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2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28화
칠성 의회 (4)
술렁술렁.
순식간에 어수선해지는 연회장.
사람들은 오진을 바라보며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물론 걔 중에는 누군가를 하나 희생양으로 삼아 조롱하며 낄낄거리는 분위기가 불쾌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지금 이 자리와 맞지 않은 단 한 명의 인물, 오진을 바라보며 조롱의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주변의 반응을 느긋하게 살피던 남궁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마이크를 잡았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여러분! 다들 진정해 주세요.”
남궁휘는 오진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고위 각성자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저는 그가 충분히 칠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놓고 꼽을 주더니 아무렇지 않게 포장을 이어갔다.
“여러분도 그가 지난 1년간 이룩해온 많은 활약에 대해 들으신 적 있지 않습니까?”
주먹을 굳게 쥔 채 뜨거운 눈빛을 오진에게 향했다.
“그는 비록 9성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스스로 증명해 왔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썰렁한 분위기가 내려앉은 연회장.
작은 박수조차 울려 퍼지지 않는 분위기가 다들 내심 오진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었다.
“잠깐만요. 이건 좀 너무 무례하신 거 아닙니까?”
한 부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남궁휘를 노려봤다.
사실 오진이 후보로 뽑혔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긴 했다.
이 상황을 게임으로 비유하면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를 선정하는 대회에서 경력도 1년에 불과한 신입 선수가 뜬금없이 후보로 지원하게 된 상황이니까.
물론 오진이 데네브의 사도들을 4번이나 연속으로 꺾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면 이런 반응이 덜했겠지만.
성소에서 치러졌던 대리전을 지켜봤던 관중들은 대부분 성좌들이었기 때문에 일반 각성자들에겐 소문이 그리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 그렇게 느끼셨다면 죄송합니다.”
남궁휘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 오진 씨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아 달라는 의도로 말하려 했던 건데… 아무래도 앞서 했던 농담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군요.”
“하, 농담이었다고요?”
“예. 하지만 결국 어떤 농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했다면 사과하는 게 맞겠죠. 정말 죄송합니다.”
“…….”
남궁휘 쪽에서 저렇게 숙이고 들어오니 할 말이 없게 된 한 부장은 씩씩거리는 숨을 내뱉으며 도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쯧쯧.”
“괜히 찔리니까 발끈하는 거 봐.”
“한국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 흑사자 이우혁도 있을 텐데 왜 굳이 고위 각성자도 아닌 각성자를….”
“북극성의 성좌니까 데네브의 사도들처럼 유명해지고 싶은가 보지.”
한 부장의 행동으로 인해 되려 거세진 조롱.
날이 선 듯 날카로운 분위기가 연회장에 내려앉았다.
오진은 싸늘하게 식은 연회장 안에서.
“와, 이 스테이크 존나 맛있네.”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차려진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썰어 입에 넣고 있었다.
미디엄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가 마치 버터처럼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하하. 다행히 오진 씨도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네요.”
남궁휘는 방긋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 저희 후보들은 천선성 님과 탐랑성 님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영웅이 될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
시시콜콜한 연설이 이어졌다.
개회식이라는 게 의례 그렇듯 연설이 길어질수록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적당히 타이밍을 보던 남궁휘는 개회식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들을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쯤 되니 다들 지루해하시는 게 눈에 보이는군요. 아, 물론 저도 이런 지루하기만 한 연설은 딱 질색입니다.”
그는 옆에선 웨이에게 가볍게 손짓을 보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즐기실만한 가벼운 볼거리를 하나 제공해 드릴까 합니다.”
남궁휘는 마이크를 내려놓더니 넓은 단상 중앙에 섰다.
그는 품속에서 부채를 하나 꺼내 들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즐겁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콰르르르륵!
화르르르륵!
그 말을 끝으로 왼편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오른편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남궁휘를 향해 쏘아졌다.
남궁휘는 손에 쥔 부채를 펼치며 춤을 추듯 몸을 움직였다.
연회장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
봄 날씨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자 남궁휘를 향해 쏟아지던 거대한 물줄기와 불줄기가 바람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에는 물, 아래는 불꽃.
태극을 이루며 물과 불이 뒤엉켰다.
“와, 와아.”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올 만큼 아름다운 광경.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물과 불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을 누볐다.
놀라운 점은 분명 불과 물이 뒤엉겼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꺼지지도 물이 기화하지도 않았다는 것.
남궁휘는 마치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부채를 휘두르더니 물과 불을 이용해 사람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물로 만든 것은 탐랑성 천상길의 얼굴, 불로 만든 것은 천선성 데미안 살바토르의 얼굴이었다.
“두 영웅에게 편안한 안식을.”
남궁휘가 넓게 펼친 부채를 탁, 접자 데미안과 천상길의 얼굴이 찬란히 빛나는 별자리로 변하더니 서서히 흩어졌다.
“와아아아!”
“대, 대체 저걸 사람이 어떻게…?”
“얼마 전에 10성에 도달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자자리의 성흔을 완벽하게 마스터하신 것 같습니다!”
남궁휘가 보여준 믿을 수 없는 기예에 연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 세례를 보냈다.
“하하. 별거 아닌 재주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궁휘는 부채를 품에 넣으며 그림으로 그린 듯 반듯한 자세로 허리를 숙였다.
인사를 마친 남궁휘는 옆에 서 있던 웨이에게 마이크를 건네고는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
“다들 그럼 음식과 술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니 오늘 하루는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웨이의 외침을 끝으로 연회장에 작은 파티가 시작됐다.
사람들은 테이블 위에 차려진 각종 진미 대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유명 각성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이곳 연회장에 모인 스물여덟 명 중 두 명이 칠성이 되는 거니 미리 친분을 쌓아두려는 것이리라.
물론.
“후르르륵.”
오진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오진 씨.”
“예? 뭐가요?”
오진은 머리를 숙이는 한 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부장은 벌게진 얼굴로 솥뚜껑만 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오진 씨를 개회식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뭐 맛있는 거 공짜로 먹어서 전 좋습니다.”
“하, 하지만!”
“아까 그거 때문이라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오진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하도 시끄럽게 짖어대니 좀 거슬리긴 했지만, 딱히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때, 여러 유명 인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던 남궁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오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신경 안 쓰니 그만 가보셔도 됩니다.”
오진은 얇게 썬 토마토 위에 치즈가 올려진 디저트를 먹으며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뻘쭘히 손을 내밀고 있던 남궁휘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다시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다 보니 오진 씨의 자질을 몰라보는 사람들이 무례를 끼치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 나라도 구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굳이 ‘사람’을 ‘나라’로 바꿔 말한 의도를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중국 앞에서 깝치지 말라, 뭐 이건가.’
오진은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이렇게 너무 노골적으로 나오니까 오히려 우스울 정도였다.
“…제가 웃으실 만한 말을 했던가요?”
실소를 흘리는 오진을 바라보며 남궁휘가 슬며시 눈을 찌푸렸다.
둘 사이의 분위기가 살짝 험악해져 가고 있을 때.
“아이 씨, 뭔 씨바 이 드럽게 큰 타워 안에 흡연실 하나 없냐?”
연회장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하은이 들어왔다.
나름 코디에 신경을 쓴 모양인지 멋들어진 검은색 파티 드레스를 입고 온 그녀는 오진을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엇, 오지니 이 새끼 설마 그사이에 다 처먹은 건 아니겠지?”
“여기 스테이크 맛있더라.”
“내 건! 내 건 어딨는데!”
“두 개 먹으니 두 배로 맛있더라.”
“이 씹새가.”
하은이 헛소리 말고 자신의 몫을 내놓으라며 오진을 추궁하고 있을 때.
“…아.”
남궁휘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표정으로 하은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소를 머금고 있던 입은 경악에 차 벌어져 있었고, 부릅뜬 두 눈은 하은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찌 세상에 이런….”
남궁휘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말끝을 흐렸다.
비상식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와 최고급 도자기처럼 유려한 곡선을 가진 신체. 왼쪽 눈가를 뒤덮고 있는 검은 안대조차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다.
이제까지 수많은 여인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경악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은 처음이었다.
“응? 뭐야 얜?”
하은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궁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휘는 작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하은에게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남궁휘라고 합니다.”
“남궁휘…?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하하. 부끄럽지만 ‘풍신(風神)’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아, 기억났다.”
하은이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중국에서 꽤 유명한 각성자라고 들은 적 있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송하은이야.”
하은.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남궁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선 오진의 존재는 까맣게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쪽 테이블에는 하은 양이 드실 식사가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인데… 제 테이블에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안이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타고난 외모와 후보 대표로 뽑혔을 정도로 뛰어난 경지.
배경은 또 어떤가.
중국 최고의 가문인 남궁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각성자가 되기 전부터도 마치 왕처럼 중국 내에 군림하고 있었다.
오진이 아무리 하나뿐인 직녀성의 사도라고 한들, 자신과 비교할 순 없었다.
‘저놈이랑 좀 친분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풍신이라는 칭호에 대해 들은 적 있다면 그녀도 잘 알고 있으리라.
자신이 차기 칠성이 될 가장 유력한 각성자라는 것을.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
“싫은데?”
“…예?”
설마 이렇게 시원하게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지 남궁휘는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 하지만 여기서는 하은 양이 드실 식사가….”
“없긴 왜 없어?”
하은은 오진의 허벅지 위에 앉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우리 오지니 먹으면 되지.”
“…….”
남궁휘의 표정이 거칠게 일그러졌다.