이 이불을 끌어당기며 파리를 쫓듯 훠이훠이 손을 휘둘렀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러면 아침은 간단하게.’
대충 닭가슴살과 각종 야채를 갈아 주스로 만들어 마신 오진은 바로 트레이닝 시설로 향했다.
며칠 푹 쉬었으니 슬슬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야 했다.
“쓰으읍. 후우.”
넓은 트레이닝 룸 바닥에 정좌한 오진이 눈을 감고 몸속의 마력을 한 바퀴 돌렸다.
어미 마수와 천상길의 마력을 흡수했지만.
전과 비교해 다룰 수 있는 마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두 힘 모두 아직 완벽히 녹여내지 못했어.’
그전에 얻은 데미안의 마력도 아직 흑천의 먹구름 사이에 몸을 웅크린 채 고집을 부리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우선 이걸 녹여내는 게 가장 급한데 말이지.”
오진은 답답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흑천의 단계를 올려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건가.’
흑천의 단계를 올리고 싶어도 정해진 방법 같은 게 없다 보니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까지 흑천의 단계가 올랐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정해진 방법은 없다고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생각해봤을 때 흑천의 단계를 높이는데 가장 핵심이 되는 건 역시 뭔가를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근데 이제 뭘 먹냐가 문제지.’
배가 부를 대로 불러 버린 흑천은 이제 뭐 어지간한 먹잇감에는 반응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반응이 있던 게… 용맥이랑 어미 마수를 흡수했을 때 정도인가.”
둘 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먹잇감이었다.
용맥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게 나타나고, 설사 있다고 해도 대부분 극비리에 숨겨져 있었다.
어미 마수의 경우는 더 골치 아팠다.
‘걔는 성령이었으니까.’
성좌의 영혼 일부가 깃들어 있는 마수를 어디서 또 발견하겠는가.
“미치겠네 이거.”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더욱 골치가 아팠다.
‘뭐, 일단 이건 제쳐두고.’
지금 당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만 생각해본다면.
‘그러고 보니 어미 마수를 흡수하고 흑천에 새로 생긴 특성이 있었지.’
오랜만에 상태창을 열어 흑천의 특성들을 확인했다.
새롭게 생긴 특성의 이름은 ‘기화(氣化)’.
이어진 설명을 읽어본 오진의 입에서 짧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이름 그대로의 능력이네.”
‘기화’가 지닌 능력은 짧은 순간 신체의 일부를 흑천의 먹구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주 직관적이고, 단순한 능력이었지만.
‘개사기 특성 아냐 이거?’
흑천의 먹구름에는 물리적인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다.
물론, 개천을 사용해 본 경험이 꼴랑 3번에 불과하니 흑천의 먹구름에도 통하는 공격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나.
기본적으로는 성흔의 마력을 포함한 그 어떠한 물리력도 그냥 통과해버리고 만다.
즉.
짧은 순간이나마 신체 일부를 흑천의 먹구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는.
‘순간 무적기를 하나 얻은 셈이지.’
심지어 상대편의 공격은 그대로 몸을 뚫고 통과되어 버리지만, 이쪽의 공격은 그대로 들어가는 불합리함까지 갖춘 제대로 된 사기 스킬이었다.
특성의 설명을 읽어본 오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발동 시간이랑 바꿀 수 있는 범위, 횟수 정도가 문제겠네.”
제대로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테스트해 볼 것들이 많았다.
오진은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기화를 사용했다.
쿠르르르륵.
기화를 사용하자 몸 일부가 검은 먹구름으로 변했다.
‘바꿀 수 있는 범위는 30cm 정도인가.’
팔 한 짝도 다 바꿀 수 없는 범위였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공격은 한 점에 집중되는 공격이 많기에 충분히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시전 시간은 거의 즉발이고.’
사용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순간적인 페이크나 회피기로 사용하기에 최적의 기술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마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데?”
고작 한 번 사용했을 뿐인데도 마력이 뭉텅이로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순수한 마력 양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오진이 이 정도라면 다른 각성자는 애초에 사용조차 할 수 없을 가능성이 컸다.
‘마력 양으로 봐선 실전에서는 3번… 아니 4번 정도 사용 가능하려나.’
오로지 회피에만 집중한다면 6~7번까지도 사용 가능했지만, 피하기만 한다고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기화를 사용해 공격을 피한 후 반격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전에서 사용 가능한 횟수는 3~4번 정도라 보는 게 맞다.
‘이건 천상길 어르신과 데미안의 마력을 모두 흡수하면 더 늘어날 테니까.’
사실상 무적에 가까운 회피기를 얻은 것만으로 수확은 충분했다.
‘회피만이 아니라 공격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또 다른 단점이 하나 있다면 몸 일부가 검은 먹구름으로 변하는 거라 너무 눈에 띈다는 건데.
“이건 환영이랑 섞어 쓰면 되지.”
기화를 사용한 부분에 환영을 사용하자 마치 그린 스크린에 CG를 입힌 것처럼 감쪽같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진을 상대하는 적의 입장에선 공격이 그대로 몸을 통과해지나가 버리는 꼴이 될 테니 마치 유령을 상대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너무 맘에 드는데 이거.”
오진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자, 그럼.’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기화 특성이 얼마나 사기적인 능력을 지녔는지는 잘 알았으니 이제 실전 테스트를 해봐야 할 시간.
“오늘의 상대는 누가 좋으려나.”
고민을 이어가던 오진은 씩 입꼬리를 올리며 천칭자리의 성흔을 활성화했다.
성흔에서 뻗어나간 빛무리가 모여 만들어진 것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잘생긴 청년.
차가운 눈동자를 빛내며 오진을 향해 새하얀 서리가 맺힌 검을 들어 올렸다.
“데네브의 원수! 별빛 전사의 이름으로 널 용서치 않겠다!”
“으음.”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데네브에게 접근하지 마라.”
“그래, 이래야 맞지.”
오진은 알렌 오스칼의 환영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전투 장면을 거의 보지 못한 터라 제대로 환영을 구현할 수 없었지만.
‘허구한 날 천도윤 그 자식 환영만 상대하긴 질리니까.’
가끔은 이런 기분 전환(?)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자, 그럼.”
촤르르르착! 허리춤에서 꺼낸 폴딩 나이프가 창의 형태로 변했다.
“시작해볼까.”
콰앙!
넓은 트레이닝 룸 안에 굉음이 울려 퍼지며 오진과 알렌 오스칼의 환영이 격돌했다.
* * *
“아따 간만에 몸 좀 움직이려니 죽겠네 아주.”
오진은 욱신거리는 몸을 매만지며 트레이닝 룸을 나섰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환영과의 전투에 몰두한 탓인지 어느새 밖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안 먹고 쭉 있었네.’
오진은 꼬르륵거리는 배를 쥐며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여니 돌핀 팬츠에 헐렁한 박스티를 입은 하은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수련 끝났어?”
오물오물 과자를 주워 먹고 있던 하은이 오진에게 달려오며 쑥 과자를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과자를 받아먹으며 물었다.
“누나도 잘 쉬었어?”
“오냐 아주 잘 쉬었다 인마.”
하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오진은 훤히 드러난 하은의 늘씬한 다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샤워는 이미 트레이닝 룸에서 마치고 온 터라 꺼릴 것도 없었다.
하은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오진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돌아오자마자 또 하려고?”
“크흠.”
“히히. 새끼 하여간 이 누나가 그렇게 좋냐?”
“뭐….”
오진은 낄낄 웃는 하은을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잃어버린 기억만큼,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는 말을 어떻게 그녀에게 할 수 있을까.
“말은 끝까지 해야지 요놈아.”
“시끄러.”
“짜식 부끄러워하기는. 하여간 우리 오지니 이럴 때 보면 귀여워 죽겠다니깐.”
하은이 오진의 뺨을 쭈욱 잡아 늘이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오진은 뺨에 잡아 늘이는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깊게 입을 맞췄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고 있을 무렵.
“아, 잠깐만. 하기 전에 얘기할 거 하나 있다.”
“뭔데?”
“아까 협회에서 연락이 왔어.”
협회?
‘그러고 보니 한동안 협회 쪽이랑 얘기한 적이 없네.’
한동안 이사벨라를 따라 이탈리아에 있거나, 베가의 신전에 틀어박혀 있거나 하느라 협회와 연락을 거의 나누지 못했다.
“뭔 일인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고. 내일 한 번 협회에 와줬으면 좋겠다더라.”
“으음.”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은 부탁이다.
“누나도 갈 거지?”
“뭐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같이 가야지.”
“그럼 내일 좀 일찍 일어나야겠네.”
오진은 하은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슬며시 풀며 떨어졌다.
내일 일정이 있다면 오늘 힘 빠지는 일은 최대한 지양해야 할 것이다.
“어딜 도망가려고?”
“내일 또 못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럼 무리하지 말고 딱 10번만 하자.”
“3번.”
“중간에서 만나서 9번.”
“…….”
이 누나 혹시 산수를 할 줄 모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